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9
영국령 식민지에서 시작된 탈식민주의의 바람은 이내 모든 식민제국으로 확산했다.
영국이 불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는 자기들 텃밭에 불이 옮겨붙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 병신 같은 영국 놈들 때문에 우리까지 난리가 났잖아.”
영국이 대응이라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영국은 강경 파시스트 제국주의자들과 온건파 애틀리 정권이 대립하는 통에 식민지 문제에 손도 쓰지 못했다.
그러는 중에 식민지에선 독립을 선언하고 난리굿이 벌어졌다.
식민지 독립의 바람은 이제 대세였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식민제국들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식민지를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상대적으로 멀쩡했던(?) 프랑스는 강경책을 꺼내 들었다.
“프랑스의 국토는 1cm도 줄어들 수 없다.”
프랑스의 집권자 피에르 드 레오타르는 현존하는 국토의 1cm도 방어해내겠다는 공약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위대한 프랑스는 분리주의자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여 프랑스 국가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세계에 증명해 보일 것이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와 알제리뿐만 아니라 튀니지 모로코 등 사방에서 들썩이는 식민지 전부와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 광기 어린 결단에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용기를 얻었다.
“프랑스를 봐라. 굳건한 의지로 똘똘 뭉치니 1cm의 국토도 내주지 않고 있잖은가. 우리라고 못 할 건 없다.”
“확실히 저깟 토인 놈들이 난리 좀 부린다고 물러서는 게 말이 되나. 거기 투자한 인프라가 얼만데.”
벨기에는 콩고에서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세계대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쟁을 재개한 이들의 광기에 모두가 경악했다.
“저놈들은 미쳤다. 저 지랄을 해서 도대체 국가에 뭐가 남는다고.”
물론 식민제국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실제로도 이들은 매우 유리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엔 애초에 원역처럼 누군가에게 털리지 않아 식민군이 건재했고 벨기에령 콩고도 마찬가지였다.
파리가 사정이 조금 안 좋긴 했지만 프랑스란 국가의 체급을 고려하면 딱히 불리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이 식민 전쟁을 치르는 와중 갑자기 빨갱이들이 등판했다.
“국제당의 이름으로 피식민 국가가 핍박받는 걸 막겠다.”
소련은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는 한 미국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기회에 자유세계 국가들의 힘을 빼놓으면 향후 경쟁에서 유리하겠지.’
소련은 이런 속셈으로 저항군에 무기와 자금을 전달했다.
이렇게 되자 식민지 전쟁은 이념전으로 비화했다.
“이건 시대착오적인 파시스트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성전이다!”
“저기 워싱턴 형님. 빨갱이들이 우리를 건드리는데 보고만 있을 거예요? 자유세계의 맏형이면 뭐라도 해줘야죠.”
미국으로선 실로 난처한 이야기였다.
유럽 국가들을 돕지 않으면
“와 자유세계의 맏형 좋아하네. 동생들이 빨갱이한테 두들겨 맞는데 구경만 하는 큰형이 어딨어?”
유럽 국가들을 도우면
“어? 지금 제국주의자 파시스트들을 도와서 자유를 억압하려는 겁니까?”
국내에서 반발이 일었다.
그렇잖아도 영국에 원조해주는 명분이 런던이 탈식민주의를 받아들여서인데 대놓고 식민지를 짓밟는 깡패들의 뒤를 봐주면 국민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미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식민 국가의 대표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미국이 자유 어쩌고 입은 털었지만 결국 제국주의자들 편이다. 역시 탈식민주의를 진심으로 밀어주는 건 소련밖에 없어. 답은 공산주의다.’
독립 세력 안에서 공산 세력의 지분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팽창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비명을 지르는 유럽 국가들.
미국으로선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빨갱이들 확산을 막는 게 더 중요해.”
미국은 서유럽 원조 계획 마셜 플랜을 발표했다.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우리는 함께 할 것입니다.”
이 계획에 따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남이탈리아 미·영·프의 독일 점령지 등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말이 경제 원조지 실질적으론 전비를 대주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앉아서 서유럽이 흔들리는 꼴을 지켜보고 있던 소련은 본격적인 미국의 자본 러쉬에 깜짝 놀랐다.
“아메리카스키들이 미쳤나. 정말 돈으로 서유럽을 통째로 살 생각이야?”
“그래.”
미국은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돈질을 해서라도 공산주의자들의 전진을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미국의 대규모 자본 투하로 흐름이 다시 바뀌었다.
“이 빨갱이 새끼들. 그동안 재미 좋았지? 인제 우리 턴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는 미국이 준 돈을 전용해 그대로 식민지 전쟁에 쏟아부었다.
무제한의 폭격과 포격이 식민지 반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어어?”
잠깐 소련의 원조로 기세를 탈 듯했던 식민지 공산당들은 순식간에 힘도 못 써보고 정글로 쫓겨났다.
영국인들도 그 모습을 보고 흥분했다.
저들처럼 강하게 나가면 인도제국을 비롯한 핵심 식민지를 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했다.
“우리도 대륙 친구들처럼 세게 나갔어야 해. 이도 저도 아니게 흐리멍텅하게 구니까 인도 놈들이 들고 일어났던 게지.”
자연스레 강경 파시스트인 모즐리의 주장이 옳았던 게 아니냐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아니 지금 식민 전쟁을 하면 우리도 망한다니까! 당신들 지갑 사정을 생각하라고!”
애틀리가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여론은 뜻밖에 지난 전쟁에서 대영제국의 위엄을 지켜낸 보수 세력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도시 곳곳에서 대영제국을 위한 대안과 보수당의 깃발이 휘날렸다.
모즐리와 처칠은 ‘결코 다시 전쟁’을 외치며 총리 퇴진을 부르짖었다.
“각하. 이대로 가다간 제국이 정말 두 토막이 납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우리 내각이 물러서지 않으면 내전은 불가피합니다.”
내각 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애틀리도 도리가 없음을 느꼈다.
미국이 조금만 배려해줬어도 자연스럽게 제국을 해체하며 조국을 연착륙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럴 기회는 날아가버렸다.
“내각 총사퇴 후 선거를 치르도록 합시다.”
애틀리는 신사답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애틀리의 패배는 유화주의의 끝을 의미했다.
“드디어 우리가 승리했다! 오늘은 대영제국이 승리한 날이다!”
내각 총사퇴 직후 치른 선거에서 보수당+영국을 위한 대안의 연합이 노동당을 꺾고 집권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모즐리와의 합의에 따라 총리에 오른 처칠은 즉각 식민지 전쟁의 시작을 선언했다.
“대영제국은 물러서지도 굴하지도 않는다. 사자는 늙어도 사자다. 인도인들과 있었던 협상은 없던 걸로 한다.”
처칠은 1939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인도의 독립을 반대해왔다.
그러니 애틀리가 승인한 인도 독립을 승인하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잖아도 미국의 배신에 자존심이 상해 있던 영국 국민들은 이 전쟁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인도가 없는 대영제국이 제국일 수는 없지.”
사실 영국이 이럴 수 있었던 건 제2차 세계대전의 피로를 덜 느껴서였다.
영국은 1939년부터 40년까지 한 번 그나마도 가짜 전쟁이 대부분인 싸움을 했고 42년부터 45년까지의 전쟁도 한국의 개입으로 부담을 줄인 채 싸웠다.
전비를 많이 썼다는 게 문제지 전시 식량 공급 문제나 사상자 문제가 크게 부각 된 적은 없었다.
이 몇 가지 차이 때문에 영국인들은 또 한 번의 전쟁을 결심할 수 있었다.
애초에 영국인들은 이걸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제국의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특별 군사 작전이다.”
모즐리의 주장을 빌리면 이건 특별 군사 작전일 뿐이었다.
영국군은 세계대전의 종식과 동시에 축소했던 육군을 다시 증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애틀리가 승인한 인도 독립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워싱턴은 지금 상황에서 인도를 건드렸다간 소련에 우호적인 대국이 하나 탄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영국이 돌발 행동을 멈추길 원했다.
하지만 처칠의 답은 단호했다.
“워싱턴은 태도를 분명히 해라. 우리냐. 인도냐.”
미국은 일단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영국이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먹힐 것 같진 않았다.
영국이 인도에 대한 특별 군사 작전을 선언하자 인도의 독립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던 토후들도 생각을 바꿨다.
“대영제국이 진심으로 싸워볼 생각이라면 런던의 편에 서야지.”
동인도 회사 시절부터 토후들의 이권을 지켜준 대영제국은 신용할 수 있는 파트너였다.
그에 반해 신생 인도 공화국이나 파키스탄 같은 걸 세우겠다고 설치는 부류들은 언제라도 토후들의 권리를 박탈할 위험이 있었다.
진영이 이렇게 갈라지면서 친영과 반영 세력 사이에 내전이 시작됐다.
영국 편에는 독립된 지위를 누리던 토후들과 시크교도들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독립을 원하는 힌두교 이슬람교 세력이 있었다.
여기서 시크교도들이 영국 편에 선 건 힌두교 이슬람교 세력이 독립된 국가를 만들면 무굴 제국 시절의 탄압을 되풀이할 거란 우려 때문이었다.
덕분에 인도 내전은 영국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유리한 구도로 진행됐다.
“우리도 프랑스를 배울 필요가 있다. 남은 국토는 1인치도 내줘선 안 된다는 각오로 싸워라!”
영국은 인도에 이어 독립을 선언한 미얀마에 대해서도 특별 군사 작전을 선언했다.
식민지 전쟁의 불길이 제3세계 전체로 번진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특별 군사 작전.. 어디서 본 것 같다면 오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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