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5
미소 갈등으로 대외 정세가 어지럽긴 했지만 역내 정세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말썽꾸러기 중국 공산당만 해도 마오쩌둥이 사라지며 수세적인 태도로 바뀌었고 중화민국의 장제스도 범람하는 위폐 문제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동아시아 역내의 텃밭에 한해서라면 위험 요소들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잠재적 위험 요소라면 첸공보의 난징 정권이 크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손을 쓰고 있었다.
“미개하기 짝이 없는 충칭과 공산당의 비적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거지 떼들과 통일하면 그들을 먹여 살릴 사람은 누가 되겠습니까?”
“중공과 중화민국 사람들은 말합니다. 중화가 하나가 되면 강남의 부가 들어와 자기들도 부유해질 거라고.”
우리는 난징의 지식인들에게 이런 주장을 떠드는 대가로 은밀한 지원을 제공했다.
강남 혼자 잘 살 수 있는데 왜 짐을 짊어져야 하느냐.
이런 주장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먹힐 수밖에 없었다.
당장 원역의 이탈리아만 하더라도 잘 사는 북부만 따로 독립해 파다니아란 국가를 세우자는 북부 동맹이 힘을 얻은 전력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그 거지 떼를 왜 먹여 살려야 하냐.”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팍팍하다.”
중화주의는 분명 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
하나로 뭉치자는 대의에 맞서기는 사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생활 수준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먹고 사는 문제에 짐을 하나 더 하는 수준이라면?
그럼 이야기가 달라졌다.
21세기의 한국만 하더라도 통일 문제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는 막대한 통일 비용 때문이었다.
강남 사람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래도 방심해선 안 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분리 공작은 꾸준히 그리고 계속 진행해야 했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면 분열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때가 되면 난징이 중국 전체를 아우를 경제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강남인들 스스로가 통일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그럼 중국은 영원히 우리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하나 된 중화가 아니라 쪼개진 중국이라면 세계 3위의 열강 대한을 능가할 수 없을 테니까.
다만 불안 요소가 없진 않았다.
그건 내가 권력을 물려주는 승계의 시기였다.
강력한 통치자가 유약해 보이는 후계로 바뀐다.
그걸 본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다른 생각을 품을 여지가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걸 방지하려면 후계자를 빨리 데뷔시키긴 해야 하는데.’
문제는 마음에 쏙 드는 후계자 후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다 마음에 들겠냐만 대한의 대권 후계자는 가능한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이 이성준이가 만든 위업을 지켜나가지 않겠는가.
나는 고심 끝에 후계 후보들을 안가로 부르기로 했다.
물론 쓸데없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비밀에 부치게 했다.
만남은 평양 교외의 한적한 주택에서 이뤄졌다.
후보들은 대부분 키가 훤칠하니 컸다.
제일 작은 사람도 175cm는 되어 보였다.
“가 각하?”
후보들은 날 보자마자 얼어붙어서 입도 열지 못했다.
그나마 한 놈이 ‘영광이니 어쩌니’하는 말을 입에 주워섬기긴 했다.
“다들 만나서 반갑군. 그쪽에 다들 편히 앉도록 하게.”
음식은 내 취향대로 시켰다.
높으신 분의 특권이었다.
나는 후보들에게 손수 술을 따라주면서 그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하지만 눈에 띄는 행동은 없었다.
후보들은 처음에 보인 어색한 모습과 달리 격식을 갖춰 행동했다.
그래도 후계 교육을 한 효과가 없진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물론 말을 건넬 때는 후보들이 고위 관료 후보군으로서 이 자리에 온 걸로 착각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먼저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넌지시 물었다.
“최고 권력자의 권력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단이라?”
“예. 각하께서 유신에서 민주주의로 탈바꿈한 것은 장기 통치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낮추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
내 의도를 해석한 거라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다른 이야기는 없나?”
“저는 민주주의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
“바이마르 공화국의 예시에서 보듯 민주주의는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끝에서 히틀러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렇지.”
“그 같은 독재자가 등장해서 사회를 망가트렸을 때 군주정이나 군부 독재 정권에선 그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뽑은 누군가가 국가를 망가트린다면 대중은 그 책임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교훈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유리하단 거군.”
물론 이 견해에 동의하진 않았다.
68혁명 이전의 독일만 하더라도 나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친구의 생각과 달리 대중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데 능했다.
“그렇습니다.”
“다른 의견은?”
“민주주의는 다른 어떤 체제보다 안정적인 안정성을 강점으로 가진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안정성이라면 독재자가 장기 집권하는 국가가 낫지 않나?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말이네.”
“통치자가 실패하기 전에 끌어내릴 수 있다는 이점은 다른 체제가 가지지 못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안정적이다?”
“예.”
후보들은 나름대로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들이 있었다.
경제와 군사 문제에 대해서도 각자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군비 투자는 최소한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내가 보여준 선례 때문인가?”
“물론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평화 배당금이 얼마나 유리한지 보여주셨기에 군비의 해악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평화 배당금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나도 빗자루 기관총을 쓰는 독일과 1% 군비만 지출하는 평화로운 일본을 보고 배웠다.
“군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면 군부가 반발할 수도 있을 텐데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군이 투정을 부리더라도 엄하게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애송이들의 식견은 이래서 어쩔 수 없었다.
군부는 단순한 무력 집단이 아니라 집권 세력이 될 수도 있는 강력한 정치 집단이었다.
그런 강력한 세력을 손안의 집단처럼 대하는 건 나 정도의 권력자나 가능했다.
‘생각해보면 이 친구들은 내가 군부를 다루는 모습만 봤겠군.’
그렇게 생각하면 군부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쯤에서 애송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군은 그렇게 단순한 집단이 아니네. 우리 대한만 하더라도 군이 몇 번을 집권했지.”
나 또한 그렇게 집권한 사람이었다.
“각하의 말씀은 대한의 문민 통제가 확고하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하네.”
대한의 문민 통제는 사실 나 이성준이라는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관습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문민 통제의 기반을 쌓아온 영미 국가들과 대한은 이 지점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묻지. 임자들은 어떻게 해야 문민 통제를 확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후보들은 내 질문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후보 하나가 말했다.
“제 생각엔 인사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사권을 분명히 한다?”
“군부가 독자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어야 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됩니다. 실질적인 인사권 즉 추천권도 군부가 행사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젊은 후계자에겐 무리인 일이었다.
“소련식으로 정치 장교를 도입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소련에선 쿠데타 시도가 전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좀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정치 장교의 폐해를 아는 내가 선뜻 동의할 리가 없잖은가.
나는 후보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들을 돌려보냈다.
정길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눈에 차는 친구가 있으셨습니까?”
“다들 고만고만하긴 하더군.”
“그렇습니까?”
“그래도 민주주의의 안정성 운운한 친구는 키워볼 만한 것 같더군.”
나는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미는 건 그 경쟁자인 전체주의나 권위주의와 달리 고점과 저점의 낙차가 크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민주주의는 실패해도 크게 말아먹지 않는다.
그에 반해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정부는 한 번 고점을 찍었다가도 헛발질을 시작하면 나라를 통으로 말아먹는다.
러시아를 재건했다가 다시 무덤으로 보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 좋은 예시였다.
“따로 육성을 신경 쓰겠습니다.”
“평가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지금은 내버려 둬.”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직은 후계 중 누굴 선택하겠다고 속단할 시기는 아니었다.
“예.”
나는 후보들을 몇 년 정도 더 지켜보면서 골라볼 생각이었다.
저 친구들 말고 쓸만한 친구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후계자 육성 문제에서 조금 더 인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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