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8
3월의 마지막 날·
시아는 브이튜브 정산을 마쳤다는 소식을 내게 전해주었었다·
계좌에 입금된 300만원의 액수를 보고 놀라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NoName: 액수가 너무 큰데?]
[혜밤: 우리 나메 엄청 유명인 됐던데 앞으로 나올 조회수까지 계산해서 두둑하게 챙겨드렸습니다· ^^7]
내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려는 찰나에 시아는 곧이어 영상 링크를 하나 보내주었다·
[해외에서 난리라는 의문의 한국인 마도사 스트리머 (간지폭발 주의)]
-조회수 103만회 · 2일 전
[혜밤: 이거 진짜 너야?]
[혜밤: 대박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
[NoName: ?]
20분 가량의 긴 영상·
그 영상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생의 나였다·
아니 정확히는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에 등장하는 엘프였지만 어쨌든 귀 말고는 내 모습과 똑닮아있지 않은가?
초상권 침해로 신고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저 쭉쭉빵빵한 여인과 달랐다·
실제 본인의 모습만 본 뜬 게 아니라면 게임 아바타를 타인이 가져다 쓴다고 해서 문제를 삼는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었으니 나는 항변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혜밤: 요즘은 롤 안 해? 분명 챌린저까지는 찍을 줄 알았는데·]
[NoName: 별로 손이 안 가서· 너는?]
[혜밤: 난 실력 퇴물 됐나봐ㅠㅠㅠㅠㅠ 시즌 시작한 지가 언젠데 계속 그마의 벽을 못 넘고 있음··· 방송도 접었어 그래서·]
[NoName: 방송을 접었다니? 이제 안 해?]
[혜밤: 사실 접었다기보다는 음··· 무기한 휴방?]
[혜밤: 너랑 할 때는 그래도 오랜만에 방송도 재밌게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혜밤: 옛날에 터진 사건 때문에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 꼬여서 오래 쉴 생각이야·]
완전 무책임하잖아··· 라고 말하려고 한 순간 문득 나 스스로를 성찰해보았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녀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당분간 방송은 좀 쉬겠다고 말한 뒤로 언제 돌아올지 아무런 공지도 남기지 않았었다·
[혜밤: 아니면 나도 이참에 월오아로 갈아탈까? 이 언니가 마법에는 나름 일가견이 또 있거든!]
시아가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동안 게임 시스템에 대해 시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아가 내 정체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나본지 영상을 또한번 언급했다·
[혜밤: 근데 너 진짜 아카데미 학생 맞아? 영상 보면 막 한국대학교 교수들이 나와가지고 네가 쓴 마법 분석하고 있던데 뭔가 상황이 웃기더라ㅋㅋㅋㅋㅋ]
[NoName: 그 사람들이 뭐라 그러는데?]
[혜밤: 너보고 어쩌면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종군 마도사일지도 모르겠다는 거임! 물론 가상현실게임을 잘 모르시니까 하는 소리겠지?]
[NoName: 보내준 영상은 나중에 한 번 볼게·]
[혜밤: 나도 분석영상 다 봤는데 진짜 어떻게 그런 마법을 알고 다 썼어? 대단해 우리 나메!]
시아의 호들갑이 더 거세지기 전에 그녀와 짧은 안부인사를 나누고 채팅창을 닫았다·
다소 작위적이고 국뽕 요소가 일부 가미된 영상 제목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 오늘 계획은 내일 저녁 우리 집에 방문할 유나와 하루의 선물을 뭐로 할지 정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 * *
[시청자들은 처음에 조련을 잘 시켜놔야 해!]
[안 그러면 자꾸 너한테 기어 오른다니까? 그게 나중에 얼마나 스트레스인데!]
[막 오늘은 왜 늦게 왔냐 방송 안 하고 뭐했냐 게다가 팬티 색깔을 물어보는 애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방송에서만큼은 네가 절대적 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치도록 확 기강을 잡아놔버려!]
시아가 스트리머로서 해준 조언들도 일단 잊지는 않고 있었다·
[방송 시간 – 0:06:21]
[시청자 수 – 2196]
여느 때처럼 나는 방송 진행 시간이 7분이 될 때까지 표류하는 여러 채팅들을 관람하곤 했다·
내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막 알아서 후원이 터지는 게 아닌가?
[‘밥아저씨의마법교실’님이 10000원 후원!]
-자신이 방송 날로 먹고 싶은 노네임이면 개추 ㅋㅋㅋㅋㅋㅋ
일정 시간 동안 말을 아끼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전달사항을 말해 줘버리면 뒤늦게 들어온 이들에게도 뻐꾸기처럼 재전달해야했다·
게다가 사람이 들어올 때는 어수선하기도 하고 괜히 듣지도 않는 사람들 앞에서 떠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에도 없었다·
그래도 후원을 한 사람에게는 반응해주는 게 최소한의 도리인 것 같아 댓글창에 다른 이들처럼 ‘개추’를 적어 흘려보냈다·
행운의 편지를 물병에 담아 망망대해에 띄워보낸 사람도 누가 이걸 받으리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내 방송에서는 훌륭한 낚시꾼들이 포진되어 있었는지 내가 쓴 채팅을 기가 막히게 분별해냈다·
-방송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노네임!
-당연히 알겠지 지가 켰는데 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초심으로 돌아가 함묵증 컨셉이신가요?
-이게 어떻게 초심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방송 진행 어떻게 함?(진짜 모름)
방송 세팅도 어느새 능숙하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새삼 대견스러웠다·
가상현실 방송은 물리적으로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지만 세부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항목들이 정말 많아서 기능들을 일일이 깨우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가끔 현실과 똑같은 모습으로 ‘버츄얼 여캠’방을 송출하는 스트리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설정하는 카메라 각도 조명 데코레이션 블러 효과 등등 수십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담백하지만 정중한 인사말로 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오오 드디어
-?? 목소리 왜 이럼?
-노네임은 어디 가고 잼민이가 있누ㅋㅋㅋㅋㅋㅋㅋ
-너희 언니 어디 갔니?
-방송 대타?
예상이 빗나가면 언제나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목소리를 지적하는 채팅창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제 목소리가 어때서요?”
-평소랑 다를 게 없는데?
-아아 월오아 때는 게임 아바타 목소리 써서 달랐잖아
-지금 여기 시청자들 설마 다 유입이었냐?
-하긴 방장 목소리가 좀 앳되긴 햌ㅋㅋㅋㅋㅋ
-좀 많이 엄청 앳돼 보임ㅋㅋ
-동화 읽어주기 최적화 보이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노네임 원래 목소리라고?
반응이 둘로 나뉘었다·
그 중 내 목소리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은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 영상만을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
반자동 커스터마이징에는 어쩌면 성대도 포함되어 있었는지 지금의 목소리와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지금은 일곱 살 본연의 목소리로 나가고 있으니 이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좀 듣기 불편한데 아바타 목소리로 바꿔주면 안 됨?
-ㄴ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임;;
-오히려 천연 여고생 같아서 좋은데 퍄퍄퍄
-종군 마도사급 전력을 가진 군필여고생 ㅗㅜㅑ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 상처받게 왜 그러냐
시아가 당부했던 말들이 이런 거였나·
설령 고의였든 아니든 그들의 문자 하나하나가 내 신경을 툭툭 건드렸다· 계속 보고 있기 거북할 정도로·
인터넷 방송을 통해 돈을 버는 행위에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감정 노동을 수반한다곤 하지만 그게 내 자아를 부정할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시청자 수 – 2344]
안 그래도 네자리 숫자는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피론 아카데미의 학생 수는 약 450명 교직원과 재단 관계자까지 모두 포함시켜도 500명 내외였다·
그들 모두가 강당에 들어서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일제히 경청하고 있는 걸 보면 저 사람도 부담이 장난 아니겠구나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그보다 4배 5배 많은 인원은 확실히 내가 혼자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을 명백히 벗어났다·
‘허수’를 걸러내야 한다·
어차피 남들이 관심 있어서 호기심에 눌러본 이들은 소수만이 방송에 안착하게 된다·
결국은 자신의 기호와 맞지 않으면 한 달 뒤든 일주일 뒤든 떠나간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지금 당장 내 방송이 어떤 곳인지 똑똑히 각인시키는 게 좋겠지·
때마침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굳이 애써서 내 목소리에 적응할 필요도 없어·
적응을 못할 것 같은 이들을 전부 내쫓아버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 않은가?
“제 목소리가 많이 이상한가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너무 아기처럼 작위적인 목소리 내는 여캠 같아서 별로임
-그게 방장 원래 목소리라니까 참;;
나쁜 자식들· 허공에 부유하는 카메라를 꺼버렸다·
-??? 왜 다시 꺼!
-뭐야뭐야뭐야뭐야
-잘못 누른 거 아님?
-방장 삐지지 마 우리가 잘못했어!!!
-유입 시불련들아! 유입 시불련들아! 유입 시불련들아! 유입 시불련들아!
-싹 다 쳐내! 전부 구속시켜! 싹 다 쳐내! 전부 구속시켜! 싹 다 쳐내! 전부 구속시켜! 싹 다 쳐내! 전부 구속시켜! 싹 다 쳐내! 전부 구속시켜!
-진짜 방종각이에요···? 아니지???
사람의 오감은 각기 예민하지만 그건 모두 시각이 제외되었을 때를 놓고 하는 말이었다·
알고 싶어서 알게 된 지식은 아니었지만 모든 감각에는 순서가 있었다·
시각이 없으면 청각에 가장 의존하게 되고 그 다음에 촉각 이런 식으로·
난 브이튜브를 실행시키고 내가 원하는 노래를 검색했다·
시청자들은 어두컴컴한 검은 화면에 클릭 효과음만 들을 수 있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내가 캡슐에 갇혀있었을 시절 브이튜브에서 우연히 추천 영상에 뜬 걸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원곡이 풍화되어 사라지고 누군가의 리메이크 버전만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앞으로 쓸만한 귀를 가진 시청자들만 남을 때까지 주구장창 이 노래만 틀면 조금 나아지리라·
[연애 서큘레이션 (Cover – 카리리)]
-조회수 183만회 · 3년 전
[카리리의 커버송은 지금 바로 시작하니까 다들 재밌게 봐주리! 세-노~ (せーの)]
-????
-?????
-?
-??????
[데모 손난쟈 다메~♡ (でも そんなんじゃ だめ)]
[모- 손난쟈 호라~♡ (もう そんなんじゃ ほら)]
-ㅅㅂ 이 ㅈ같은 일본어는 또 뭐야?
-카리리 목소리?
-ㄴ그걸 어떻게 듣고 바로 앎?
-ㄴ이건 좀 무섭노 ㄷㄷㄷㄷㄷ
[코코로와 신카스루요 못토 못토~ 힛♡ (心は進化するよ もっと もっと)]
-크아아아아아악
-우에에에에에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애니송으로 개미털기라니··!! 쉽지 않은 방송입니다!! 그래도 견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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