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7
1964년은 대한에 있어 영광의 해였다.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에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지위를 공고히 했고 국가 위상 측면에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대한이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도 꿀리는 국가가 아님을 증명했다.
이제 모두가 대한을 세계 2위의 초강대국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높아진 위상만큼이나 질시의 시선도 커졌다.
세계 1위의 초강대국 미국부터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유럽까지 수많은 국가가 한국의 성공을 질시하고 끌어내릴 기회를 보았다.
영광의 그늘에는 쇠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국의 국가 수뇌부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대한이 영원히 승승장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성준의 집권 이후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경험이 그들의 믿음을 뒷받침했다.
“미국이 대단한 나라긴 하지만 이젠 늙어빠져 날지 못하는 독수리 아닌가. 지난날 대영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워싱턴은 평양에 패권을 내주고 물러날 수밖에 없어.”
“달러가 하락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 비실비실한 달러와 튼튼한 원화. 누가 봐도 국가의 미래가 보이지 않나?”
이 같은 생각은 경쟁자인 미국을 얕잡아 보는 시선으로 나타났다.
10년 아니 20년.
그 정도 시간만 주어지면 한국이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우월감은 도시의 막노동자들에게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한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거란 걸 왜 의심하겠소?”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우리는 성장하고 미국은 정체됐으니 그런 거지 뭐 대단한 이유가 있겠소.”
안기부는 이런 조사 결과를 내게 보고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나는 한국인들의 우월감을 위험한 독소로 판단했다.
상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경시하는 시선을 보내서도 곤란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전랑 외교 같은 위험한 시책을 요구하게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위험한 싹이 자라기 전에 뿌리를 뽑을 필요를 느꼈다.
“이쯤에서 우리 국민들을 계몽할 필요가 있겠군. 특집 다큐멘터리를 하나 준비하게 하도록.”
나는 세계정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해 국민의 의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모델은 중국의 ‘대국굴기’였다.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졌는지 그 저력은 얼마나 큰지 철저히 알린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한국 중앙 방송국은 뜬금없는 다큐멘터리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다.
“미국이란 강대국의 여정을 묘사한 다큐멘터리라니.”
제작시한도 촉박했다.
“어쩔 수 없군. 사람을 최대한 풀도록.”
중앙 방송국은 국민 계몽을 위한 교육이라는 취지로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에게도 다가가 출연을 부탁했다.
“국민 계몽을 위한 방송이라니. 그런 좋은 취지의 방송이라면 협조해야지요.”
이름 있는 학자들 대부분이 저렴한 출연비를 받고 기꺼이 출연을 승낙했다.
“이거 자료가 부족한 부분은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어쩌긴 뭘 어쩌나. 재연 방송을 촬영해서 채워 넣어.”
그렇게 해서 벼락치기로 준비된 것이 ‘미합중국의 흥망’이었다.
“딱 2달 만에 준비한 것치곤 괜찮군.”
평양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장중한 BGM 속에 미국의 흥망성쇠가 2시간 동안 연출됐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시작해 세계 최강대국까지 성장한 미국이란 제국의 힘과 성취.
그들을 정점으로 구축된 파이브 아이즈가 가진 지배력까지.
방송팀은 미국이 가진 힘을 다큐멘터리에서 가감 없이 묘사했다.
달러가 흔들린다고 해서 미국이 우습게 볼 나라는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적수가 없는 최강의 제국이다.
나는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러니까 헛된 망상은 품지 말라고.’
얼마 후 국민과의 대담 시간이 되자 다큐멘터리와 관련한 질의가 쏟아졌다.
“각하. 지금의 미국과 한국 사이의 격차가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한 것만큼 큽니까?”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한국도 EA가 있고 제3세계라는 세력이 있으며 소련에 채운 목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서 국민들의 간을 다시 불려줄 필요는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크다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은 세계 제1의 강대국인 것을 넘어 1세계 그 자체나 다름없는 제국입니다.”
“우리 대한이 미국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겁니까?”
“어제 흥성하던 나라가 내일 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오늘날의 1년은 과거의 10년보다 변화가 빠릅니다. 내일의 일은 제가 어떻게 장담하겠습니까.”
나는 국민에게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절대 주지 않았다.
이 나라 대한은 미국에 쉽게 도전해선 안 됐으니까.
섣부른 도전은 이 나라를 원역 중공처럼 위태로운 처지로 몰아넣을 뿐이었다.
“우리 대한도 파이브 아이즈 같은 동맹을 구축하고 있습니까?”
“평양도 나름대로 동맹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앵글로색슨 같은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라면 유교 문화권을 공유하는 EA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너무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진 않았다.
한국도 패권 경쟁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곤 있다.
하지만 미국에 도전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비치려는 모습은 딱 이 정도였다.
다큐멘터리와 국민과의 대담은 성공적이었다.
대담 이후 벌인 여론 조사에서 국민들의 대미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뀌어 있었다.
“워싱턴이 우습다는 인식이 확실히 줄어들었군.”
“이제 사람들도 알았을 겁니다. 미국이 얼마나 두려운 상대인지.”
여론이 미국을 두렵게 여긴다면 그걸로 됐다.
상대를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약세를 보여도 국민들이 이해해줄 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국민들의 대미 인식을 확고히 할 겸 전문가들을 라디오며 TV에 자주 내보냈다.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미국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다 이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쓸만한 토지 대부분을 독식한 국가입니다. 미국의 체급과 비교하려면 서유럽과 동유럽을 통째로 합치거나 EA와 중화민국 인도를 합쳐놔야 할 겁니다.”
“그건 국가라기보단 대륙이잖습니까.”
“실제로 미국은 그런 국가입니다. 여기에 미국은 거의 모든 자원을 본토에서 자급할 수 있는 유이한 국가입니다. 미국 외에 그게 되는 나라는 소련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국력을 수시로 국민들의 귀에 들려주었다.
미국은 단순한 1위가 아니라 ‘압도적인’ 1위라는 사실을.
근거 없이 차올랐던 미국 추월론은 금방 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미국 경계론이었다.
그렇게나 강한 나라가 한국에 적대감을 보였는데 이쪽도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냐는 게 미국 경계론의 주된 논리였다.
‘적대감이라는 건 환율 전쟁을 보고 하는 소린가.’
물론 이 주장이 아주 그릇된 건 아니었다.
실제로 미국 민주당 정권은 한국에 칼을 뽑아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 대응책을 대놓고 떠들 순 없었다.
정부 차원에서 대놓고 대응책을 떠들면 그건 미국과 대놓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었다.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미국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쉽지 않군.’
우월감보단 경계심이 낫지만 이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반미 감정을 잉태할 위험이 있었다.
반미 감정이 싹트면 미국 쪽에서도 반한 감정이 싹튼다.
골치 아픈 문제였다.
과도한 경계심을 누그러트릴 방법이 없을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미국이 적이라는 인식을 걷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적이라는 인식을 걷어낸다?
어떻게?
“미담을 발굴하는 겁니다.”
미담을 발굴한다?
“그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 것도 같군.”
나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며칠 후 미국에서 한국 총리공관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이성준 총리 각하. 저는 미국 소녀 앤이라고 합니다. 이제 11살이 됐습니다. 저는 한국과 미국이 동맹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총리님은 정말 미국을 경쟁자로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미국 소녀가 한국 총리에게 편지를 쓴다.
물론 이 과정은 인위적이었다.
‘한국 총리에게 한미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시오.’
편지가 오기 며칠 전에 나는 뉴욕을 비롯해 각 도시에 광고를 띄웠다.
광고 자체는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미국민과의 대화를 준비하는 것처럼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나는 편지 중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어린 소녀의 편지를 택했다.
그리고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신문에 직접 썼다.
“어리고 용기 있는 앤 양에게 한국 총리공관으로 편지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미 관계를 걱정하는 앤 양의 편지를 받고 보니 양국 관계에 대해 좀 더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앤 양은 우리 한국과 미국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좋은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입에 발린 거짓말이다.
양국이 진실로 상호호혜적인 동반자 관계라면 무역 전쟁의 각을 보고 있진 않을 테니까.
“우리 한국이 미국의 경쟁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상품을 만들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뻔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오직 하나.
“한국은 미국을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적대감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국에 친근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총리와 미국 소녀의 공개 펜팔을 통해 미국과 한국 사이에도 우정 비슷한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라고 북을 치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여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미국 소녀 앤을 진짜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녀를 영접하기 위해 장관급 인사까지 공항에 내보냈다.
미국에 대한 경계론은 이 한 방으로 크게 비틀거렸다.
이렇게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어딜 경계론 따윌 들이민단 말인가?
미국을 경계하는 건 국가 수뇌들로 충분했다.
만약 한국인들이 미국에 경계심을 품어야 한다면 그 시기는
‘내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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