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3
“어? 거기서 뭐 해 애들아?”
“와서 앉아·”
“우아아앗!”
친구들이랑 실컷 떠들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누리도·
“한 명 모자란데?”
“내가 데려올게· 야 윤시후 너도 와서 빨리 해· 4대 4 팀전으로 공기놀이 할 거니까·”
“뭐? 잡아당기지 마 옷 늘어나!”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던 시후도·
어느새 여덟 명이나 되는 인원이 둥글게 모여서 공기놀이를 하게 되었다·
방앗간을 지나치는 참새는 존재할 수 없듯이 무언가 신기한 놀이를 본 아이들은 홀린 듯이 우리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유나와 내가 서로 다른 팀이 되어서 시작하게 된 공기놀이 팀전·
한 명이 실패하면 다른 이가 똑같은 단계에서 넘겨받아서 쭉 이어지게 하는 게임이었다·
첫판은 가볍게 30년으로 시작했었다·
내가 진심으로 하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할 수 있으니까 적당히 5년 선에서 끝냈는데 처음부터 유나가 연달아 9년을 성공시켜버리면서 판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결국 최종은 31대 26으로 유나팀의 승리·
“우아아아아! 이겼다아아아!”
“너무 쉬운데 나메야?”
“룰을 바꿔보자·”
“그럼 50년으로 해?”
“아니 이제부터 상대팀은 공깃돌의 무게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걸로·”
괜히 공깃돌 내부를 마나를 응집해서 만든 게 아니었다·
여기까지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지·
“이 공깃돌은 주변의 마나 농도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게 만들어놨어· 만약에 내가 여기서 대량의 마나를 주입하면 유나야 그거 한번 집어봐봐·”
“뭐야? 이거 엄청 무거워졌어!”
“공깃돌의 무게가 시시각각 바뀌는 거지·”
단순히 년수만 늘리면 게임이 루즈해진다·
또한 팀전이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 게임이다·
“한번 ‘꺾기’도 해볼래?”
유나가 다섯 개의 공깃돌을 집어 허공에 던졌다·
“우아앗! 뭐야?”
똑같은 힘으로 던졌을 때 가벼운 공깃돌은 한참 위로 올라가고 무거운 공깃돌은 얼마 못 가서 떨어져버렸다·
“이렇게 상대팀은 공깃돌마다 무게를 바꾸면서 방해할 수 있어· 똑같이 30년으로 시작해볼까?”
이렇게 하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기놀이 팀전이 될 수 있다·
원래 열심히 하는 상대를 방해하는 것만큼 재밌는 게 또 없지 않은가?
“전누리 너 화장실 갔다 온다면서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내 위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하루가 팔짱을 끼고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완전 재밌어! 같이 해보자 너도·”
“뭔데 이게?”
하루가 쪼그리고 앉아서 볼품없는 플라스틱 조각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4대4라 인원이 안 맞네·
하는 수 없이 내가 일어서서 이하루도 게임에 합류시키기로 했다·
“나메 너 어디가?”
“지금 사람이 홀수잖아· 이번판에는 내가 빠질게· 대신 우리 팀에 하루가 들어갈 거야·”
유나가 갑자기 내게 귀를 대보라고 해서 얼굴을 가까이 했다·
“나 쟤 싫은데· 이하루 맨날 나 뒷담까는 애란 말이야·”
“이 기회에 친해져보는 게 어떨까?”
“···모르겠어 잘·”
정작 어안이 벙벙한 건 이하루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나 한다고는 말 안 했는-”
“자 유나 옆자리에 앉아·”
어쩌다보니 유나와 누리 사이에 낑겨서 공기놀이에 참여하게 된 하루는 최소한 룰이라도 알려달라며 울상을 지었다·
“나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몰라·”
“마시면서~ 배우는~ 재미난~ 게임·”
“응?”
“술이 없구나 참· 그냥 애들보고 따라해· 별로 어렵지는 않으니까·”
내 주제에 괜히 되도 않는 멘트로 분위기를 띄워보려 했다가 다들 모르는 눈치에 무안해진 나머지 하루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애들 돌보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술이 고픈 날이었다·
화장실이나 다녀와야지·
* * *
라이벌이라 함은 막상막하의 경쟁상대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이는 서로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를 가정한 것이었다·
시후는 그저 유나가 혼자서 경쟁자라고 생각할 뿐이었다면 유나의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은 이하루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철천지원수를 바라보는 두 소녀의 눈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 무엇이든 간에 절대로 이 녀석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녀들을 지배하였다·
다만 이 게임에서 유리한 건 아무래도 나메에게서 가장 먼저 공기놀이를 전수받은 유나였다·
“아싸 3년! 이제 2년 남았네?”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다른 쪽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야 무작정 다 무겁게 만들어버리면 어떡해! 서유나가 너무 쉽게 잡아버리잖아·”
“난 이번에 정말로 마나 안 썼어· 이하루 네가 힘조절을 잘못해서 그런 거겠지·”
“헤헤 이것도 슬슬 적응이 되네? 이러다 우리가 먼저 끝나버리겠어·”
호기롭게 으쓱대는 유나였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도 바로 다음 1단계에서 갑자기 가벼워진 공깃돌을 놓치며 턴을 내주게 되어버렸다·
“이하루 파이팅!”
“똑똑히 봐둬 서유나· 네 턴까지 안 올테니까·”
하루는 공깃돌이 무거워지는 원리를 깨달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주변 마나의 농도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는 뜻은 곧 이를 역으로 조절하여 파훼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돌을 던지고 받는 것도 어려운데 동시에 마나까지 다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서유나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이 또한 감내해야겠지· 하루가 이를 악물고 모든 정신을 공깃돌에 집중했다·
‘노란색 공깃돌은 무거워 반면에 푸른색은 지나치게 가볍고·’
전자는 마나를 흐뜨려뜨려서 무게를 낮추는 방법을 후자는 그 마나를 다시 응집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온 하루가 마침내 돌을 던졌다·
그 순간 유나의 눈이 붉게 번뜩였다·
그녀는 작은 마나 폭풍을 일으켜서 순식간에 가벼웠던 것을 무겁게 무거웠던 것을 가볍게 만들어버렸다·
“아···!”
핸들이 반대로 움직이는 자전거는 인간의 두뇌로는 탈 수 없듯이 갑자기 뒤바뀌어버린 개념을 단시간에 적응해내기에는 무리였다·
하루의 주먹에서 공깃돌 한 개가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넋이 나가버린 하루에게 공깃돌을 넘겨받은 시후가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고 꺾기에서 공깃돌 2개를 잡아내며 두 번째 팀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꺄아아악! 윤시후 역시 대단해· 너만 믿고 있었어!”
“아 좀 떨어져 서유나!”
“이겼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저 재수없는 왕따가 좋아하는 모습이 꼴보기 싫었던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나도 화장실 좀·”
“같이 갈까?”
“아냐 혼자 가도 돼· 누리 넌 아까 다녀왔잖아·”
하루는 자신의 두 볼을 만져보았다· 뜨겁게 달구어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간단하게 세수라도 할 심산으로 반을 나왔다·
B반부터 D반까지는 다른 과목 수업 중이라서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하루는 복도를 쭉 지나치면 나오는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딴 유치한 게임 다시는 하나 봐라·”
급격하게 무거워진 공깃돌 때문에 하루의 손등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세면대에 찬물을 틀어서 조금 담가놓고 있으면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자 화장실의 불은 하루가 들어오기 전부터 켜져있었다·
센서로 작동하는 전등이었기 때문에 누가 이미 화장실에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쿵-
‘누가 있나?’
환풍기가 있는 화장실 마지막 칸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덜컹거리는 음이 울려댔다·
하지만 하루의 기억으로는 마지막 칸에는 변기가 분명 없었다·
오후 시간대에는 화장실을 청소해주시는 분도 안 계실 텐데 과연 누구일까?
손을 씻다 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루의 몸이 화장실 가장 안쪽으로 쏠렸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누구 있어?”
“···”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인기척은 똑똑히 하루의 귀까지 들려왔다·
창문으로 들어온 다람쥐일까? 설마 생쥐면 어떡하지?
짧은 고민을 마치고 하루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끼익-
“꺄아아아아악! 뭐야 노나메···?”
방금까지 공기놀이를 했던 아이가 언제 화장실에 왔었지?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나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게임에서 잠시 빠진 김에 화장실에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나메는 작은 의자 위에 위태롭게 올라서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문을 활짝 열자 달달한 사과향이 화장실 전체에 확 퍼져나갔다·
“무슨 냄새야 이게···?”
“콜록! 하루구나· 깜짝 놀랄뻔했어·”
“뭐야? 입에서 왜 연기가···?”
작게 기침을 토해낸 나메의 입에서 칙칙한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 연기는 뱅글뱅글 돌면서 천장으로 올라가더니 이내 환풍기를 통해 밖으로 빨려 나갔다·
하루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언니로부터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질 나쁜 아이들이 틈만 나면 화장실 환풍기 앞에 붙어서 담배를 피고 온다는 사실을·
이는 옷에 담배 냄새가 묻지 않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덩달아 떠올렸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이 전학생이 하고 있는지는 하루로서도 의문이었다·
“하루야 잠깐 이리 와볼래?”
“아니···? 내가 왜?”
“둘만 있는 김에 얘기 좀 나눠볼까 해서·”
“아냐 나 다시 반으로 돌아갈게·”
그녀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하루가 뒷걸음치며 화장실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한때 나메와도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분명 나메는 유나와는 달리 키도 몸집도 모두 작아서 무섭게 보이는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왜 자신이 겁을 먹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저런 아이와 엮이지 말아야한다는 본능에서 나온 움직임이었다·
[시전: 회전 운동]
철컥-
호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장실 출입문을 잠그는 수동식 장치가 90도 회전하였다·
만 8세 아이의 손이 그 높이까지 닿을 리 만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킹스맨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순간이네요··!! 나메는 8살이 되려면 아직 두 달이나 넘게 남았습니다!!
마나인방이 인생픽 순위권이라니 다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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