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이성준이 일으킨 쿠데타의 관건은 시간 내 목표 엄수였다.
제한 시간 안에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모든 일정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박한진의 공관을 제압해야 하는 체포조의 임무가 막중했다.
이성준의 명령을 받고 육군 대신 공관으로 출동한 이성명 대위는 공관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교도 부대 인사참모 김성주 대령의 사복조와 합류했다.
“지금부터 지휘권은 내가 행사하지. 이의 있나?”
“없습니다 대령님.”
있다 해도 없어야 할 계급 차이였다.
김성주는 고개를 끄덕이곤 병력을 인솔해 공관 입구로 다가갔다.
공관 입구에는 해병대 마크를 붙이고 있는 공관 경비대가 서 있었다.
“정지! 정지!”
“육군 범죄수사단의 김성주 대령이다.”
사복 차림의 지휘관 김성주 대령과 사복 군인 몇 명이 다가오자 해병대원 몇 명이 나와 검문을 시작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급한 용무가 있어 각하를 뵈려 하니 길을 비켜줬으면 한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공관 관리관에게 통보 후 조치하겠습니다.”
젊은 해병대 소위가 급히 초소로 들어가 전화기를 들었다.
김성주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신호를 보냈다.
“어 어?”
공관 입구에 서 있던 병사들은 대항할 새도 없이 사복 장교들에게 총을 뺏겼다.
탕!
그 와중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순간 공관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담벼락에 붙어 대기 중이던 이성명 대위와 헌병 소대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초소장인 해병 소위는 검문 중이던 해병대원들이 제압당하는 모습을 보고 막 연결된 전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관리관님! 무장 괴한들이 침입했습니다!”
소위는 몇 번 고함도 지르지 못하고 사복 장교들에게 구타당한 다음 바닥에 널브러졌다.
김성주는 표정을 찌푸린 채 명령을 내렸다.
“이 대위가 공관 입구 장악하고 내무실까지 제압해. 박한진이 체포는 우리가 한다.”
“알겠습니다.”
김성주 일행은 곧장 공관 안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체포조가 문전까지 들이닥친 시간 육군 대신 박한진은 비서실장 배준수 대령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번에 진급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각하. 이렇게 신경 써 주시는 걸로 충분합니다.”
“다음번에 기회를 만들어줄 테니까 너무 염려하진 말고.”
“예.”
모처럼 부하를 격려하는 따뜻한 대화가 이어지던 그때 공관 관리관 하경태 준위가 보고했다.
“각하. 보안사 비서실장이 긴히 보고드릴 사안이 있답니다.”
“그래? 아 배 실장은 앉아 있어.”
박한진은 공관 관리관을 따라가 전화기를 들었다.
박한진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지극히 평온한 어조로 보안사 비서실장을 대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 뭐? 쿠데타 징후가 강하게 의심된다고? 자세히 설명해봐!”
박한진은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버럭 언성을 높였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던 배준수 대령도 깜짝 놀라 교환실 앞까지 다가왔다.
“보안사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헌병이 움직일 정도면 명백한 쿠데타인데 그걸 이제 파악하면 어쩌잔 거야! 알았어. 비상 걸고 보안 사령관이 나오면 육군성으로 출근하라고 해!”
박한진은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실장!”
“예 각하.”
“지금 육군성으로 갈 거니까 차 준비시켜.”
“알겠습니다.”
“아 하 준위.”
“예.”
“우리 공관에 병력이 얼마나 있지?”
“해병대가 1개 중대 병력이 근처에 주둔 중입니다. 경계는 2개 분대씩 교대 근무로 섭니다.”
“해병대에 연락해서 공관 경계 강화하라고 해. 그리고 육군성으로 갈 때 호위가 필요하니까 5대기 준비시키고.”
“알겠습니다.”
박한진이 군복으로 갈아입으러 간 사이 하 준위는 전화기를 붙들고 대신이 내린 지시를 전달했다.
그러던 중 반대쪽 전화기가 울렸다.
“아 뭐야. 바빠 죽겠는데.”
하 준위는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그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총성이 들리더니 젊은 해병 소위가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곤 두들겨 맞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전화가 뚝 끊겼다.
“설마.”
하경태는 난리가 났다고 생각했다.
“실장님! 실장님!”
하경태는 급한 대로 비서실장을 불렀다.
“관리관 무슨 일이야?”
“지금 공관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각하를 모시고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배준수는 깜짝 놀라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부관! 부관!”
배준수의 외침에 육군 대신 수행부관 이인겸 대위가 권총을 차고 달려왔다.
“예.”
“지금 당장 각하를 모시고 공관을 벗어나야겠어.”
배준수는 급히 대신의 방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또 무슨 일이야?”
“설명해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공관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뭐?”
박한진이 정치인으로 산 시간이 길다고 하지만 그도 한때는 야전 군인이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박한진은 아무 말 없이 코트도 걸치지 않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박한진의 아내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듣고 그를 따라 나왔다.
“상황이 위험하니까 당신도 같이 가는 게 좋겠어.”
“알겠어요.”
박한진 일행은 공관 담벼락으로 향했다.
그때 그들 앞으로 총격이 쏟아지더니 고함이 울렸다.
“박한진! 살고 싶으면 투항해라!”
수행부관 이인겸 대위가 권총을 뽑자마자 그의 몸을 총탄이 꿰뚫었다.
“이 대위!”
배준수가 분노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었다.
박한진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지금 같은 위협에 노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이 박한진이가 저깟 놈들에게 잡힌다고?’
“총 버려!”
재차 총성이 울렸다.
배준수 대령이 머뭇거리다 총을 떨어트렸다.
“각하. 사모님의 안전을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한진은 이를 악문 채 총을 떨어트렸다.
“좋다 이놈들아. 총 버렸다. 날 잡아가려는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냐?”
“육군 범죄수사단입니다. 자세한 건 안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죄수사단이라고? 오중구가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 없어!”
“뭐해? 모셔.”
사복 장교들이 다가와 신속하게 박한진을 체포했다.
그리곤 가져온 차에 박한진과 배준수만을 싣고 곧장 공관을 빠져나갔다.
공관 관리관 하경태는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곤 황급히 담벼락을 넘어 육군 병참감의 공관에 들어갔다.
“헉. 헉.”
“무슨 일인데 이렇게 흙투성이십니까?”
하 준위는 병참감의 공관 관리관이 묻는 말에도 답하지 않고 전화기부터 찾았다.
그는 바로 해병대에 전화를 걸었다.
“나 육군 대신 공관 관리관 하경태요. 예. 지금 육군 대신 각하가 납치됐어요. 소속은 모릅니다. 자기네들 말로는 육군 범죄수사단이라고 하는데. 예. 바로 출동해주십시오.”
해병대는 하경태의 연락을 받고 공관으로 즉시 5대기를 출동시켰다.
그리고 육군성에도 대신이 납치됐단 사실을 알렸다.
물론 육군성에서도 뭔가 일이 심상찮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보안사에서 쿠데타 징후를 보고한데다 총성까지 보고돼서였다.
육군성에 남아 있던 장성 중 최선임인 참모부장이 급한 대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지만 주요 지휘관의 공관마다 연락이 되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수도 방위 사령관도 연락이 두절 상태였다.
참모부장은 아쉬운 대로 제3군 사령관에게 연락을 걸었다.
당장 연락이 닿는 고급 지휘관은 제3군 사령관 강기정 상급대장밖에 없었다.
강기정은 전화를 받자마자 박한진이 납치됐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이거 정말 쿠데타가 벌어졌군. 야단났어.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겠소?”
“각하께서 3군 관할 구역의 병력들이 육군성의 허가 없이 움직이는 걸 막아주십시오.”
“지금 3군 관할 부대라면 16 17후비 사단과 12 33보병사단 1근위 사단 교도 부대가 전부인데 16 17 1근위 사단과 교도 부대는 사단장이 없고 12 33은 평양에서 좀 떨어져 있잖소? 이런 부대들이 움직일 수 있단 말이오?”
“헌병감도 모르게 헌병대를 움직인 놈들입니다. 연대급에서 작정하고 움직이면 사단장도 없는 부대들이 무슨 수로 통제한답니까?”
“알았어요. 내 알아보고 전화할게.”
강기정이 육군성의 전화를 놓자마자 수화기가 울렸다.
“사령관 강기정이다.”
“각하. 16 17후비 사단 예하 부대들이 평양으로 출동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강기정은 사태에 깜짝 놀라 사단에 전화를 걸었지만 참모장들은 속수무책이라는 답만 들려줬다.
“연대장들 작전 참모들이 뭉쳐서 출동 명령을 밀고 가는데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대 입구에 드러누워서라도 막으시오. 출동은 절대 안 돼!”
강기정은 전화기에 호통쳤지만 사태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교도 부대에서도 출동하겠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각하. 교도 부대도 출동합니다.”
“누구 명령이야?”
“작전 참모 명령입니다.”
“야전군 명령 없이는 절대 안 돼. 출동하지 마시오!”
“사단에 명령을 내려주시면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강기정이는 사단에 전화를 걸었지만 그런 일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제3군 사령관이 전화기를 붙들고 헛된 노력을 하던 시각 보안 사령관 이정주가 보안 사령부에 도착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연락을 받은 덕분에 이성준이 보낸 체포조를 회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사태가 엉망이 됐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쿠데타를 지휘하길래 상황이 이 지경인 거야?”
“그게 감청된 정보에 따르면 이성준이랍니다.”
“아니 그놈은 7시 반까지 평양 시내를 돌고 있었다면서?”
“기만이었습니다. 놈은 현재 교도 부대에 CP를 차려놨습니다.”
“이런 개 같은.”
이정주는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쪽도 이판사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작부터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 글을 찾아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모두 다 감사합니다. 답댓은..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달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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