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
대한제국이 ‘혁명화 수용소’의 폐해에 시달리던 1939년 2월 독일은 체코 병합 공작을 시작했다.
유럽은 콧수염이 또 불장난을 시작하자 경악했다.
“너 주데덴란트에서 멈추겠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그랬나? 그랬던 거 같기는 한데 내 말을 믿은 놈이 병신 아닌가?”
히틀러는 독일이란 국가의 신용을 부도냈다.
1939년 3월 15일 독일 국방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했다.
슬로바키아는 보호국으로 독립시키고 보헤미아-모라바 지역은 보호령을 세웠다.
체코란 나라는 이제 없었다.
이 사건이 유럽인들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했다.
“히틀러 이 사기꾼 새끼가 하는 말은 바닷물이 짜다고 해도 믿어선 안 된다.”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와의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직시했다.
늦었지만 올바른 상황 인식이었다.
폴란드도 뒤늦게 상황을 인식했다.
“단치히와 폴란드 회랑만 내놓으면 우리 독일이 폴란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그걸 내놓는 것부터가 터무니없지만 설사 내준다 해도 그다음에 또 요구할 게 뻔한 데 우리가 왜?”
폴란드는 독일의 모든 영토 협상 요구를 거절했다.
폴란드가 하나 몰랐던 사실이 있다면 폴란드의 영토를 원하는 건 히틀러 혼자가 아니란 점이었다.
나치를 제외한 우파 심지어 사민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파의 독일인이 고토 회복을 열망하고 있었다.
독일의 지도자는 폴란드의 영토를 요구한 시점부터 스스로 물러설 수 없는 단두대에 오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따갚돼 못하면 우리는 끝장이야.”
경제적 이유도 있다 보니 나치는 나름 절박한 태도로 동방 영토의 수복을 노렸다.
“저 저희는 내놓겠습니다 형님들.”
1939년 3월 23일 리투아니아가 세계대전 직후 꿀꺽했던 독일령 메멜을 독일에 반환했다.
메멜 반환에 성공하자 독일은 더욱 강경해졌다.
“저거 저거 이번에도 우리가 방관했다간 국제법은 둘째치고 대독 포위망 자체가 무너질 겁니다.”
1939년 3월 30일 국제 심판 영국과 프랑스가 큰 결심을 했다.
“유사시 우리는 폴란드에 대한 군사 원조를 보장한다.”
국제 심판들은 콧수염에게 옐로카드를 꺼내 드는 것으로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총통 각하. 영불이 개입한다면 전쟁은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다른 해법을 모색하시는 편이.”
“틀렸어! 저놈들은 순 겁쟁이라니까! 강하게 밀어붙이면 다 토해내게 돼 있어!”
히틀러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세게 나가면 다 해결될 거라고 자신했다.
독일의 강경 드라이브에 폴란드인들도 단호해졌다.
“우리는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 꿇고 살진 않겠다.”
“그래?”
1939년 4월 28일 독일은 1934년에 체결한 독-폴 불가침 조약과 영독 해군 조약을 파기했다.
이탈리아도 알바니아를 점령했다.
1939년 5월 두 파시스트 국가는 강철 조약을 맺고 정식으로 동맹이 됐다.
이제 링 저편엔 독일과 이탈리아 두 열강이 한 팀이 되어 서 있었다.
“영국 프랑스 너네 둘이 한 팀이야? 그런데 우리도 쪽수는 맞췄네?”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누가 봐도 전쟁은 시간문제였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독일이 전쟁을 터트릴 기미를 보이자 소련도 마음이 급해졌다.
“이거 독일 놈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도 휩쓸릴 수 있지 않겠나? 서구 제국주의자들 놈에게 집단 안보 체제를 제대로 구축해보자고 제안해보게.”
스탈린은 마지막으로 영프와 협상을 지시했다.
“우리 삼국이 공동으로 발트해에서 지중해까지 모든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고 한 나라라도 공격을 받으면 세 열강이 함께 독일을 공격합시다.”
스탈린으로선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꺼낸 제안이었다.
그러나 답장이 오질 않았다.
“빨갱이 새끼들의 제안에 답을 해야 합니까?”
“천천히 생각해보면서 고민합시다. 아 빨갱이들 상대로 외교 관례 같은 거 지킬 필요는 없잖아요?”
영국이 혐성을 부렸다.
유럽이 이렇게 전쟁 위기에 빠지자 대한에서도 전쟁을 바라는 목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인들은 아니었다.
“아 각하 말씀을 거스르면 혁명 당한다니까.”
혁명화 수용소가 무서워서라도 한국인들은 이전처럼 쉽게 입을 털지 못했다.
전쟁 좋아하던 군부도 마찬가지였다.
“전쟁戰爭의 전戰자만 꺼내 봐. 그 부서째로 예산 날려버린다.”
성준의 설득(예산)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달랐다.
“총리 각하. 유럽의 백인들이 전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대로 세계대전이 터지면 서구 열강은 아시아 식민지에 신경도 쓰지 못할 겁니다. 그 기회를 이용해 고통받고 있는 아시아 형제들을 구원해주십시오.”
노재우 앞으로 수많은 아시아 유학생들이 편지를 보냈다.
아시아인들이 한국에 독립을 청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주장에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은근히 동조했다.
여기서 은근히 동조한 이유는 ‘혁명’이 무서워서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혁명화 수용소가 문을 닫자 봇물 터지듯 아시아 형제들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대한은 황인의 짐을 들 필요가 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손에!”
성준이 아무리 손을 쓰고 ‘문민화’를 시켜도 대한은 대한이었다.
DNA부터 군국주의 정수가 새겨진 제국에서 팽창욕은 생존욕구와 닮아 있었다.
어쩌면 그건 이 나라의 태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었다.
“거대 체급인 중원과 겨루려면 계속 성장해야 한다 먹어 치워야 한다.”
수백 년을 이러고 살았는데 인제 와서 극도로 함양된 상무 정신을 꺾는다?
불가능한 얘기였다.
마침내 수도 없이 쏟아진 청원을 등에 업고 군부 일각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유럽 전체가 전쟁에 휩쓸릴 경우를 생각해 계획이나 하나 세워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각하께서 전쟁이라면 경기를 일으키시는 걸 모르나?”
“알지요. 아는데 준비만 하잔 겁니다.”
“음.”
작전국에선 이 이야기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각하만 모르시면 되는 거 아니야?’
전쟁하겠다는 거도 아니고 준비만 해놓겠다는 건데.
“일단 과 하나만 할당해서 살짝 준비나 해봐.”
육군성 일각에서 성준도 모르는 전쟁 계획 수립이 시작됐다.
*
“아 진짜 그 새끼 콧수염을 다 쥐어 뜯어버리고 싶네.”
왜 저렇게 자살하지 못해서 안달이지?
이런 와중에 콧수염이 우리에게 강철 동맹 가입을 제안해왔다.
이번엔 외교적 수사고 뭐고 무시했다.
우리가 추축국에요? 왜요?
나는 절대 끌려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표현했다.
우릴 2차 세계대전에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려 들어?
저얼대 그럴 순 없지.
이 이성준이가 머가리에 총을 맞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독일을 손절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전에 빨아먹을 건 다 빨아먹어야지.
나는 독일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건넸다.
“독일에 유대인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그 친구들 보낼 곳이 마땅찮으면 한국도 괜찮습니다. 우리 대한엔 이민자들을 수용할 넓은 미개간지가 남아 있으니까요.”
명백하게 유대인들의 두뇌를 노린 제안이었다.
원역 일본 제국도 유대인 유치를 노리고 복어 계획이란 걸 세웠었다.
일본의 복어 계획이 낸 성과가 보잘것없긴 했지만 국력에 0.001%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해봐야 했다.
나는 고려일보의 조중동과 동양일보의 한경오 사장에게 유대인 초청에 우호적인 기사를 쓸 것을 지시했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대한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외국의 우수한 인재들을 데려올 필요가 있다고 말을 쏟아내게 했다.
“대한과 서구의 격차는 실로 작지 않다. 그 차이를 뛰어넘으려면 새로운 피와 두뇌가 필요하다!”
이렇게 유대인 초청 떡밥을 계속 던지자 독일 대사 오이겐 오트가 흥미를 보였다.
“본국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대인이 한국으로 이민할 때는 재산을 들고 가지 못할 겁니다.”
나치에게 그런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팬티라도 입혀서 보내면 다행일 놈들인데 재산을 줄 리가 있겠는가.
아무튼 독일 놈들이 좀 많이 보내줬으면 싶었다.
한 천 명은 보내주려나?
기왕 유대인을 받을 거면 전쟁이 좀 늦춰지는 게 좋지.
나는 한가닥 희망을 걸고 폴란드에 서한 한 장을 보냈다.
“바르샤바가 고집을 부려 소련인들이 인내에 한계를 느끼면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귀국은 양면에서 적을 맞게 될 테고 만사가 끝장날 겁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폴란드는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할 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내가 폴란드에 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였다.
폴란드가 생각이 있다면 소련의 군사 통행권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건 물론 희망 회로였다.
20년 전에 소폴 전쟁을 치른 폴란드가 소련을 믿을 리가 없잖아.
체코를 나눠 먹은 시점에서 폴란드의 운명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뾰족한 수가 없을까.
히틀러한테도 편지를 써볼까 생각을 했지만 포기했다.
편지 한 장으로 설득될 놈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스탈린은 어떨까.
확실히 스탈린은 이성적인 인간이다.
논리를 가지고 설득하면 통할 여지가 없진 않았다.
문제는 나보다 히틀러가 줄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데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겠군.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외무성 대. 아 대신 각하십니까. 이성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민 철수를 시작해주셨으면 합니다. 예. 기한은 8월 30일이 좋겠군요. 예 그럼 그렇게 처리해주십시오.”
나는 누구보다 빨리 전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젠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어둠 속을 걷는 일만 남았다.
내가 이 대한이 세계를 휩쓸 거대한 폭풍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는 수화기를 놓은 채 한참 생각에 잠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정해진 결괏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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