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5
“와아아아아!”
“어떻게 1년을 남기고···!”
“응 다시하기 없어! 이제 우리 턴이야!”
“서유나 끝내버려! 끝내 끝내!”
“너 무조건 실수한다! 공깃돌 떨어뜨린다!”
“방해해봤자 하나도 소용 없거든!”
나메가 공기놀이를 가르쳐준 뒤로 2학년 A반은 이제 점심시간과 쉬는시간마다 공기놀이가 유행이었다·
아이들답게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고인물이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숙련된 모습을 보였다·
나메는 그 무리에서 한 발 떨어져 천천히 그들이 노는 광경을 구경했다·
유나는 어느새 아이들의 신임을 등에 잔뜩 업고 제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넌 안 놀아?”
양치질을 마치고 온 하루가 나메의 옆자리에 앉아서 물었다·
“네 말대로 조금 유치하기는 하잖아?”
“네가 만든 놀이라면서·”
“난 옛날에 지겹도록 많이 했거든· 혼자 있을 때 마땅히 할 만한 게 공기놀이 말고는 없었으니까· 실뜨기를 할 수도 없고·”
“역시 너 이상해·”
하루가 담백한 평가를 내렸다· 나메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수긍의 의사를 보였다·
또 이런 식이었다·
나메가 지금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건지 그냥 허공만 응시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초점 잃은 눈을 할 때만 보면 맨날 안마의자에 앉아 먼 산과 유유히 흐르는 한강만을 바라보는 자신의 증조할머니가 겹쳐보였다·
“무슨 생각해?”
“그냥··· 옛날 생각·”
“옛날 일이 기억나?”
“응 난 아기 때도 기억나는 걸·”
하루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하려다가도 뭔가 나메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반박의견은 고이 접었다·
“너한테 갑자기 왜 내 가정사를 다 말해줬을까· 절친인 누리한테도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결국 내가 아니었어도 누구한테 털어놓고 싶었던 모양이었나보지·”
“아니야···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해···? 당장 서유나도 작년에 애들이 그거 가지고 엄청 놀렸는데· 왠지 나메는 안 그럴 것 같았어·”
이미 나메는 반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아이로 통하고 있었다·
원래 그 역할을 맡았던 하루가 직접 공인할 정도였다·
하루는 문득 나메가 저번에 자신을 치료해주었던 일이 떠올라 그 얘기를 꺼냈다·
“그때 어떻게 한 거야···?”
“뭐가?”
“저번에 나 길에서 쓰러졌을 때 네가 나 껴안아줬잖아· 갑자기 머리가 하나도 안 아파졌어·”
“아아 오러를 좀 썼지· 마법을 사용할까 생각했었는데 정확히 네 몸 상태를 잘 모르겠어서·”
“오러···? 그건 근육 강해지게 만들 때 쓰는 마나 아니야?”
“사용법은 무궁무진해· 보통은 신체강화류 오러가 가장 대표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항정신성약물을 대체하는 효과로도 쓰일 수도 있지·”
“으에 하나도 이해가 안 돼···”
마나는 잘못하면 찰나일지라도 체내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반면에 오러는 몸이 허용하는 적당한 선에서 공존하니까 부작용의 염려도 없었다·
특히나 심적외상 치료에 벤조디아제핀계의 항불안제나 항우울제의 사용은 추천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 나메의 목적도 어디까지나 증상의 완화였지 치료는 아니었다·
“그래서 정확히 증상이 어떤데? 그냥 머리가 지끈거리듯이 아픈 거야?”
“아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삐소리가 막 울려서 머리가 아파·”
하루는 환청의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를 호소했다·
때문에 그녀의 환청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나메로서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메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한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럼 먼저 유나와 화해해볼래?”
“에에엑 지금?”
예상치 못한 말에 하루의 표정이 격하게 흔들렸다·
만약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증상이면 무의식적 결핍을 채워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옳은 방향이리라·
하루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회피하는 사이 나메가 가까이 다가왔다·
“너도 유나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잖아·”
하루는 자신의 긴 머리칼을 스치듯 만졌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베베 꼬는 모습이 그녀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부끄럽잖아··· 유나는 내가 사과하는 거 별로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간신히 꺼낸 말에는 깊은 불신이 묻어 나왔다·
절교를 선언한 친구와 다시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까닭이었다·
“나는 이해가 잘 안 돼· 왜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서로를 미워하고 후회할 짓을 계속하는 걸까?”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유나에게 맞았던 그날 넌 유나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럼·”
나메는 미동도 하지 않고 하루의 답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유나가 다른 반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절대 그런 생각이 아니야 오해하지 마···!”
나메한테만큼은 털어놓기 싫었던 본심이었다·
나메가 이 말을 듣고 자신에게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유나가 당장이라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
하루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무미건조한 어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영 극단적이었다·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어!”
“그런데 왜 사과를 미루는 거야? 만약에 유나가 오늘 죽어버려서 평생 네 사과를 받지 못 하는 상황이 오면 그래도 좋은 거야?”
“그건···”
“죽음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너도 나도 유나도·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내일도 찾아오리라는 보장이 없거든·”
사랑하는 연인과 부모와 자식과 싸우는 사람들이 나메에게는 가장 이해가 어려운 부류 중 하나였다·
“부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 * *
사실 하루에게 말은 거창하게 했는데···
어린 애들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화해시키면 좋을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전전생에서도 인간관계는 언제나 한 자리 수였다·
극단적인 아싸의 표본이라고 해도 반론할 만한 거리가 없는 게 슬픈 현실이겠지·
하지만 하루의 상태를 보아하니 정말 위태로워 보여서 한시라도 빨리 마음의 병이든 뭐든 고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고안해낸 게 겨우 이거였다·
“파자마 파티?”
유나가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응· 이번 주 주말에 어때?”
“어· 아· 으으··· 난 좋은데 그럼 공부는 언제 하지···”
“우리 집에서도 할 수는 있잖아· 정 걱정되면 다음 수행평가도 내가 도와줄게·”
“와아아 진짜? 친구 집에서 단둘이 밤새서 노는 건 처음이라 너무 설레···!”
“단둘은 아니고· 이하루도 같이·”
“이하루는 왜···?”
싸늘하게 돌변한 유나가 대놓고 싫은 기색을 표했다·
“다같이 놀면 재미있잖아·”
“나랑 둘이서 노는 건 별로야? 내가 재미없어서 그래? 나한테 친구는 나메밖에 없는데··· 그래서 설문조사 때도 네 이름밖에 안 적었는데···”
유나가 내 옷깃을 붙잡고 울먹거렸다·
“나도 유나 이름을 제일 첫 번째로 적어서 냈어·”
“진짜?”
유나가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화답했다·
정말 단순한 아이였다· 이런 애가 또 성적은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에 아이러니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사실 하루가 너한테 할 말이 있대서 우리 집으로 불렀어·”
“그럼 그냥 여기 반에서 말해도 되잖아·”
“조금 진지한 이야기인가봐·”
“알겠어··· 그래도 나메 절친은 나지? 절대 까먹으면 안 돼!”
유나의 볼을 양옆으로 쭈욱 늘려주는 걸로 긍정의 대답을 대신했다·
애가 정말 욕심만 많아가지고···!
“흐에에·”
그래도 순수하니까 봐준다·
“그럼 뭐 챙겨가야 해? 잠옷?”
“다음날 입을 옷이랑 칫솔같은 세면도구도 가져와야겠지?”
“응응· 엄마한테 일단 물어봐서 챙겨볼게! 베개는 필요 없어?”
“베개랑 이불은 우리 집에도 충분하니까 괜찮아·”
“인형은?”
“··· 정 가져오고 싶으면 가져와·”
“헤헤 아니야· 사실 돌고래씨 없어도 나메 껴안고 자면 밤에도 안 무서울 것 같아···!”
난 내 몸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왜 벌써부터 김칫국일까·
만약 그녀가 잠버릇이 심하다 싶으면 난 곧바로 내 침대로 올라가버릴 예정이었다·
그러면 이튿날 유나가 100% 확률로 울상이 된 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하루네 집안이 허락할지가 문제였는데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이번 주 토요일에 꼭 우리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언질을 해놓았다·
천교수님에게도 맛있는 요리를 부탁한다고 미리 말씀을 드려야겠다·
메뉴의 선택은 전적으로 교수님의 재량이었지만 디저트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무조건 크레페다·
어떻게 하면 유나와 하루를 친해지게 만들 수 있을지도 이제부터 차근차근 고민해봐야겠지·
마지막으로 인터넷 방송이라는 미룰 수 없는 과제도 떠올렸다·
내가 알기로는 4주 동안 도네이션을 받지 않으면 수익창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건이 약관상 존재했었다·
게임을 할지 말지는 지켜보아야겠지만 조만간 방송에도 얼굴 한 번쯤은 비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cedia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아카데미 응애들을 만나셔서 즐거우셨나요? 애들과 같이 어우러지면서 나메가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
진도가 루즈해진 감도 있고 에샤 황녀님이랑 아델라가 보고 싶기도 해서 다시 스토리 진행에 시동을 걸어봤습니다!! 긴 여정을 떠나기 전 파자마 파티로 힐링 좀 하다 가죠··!!
한 달 전 조회수 5만으로 플러스에 입성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마나인방’이 벌써 20만 조회수를 찍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1만’시간이나 투자를 받은 셈이 되네요· 막중한 부담감이 느껴지지만 완결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