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0
“생각보다 많네요·”
나는 바글거리는 머릿수를 보며 소회를 털어놓았다·
다른 유명 스트리머들의 방송에서 1만 2만명의 실시간 시청자들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 줌이지만 역시 실제로 체감하는 건 달랐다·
시청자 수가 1600명인데 참여 인원이 무려 1000명에 육박했다·
이 많은 인원이 내 프라이빗 룸에 들어갈리도 없으니까 나는 캡슐에서 지원하는 대형 세트장을 배경으로 설정했다·
[아이돌 스테이지 ver·1·3·4]
무대에 올라서자 천장에 걸려있던 조명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비추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조명을 조금 약하게 설정할 수는 없는 건가·
설정을 만지작거려보다가 귀찮아서 결국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부터 하는 건 월드컵이라기보다는 OX퀴즈에 가까웠다·
그냥 나와 똑같은 답을 고르면 살아남는 단순한 게임이다·
내가 구태여 이런 방식으로 매니저를 뽑는데에는 이유가 다 있었다·
공격성 문구나 도배 악질적인 채팅들의 기준을 정해도 아슬아슬한 선타기를 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내가 일일이 매니저들에게 기준을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럴 때마다 매니저들의 자체적인 판단이 중요했다·
결론은 ‘그냥 알아서 잘 처리해라’라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지·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 아무래도 나와 동일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확률의 문제니까· 아니라면 곤란하겠지만·
[‘nayun1231’님이 3000원 후원!]
-전투마법을 고를 때 특별한 기준은 없나요? 일대일 상황을 가정한다든지 다수의 적을 상대해야한다든지·
“알아서 눈치껏 고르시면 됩니다·”
-어차피 재미로 하는 건데 과몰입 오지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과몰입러들 다 시참하려고 갔잖아ㅋㅋㅋㅋㅋㅋ
-매니저 선정은 못 참지
어차피 얼마나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지 보는 테스트다· 머리를 굴리면 더 힘들걸?
[전투 마법진 월드컵 32강 1/16]
[5서클 이그니스 벨룸(불의 장막) vs 4서클 글라키스 아스타(얼음 창)]
“시작부터 불과 얼음의 대결이네요·”
-불법 대 빙법 ㄷㄷㄷㄷㄷㄷㄷ
-얼불춤이 따로없네ㅋㅋㅋㅋㅋㅋ
-방장님은 얼죽아인가요 쪄죽따인가요?
-ㄴ쪄죽따가 뭐임?
-ㄴ쪄 죽어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난 둘 다인데 그럼 ㅋㅋ
나라고 해서 이쪽 세계 마법의 정식명칭을 아는 건 아니다·
그저 마법진의 구조를 보고 대충 추론해서 전생에서의 마법과 비교해보는 거지·
월드컵이면 월드컵답게 마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제작자는 그런 편의성 따위 개나 줘버린 것 같았다·
불의 장막 대 얼음 창이 뭐야 싼 티 나잖아·
“왼쪽은 이그니스 벨룸이라고 하네요· 시전자를 중심으로 반영구적으로 가연물을 공급하여 구체 형태로 뻗어나가는 마법인 것 같고· 연소 반응 때문에 마법진이 가려서 디스펠의 위험도 적어보이네요· 아 영상을 틀 수 있었구나· 한번 볼까요?”
화질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갈대밭을 헤집고 달려가는 근육질의 남성과 이를 뒤따르는 카메라맨· 아마 종군기자로 추정됐다·
하지만 갈대밭의 끝에는 널따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 놓인 이들은 서둘러 뒤를 확인했다· 적에게 쫓기고 있는 건가?
그 순간 남성은 카메라맨을 잡아 강 건너편을 향해 던졌다· 그는 중간을 조금 넘은 지점에 떨어졌고 카메라의 시점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confícĭo: ignis vēlum]
갈대밭에서 수십명의 군인이 방벽을 두르고 튀어나왔다· 그러나 남성이 펼친 대규모의 불덩이가 갈대밭을 초토화시키면서 그들은 다가가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
-법사 할아부지 진짜 개간지네ㅋㅋㅋㅋㅋㅋ 이게 5서클?
-강물 부글부글 끓는거 보소
-여기 스위스인가보네
-ㄴ어떻게 앎?
-ㄴ배경이 알프스잖아
“다음 것도 볼까요· 시간상의 관계로 영상을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화질이 훨씬 좋네요 이건· 4서클 마법 글라키스 아스타· 영상에서는 마이너스 250도까지 물을 얼려서 날카롭게 빚어냈네요·”
[constĭtŭo: glácĭes hasta]
-마이너스 250도 창이면 어떻게 잡음?
-휘두르는 게 아니라 쏘는 거겠지ㅋㅋㅋㅋㅋ
-이 사람은 걍 잡는데?
-????
푸른 긴생머리의 여성은 두 번째 보폭과 세 번째 보폭 사이에 허공에서 생성된 창을 잡았다·
상체는 앞으로 굽혀지지 않으며 창을 든 쪽의 어깨와 팔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엉덩이와 어깨가 축이 되고 손바닥이 하늘을 향한다·
네 번째 보폭에서 왼다리에 무게중심을 확실히 실어 몸의 왼쪽을 고정시키는 동안 여성의 가슴이 앞쪽으로 내밀어지면서 최대의 수축력을 발휘했다·
임팩트 있는 딜리버리(delivery)· 창이 그녀의 손을 떠나고 그녀의 몸이 일시적으로 붕 떴다· 과녁에 제대로 명중이었다·
얼음이 많이 차가웠는지 리커버리(recovery) 동작이 빨랐던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한 동작이었다·
그녀가 새빨개진 손을 부여잡고 앙탈을 부리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됐다·
“멋있네요· 딱히 더 평가할 건 없겠어요· 이그니스 벨룸 vs 글라키스 아스타· 이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닥전이지
-ㄷㅈ
-근데 애초에 5서클 대 4서클 마법인데 밸붕 아님?ㅋㅋ
-불타입이 강하긴 해
-이번 건 노인간지로 선택하죠
“흐으음··· 이 중에서 하나만 쓸 수 있다라·”
사람들이 서 있는 세트장 바닥에 내가 보는 스크린과 똑같은 화면이 나타났다·
내가 고른 쪽은 살아남고 아닌 쪽은 바닥이 꺼지며 시청자들이 탈락한다·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는데 이미 마음 속으로 결정을 끝낸 이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체로 불마법쪽으로 쏠리는구나·
“전자는 공방일체가 가능한 범위형 열마법이고 일대다 전투는 물론 일대일 전투에도 능숙하게 다루기만 한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어요· 특히나 방금 영상처럼 쫓기고 있을 때 시간을 끌기에도 제격이고·”
-걍 저거 하나 끼고 있으면 무적 아님?
-개사기 마법 수준ㅋㅋ
-5서클 마법진 개복잡하네 진심;;
“반면 후자는 상성을 타지는 않지만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많이 좌우될 것 같네요· 마법을 시전했는데 정작 맞추지를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죠·”
-ㅈ되는 거죠 뭐
-차라리 얼음 대포를 쏘지
-그래도 수동식이 낭만은 있다 그죠···?
“모두 선택하셨나요? 광범위형 불의 장막이면 왼쪽에 얼음창이면 오른쪽에· 확실히 불의 장막이 겉보기에도 더 멋있긴 하네요· 동감해요·”
내 평가를 듣고 글라키스 아스타에서 이그니스 벨룸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필시 생긴 거리라·
반대로 이동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 저기 딱 하나 있네·
“그럼 저도 빨리 선택하겠습니다·”
두 개의 선택지를 가르는 중간선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이미 전부터 마음을 굳혔던 선택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투둑 건드렸다·
[4서클 글라키스 아스타(얼음 창)]
-????
-???????
-ㅅㅂ?
[840명이 탈락하셨습니다·]
[218명이 생존하셨습니다·]
수백명의 비명소리가 공동 아래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초장부터 840명이나 탈락하다니·
이상적인 매니저는 이렇게나 뽑기 어려운 법이다·
잔잔하게 흘러갔던 실시간 채팅창이 급물살을 타고 떠내려간다·
1라운드에서 떨어진 이들이 울분을 토해냈다·
-방장 말 믿고 마지막에 바꿨는데 이게 뭐임 도대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함정수사 오지네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악질 아니냐 이 정도면?
-(차단된 채팅입니다·)
특히나 마지막에 바꾸었던 사람들은 더욱 억울했는지 욕도 서슴없이 꺼냈다·
넌 밴이다·
“전 이그니스 벨룸이 유용한 마법이라고 생각은 해요· 그런데 하나만 쓸 수 있었을 때 이걸 선택할지는 조금 의문이 드네요· 여러분은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면 권총하고 연막탄 중에 하나만 써야 한다면 뭘 고르실 건가요?”
-당연히 권총이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납득되네 또
-그래도 5서클인데 살상력도 나름 있지 않나?
“이그니스 벨룸은 사실상 자폭기나 다름 없어요· 시전자의 마나는 무한하지 않고 시야를 가리는 건 피차일반이죠· 저였으면 그런 계륵 같은 마법은 별로 쓰고 싶지 않네요·”
[‘기지피지’님이 1000원 후원!]
-아오 이걸 한 대 때릴 수도 없고ㅋㅋㅋㅋㅋ
-그럼 님도 방장처럼 월오아 10/10/10으로 깨보던가ㅋㅋㅋㅋㅋㅋㅋ
-꼬우면··· 알죠···?
-얼음창은 4서클 치고도 ㅈㄴ 약해보이는데 왜지?
“글라키스 아스타는 보시면 창을 이루는 물질을 자유자재로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단순히 물을 얼리는 게 아니라 나이오븀을 기반으로 초전도체를 구축해 전력효율을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극초음속의 영역까지 바라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이른바 레일건의 원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빙법사가 불법사보다 뒤떨어진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난 레밀리아 아세파이트에게 마법 대련으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성 있는 지식이니 시청자들에게 내 말을 믿을 것을 종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하나였던 회차를 억지로 두 개로 나누니까 짧은 면이 있어서 한 편 더 올립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원래 휴재일이었던 월요일과 수요일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올리기 힘들 것 같다는 점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월 26일에 CPA 시험이 있어서 그때까지만 주5일 연재로 진행하겠습니다· 언제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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