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3
쿠바 위기로 세계의 이목이 카리브해에 쏠려 있을 무렵 이스라엘은 아랍 연방을 상대로 한 예방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국방군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북으로 시리아의 골란고원 남으로는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동으로는 사해를 경계로 하는 국경을 확보합니다.”
“그 정도면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겠군.”
지리적으로 유용한 방어선을 확보하면 그때부턴 적들의 위협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됐다.
천혜의 요새가 아랍 연방의 반격을 막아줄 테니까.
이스라엘군 총참모장 모세 다얀의 계획에 정부도 동의했다.
이스라엘이 칼을 갈고 기습을 준비하는 동안 아랍 연방은 방심하고 있었다.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우리 체급이 얼만데 저놈들이 선공을 걸겠어.”
2차 중동 전쟁 때도 아랍 연방의 단결된 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이스라엘에 학습 능력이란 게 있다면 3차 중동 전쟁을 도발할 용기를 내지 못하리라.
아랍은 이 같은 이유에서 공세 주도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믿으라고.’
이스라엘의 정치가들은 공공연하게 ‘평화 공존’을 이야기하며 중동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평화 공세를 펼쳤다.
아랍인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부풀리기 위한 수작이었다.
물밑에선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은 첩보망을 최대한 가동해 시리아와 이집트의 군사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이런 철저한 준비로도 단 한 곳에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난공불락의 요새 골란고원이 바로 이스라엘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이스라엘 육군이 골란고원을 공격하려면 깎아지는 듯한 1000m의 경사를 올라가야 했다.
그동안 시리아군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노출되는 건 덤이었다.
그게 끝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 뒤에는 전략적 요충지 헤르몬산이 버티고 있었다.
이 난관을 넘어야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단으로 공군과 헬리본 부대를 준비했다.
‘폭격으로 혼을 빼놓은 다음 공중 강습 부대로 한 번에 끝장낸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력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군비 증강은 오래지 않아 아랍 측 안보 관계자들의 눈에 관측됐다.
“저놈들 뭔가 준비하는 것 같은데 대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집트를 이끄는 나세르는 이 보고를 진지하게 들었다.
“혹시 모르니 준비 태세를 발령하시오.”
하지만 시리아 바트당은 생각이 달랐다.
“골란고원 같은 난공불락의 요새에 들이박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데 그놈들이 공격을 오나? 공격을 한다 해도 이집트가 갈 게 뻔하지.”
아예 후방인 이라크는 이렇게 생각했다.
“전쟁 터지면 그때 생각하자.”
당장은 경제 발전이 우선이었다.
아랍 연방의 엇갈린 반응 속에 이스라엘은 개전 준비를 마쳤다.
원래는 라마단 기간에 아랍을 공격할 계획이었지만 모사드에서 반대의 뜻을 밝혔다.
“라마단 기간에 기습하는 게 전술적으로 유리해도 대전략 측면에서 불리합니다.”
“이유가 뭐요?”
“지금 전쟁을 일으키면 세계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됩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그 말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럼 언제 개전 시기를 잡자는 거요?”
“미국인들이 쿠바를 침공한 직후가 좋겠습니다.”
그래야 미국의 쿠바 침공에 묻혀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쿠바 위기를 예의주시하며 최적의 공격 시기를 가늠했다.
“6월은 좀 이르고 7월에 전쟁을 시작합시다.”
개전 일정이 잡히자 군은 정부에 동원령 준비를 신신당부했다.
“공세를 개시하자마자 총동원령을 발령해주십시오. 놈들을 물량으로 찍어누르려면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됩니다.”
“염려 놓으시오 장군.”
이스라엘은 공격과 동시에 총동원령을 발령 1주일 안에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생각이었다.
‘질질 끌면 불리한 전쟁이다.’
이스라엘군은 야음을 틈타 국경으로 전차와 자주포를 옮겼다.
폭풍전야의 4시간 동안 아랍 측에도 위험한 징조가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의 통신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거 훈련 아닌가?”
아랍 장교들은 불길한 조짐을 대수롭지 않은 걸로 치부했다.
유일하게 대응 태세를 갖춘 건 이집트군뿐이었다.
1957년 7월 11일 새벽 이스라엘군의 자주포와 야포가 벼락처럼 국경 너머의 이집트 시리아군 진지를 타격했다.
이어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이집트와 시리아의 비행장을 타격했다.
그나마 이집트인들은 방공 부대를 동원해 응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대규모 기습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정교하게 준비된 기습은 이집트-시리아 군대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조국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패한다면 우리는 전전긍긍하는 내일을 살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군은 정교한 포격과 폭격 직후 미제 H-19로 이루어진 대규모 공중 강습 부대를 골란고원으로 출동시켰다.
“어어 저게 뭐야?”
골란고원 아래쪽 이스라엘군 진지만을 감시하던 시리아 병사들은 하늘을 메우며 몰려온 이스라엘의 헬리본 부대에 경악했다.
물론 시리아도 이스라엘이 헬리본 부대를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대담한 기습을 가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도 말고 딱 하루만 벌어라. 그러면 조국이 승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공중 강습 부대는 특별히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시리아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방어선의 핵심부를 빼앗아버렸다.
시리아군은 이스라엘이 투하한 공중 강습 부대를 상대하느라 거의 12시간 동안 악전고투를 했다.
“지독한 놈들.”
시리아군이 이스라엘군 공중 강습 부대를 거의 제압하려는 찰나 골란고원의 경사지를 올라온 이스라엘 육군 보병부대가 그들을 공격해왔다.
전세는 다시 역전됐다.
이스라엘군은 골란고원으로 계속해서 보병과 전차를 올려보냈다.
그제야 시리아는 위기를 느꼈다.
골란고원이 뚫리면 수도인 다마스쿠스가 공격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러다 우리 다 죽겠습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시리아가 비명을 지르자 이라크와 이집트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이스라엘을 상대로 그런대로 괜찮은 방어전을 치르던 이집트군에 공세 명령이 떨어졌다.
“각하. 지금 우리 군이 공세로 전환하면 군의 작계가 완전히 꼬이게 됩니다.”
“하지만 시리아가 무너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순 없잖나.”
나세르는 아랍 연방의 형제국들에 빚이 있었다.
그들에게 진 정치적 빚을 생각하면 다소의 무리함을 고려하더라도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군은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공세로 전환했다.
그러자 바로 문제가 생겼다.
“이거 이렇게 움직이는 게 맞나?”
이집트 군대는 새로운 무기와 교리에 적응하는 과도기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세에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 전차부대가 전진하면 보병이 신속하게 따라와 측면을 메워줘야지!”
“원래 교리는 그게 아니었단 말입니다.”
낡은 교리와 새로운 교리가 혼재된 군대다 보니 이집트군은 공세 과정에서 수많은 불협화음을 냈다.
이스라엘은 상대가 공세전에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하자마자 거짓 후퇴를 해서 그들을 이스라엘 내륙 깊숙이 유인했다.
“하 답답해서 전차만 갖고 간다.”
이집트군은 뭐가 됐든 이스라엘에 압력만 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스라엘 내륙으로 전진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결정적인 오판이 됐다.
“우릴 잊은 모양인데 하늘은 우리 거야.”
방공 부대의 보호 밖으로 나온 이집트 전차부대는 이스라엘 공군의 맹폭을 맞았다.
여기에 맞서야 할 이집트 공군은 개전 초의 충격에서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렇게 두들겨 맞은 전차들을 향해 이스라엘 기갑부대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매섭게 달려들었다.
“다 쓸어버려!”
불과 12시간 만에 이집트군 전차부대는 대부분 고철로 변했다.
기갑부대가 괴멸되자 보병과 포병은 할 게 없어졌다.
이집트군이 공황에 빠져 있는 사이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그들을 무시하고 시나이반도로 맹진했다.
“전진 오직 전진뿐이다!”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이스라엘의 승리는 확실했다.
이스라엘 육군은 남으로는 수에즈 운하에 도달했고 북으로는 골란고원을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이라크가 개입할 틈도 없이 전세는 결정돼 버렸다.
이스라엘이 보여준 전투력에 아랍 연방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우리도 나름 현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밀린다고?’
아랍인들은 이 상황을 놓고 패인을 분석했다.
아랍이 방심해서?
그것도 이유는 되겠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었다.
아랍인들은 오래지 않아 그들이 원하는 답을 찾아냈다.
‘미국이다.’
미국이 대준 막대한 군수물자와 지원이 유대인들을 저렇게 강하게 만들었다.
아랍 연방의 정치가들은 미국이 중동 정세에 개입하는 한 전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이쪽도 워싱턴에 맞설 수 있는 큰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이런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포지션이니 아랍이 찾을 수 있는 열강은 소련이 유일했다.
“모스크바에 연락을 넣으시오.”
아랍 연방은 소련과 관계를 강화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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