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9
하루는 오늘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만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꿈이었다면 대체 어디서부터였을까?
나메가 수천 개의 수식이 들어간 마법진을 시전했을 때부터?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또래가 그런 마법을 알 리가 없으니까·
아니면 나메가 악몽을 꾼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파자마 파티조차 전부 허황된 꿈이었을까?
하루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혼란스러워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녀가 잡은 문의 손잡이 너머로 하루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사람이 있었다·
“어서와 하루야· 오늘은 친구들도 데려왔네?”
“엄마···?”
그럴 리가 없다· 저기 있는 저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일 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분명 돌아가셨는데···
그럼에도 그녀의 그리운 얼굴이 그녀의 익숙한 손짓이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가 하루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수술이 잘 끝났지 뭐야· 우리 하루 오랜만에 보니까 키도 더 커진 것 같네?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지?”
“진짜 엄마야···?”
자상한 미소를 본 순간 하루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수술이라 함은 작년 여름에 있었던 대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인공오러하트를 이식하는 전례 없는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앞으로 건강해질 일만 남은 어머니를 볼 생각에 하루가 진심으로 기뻐했던 날이었다·
그런 하루의 기대를 무참하게 저버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같은 해 겨울에 숨을 거두었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엄마···!”
“하루야 네 친구들 다 있는 데서 울면 안 창피해?”
“나 왜 버리고 가버렸어? 너무 보고 싶었단 말이야···”
“엄마가 우리 하루를 버리고 어딜 가? 봐봐 이렇게 수술도 잘 끝났고· 의사가 그러는데 다음 주에 퇴원도 할 수 있다네·”
“흑··· 히끅··· 미워···! 나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렇게 말해도 또 가버릴 거잖아···”
“애들아 미안하다· 우리 하루가 좀 어리광이 심해서· 하루랑 같은 반 친구니?”
그녀의 어머니가 하루의 친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나가 화들짝 놀라며 자기소개를 한다·
“아···! 저··· 저는 서유나라고 하고요· 이쪽은 노나메예요·”
“서유나···? 아아 하루한테서 들어봤단다 같은 1학년 C반이었지? 다른 쪽은 이름이 조금 낯서네?”
“그게 나메는 중간에 전학을 와서·”
“전학···?”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현재 알케미스트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2050년 9월·
나메의 이름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음··· 아카데미가··· 아무튼 같이 병문안 와줘서 고맙단다· 우리 하루도 잘 부탁하고·”
하루가 너무 서럽게 울어댄 탓에 유나와 나메는 잠시 자리를 피해 그녀와 떨어져 앉기로 했다·
병실의 반대편 침대에 걸터앉은 두 소녀는 감동적인 모녀의 상봉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
유나가 귓속말로 나메에게 물었다·
“하루 어머니가 원래 많이 아프셨어?”
“작년 12월에 돌아가셨대·”
“아아··· 그래서···”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가 저리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는 의미였다·
유나도 어머니를 잃을 뻔한 경험이 있었기에 저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도 알고보면 엄청 불쌍한 친구였네··· 난 맨날 재수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 마법으로 어릴 때 돌아가신 우리 아빠도 볼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거야· 네 기억 속에는 없어서·”
“그렇구나···”
괜히 숙연해지는 분위기에 유나는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허공에 막 저어댔다·
하루의 얼굴이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된 모습을 보니 괜히 자기까지 슬퍼지는 기분이었다·
“나메야 너는 괜찮아?”
“응?”
“니오베 언니가 그러는데· 나메는 맨날 아픈 걸 숨긴다고 들었어· 아파도 맨날 문을 잠그고 울었다고 했어·”
“니오베가 그런 말을 했어?”
“우리 엄마도 아프면 바로바로 주위 사람들한테 말하라고 알려줬어· 그래야지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할 수 있으니까·”
“옳은 말씀을 하셨네·”
“그러니까 너도 아카데미에서 아픈 데가 있으면 말해· 물론 나메가 나보다 똑똑하니까 잘 알겠지만··· 음··· 내가 그래도 키도 크고··· 양호실까지 업어다 줄 수도 있으니까···”
“걱정해주는 거야? 유나가 남 걱정할 줄도 알고 다 컸네·”
“아으···! 자꾸 네가 머리 만지니까 여기 맨날 헝클어지잖아···! 계속 그러면 나도 똑같이 만진다?”
유나가 나메의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하려고 팔을 뻗자 손이 닿기도 전에 나메의 몸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려 감싸고 몸이 둥글게 말아진다·
포식자를 목도한 새끼동물처럼 벌벌 떠는 나메를 보고 유나의 손이 멈췄다·
“아 미안 이게 조건반사···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습관 같은 거라서···”
다시 고개를 든 나메가 해명하기도 전에 유나는 니오베가 했던 조언들을 떠올리고 행동에 옮겼다·
푹-
“유나야···?”
유나는 온 힘을 다해 나메를 껴안았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나메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감각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 나메가 천천히 상냥하게 유나의 등을 쓸어내려줬다·
이를 느낀 유나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대듯이 중얼거렸다·
“나메는 가장 소중한 내 친구야· 그러니까 아프지 마·”
명령조로 느껴질 수도 있는 어투였지만 화자가 여덟 살의 어린 꼬마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응 안 아플게· 이렇게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는데 아프면 안 되지·”
“나 오늘 파자마파티 엄청 기대하고 왔으니까· 이따 집 가서 또 놀자·”
“안 그래도 너희들을 위해 준비해놓은 게 정말 많았는데 다 못해서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어·”
“그래? 뭐뭐 있었는데?”
유나가 품에서 떨어져 나메와 다시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까 말한 할리갈리나 해적 룰렛도 있었고 노래 좋아할까봐 노래방 마이크도 가져왔고 간식 먹으면서 영화도 보려고 했지· 아니면 베개 싸움? 그런데 베개 싸움 하면 괜히 네가 하루랑 싸우게 될까봐 말은 안 하고 있었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원대한 계획을 털어놓는다· 나메가 마지막에 한 말 때문에 유나가 발끈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거든···? 그리고 하루랑도 얘기 몇 번 하다 보니까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 응·”
“다행이네· 하루도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는데·”
“하루가 나랑···?”
유나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정 의심되면 나중에 진실게임 하면서 확인해보면 되지·”
나메는 다른 건 다 빼놓아도 진실게임만은 무조건 할 예정이었다·
그만큼 아이들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게임은 없었으므로·
슬슬 알케미스트의 시전시간이 끝나가는 걸 느낀 나메가 유나의 어깨 너머로 하루를 불렀다·
그녀는 아직 어머니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는지 나메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작별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시간일 터였다·
처음 알케미스트의 완벽한 사용법을 익혀 유년기 시절의 남매와 재회한 에스타샤가 그러했고 한 때 나메를 좋아했던 아라별초의 백아린이 그러했다·
그래서 최소한 하루에게는 넉넉한 시간을 주고자 미리부터 언질을 해놓으려는 생각이었다·
“이하루 너 엄마 없었을 때 영양제 꼬박꼬박 안 챙겨먹었지?”
하루의 어머니가 딸에게 핀잔을 늘어놓았다·
그런 잔소리조차 마냥 좋은지 하루는 헤벌레 웃어대기만 했다·
“응! 솔직히 먹기 귀찮아서 가끔씩만 먹었어·”
“엄마가 몇 번을 말하니· 영양제도 미리부터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나중에 편하다고·”
그녀의 어머니는 가방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꺼내 하얀 알약을 꺼내 하루에게 물과 함께 건네주었다·
“자 여기·”
“엄마가 직접 먹여주면 안 돼?”
“얘도 참· 자 아아 해·”
“아아아-”
입을 벌린 하루에게 손수 알약까지 배달해준다·
어미새에게 모이를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잠깐만 이하루 멈춰봐·”
촤악-
돌연 나메가 그녀가 가진 알약을 가로채며 인상을 팍 지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두 모녀가 눈을 부릅떴다·
“하루 친구라도 방금 짓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라는 거 알고 있니?”
“노나메···? 왜 그러는 거야?”
나메는 하루의 어머니가 딸에게 건네준 알약을 천장 등불에 비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표면에는 그 어떤 알파벳 등의 마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하루 너 이 약 언제부터 먹고 있었어·”
“나메야 갑자기-”
“언제부터 먹었냐니깐?”
나메가 정색하며 소리치자 뒤에서 잠자코 보고만 있던 유나도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루는 머리가 새하얘져서 자신의 친구가 갑자기 왜 소리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한국 식약처에서는 이런 것도 통과시켜주나 보죠?”
나메의 서늘한 안광이 번뜩였다·
자신의 마나포션조차도 복용 형태만 달라지는데도 수차례의 임상시험 승인이 필요했다·
그나마 레지듀는 마나 정제 과정에서 부산물로 딸려 나오는 재료였기에 복용 시 크나큰 고통이 뒤따르는 것만 제외하면 인체에 크게 유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메가 알기론 지금 하루에게 먹이려고 한 ‘영양제’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내놓으렴· 하루에게 줄 영양제야·”
“퍽이나·”
나메의 손에서 알약이 가루로 바스러졌다·
나메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마법의 강제적인 해제를 주문했다·
[디스펠: 알케미스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cedia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소설을 써내려가는 건 힘든 일이지만 독자님들과 소통을 하는 즐거움이 언제나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마나인방 2부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정확히 [에피소드 100 – 마나 살 돈 없어서 인방함]부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 달려온 과정에서 늘어난 에피소드도 있었고 줄어든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아델라를 만나는 스토리는 예상보다 더 많아졌고 알케미스트 편은 훨씬 줄었습니다· 그래도 돌고 돌아 제가 애시당초 계획했던 회차에 딱 들어맞는 게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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