Chapter 77
마나는 결코 정적인 물질이 아니다·
누구는 마나를 이상을 구체화시키는 도구라고 말한다·
누구는 운명을 개척하는 수레바퀴와 같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내가 마나를 정의내리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그들의 표현보다는 좀 더 삭막하고 밋밋하겠지만 나는 마나를 확률의 실타래라고 말하고 싶다·
확률의 또 다른 말은 가능성이었다·
우리는 그 실타래에서 하나의 실을 뽑아내 미래를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눈이 내릴 수도 있고 벼락이 내리칠 수도 있다·
당장 키우는 농작물이 말라 죽어버리기 직전인 농부는 적당한 소나기가 내리기를 원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뽑아내기 위해 우리는 수학을 배우고 자연현상을 관찰하며 마나라는 실과 마법진이라는 베틀로 미래라는 옷감을 짜는 것이다·
하지만 마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실타래다·
멈춰있는 자동차의 엔진을 수리하는 것보다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사람의 심장을 고치는 게 어렵듯이 마나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스승님은 이와 관련하여 ‘침대 위의 구슬’이라는 비유를 알려주었는데 나도 이에 크게 공감하는 바였다·
침대 위에 놓인 구슬은 외력 없이는 움직이지 않지만 우리가 위에 앉는 순간 그 중심으로 경사가 생기며 구슬이 뱅글뱅글 돌면서 다가온다·
우리는 경사가 생겼기 때문에 구슬이 굴러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정작 구슬 본인은 왜 자신이 움직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마나가 비록 지성체는 아니지만 난잡한 세상 속에서는 한 마리의 올챙이처럼 불규칙적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마법진에 적당량의 마나를 주입하기 까다로웠던 것이다·
[5·4]
“오 이번에는 꽤 선방했네·”
“솔직히 왜 높게 나왔는지도 모르겠어· 너무 힘들어어···”
십여 차례의 주입 끝에 유나는 기진맥진해져서 책상에 쿵하고 머리를 박았다·
마나를 전체적으로 넣어보기도 하고 정중앙에만 넣어보기도 했다·
내 말을 듣고 강도를 세게 할수록 전체적으로 마법진의 효율은 올라갔지만 가끔씩 2나 3의 숫자가 나오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메야 네가 해보면 안 돼?”
유나가 모형 마법진을 내게 건네주었다·
“효율은 몇 정도 나오게 할까?”
“그게 조절이 되는 거야?”
“응·”
“그렇구나···”
어떻게든 숫자를 높여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유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뭔가 어린 아이의 꿈을 짓밟는 느낌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
입이 삐죽 튀어나와서 누가 봐도 지금 서유나는 삐쳐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휴 어른인 내가 달래줘야지·
“유나야 내 말 들어봐· 내가 너보다 뛰어나서 마법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지금은 단순히 내가 너보다 마법에 대해 아는 게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야·”
“둘이 뭐가 다른데···”
“다르지· 유나는 마법 배운지 이제 1년밖에 안 됐다면서· 나는 그보다 훨씬 오래 했거든·”
“얼마나?”
“한 20년?”
“뻥 치지마···!”
“그래 한 5년 했어· 그러니까 유나가 공부 열심히 해서 내가 아는 걸 똑같이 다 배우면 분명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야·”
환생자가 어릴 때 천재처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꼭 성인이 되어서까지 천재가 되리라는 보장을 해주지는 않는다·
3황자 히아센이나 용사 클라우스가 아직 어릴 적에는 내가 그들을 검술로 압도할 수 있었어도 나중에는 결국 실력 면에서 따라잡힌 것처럼 말이다·
유나의 마법적 소양은 동 나잇대 어느 친구를 데려와도 전혀 꿀릴 게 없다고 그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이 마법도 어떤 건지 대충 알려줄게· 자 봐봐·”
서클의 수가 꼭 마법의 강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서클일수록 고출력의 마법을 내기가 용이했는데 이는 마나회로가 길고 복잡해짐에 따라 효율의 저하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마법도 사실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이것의 경우에는 나는 ‘열전달-코일’ 마법이라고 명명해보겠다·
내가 아까 전 유나의 머리를 살짝 데웠던 열전달 마법은 전도 대류 복사 중 한가지의 방법을 취사 선택하여 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서클인 이 마법의 경우에는 전자석과 코일을 사용하여 열을 전달하는 다소 독특한 마법이었다·
자세하게 설명을 하자면 ‘옴의 법칙(Ohm’s law)’이나 ‘저항손(Resistance Loss)’ ‘표피효과(Skin Effect)’ ‘와전류(Eddy current)’등을 알아야겠지만 괜히 유나에게 알려줬다가 애를 울릴 수도 있으니 입을 닫았다·
기본적으로 열 마법인만큼 벡터 마법이 아니기 때문에 마나를 많이 주입할수록 강한 출력이 나온다·
스케일(scale) 효과로 인해 강한 출력을 내는 마법일수록 상대적으로 비효율이 차지하는 부분이 떨어지기 때문에 검출값이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마법을 주입하는 부분에 따라 효율이 다르게 나왔던 이유는 마법진 자체에 저항값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방향에서 바라보았을 때 북쪽에서는 150kE만큼 주입하는 게 최적이었다면 남쪽에서는 그 200kE가 최적해로 나올 수도 있었다·
이런 저차원 마법에서는 150이나 200이나 어차피 도긴개긴이라서 그냥 효율 따위 무시하고 써버리면 됐었지만 그게 나중에 10만 100만 단위로 가버리면 주입 단계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간단하게 마법진 정중앙에 170kE 정도의 마나를 흘려보냈다·
삑-
[9·9]
이론상 최대 효율 임계값에 근접하여 마법이 시전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마 소수점 첫째자리까지 반올림 되어서 이렇게 나오는 것 같았다·
제대로 계산하면 99·17% 언저리의 효율이 나올 터였다·
“어떻게··· 어떻게 한번만에···?”
유나가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너도 할 수 있어· 171·4kE로 한번 마나를 넣어볼래?”
“난 그렇게까지는 정확하게 못하는데·”
“내가 도와줄 테니까 한번 해봐·”
예전에 화장실에서 깍지를 낀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유나의 손등에 내 손바닥을 겹쳤다·
인간의 피부에는 다양한 감각 수용기가 있는데 그중 촉각을 감지하는 메르켈 촉반과 진동을 감지하는 마이스너 소체는 손바닥에 특히 많이 분포해 있다·
이렇게 깍지를 끼면 유나가 마나의 실타래를 뽑아올 때마다 손이 떨리는 정도나 찌릿거리는 횟수를 통해 얼마나 그녀가 마나를 주입할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타인이 시전하는 마법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인간의 손은 예민하게 발달된 신체기관이었다·
“너 손 진짜 부드럽다· 아기 피부 같아·”
“나메가 할 말은 아니거든?”
“시간 거의 안 남았어· 빨리 해보자·”
“기절해도 난 몰라 이제·”
유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면서 마지막 남은 마나를 모두 끌어올렸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붉게 물들여버린 마나가 천천히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다·
“이제 150 넘었어·”
“조금만 더···?”
“넘치면 안 되니까 이제 천천히·”
손의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류와 그녀의 맥박까지 모두 느껴졌다·
마나의 주입은 비가역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한번 주입하면 다시 담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넉넉하게 채우는 게 좋겠지만 여기서는 효율만을 따질 예정이라 그녀에게 세밀한 조절을 부탁했다·
“지금 딱 170이야· 이제 한방울만 흘린다는 느낌으로·”
“한 방울? 어떻게? 나 그렇게는 할 줄 몰라!”
“할 수 있어· 그냥 느낌을 믿어봐·”
“진짜 모르겠는데···!”
결국 유나가 눈을 질끈 감고 네 손가락을 모두 접었다·
마지막 남은 새끼손가락 하나를 마법진에 갖다 대는 창의적인 발상을 시도했다·
본능적으로 접촉면적을 줄이면 주입량도 줄어든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완벽한데?”
삑-
“난 결과 못 보겠어! 네가 대신 알려줘!”
“진짜 안 볼 거야? 빨리 안 보면 리셋해버린다?”
나는 상자를 유나가 잘 볼 수 있도록 손으로 밀었다·
분명 그녀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값이리라·
[10·0]
* * *
재클린 캐롤 선생님은 수행평가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마법진과 동일한 구조의 모형을 통해 아이들이 ‘주입’ 단계에 친숙해지도록 하려는 목적은 조기에 달성된 것 같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마법진에 마나를 넣어보면서 그러한 과정을 종이에 기록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수행평가였지만 0부터 10이라는 정량적 수치가 존재하는 상자는 괜히 학생들의 승부욕만 불태우게 만들었다·
누가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하게 될 것인가?‘
세피론 아카데미 2학년 A반에서는 이 시간만큼은 가장 높은 효율로 마법진을 시전한 아이가 가장 뛰어나다는 암묵적인 동의 하에 조용한 경쟁이 이루어졌다·
시작은 김한결의 외침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봐라! 나 선생님보다 높게 나왔다! 8·7이야 8·7!”
한결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이들의 선망어린 시선을 받아냈다·
막무가내로 마나만 주입하면 랜덤으로 나오는 숫자들·
하지만 우연히 높은 숫자가 나오면 순식간에 반 아이들 전체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너무나도 달콤한 과실이었다·
“나는 9 넘었지롱!”
이하루가 자신의 상자를 보여주며 혀를 내밀었다·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는 이게 수행평가라는 사실이 잊혀졌다·
남은 시간은 5분·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기록이 다시 한번 윤시후에 의해 경신된다·
“애들아 봐봐! 윤시후 9·4 나왔어!”
정작 시후는 이런 경쟁에 크게 관심이 없어보였지만 많은 아이들이 자리에서 뛰쳐나가 확인할 정도로 반이 어수선해졌다·
벌써 경쟁을 포기한 이들도 하나 둘씩 생겨났고 아직 남은 시간에라도 자그마한 희망을 기대는 아이들도 몇몇 존재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 직전 서유나가 의자까지 박차고 덜컥 일어나면서 상자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10·”
그녀가 숫자 하나를 힘주어 외쳤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절대로 평범한 숫자가 아니었다·
“내가 이겼어·”
유나는 시후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연한 승리자의 조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cedia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진짜 TMI지만 제 노트북에는 100장이 넘는 응애나메의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친구 찬스를 제대로 써먹는 유나!! 스케일 효과는 경제학에서의 ‘규모의 경제’ 개념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나메는 왜 이렇게 아는 게 많아서 문과 작가를 이토록 괴롭히는 걸까요··!! 하지만 마법 얘기만 나오면 설명충으로 돌변하는 모습도 귀여우니까 봐주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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