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1
“오늘은 선생님이 재단에서 오신 분이랑 회의가 있어가지고 4교시는 자유 시간으로 대체할게요· 대신 여러분께 설문지를 나누어 줄 테니까 모든 질문에 빠짐없이 적어서 선생님 책상에 뒤집어서 올려놓으면 돼요· 각자 이름 쓰는 것도 까먹지 말고요! 다 하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알았죠?”
““네에에!””
“아 주의사항이 있는데 마지막 페이지는 꼭 혼자서 답변해야 되니까 혹시라도 다른 친구에게 보여달라고 떼 써도 안 돼요· 그럼 끝나고 다들 점심 맛있게 먹어요!”
재클린 선생님은 종이뭉치를 가장 앞자리에 있었던 한결에게 건네주면서 성급히 반을 빠져나갔다·
“우와 자유시간이다 자유시간!”
그로부터 건네받은 설문지의 양은 대략 양면으로 A4 3장 분량이었다·
질문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아서 빨리 적고 놀 생각에 반 아이들은 다들 기분이 들떠 있었다·
유나가 내 등을 툭툭 건드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같이 얘기하면서 설문지 쓰자!”
“그러지 뭐· 혼자 하면 심심해서 그래?”
“응!”
옆에서 시후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유나가 하자는데 뭐 어쩌겠어·
아니다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이었나? 혹시 몰라 시후에게도 권유해봤다·
“시후 너도 우리랑 같이 할래?”
“아니· 그리고 설문조사는 원래 혼자서 하는 거거든?”
“딴 애들은 지금 다 같이 하고 있는데? 뭐야 유나랑 단둘이 아니라면 싫다는 거야?”
“아··· 아니···!”
“시후가 나랑 왜?”
유나가 순진하게 물어오자 시후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방해 안 할 테니까 둘이서 열심히 해 봐!”
“안 그래도 그럴 거였어·”
난 의자를 아예 뒤로 돌려서 유나와 마주보도록 만들었다·
“자리 바꿔줄까?”
옆자리 친구 요한이가 물었다·
“아냐· 다 하기 전까지 선생님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면서· 규칙은 지켜야지·”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니까· 어른이면 아이들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이다·
“서술형으로 적는 것도 많아보여서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러네· 15분은 걸리겠어·”
“응응· 빨리 끝내버리고 우리도 같이 놀자·”
가장 앞페이지에 우리의 이름을 적고 페이지를 넘겨서 첫 번째 질문을 확인했다·
[1·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마법의 주입’ 과목란에 체크 표시를 했다·
“헐 벌써 골랐어?”
“유나는? 이게 고민되는 문제야?”
왜 마법을 고르지 않는 거지?
얘네들은 마법이 없는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이게 신기한 일인지 체감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마법도 엄연히 큰 틀에서 우주적 물리법칙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가들의 주장이고 사실 아직도 나한테 마법이라는 건 미지의 산물이었다·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미사일 하나를 발사할 때도 얼마나 많은 석학들이 달려들어서 머리를 싸매고 일일이 수식을 적고 수천번의 실험 테스트를 거쳤는데 말이다·
그러지 않고는 작동은커녕 그 자리에서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마법이라는 건 일단 기본적인 틀만 유지하면 시전자가 원하는 방향에 최대한 맞추어서 결과가 나온다·
물론 올바른 수·과학지식을 함양하여 마법진을 구체화 시킬 수록 그 마법의 위력과 정확성이 증대되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한 수준이지·
결국 내 강요에 못 이겨 유나도 나랑 똑같이 마법의 주입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아니면 어떡하냐고? 내가 좋아하게 만들어 줄 거니까 상관은 없었다·
“빨리 다음 질문도 답해보자·”
“싫어하는 과목? 난 체육·”
피구처럼 쓸데없는 것에 몸을 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몸뚱아리가 약하기도 했을 뿐더러 그냥 천성적으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도 싫어하는 편이었다·
“나메는 맨날 체육시간에 쉬니까 그럴 것 같았어· 나는 미술·”
“미술? 그건 진짜 의외네 보통은 다들 좋아하는데 말이야·”
“우리 큰 오빠가 그림 진짜 잘 그리는데 내가 그릴 때마다 이상하다고 놀려서 별로 안 좋아해···”
“하하··· 싫어할 만 하네·”
어린아이의 동심을 짓밟는다니 잔인한 일이다· 이게 남매라는 걸까· 이해는 된다·
한 지붕에 살고 있는 사람이 심지어 내 또래라면 뭔가 괴롭히고 싶어지니까 말이야·
[4·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면?]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칸에 나는 천교수님의 성함을 적을까 하다가 그런 의도로 묻는 질문은 아닌듯 하여 단순하게 두글자를 적어냈다·
‘아빠’·
뭔가 처음으로 가족다운 가족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5· 자신의 성격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어서 잠시 펜이 멈추었다·
[···그대는 정말 끝까지 이런 식이야·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본인 생각밖에 안 할 수 있나?]
“흐으음··· 유나야 내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해?”
“나메는 천사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해!”
“내가 내 손으로 그렇게 쓰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은데?”
“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나메는 완전 천사인데·”
천사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다· 그렇다고 착하다라고 쓰기에도 너무 성의 없어 보이고·
나는 시선을 돌려 옆 분단에서 조잘대는 여자애들에게 물어봤다·
“애들아 내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해?”
지금의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는 나도 궁금하긴 하네·
어릴 때 이런 부분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어느 때를 기점으로 아예 생각하지 않아버렸다·
조금은 흥미가 갔다·
“으으음··· 잘 모르겠는데? 하루야 너는?”
“그··· 음···”
누리는 모르겠다고 하고 하루는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미루었다·
“모르겠으면 나 혼자서 대충 적어볼게·”
“엄마 같다고 생각해!”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루의 너무 뜬금없는 소리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처럼 친절하고 멋있다고···”
하루가 뒤늦게 손을 내저으며 변명해보았다·
“신박한 표현이라서 마음에 드네· 그럼 그대로 쓸게·”
“천사는 왜 안 되는데···!”
“그래도 내 성격에 천사는 너무 갔지·”
유나가 볼을 부풀리며 항의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그 뒤로는 비교적 쉬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나의 습관이나 흥미 여가 시간에 무얼 하는지 인상 깊게 본 책이나 영화 최근에 있었던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을 해나갔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항목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그리운 스승님의 이름을 적어 내렸다·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테라루비]
마지막 장은 꼭 혼자서 하라고 해서 뭐 중요한 게 있나 싶었더니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친구들에게 하는 건의사항 선생님에게 개인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 아카데미에게 하고 싶은 말 등등·
싱거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빠르게 적어버리고 설문지를 마쳤다·
“아직 못 끝냈어?”
유나는 마지막 장에서 몇 분이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어려운데···”
“왜?”
“밑에서 세 번째 질문···”
[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 3명은?]
유나가 깊은 한숨과 함께 책상에 엎어져버렸다·
* * *
재클린 캐롤의 업무는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도 쭉 이어진다·
마법의 주입 수행평가로 인해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를 3시간에 걸쳐 모두 채점하고 난 참이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브이튜브를 보지 않았더라면 2시간 안에도 끝낼 수 있었지만 말이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언제나 학부모 상담이 진행되었다· 한 명이 끝나면 또 다음 학생의 학부모가 기다린다·
‘다음 차례는 어디보자··· 유나하고 요한이구나·’
학기 초 상담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정말 곤혹이었다·
학부모 상담은 아카데미에서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생이 바쁜 학부모들을 염치 불고하고 어떻게든 아카데미로 불러내야만 했다·
적성평가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는지 설명하고 교사의 눈으로 본 아카데미 생활도 간략히 전달해준다·
또한 재클린은 전체적으로 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이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반 아이들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학부모 상담이 시작된 지도 벌써 이틀 차였지만 아직도 설문지 결과를 종합해보지 않아서 오늘만큼은 기필코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재클린은 종이 더미를 책상 앞에 올려놓았다·
설문지에 있는 질문의 수는 다양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누가 있는지 현재 가장 고민이 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의 간단한 문답으로 시작했다·
재클린은 그들의 응답을 하나하나 데이터셀에 집어넣으면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런 걸 아직도 아날로그로 처리해야 하는 점에 대해 투정을 부렸다·
세피론 아카데미 학생들의 주요 고민거리는 성적이 65%로 가장 앞서있었고 친구관계 여가시간 부족 가족관계 등이 뒤따랐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아이 3명을 물어보는 질문을 정리하는 과정은 더욱 복잡했다·
그래도 하나하나 기계적으로 정리를 해보니 수십 개의 화살표가 화면에 나타났다·
화살표가 몰려 있을 수록 반에서 중심이 되는 아이라는 뜻이었다·
‘한서리’가 당연히 가장 많은 화살표를 받았고 ‘이하루’와 ‘김한결’도 수치를 보였다·
부모님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나 듣기 싫은 말 평소의 학습 시간 아카데미에게 하는 건의사항을 빠짐없이 살펴본 재키 선생은 마지막 문항에 눈길이 갔다·
평소 행실을 고쳐주었으면 하는 친구가 반에 있다면 누구이고 그 이유까지·
보통은 동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일수록 이성친구에게 미움을 많이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이 김한결도 3명의 여자 아이들에게서 장난을 많이 쳐서 싫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하루도 4명의 남자 아이들에게서 잔소리가 심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실 이런 건 딱히 문제의 소지가 없었지만 그녀는 다른 인물에 주목했다·
반 아이들에게서 단 두 개의 화살표만 얻은 유나는 반 과반수의 친구들에게 미움받고 있었다·
잘난 척해서 이기적이라서 나쁜 말을 해서 숙제를 안 알려줘서·
그녀는 A반에서 갖가지의 이유로 고립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재클린은 유나의 설문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 세 명을 묻는 물음에 그녀는 오직 한 명의 이름을 칸 세 개에 똑같이 적어 냈었다·
[노나메 / 노나메 / 노나메]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할 것 같은 친구 부문에서 윤시후를 제치고 1위에 든 아이·
또한 반에서 가장 친해지고 싶은 아이로 뽑히기도 했다·
재클린은 나메의 설문지를 찾아 대조해보면서 혹시 그녀는 친구로 누구를 지목해 제출했는지 살펴보았다·
[서유나 / 한서리 / 윤시후]
“다행히 나메가 잘 챙겨주고 있었나 보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은 누구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윽··· 머리가··!! 어떻게 한 반에 친구가 3명이나 있을 수가 있는 거죠··!! 너무 가혹한 질문인 것입니다!!
익명의 후원자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귀염뽀짝한 친구들이 잔뜩 나와서 요즘 글쓰는 게 너무 즐겁네요··!! 나메의 마망력도 하늘을 뚫을 기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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