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하룻밤 새 세계 5위의 열강 대한제국이 뒤집혔다.
그리곤 보도 듣도 못한 이성준이란 자가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올라섰다.
세계는 이 놀라운 소식에 깜짝 놀랐다.
자그마치 동양 최강의 강대국이라는 나라가 몇 년 사이에 2번이나 쿠데타를 겪는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모두가 12.8쿠데타에 경악했다면 중국 정부는 이번 사건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가오리방쯔들 사이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건 그들 사회 내부의 모순과 불만이 폭발했다는 방증이오. 이런 상황에서 평양이 어떻게 전쟁을 속행하겠소? 놈들의 피로가 극에 달한 지금 협상 조건을 새로 짤 필요가 있소 외교부장!”
“예 위원장님.”
“트라우트만 대사에게 알리시오. 평화 교섭은 전에 논의한 것보다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진행해야 할 거라고.”
장제스의 지시에 외교부장 장췬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다 차린 밥상을 걷어차잔 얘기를 받아들이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결정권자는 장제스였다.
장췬은 하는 수 없이 주중 독일 대사 오스카 트라우트만과 만났다.
한데 트라우트만 쪽도 장췬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대사. 우리 중국은 이쪽의 요구가 반영된 새로운 조건으로 협상하길 원합니다.”
그 말에 트라우트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잖아도 한국에서 협상 조건을 바꾸자는 얘기를 전해왔습니다.”
그 말에 장췬은 혹시 하는 기대를 했다.
한국의 새로운 군부 정권은 아시아의 연대 따위를 주장하는 아시아주의자였던 건가.
그렇다면 중국에 관용을 베풀려는 자세를 취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들어나 봅시다.”
하지만 이어진 트라우트만의 말은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다른 조건을 철회하는 대신 화북 지역의 철도와 관련된 권한 일체를 양도받길 원하고 있습니다.”
“뭐 뭐요?”
장췬은 경악했다.
한국 놈들이 미쳤나.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화북은 한국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한다.
열강이 괜히 타국에 침투할 때 철도 부설권부터 요구하겠는가.
순나라 말기의 끔찍했던 시절이 머릿속에서 절로 재생됐다.
자연히 장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결단코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요!”
“일단 알겠습니다.”
장췬은 트라우트만과의 대화에서 새로운 군부 정권이 박한진보다 더 무지막지한 놈들이란 사실을 절감했다.
어쨌거나 이 사실은 장제스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뭐? 화북 철도 관리권을 한국에 넘겨달라고?”
“트라우트만 대사의 전언은 그랬습니다.”
장췬의 보고에 장제스는 극도로 격앙됐다.
이렇게 된 이상 한국의 쿠데타 상황과 별개로 당분간 외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지. 평양 정권을 쥔 애송이들에게 현실을 알려줄 방법을 찾는 수밖에.’
장제스는 저녁 식사 자리에 주중 독일 군사 고문단장인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대장을 초대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편히 앉으시오 장군.”
장제스는 식사를 나누며 최근 쿠데타의 여파로 어수선해진 한국군에 공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요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팔켄하우젠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고기를 썰던 나이프를 멈췄다.
“위원장님. 그건 무리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호통을 쳤겠지만 상대는 그가 가장 신임하는 군사 고문이었다.
“이유가 뭐요?”
“공세에 투입할 전력이 부족합니다. 상해 전투로 각하의 중앙 직계군도 대부분 와해된 실정이지 않습니까.”
팔켄하우젠은 장제스에게 뼈아픈 사실을 상기시켰다.
1937년 8월 21일 한중 전쟁이 발발한 이래 중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려왔다.
그나마 화북 전선에서는 황하를 비롯한 자연 경계물에 의지해 공세를 버텨내고 있었지만 동쪽 해안은 달랐다.
장제스가 고집을 부려 사수를 시도했던 상하이는 한국 해군의 무지막지한 전력 앞에 으스러졌고 투입했던 73개 사단 대부분이 중화기를 잃고 후퇴해야 했다.
중앙 직계군의 손실도 커서 30개 사단 중 27개 사단이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다.
그 과정에서 젝트와 팔켄하우젠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절대 방어선 ‘젝트 라인’마저 붕괴해 남경의 방어도 위태로운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을 상대로 공세라니?
팔켄하우젠은 위원장이 쿠데타 소식에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장제스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전략에 대해 논하자면 장군의 이야기가 맞소. 그건 장군이 나보다 전문가인 걸 인정하오. 하지만 정치는 이야기가 다르지.”
장제스는 한국군이 쿠데타로 인해 뒤숭숭한 호기를 놓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한국군이 전열을 가다듬을 텐데 그때 가선 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게 장제스의 주장이었다.
“우리가 이번에 전술적인 승리만 따내면 쿠데타 정권은 심한 정치적 부담을 받을 수밖에 없소. 그럼 이번 전쟁은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을 수 있을 거요.”
그렇다고 장제스가 아주 헛소리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 전황과 전쟁의 승패가 어긋나는 사례는 적지 않게 존재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구정 공세만 하더라도 미군은 침투한 베트콩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술적 승리를 얻었다.
공격에 참여한 북베트남 및 베트콩 군대는 치명적인 손해를 입어 일각에선 베트남군의 ‘자살’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 정치 역학은 정반대로 작용했다.
미국인들은 미군 대사관까지 베트콩에 위협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나머지 전쟁에서 지고 있다고 느껴버렸다.
이 여파로 워싱턴은 군사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됐다.
장제스가 원하는 것도 이론상으론 북베트남군이 노린 것과 비슷했다.
팔켄하우젠은 이 같은 장제스의 논리를 반박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공세에 부정적인 견해를 비쳤다.
정치적으로 승리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판돈을 던지는 게 그 얼마나 어리석은가?
팔켄하우젠은 장제스가 상해에서 한번 실수를 겪고도 배운 게 없다며 혀를 찼다.
“위원장님. 정 공세를 해야 한다면 1월로 미루시는 게 좋겠습니다.”
“계속하시오.”
“새로 들어선 정권의 수장인 이성준은 군부 서열이 그리 높지 않은 인물이라 들었습니다. 그런 자가 정점에 서면 분명 고위 장성들은 이를 불편하게 여길 겁니다.”
장제스도 동의했다.
“이런 자가 정권을 쥐면 군 내에서 숙청 작업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니 이성준이 전선의 장군들을 건드릴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기다린다.”
장제스는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기다린다.
중국인들에게 ‘기다림’은 익숙한 것이었다.
중화는 언제나 인내하고 기다리고 참았다.
그렇게 해서 결국엔 승리했다.
장제스는 마침내 고집을 조금 꺾기로 했다.
“알겠소. 장군의 조언대로 공세를 미루리다.”
오랜 시간 인내해온 장제스에게 1달은 별거 아닌 시간이었다.
‘하지만 중국군의 능력으로 공세를 제대로 수행할 수나 있을까.’
팔켄하우젠은 여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
“각하. 야전 지휘관들의 소환 일정입니다.”
“모두 12월 중이군.”
나는 보안 사령관 김성주가 올린 보고서를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일선 야전군 지휘관들을 소환한다는 건 무리수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몇몇 위험 인사는 반드시 소환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들을 평양으로 불러 군권을 뺏지 않으면 전후 전공을 배경삼아 우리에게 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우리에 반하는 전쟁영웅의 도전이라.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시나리오다.
그 위험한 적에게 군부 내 영향력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내주지 않으려면 다소의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일정을 조절할까요?”
“아니야.”
지휘관들이 차례로 소환되는 공백을 틈타 중국이 공세를 펼칠 수도 있었지만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웹툰’의 중국군은 사단 단위 제대의 작전만 제대로 펼쳐도 감당하지 못하는 약체의 적.
방어만 하고 있으면 문제될 게 없었다.
그렇게 자를 놈 잘라 전열을 재정비한 다음 다음 수를 생각한다.
중국보단 군부 내 장악력 강화가 우선이니까.
“명단은 곧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임자 수고했어.”
김성주가 경례를 한 다음 집무실을 나갔다.
일단 군부는 이렇게 마지막 숙청 작업을 진행한다치고 중국은 어떡할까.
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따지고 보면 한중 전쟁의 어려운 고비는 박한진이가 다 해치워 놨다.
황하도 일부 지역에서 도하했고 상해도 땄고 난공불락의 젝트 라인도 깼다.
이렇게 보면 박한진이가 전쟁을 못하는 게 아니었다.
타이밍 하나는 소련의 귀싸대기를 정밀하게 후려친 히틀러 못지 않았다.
그럼 뭘 하나.
히틀러처럼 나라를 X박을 전쟁을 일으켰는데.
아무튼 박한진 얘기에서 돌아와서 본론으로 들어가면
제국군에 남은 과제는 수도 남경을 점령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원역과 웹툰 모두 아는 나로선 남경만은 절대 건드릴 수 없었다.
거길 점령하면 중국과 화해 가능성이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남경을 먹어봐야 중국이 망하지도 않는다.
중국은 수도를 옮길 무궁무진한 공간과 도시들이 있었다.
한양 무창 하여간 수도를 옮길 수 있는 데를 다 먹어도 유비의 촉나라가 있던 사천성 중경까지 옮기면 그만이다.
중국 땅덩이는 그만큼 넓고 우리는 그들 대륙 전토를 평정할 역량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항복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내 머가리 수준을 원역 대본영과 비교해야 맞을 거다.
그러니 최선은 협상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만 돌아가던가.
일이 내 생각대로 안 풀릴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만약 그런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떡하나.
협상이 안 된다.
그럼 협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야겠지.
원역 한국 전쟁(6.25)만 해도 휴전을 막아서던 스탈린이 죽자 귀신같이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
한중 협상도 마찬가지.
강경한 주전론의 핵심인 장제스를 없애버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원역 독일인들이 자기네가 선거로 뽑은 콧수염 총통을 쓱싹하려 했는데 장제스 죽이려고 전쟁까지 터트렸던 반장 군벌들 정도면 자기네 보스를 없애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그 친구들이 그러겠다고 동의한 게 아니라 모양새가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협상 실패에 대비해 장제스를 암살하는 방법도 고려해두기로 했다.
비상한 때엔 비상한 수단이 필요한 법.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전쟁을 끝낼 플랜B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시아주의(흥아론)는 서구에 맞서 아시아 국가들의 연대를 주장하는 이념입니다. 원역에선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도 사용된 전력이 있습니다.
p.s 성준이는 장제스를 암살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걸 보고 우려하실 것 같아서 못 박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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