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0
나는 탈냉전 구도에 찬물을 끼얹어 시간을 벌었다.
이렇게 번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재계 총수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에는 재계 서열 1위부터 30대 기업까지 모두 불렀다.
회장들은 내 부름에 응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나왔다.
“각하. 이렇게 저희를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나는 재벌 회장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성과를 격려했다.
“이번에 수출 10억 불을 달성하셨다고요?”
“다 각하와 국가의 보살핌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그게 어떻게 내 공이겠습니까. 회장님과 회사가 열심히 해서지요.”
입에 발린 덕담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장들과 수행원들이 자리에 앉자 나는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한다.”
우리가 준비한 표제였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참모들이 거대한 전지를 힘겹게 넘겼다.
21세기였으면 버튼 하나 누르는 걸로 다음 화면으로 넘겼을 텐데 여기선 다 수동이었다.
다음 장이 펼쳐지자 사람들은 홀린 듯 종이에 나와 있는 수치와 그래프를 보았다.
대한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였다.
올해 대한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10.5%였다.
내년 경제 성장률 예상은 10%였다.
단군 이래 유례가 없는 성장이었다.
다음 장을 넘기자 미국과 소련의 경제 성장률과 전망치가 같이 나왔다.
그 끝에 나온 대목.
1962년 기준으로 한국이 소련을 추월한다는 부분에서 회장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경제 성장률 이야기는 회장들도 다 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뻔한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이 나라가 2위의 경제 대국이 된다는 가슴 벅찬 사실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 2위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소련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경쟁자인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케네디를 비롯한 적잖은 미국 정치인들이 한국을 괜히 견제하고 싶어 하겠는가.
이 나라가 그만한 체급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 나라가 미국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느냐. 그 물음에는 긍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1962년 대한이 소련을 추월해도 한국의 경제는 미국의 44%를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경쟁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상대 체급의 70%는 되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소련처럼 상대를 두렵게 하는 ‘이념적 무기’라도 있어야 했다.
한국은 둘 중 무엇도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미국과 경쟁하려면 어떤 혁신이 필요하겠습니까?”
회장들은 이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답은 간단합니다. 노동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한 사람이 미국인 세 명 몫을 하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물론 말만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건 불가능했다.
눈짓을 보내자 참모들이 다음 장을 넘겼다.
“지금까지의 한국 기업 문화는 이랬습니다. 수시로 담배도 피우고 업무 중에 다른 일도 자주 했습니다. 일하는 시간은 길지만 실제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짧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해서는 8시간 일할 걸 12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이게 과연 효율적인 방식이겠습니까?”
생산직은 물론 기계처럼 일하고 있지만 사무직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의식을 개혁해 업무 중에는 필요한 대화와 행동만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업무 강도가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노동자들에게 좋은 변화는 아니었지만 이런 의식 개혁은 필요했다.
앞으로도 한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려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꾸준히 높일 필요가 있었다.
“둘째 우리는 생산에서 불량제로를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가성비의 대한이란 이미지로는 부족합니다.”
대한이 진정으로 미국과 경쟁하려면 최고급품 시장을 독식해야 했다.
그러려면 한국 제품은 믿고 쓸 수 있다는 품질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일찍부터 K 인증마크를 붙이고 있긴 했지만 기업 차원에서 품질을 신경 쓰지 않으면 Made in Korea 전체의 인식을 끌어올리기 힘들었다.
품질의 독일.
나는 원역의 독일이 차지한 그 포지션을 원했다.
“각하. 불량제로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회장 한 사람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의 지적처럼 불량제로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이성준이가 아무 생각도 없이 불량제로를 언급했겠는가.
나는 그 대안도 가지고 있었다.
원역 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유행했던 불량제로 운동.
6 시그마다.
6 시그마는 원역의 모토로라가 개발한 품질 관리 기법으로 제네럴 일렉트로닉스 같은 경쟁자들도 받아들일 만큼 시대에 획을 그은 경영 기법이었다.
“사람이 불량제로를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그러니 불량제로를 추구할 체제를 갖춰야지요.”
나는 정의 측정 분석 개선 관리로 대표되는 DMAIC와 정의 측정 분석 디자인 검증으로 이어지는 DMADV 기법을 소개했다.
회장들은 시대를 앞선 선진 경영 기법에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셋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수 합병을 통해 국가 수준의 독과점 기업을 창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 같은 독과점을 용인할 뜻을 밝혔다.
공정한 경쟁?
그건 경쟁 상대가 한국에 국한돼 있을 때 얘기였다.
우리 적은 공룡처럼 거대한 미국의 대기업들이었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우리의 자원을 최대한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반도체와 자동차에서 그러고 있긴 하지만 다른 분야는 아직 그 정도의 규모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각하. 독과점 기업을 만들려면 인수 합병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누가 자기 기업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준비한 게 있었다.
내가 손짓을 하자 참모들이 다음 장을 넘겼다.
적대적 인수 합병을 허용한다.
나는 이 같은 구조 개혁을 통해 한국의 기업들을 공룡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넷째 블루오션을 찾아야 합니다.”
대한이 미국과 경쟁하려면 지금처럼 선진국 시장에 안주하는 건 위험했다.
미국과 유럽이 언제 태도를 바꿔 우리를 견제할지 모르는 판에 여기에만 목을 맬 수는 없었다.
이런 위험에 대비하려면 신흥국 시장과 2세계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능동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기업 차원에서 무작정 뛰어들라는 이야기는 무책임한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정보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국가가 수집한 자료를 기업에 공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에는 안기부의 정보 자료도 포함됐다.
“정보기관의 자료를 말입니까?”
“기업 활동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제공할 겁니다.”
이 역시 거짓말은 아니었다.
냉전 이후 미국은 국가 안보국 NSA가 수집한 정보 자료를 미국 기업들에 제공했다.
왜 그랬겠는가?
미국 기업의 이익이 곧 국익이란 인식이 있어서였다.
우리라고 못 할 건 없었다.
냉전이라는 허상에 모두의 눈이 흐려져 있을 때가 기회였다.
이념이란 허상에 눈이 먼 장님들 사이에서 홀로 국익을 쫓은 자가 승자가 될 테니까.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한 이 같은 제안에 회장들의 얼굴에선 묘한 흥분이 감돌았다.
프레젠테이션 후 나는 테이블을 돌며 회장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각하. 품질 경영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지요. 국가 차원에서 6 시그마 구축을 지원하겠습니다.”
불량품은 기업의 이익을 깎아 먹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이걸 줄이기만 하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한층 도약시킬 수 있었다.
“각하의 의중이 그러시다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회장들은 내게 제안한 이야기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각하. 독과점을 허용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정도까지 용인하실 생각이십니까?”
질문을 받고 보니 후경의 최 회장이었다.
“100%. 할 수 있다면 140%까지 차지해도 좋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미국처럼 자원과 인구가 넘쳐나는 대국은 반독점법이니 뭐니 해서 자국 기업을 쪼개는 여유를 부려도 우린 그럴 이유가 없었다.
독과점의 폐해보다 자원을 집중해 미국 기업을 시장에서 두들겨 팰 수 있다는 이점이 더 중요했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한 ‘발표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끝났다.
그리고 의식 개혁은 곧장 재계 전체로 확산했다.
회장들이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오래지 않아 규모가 작은 기업들도 다들 생산성을 올린다며 열을 올렸다.
“의식 개혁은 곧 경쟁력 강화의 척도다.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6 시그마도 금방 퍼졌다.
‘이익이 되는 건 정말 빨리들 배우는군.’
어쩌면 6 시그마나 의식 개혁 운동이 미국 쪽으로 퍼질지도 몰랐다.
지금의 대한은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나라였으니까.
하지만 내일 당장 한국의 개혁을 따라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정보 확산이 빠른 디지털 시대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
미국이 우리 개혁을 흉내내려면 몇 년은 필요했다.
나는 그 격차가 대한의 가장 큰 무기가 되리라 자신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글이 잘 안 나오는 하루였습니다. 빨리 4편 쓰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너무 자주 1편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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