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5
한국이 세계 패권을 향해 전진할 무렵 중화 인민 공화국에선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사태의 시작은 류사오치가 발표한 ‘대약진 운동 수습 보고’에서 시작됐다.
“대약진 운동의 피해가 천재天災가 3할이면 인재人災가 7할이다.”
류사오치는 대약진의 피해자를 150만 명으로 발표하며 이 과정에서 당에 ‘중대한 과오’가 있었음을 밝혔다.
이를 두고 마오쩌둥의 아내인 장칭과 야오원위안은 ‘당 주석’을 공격하기 위한 포석일 거란 말을 마오쩌둥에게 속삭였다.
마오쩌둥은 여기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일단 참았다.
하지만 류사오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노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이에 대해 사람들에게 사과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동지가 내 체면을 땅에 처박을 수가 있나?”
마오쩌둥이 여기에 분노해 언성을 높이자 류사오치도 고함을 질렀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역사가 당신과 나를 심판할 것이다!”
이 한바탕의 언쟁이 있고 난 직후 류사오치는 덩샤오핑과 손잡고 한국식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였다.
이런 변화는 사회주의 질서를 신봉하던 마오쩌둥에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류사오치를 가만둘 수 없겠군.”
마오쩌둥은 독 오른 뱀처럼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중 소련에서 흐루쇼프가 실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마오쩌둥에게 있어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소련에서는 흐루쇼프라는 수정주의자의 행태를 위험하게 보고 당과 군이 나서 질서를 회복했다. 우리 중화에선 그럴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단 말인가?”
마오쩌둥은 측근들에게 ‘중화의 흐루쇼프’ 류사오치를 제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력 투쟁을 시작하기에 마침 시기도 좋았다.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 EA의 외국인 일자리 봉쇄로 인한 경제난으로 중국의 국내 사정과 경기는 전반적으로 어수선했다.
“개혁하면 좋아진다며? 좋아지는 게 하나도 없잖아!”
“감히 당의 방침에 반기를 드러내는 반동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공작조 파견해.”
류사오치는 이를 억누르기 위해 불만을 토로하는 대학생들의 집회를 공작조를 파견해 통제를 시도했다.
대학생들은 이런 통제 시도를 보면서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에 대한 불만을 품었다.
마오쩌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젊은 대학생 대표들을 접견해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보이는 통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젊은 동지들의 애국애당 정신이 옳다. 옳다고 생각한 바를 주저하지 말고 밀어붙여라.”
“주석 동지라면 저희를 이해해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1963년 1월 4일 린뱌오가 나서서 국가 주석 류사오치를 정면으로 비난했다.
“당의 수정주의자들이 마오 주석의 영도를 비판했지만 그 같은 생각은 틀렸다. 마오 주석 동지는 하늘이 내린 초인이며 그분의 영도는 틀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일어난 미숙한 실수를 마오 동지의 책임으로 돌리는 수작질은 집어치워라!”
린뱌오의 공격은 신호에 불과했다.
1월 19일 완장을 두른 대학생 대표들이 마오쩌둥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국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든 수정주의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오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그냥 두면 혁명의 순수성이 오염되고 말 것입니다. 주석 동지! 사회와 정치를 새롭게 일신해야 합니다!”
마오쩌둥은 여기에 이런 답장을 보냈다.
“혁명무죄 조반유리 革命無罪 造反有理 혁명에는 죄가 없고 반란이 일어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한 마디에 홍위병들은 반란의 정당성을 얻었다.
“일어서자! 중화 혁명의 순수성을 지켜내자!”
홍위병이 일어서자 중공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졌다.
마오쩌둥은 이 상황을 보고 홍위병들을 격려했다.
“젊은이들이 잘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격려의 말 한마디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하들을 시켜 대자보도 하나 붙였다.
“사령부를 폭격하라.”
한 마디로 정부를 전복하란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홍위병들은 대놓고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관공서가 불에 타고 관료들이 끌려 나와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럼에도 류사오치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류사오치에겐 그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있었고
“이자들이 주석 동지를 배반할 위험이 있습니다.”
중공에 감시망을 펼쳐놓고 있던 안기부의 후원이 있었다.
“정말이요?”
“저희가 홍위병 문제도 경고해드렸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우리 정보는 정확합니다.”
류사오치는 한국의 정보 지원을 등에 업고 공산당 내 반대파벌인 홍구파에 동조적인 자들을 재빠르게 쳐냈다.
그리고 도시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백구파를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했다.
“멍청한 놈들. 류사오치를 단번에 쳤어야지. 뱀 대가리를 자르지 못하면 일이 귀찮아지는 걸 모르나?”
홍위병의 공격 한 번으로 류사오치를 끝장내려 한 마오의 계산과 다르게 류사오치 진영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류사오치는 여전히 국가 주석으로서 정부와 국가 위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홍위병들이 이런 상황에 낙담했냐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혁명무죄 조반유리!”
홍위병들은 류사오치에 동조하는 수정주의자들을 박살 낸다는 명목하에 당 정 군의 고위 인사들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펑더화이 원수?”
“그렇다.”
“끌어내.”
홍위병들은 군부의 최고 서열인 펑더화이 원수 같은 거물도 잡아다 조리돌림을 시켰다.
“마오 주석께 사죄해라. 네놈의 허튼짓 때문에 수정주의자들이 득세하지 않았나?”
“그럴 수 없다.”
“이놈이 정신을 못 차렸네.”
홍위병들은 군의 원로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무자비한 폭행 과정에서 고위 인사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는 일이 빈발했지만 마오쩌둥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큰일을 하다 보면 작은 희생은 눈 감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홍위병의 난동은 사람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건 자본주의 물이 든 썩은 물건이다.”
“그건 봉건주의 잔재가 남긴 적폐다.”
홍위병들은 눈에 띄는 문화재들도 닥치는 대로 박살 냈다.
본격적인 ‘문화 대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난동은 점차 광기의 범주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이를 통제해야 할 마오는 고삐를 당길 생각이 없었다.
마오는 류사오치가 무너질 때까지 홍위병이 날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류사오치는 이런 홍위병의 행태를 보고 비난을 쏟아냈다.
“나라의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자들이 국가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게 배운 자의 자세인가?”
류사오치는 홍위병들이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군을 동원하겠다고 엄포도 놨다.
“그건 내가 동의 못 하겠소.”
군 서열 1위인 린뱌오가 군 동원을 반대하고 나섰다.
“젊은이들의 우국충정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오.”
린뱌오는 마오가 원하는 만큼 홍위병들이 날뛰게 할 참이었다.
군 동원이 막히자 류사오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공안 정도로는 홍위병들의 난동에 손가락도 대지 못했다.
그럼에도 류사오치는 권력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마오쩌둥에게 권력을 내놨다간 이 나라를 끝장내고 말 거다.’
백구파도 류사오치와 생각이 같았다.
“소련만 봐도 답을 알 수 있다. 농촌 프롤레타리아 같은 건 망상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근본은 도시 노동자다.”
그들은 개혁개방을 버리고 마오이즘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양쪽 모두 물러설 생각이 없다 보니 중공의 권력 투쟁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홍위병의 난동도 점점 더 심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홍위병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서 표적을 결정했다.
“주석 동지를 모신 혁명 원로라고?”
“그래. 나는 너희 편이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입 닥쳐. 이 수정주의자 자식. 부르주아 풍이 든 집만 봐도 네가 얼마나 가면을 잘 썼는지 알겠다.”
“끌어내자고.”
홍위병들은 백구파뿐만 아니라 홍구파 원로들도 공격했다.
이렇게 되자 공산당 원로들은 마오쩌둥에게 달려가 홍위병을 진정시켜달라고 호소했다.
“그 젊은이들이 혈기에 날뛰는 걸 내가 어떻게 진정시킨단 말이오.”
마오는 이런 말로 원로들의 요청을 물리쳤다.
마오쩌둥으로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홍위병의 고삐를 당겼다간 류사오치의 반격을 받아 뒷방 늙은이로 죽어야 했다.
‘절대 그럴 순 없지.’
마오는 권력 없이 사는 내일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힘도 영향력도 없이 남의 눈치나 보는 삶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어야 한다. 이성준이처럼.’
이런 생각은 마오만 가진 게 아니었다.
마오의 아내 장칭 또한 이 싸움에서 물러서길 원치 않았다.
‘주석 동지의 다음은 나다. 내가 권력을 쥐려면 주석께서 권좌에 복귀해야 한다.’
장칭을 정점으로 한 4인방은 마오의 투지를 북돋우며 권력 투쟁에서 반드시 이길 거란 확신을 주었다.
이렇듯 중공의 내홍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혼란의 와중 수많은 문화재가 한국으로 흘러들었다.
안기부는 홍위병들에게 뇌물을 주고 표적으로 삼은 문화재를 뒷구멍으로 슬쩍 챙기는 수법을 구사했다.
그리 큰돈을 지불할 필요도 없었다.
“봉건 적폐의 유물 따위 당신네가 가져가도 상관없소.”
한국은 혼란의 와중 국보급 문화재를 수천 점이나 챙겼다.
“아직 배가 고픈데 더 챙길 순 없나?”
한국은 홍위병들에게 하는 김에 여산릉 도굴도 부추겼다.
“적폐 중의 적폐인 진시황 같은 반동을 어떻게 편하게 쉬게 둔단 말입니까?”
“맞는 말이군.”
한국은 문화재 파괴의 현장에서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들을 부지런히 챙겼다.
이렇게 약탈한 문화재는 한국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한국 박물관의 중국관은 증축을 해도 유물을 전시할 공간이 없어 수장고를 끝도 없이 늘려야 했다.
한국은 중국 문화재를 챙기면서 류사오치에게 정보력을 실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정도 싸워라. 중공이라는 이름에 똥칠할 때까지.”
류사오치와 마오쩌둥의 권력 투쟁에서 웃는 건 결국 한국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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