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
전황은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폴란드군은 회랑 전투 브주라 전투 등에서 선전했지만 끝내 독일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물량에 밀려 패퇴를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 대사 미하일 슬라부츠키가 접견을 청해왔다.
‘용건이 뭔지 알 것 같네.’
나는 대사를 응접실에서 만났다.
소련 대사는 평범한 회사원처럼 생긴 남자였지만 인상은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양국 관계가 원만하다 보니 대화는 지극히 우호적으로 진행됐다.
“여기 서기장께서 총장님께 전하라고 하신 서한입니다.”
“여기서 내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나는 봉인을 뜯고 고급스러운 편지지에 담긴 글을 훑어 내려갔다.
글의 요지는 간단했다.
“우리가 독일로부터 폴란드 절반을 ‘보호’하려고 하는데 양해 혹은 묵인해줬으면 좋겠다. 대한이 양해해준다면 우리도 한국이 하는 일에 협조해줄 의사가 있다.”
음 21세기에도 들어본 것 같은 소리였다.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재무장을 선언하면서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보호 목적으로 군대를 키운다고 했던가.
다만 스탈린이 숄츠처럼 진심으로 이웃을 지켜주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키려는 게 아니란 건 나도 알고 그 인간 백정도 알고 있었다.
이건 뻔한 연극이었다.
하지만 어울려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서기장 각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대한은 묵인하도록 하지요.”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그럼 이 제국주의 시대에 친하지도 않은 국가의 안보를 지켜주기 위해 거대한 이웃과 척지겠는가?
장기적으로 소련을 동맹 후보로 고려하는 입장에선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내 우호적인 답변에 소련 대사가 사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총장님. 대한이 보여준 호의는 서기장께서도 잊지 않으실 겁니다.”
암 그래야지.
그러라고 폴란드 반 잘라먹는 걸 인정해주는 거니까.
나는 이번에 베푼 호의를 반드시 비싼 값으로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소련 대사가 돌아가고 딱 6시간 만에 붉은 군대가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마치 준비라도 돼 있었던 것 같았다.
100만에 육박하는 대규모 침공군이 밀고 들어가자 몇 만도 안 되는 폴란드 국경 방위 군단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폴란드 친구들도 끝났군.”
그렇잖아도 병력에서 밀리는 판에 100만 소련군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전선이 쭉쭉 밀리는 상황이 눈에 훤히 보였다.
내가 보기에 폴란드의 수명은 길어야 3주 남짓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보다 짧을 수도 있었다.
“그러게 외교를 잘 했어야지.”
1939년 9월 17일은 폴란드에 있어 재앙의 하루였다.
브주라에서 폴란드군 주력인 포모제군과 포즈난군이 포위망에 걸려 괴멸적인 피해를 보았고 동쪽에서는 백만의 소련군이 밀고 들어왔다.
폴란드는 더는 희망을 품기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이젠 전쟁을 질질 끌어 독일로부터 관대한 휴전 조건을 얻어낸다는 최소한의 기대조차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휴전은 고사하고 나라가 통으로 망할 판이었다.
“저 지경이 되면 나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야 할 판 아닌가.”
나는 끝까지 버티는 폴란드인들의 투지를 높이 사면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939년 9월 28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가 함락됐다.
정확히는 그 전날 휴전을 맺으면서 사실상 무너진 셈이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폴란드의 멸망에 우리 장군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멸망 자체에 놀랐다기보단 그 속도에 놀랐다고 해야 옳았다.
“믿을 수 없어. 어떻게 동유럽의 1인자인 폴란드가 저리 쉽게 당한단 말인가.”
늙은 장군들은 폴란드가 동유럽에서 제일 큰 체급을 가진 육군 대국인데 고작해야 4주 남짓한 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지 못했다.
반면 우리 구국 군사 위원회의 소장파 장군들은 생각이 좀 달랐다.
“이건 차량화 된 보병과 전차 포병 그리고 공중 포병을 맡은 공군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산물입니다. 독일이 보여준 전격전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도달점 그 자체입니다!”
어 음.
그건 좀 아니고요.
독일군 대부분이 발로 뛰고 마차 타고 다니는 걸 알고 하는 얘긴지 모르겠다.
선전 영상만 보면 당연히 독일군은 전부 차 타고 다니고 전차 끌고 다니지.
그런데 현실은 아니잖아.
그리고 설령 그 구라를 사실이라고 믿어준다고 해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그걸 실천할 수 있느냐다.
“임자. 100만 제국군을 무슨 수로 차량화시킬 텐가?”
그 돈은? 예산은?
지금 전차와 자주포 개발에 드는 비용만 해도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런 판에 전군 차량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세계 열강의 추세를 따르지 못하면 폴란드처럼 비참하게 무너지지 않습니까. 허리를 졸라서라도 우리는 그들을 따라가야 합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옳은 말도 아니었다.
독일군의 핵심은 마약으로 단련된 보병이다.
그 보병들이 얼마 안 되는 차량화 전차 부대가 뚫어놓은 돌파구로 달려가 측면을 방어해줘서 포위망을 만들 수 있었던 거다.
차량 찍을 돈으로 마약 찍는 게 싸지 않나?
효율적이고.
음.
언젠가 내가 마약과의 전쟁을 비전으로 제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무렴 국가가 살아남느냐가 중요하지 그깟 범죄 소탕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임자.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네. 그러니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대안을 취해야지.”
일본 제국만 해도 그랬다.
독일처럼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판처파우스트를 만들어 전차에 꽂을 능력이 안 되니까 죽창 끝에 폭약을 달아 전차에 직접 쑤시는 자돌폭뢰(사용자의 안전은 보장못함)를 만들고
무선 조종으로 전차 아래로 들어가 터지게 하는 골리아트 지뢰 같은 걸 쓸 능력이 안 되니 폭약을 지고 전차 밑으로 들어가 드러눕는 인간 대전차 지뢰를 썼다.
일본이 왜 그랬겠는가.
독일이 만든 첨단 무기를 흉내 낼 돈으로 자돌폭뢰나 인간 대전차 지뢰를 쓰는 게 싸고 많이 보급할 수 있어서다.
우리도 일본과 다를 게 없었다.
“각하. 그렇다면 예산을 늘려주십시오. 장차전에서 육군이 살아남으려면 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예산? 나도 늘려주고 싶다.
그런데 그 지랄하려면 어디 예산을 잘라내야 하는데 웬만한 분야는 이미 질식하기 직전까지 목이 졸려 있었다.
넉넉한 동네는 같은 군부인 해군성뿐.
근데 거긴 1938년도 추가 예산안을 자를 때 한 번 불편하게 만든 곳이다.
거길 또 건드렸다간 제독들이 들고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난들 어떡하겠는가.
돈이 없는 것을.
군수품이라도 팍팍 수출하면 뭐 어떻게 하겠는데.
이미 연합국에 팔 만한 건 다 팔고 있었다.
나는 그 생각을 하다 벼락같이 머리를 스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독일에다 우회 수출로 탄약 좀 팔면 안 될까.’
생각해보면 빨갱이들을 경유해 탄약을 냅다 팔아치우면 연합국이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21세기의 대한민국만 해도 포탄 수십만 발을 우회 수출로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
그러고도 러시아에 찍히지 않은 건 미국에다 줬다는 핑계를 둘러대서였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서기장한테는 빚이 하나 있잖아?’
우리 탄약을 소련에 팔고 소련 놈들이 그걸 독일에 팔게 하면 딱딱 얘기가 맞았다.
소련도 중간에서 수수료 좀 챙기고 하면 괜찮을 거고.
어차피 소련 놈들은 앞으로 독일에 대놓고 석유와 크롬 텅스텐을 공급할 놈들이었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즉시 구체화했다.
“외무성 대.”
딱 하루 후 소련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협조하지요. 얼마나 보내실 겁니까?”
우리와 나치 놈들 사이는 이제 썩 원만하지 않았지만 소련은 아니었다.
모스크바가 중간에 낀 덕분에 나치에게 탄약을 팔아먹는 장사는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렇잖아도 탄약이 부족했던 나치들은 이 거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리가 탄약 수출을 막 시작하던 1939년 10월 5일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바르샤바를 방문해 독일군을 사열했다.
그 다음날인 10월 6일 최후의 폴란드군이 항복하면서 폴란드 전역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1919년 건국된 폴란드 제2공화국은 불과 2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 병사들은 해외로 탈출하는 망명 정부를 따라 달아났지만 다수는 국내에 잔류했다.
이 짧은 전쟁에서 폴란드가 입은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민간인 학살 약탈 강간 인종청소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악의가 행해졌다.
전쟁에서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자던 제네바 합의는 비웃음 속에 무너졌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결의를 다질 수 있었다.
이 나라 대한은 제2의 폴란드가 되게 해선 안 된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폴란드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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