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9
[선생님한테 걸리면 어떡하게!]
[왜? 진짜 담배도 아니잖아·]
[그래도! 그렇지만···]
나메의 당당한 행보에 유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비록 포션을 흡입해서 쓰디쓴 부분만 연기로 배출하는 원리라고 하지만 그 모습이 흡사 담배피는 모습과 너무 똑같았다·
유나도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었지만 아예 나메가 원리도 똑같다고 못박아버리니 친구의 일탈을 방관하는 죄악감까지 사뭇 몰려온 것이다·
오죽하면 포션 먹는 게 힘들어서 그랬을까라는 이해심과 그래도 학생으로서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한다는 양심이 충돌하며 유나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애초에 교내에서 함부로 마법을 쓰면 안 되는 거였잖아···!’
나메는 이에 제대로 맛 들렸는지 그 뒤로도 점심마다 뒤뜰에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만약에 그녀가 다른 반의 선생님이라거나 아카데미 관계자에게 걸리는 날이 온다면 최악의 경우 퇴학당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까지 해버린 유나였다·
원래 점심시간은 항상 유나의 자습시간이었다·
급식을 빨리 먹고 반에 돌아와서 복습을 하거나 식곤증을 달래면서 룬문자들을 외우곤 했다·
그러나 나메를 홀로 내버려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
그녀가 들키지 않도록 망을 보는 건 언제나 유나의 몫이었다·
“이렇게 막 마법을 써도 되는 거야?”
“2서클까지는 괜찮나 봐· 지금까지 안 걸린 거 보면· 맞다 이따가 6교시가 수행평가 마지막 시간이었지?”
나메가 태연하게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얼굴에 감정선이 적어 그냥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뒷골목의 무서운 일진 언니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응 나메 덕분에 이번 수행평가는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
유나도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나메는 자신과 단둘이 있을 때마다 모형 마법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으니 이제는 눈 감고도 마법진을 그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마저 있었다·
“유나는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뭐야?”
“과일? 갑자기? 으음··· 사과?”
“사과· 그래 사과는 코드가 뭐였더라·”
나메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각인 마법진을 수정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볼펜을 앙하고 물었다·
“이러면 대충 사과향이랑 비슷하려나?”
볼펜 내에서 가열과 기화가 이루어지면서 위잉-하는 소리가 났다·
매캐한 연기가 이번에도 똑같이 나메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과향···?”
그러나 그 안개가 유나의 코끝을 찔렀을 때 그녀는 달달한 향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목 전체를 태워버리던 씁쓸한 향은 온데간데 없었고 달콤한 사과향만이 남았었다·
“에이··· 맛은 똑같네· 그냥 향만 달라지는 거였구나·”
“뭐야? 어떻게 했어?”
“냄새 좋아?”
“응! 엄청 달아 이거·”
“다행이네· 내가 이거 피우는 거 유나가 많이 싫어하는 것 같아서 한번 해봤어·”
“그게··· 많이 티났어···?”
유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나메가 사람 감정을 읽어내는 데 능통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한낱 질투심 때문에 나메를 적대했던 때에도 민폐를 끼쳤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을 때에도 나메는 제 머리를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메는 벤치에 앉아있는 유나의 옆으로 다가와 자리를 차지했다· 유나는 이내 난처한 듯 나메의 시선을 피했다·
“천교수님이 곧 알약 형태의 포션도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하니까· 그때까지만 이렇게 필게· 유나도 매번 나 따라와서 귀찮잖아?”
천교수가 식품영양학과 교수들을 열심히 들들 볶은 결과 알약형 포션 프로토타입이 곧 나올 거라고 했다·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양해를 구하자 유나의 머리가 다시 나메쪽으로 휙 돌아갔다·
“아니야 하나도 안 귀찮아···! 그런 게 아닌데 나는··· 흑··· 아씨 왜 눈물이 나지···”
유나가 눈을 비비며 애써 눈물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자신도 포션을 먹어본 적이 있기에 저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액체인지 알 수 있었다·
혀에 닿는 순간 작열감과 구토감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포션을 유나는 그녀처럼 아무렇지 않게 먹을 자신이 없었다·
나메가 너무 아픈 내색을 하지 않길래 익숙해진 줄만 알았다·
그녀가 이전에 버스에서 먹을만한 수준이라고 일러준 건 어디까지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었음을 깨달았다·
포션만 먹으면 괜찮다는 말은 다시 말해 포션 없이는 시한부나 다름없다는 말과 동일했다·
‘나메도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닐 텐데··· 왜 난 나밖에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생각을 거듭할수록 유나 자신도 모르는 자기혐오와 연민 등의 부정적 감정이 뒤섞이면서 눈물이 주르륵 새어 나왔다·
“나 우는 거 아니야! 진짜 안 운다고···”
그와 동시에 또래의 친구에게 눈물을 보였다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벌써 나메의 앞에서 우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였다·
어느새 유나는 나메의 품에 안겨 있었다·
하필 오늘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유나가 제일 좋아하는 사과향이었다·
달콤함의 늪에 빠져 머리가 더 녹아내리기 전에 유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려서 울음기를 뚝 떨쳐냈다·
“나도 해볼래· 아니 할 거야·”
“뭐 이거?”
“응· 나도 피워볼 거야· 어차피 진짜 담배도 아니라면서·”
이것은 일탈이 아니라고 친구의 아픔을 공감해주기 위한 물밑 작업에 불과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나메에게 마법진 사용법에 대해 추궁했다·
“처음이니까 0·5옴으로 해봐· 적정량 계산하는 법은 이제 알지?”
“응· 나 혼자 잘할 수 있어·”
조화평균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숙지했었다·
하지만 유나는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코일의 저항값을 높이는 선택을 했다·
이왕하는 거 나메보다 더 많은 양의 연기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야 그렇게 많이 해버리면···!”
“흐읍···? 콜록! 후아아아 이거 생각보다··· 콜록! 뭔가 기분이 이상해·”
“나름 고농도 마나치료의 일종이니까 일시적인 고양감은 있겠지· 그래봤자 마력초처럼 중독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흐우 푸우우우··· 봐봐! 아직도 입에서 연기가 나와!”
유나는 또 언제 울었냐는 듯이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숨을 후후 불어대기 바빴다·
그런 쾌활한 모습에 나메가 미소를 싱긋 지으며 다시 포션 플라스크를 뺏어갔다·
“이제 여기까지· 생각보다 별 거 없었지?”
“응· 약간 박하사탕 먹는 것 같네· 목에서 톡톡 쏘는 느낌이야·”
“너 이제 옷에 사과향 다 배서 어떡하냐·”
“나메랑 똑같은 향기니까 괜찮지 않을까?”
“애가 갑자기 대담해졌네? 그래도 너 나중에 진짜 담배피면 안 된다· 그럼 내가 기필코 너의 어머니께 일러바칠 거야·”
“난 담배 절대 안 펴!”
유나가 벤치에서 일어나서 소리를 꽥 질렀다·
모범생이 담배를 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반면 나메도 처음 피워보는 일일 텐데 어찌 저렇게 능숙하게 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흐읍-
후우우우-
나메는 한쪽 손으로는 포션을 들고 다른 손은 교복 주머니에 넣고 있다·
유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계속 입을 뻐끔거리는 나메를 쭈욱 바라보았다·
계속되는 시선 공격에 나메도 유나와 눈이 다시 마주쳤다·
“그나저나 너 울었더니 눈이 새빨개졌는데? 바람이라도 불어줄까?”
“잉? 나 진짜 괜찮은데!”
“그래? 진짜 이대로 반에 들어가도 돼?”
“많이 빨간가···?”
나메가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눈을 자세히 확인했다·
턱없이 가까워진 거리감에 유나가 반사적으로 옆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유나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왜 그래?”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나메의 목이 돌아갔다·
건물 모서리 한 편에서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는 소년이 있었다·
“윤시후···?”
유나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노나메 지금 유나한테 뭐하는 거야?”
“어··· 어디서부터 봤어?”
“너희 설마 담배 펴?”
* * *
시후가 곧바로 도망치려는 걸 유나가 뛰어가서 간신히 제지했다·
오해일 뿐이라며 계속 억울함을 토해내는 유나의 말에도 시후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들을 쳐다봤다·
반으로 돌아온 우리들을 재키 선생님께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애들아 점심 잘 먹었니? 우아 달달한 냄새 정말 좋다! 향수 뿌렸어?”
“담···흡! 읍읍!”
“네···! 사과맛 향수 뿌렸어요!”
“덕분에 반에 좋은 향기가 진동하네· 곧 수업도 시작하니까 모두 준비하고 자리에 앉자!”
나이스 블로킹 서유나·
무언가 고자질하려고 했을 것 같은 시후의 입을 재빨리 막아버리고 우리들은 자리에 돌아갈 수 있었다·
유나가 교과서를 챙기려고 사물함에 간 사이 시후가 내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선생님한테 거짓말해도 돼?”
“향기 마법술식을 추가했으니까 이것도 일종의 향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담배 핀 거잖아···”
“담배는 담뱃잎으로 만들어야 담배지· 이건 포션이야·”
맞는 말이라서 딱히 반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이니까·
“너 유나한테 계속 나쁜 거 가르쳐주지 마·”
“수행평가에 대해 가르쳐줬을 뿐이야·”
“이게 무슨 수행평가야!”
“믿기 싫으면 말고·”
“선생님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세피론 아카데미에서도 벌점 규정이 있었다지·
하지만 내가 성적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난 그냥 적당한 선에서 마법만 쓸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나날이 단일시전 마나 사용량을 늘려가면서 들키는지 안 들키는지를 실험해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 포션을 괜찮게 먹는 방법을 찾은 것은 나로서도 큰 수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디어의 단초를 제공한 유나에게 칭찬 스티커 100장을 붙여주고 싶다·
“혹시 너도 피워보고 싶어서 그래?”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담배 안 피는 여자가 취향이야? 나도 아주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참고로 유나는 평생 안 핀다고 나랑 약속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니야! 다 아니야!”
“나메랑 시후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나도 나도 들려줘!”
어느새 냄새를 맡고 온 한서리가 우리쪽으로 다가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한서리 넌 또 뭐야? 무거우니까 내 어깨 누르지 좀 마!”
“윤시후의 여자 취향에 대해서 아주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었어· 서리야 글쎄 말이야···”
“아 진짜 노나메!”
“시후의 취향? 헉 나 대박 궁금해!”
“아아아아아 제발!”
아 애들 놀리는 거 너무 재밌다·
진짜로 반응이 히아센 어릴 때랑 똑같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재키 선생님의 반응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시후는 담배 안 피는 여자가 취향인가 보네요··!! 저도 크게 동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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