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
현재 독일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10명 중 9명은 나치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독일 국방군의 주인은 나치인가?
나치로선 유감스럽게도 독일군의 주인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 있는 귀족들이었다.
이름에 Von이 들어가는 고상한 융커들은 자기들만의 왕국을 구축한 채 외부의 간섭을 거절했다.
이런 독일군의 본질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정부가 쿠데타 진압에 응하지 않는 군을 질책할 때 잘 나타났다.
“국방군은 도대체 누구의 편입니까?”
“국방군은 바로 저의 편입니다.”
독일 국방군 총감 한스 폰 젝트 장군이 한 대답이다.
국가의 편이 아니라 ‘나’의 편이다.
말 그대로 국방군은 국가에 속하지 않은 제국 안의 독립된 왕국이었다.
히틀러도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있었다.
총통은 융커들의 강고한 지배력을 흔들기 위해 평민 출신의 능력 있는 장교들이 눈에 띄면 자기가 배경이 되어 밀어줬다.
롬멜 같은 장교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또 전통 있는 독일 육군 최고 사령부 OKH 위에 국방군 최고 사령부 OKW를 신설하여 융커들의 지배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0년 현재 독일 국방군의 주도권은 여전히 융커들 수중에 있었다.
독일 군부가 서부 전선에 대한 침공 작전을 놓고 대놓고 태업을 벌여도 히틀러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총통 각하! 이 전쟁을 끝낼 ‘낫질 작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남자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
무모한 도박에 가까운 작전을 주장하다 육군 주류 파벌에 찍혀 한직을 전전하던 사람이었다.
히틀러의 비서실장 슈문트 대령을 이용해 총통에게 접근할 기회를 얻은 만슈타인은 특유의 현란한 말솜씨로 국가 원수를 홀딱 홀렸다.
“그럴듯해!”
히틀러가 무릎을 쳤다.
그럼에도 너무 무모한 작전이라 히틀러는 작전을 바꾸길 망설였지만 기존의 작전 계획이 우연한 사고로 유출되는 바람에 작전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
이로써 독일군은 제국 시절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슐리펜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슐리펜계획의 수정판에 지나지 않았던 기존 계획은 폐기되고 아르덴고원을 통과해 연합군을 대서양까지 밀어내는 낫질 작전이 작전 계획으로 채택됐다.
독일군이 작전 계획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사이 연합군은 유출된 독일군의 계획을 토대로 벨기에 중북부 딜 강까지 방어하는 딜 계획을 채택했다.
그러면서 승리를 자신했다.
“독일 놈들이 와봐야 팔 병신 꼴밖에 더 날까.”
독일군의 공격로는 뻔했고 방어에 투입할 병력은 충분했다.
거기에 영국의 대륙 원정군까지 착착 넘어오고 있었으니 히틀러가 탈 수 있었던 ‘승리’라는 버스는 이미 출발한 것처럼 느껴졌다.
“히틀러는 버스를 놓쳤다. 이기고 싶었으면 작년에 바로 밀고 왔어야지.”
물론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짓거리였지만 연합군은 그렇게 생각했다.
팽팽한 긴장 속에 독일군이 먼저 움직였다.
시작은 노르웨이였다.
“어? 서유럽이 아니고?”
1940년 4월 9일 독일군은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동시에 침공했다.
바다와 하늘 땅을 통한 입체적인 침공에 덴마크는 6시간 만에 무릎을 꿇었다.
“젖소도 인어공주도 다 주마. 살려만 그게 아니고 우릴 도와주러 온 거라고?”
놀랍게도 독일은 덴마크를 ‘보호’해준다는 논리로 이 나라를 공격해왔다.
물론 개도 안 믿을 소리였지만 그런 거짓말이라도 해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질 거면 그게 나은가?’
덴마크가 바로 백기를 흔들었지만 노르웨이는 좀 버텼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영국의 지원이 아주 신속해서였다.
마치 이 나라로 ‘사전에’ 침략군을 보낼 준비라도 했던 것 같았다.
“양심이 조금 긁히는 것 같지만 결국 도와준 거니 착한 일 한 거 아니겠어?”
영국의 신속한 개입 때문에 노르웨이를 침공한 독일군은 악전고투해야 했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도 예상 이상으로 고전했다.
“아니 독일 놈들 왜 이렇게 잘 싸워?”
해전은 영국이 육전은 독일이 이겼다.
양측이 치열하게 승패를 주고받는 사이 서유럽에서도 전운이 고조됐다.
운명의 1940년 5월 10일 전야 연합군은 삼림이 우거진 아르덴 고원에서 독일군이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스당이 주공이 될 거란 정보 보고도 있었지만 설마하니 삼림으로 밀고 들어와 양 측면을 노출시킨 채 공세를 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합군의 오판 속에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됐다.
“제군 진격할 시간이다.”
독일군은 북쪽으로는 네덜란드에서 남쪽으로는 독불 국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전선에 걸쳐 공격을 개시했다.
연합군은 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독일군의 주공 방향을 아르덴 고원이 아닌 벨기에 북부라고 판단했다.
“놈들은 곧 죽어도 슐리펜이야. 슐리펜 작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놈들이지.”
연합군 최고 사령관 가믈랭의 판단은 북쪽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연합군 전략 예비대도 남쪽에 머물 필요는 없었다.
“북상시켜.”
이는 벨기에 전역에서의 패배를 부른 결정적인 오판이 됐다.
“아니 주공은 스당으로 온다고! 절마들 어디로 가는 거야!”
예비대가 북쪽으로 올라가 버린 바람에 아르덴을 통해 진격해오는 독일군 주력 A집단군의 돌파를 막아낼 부대가 없어져 버렸다.
분명 연합군은 게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독일보다 우세한 병력 강력한 전차 유리한 방어선과 지형 잘 준비된 작전 계획까지 부족한 구석은 어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딱 72시간이 지나니 상황이 망해 있었다.
뒤늦게 연합군도 상황 파악을 했다.
“이거 조졌다.”
연합군은 우선 급하게 가용 가능한 항공기를 전부 동원해 독일군이 점령한 교량을 타격 적의 진격을 막아보려 했다.
“응 대공포.”
독일군은 조밀한 대공포 진지를 깔아놓고 연합군 폭격기들을 간단히 격퇴했다.
지상군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그것도 안 됐다.
“아 명령서를 수신해야 공격할 거 아니야?”
21세기는 아니지만 무전이 있는 시대에 전령이 가서 직접 명령서를 전달해주고 수신해줘야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혹시 너희 1차 세계대전 중이야?”
턴제 RPG게임으로 치면 독일군이 4칸 움직일 때 프랑스군은 알아서 1칸만 움직이게 손발을 묶어놓고 싸우는 꼴이었다.
그나마 명령이 떨어져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누구는 명령을 받아 돌격하는데 나머진 구경만 했다.
계속된 삽질과 실패는 프랑스군의 역량을 고갈시켰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55보병사단의 방어전이 실패로 끝난 직후 프랑스군은 다시 한 번 대규모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당신들 왜 이렇게 느려? 약속 시간을 한나절이나 어기면 어떡해?”
프랑스군은 제때 공격을 시작하지 못했다.
“오는 거 다 봤다.”
독일군은 방어 태세를 굳혀 반격을 간단히 막아냈다.
프랑스군의 반격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갈갈이 찢어발기며 대서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낫질 작전의 완성부였다.
여기까진 원역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만약 운명이 바뀌지 않았다면 독일군은 대서양 기슭에 도달한 다음 정지하란 명령을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변수를 발생시킨 건 아돌프 히틀러였다.
‘한국의 권력자 이성준이가 한심한 건 결국 남경 입구에서 멈춰 섰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승리를 거둬야 할 판에 머뭇거려서야 어찌 승리를 거두겠는가.’
히틀러는 남경 점령을 포기한 이성준의 행동에서 반면교사를 얻었다.
영국인들과 협상하더라도 상대를 확실히 굴복시킨 다음에 해야 한다.
히틀러의 대담한 진격 지시에 OKH의 장군들이 우려를 표했다.
“아군의 측면이 지나치게 노출된 상황에서 계속 진격했다간 적에게 역습의 기회를 줍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거둔 성과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총통 각하. 과욕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승리를 견인한 기갑 부대의 전력을 온존할 때입니다.”
장군들이 강하게 진격 정지를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자들은 날 이성준으로 만들 생각인가. 어림도 없지.’
히틀러는 이성준처럼 불구의 승리를 거둘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나는 이미 명령을 내렸소. 클라이스트 기갑 집단에 정지란 있을 수 없소. 적들이 모두 포위망에 갇히는 순간까지 진격하시오.”
히틀러는 단호하게 연합군의 숨통을 끊을 것을 명령했다.
1940년 5월 19일 무능력한 가믈랭을 대신해 막심 베이강이 연합군 최고 사령관에 앉았지만 상황은 이미 끝장나 있었다.
네덜란드는 무너졌고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 사이로 몰린 100만의 연합군은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는 독일군의 포위망에 갇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도대체 9일 만에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베이강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베이강은 급한 대로 반격을 시도해봤지만 소용없었다.
1940년 5월 24일 프랑스 북부에 고립된 연합군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덩케르크 항구가 함락됐다.
연합군은 이 최악의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벨기에 프랑스 영국군을 합쳐 100만에 육박하는 군대가 독일군의 포위망에 갇혀 포로가 될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졌다.”
프랑스인들은 서전의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당황한 건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5월 10일에 갓 수상으로 취임했던 윈스턴 처칠은 집무실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갈리아 도적놈들아 내 대륙 원정군을 돌려다오!”
연합군의 운명은 성준의 예상과 달리 파멸 일보직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성준이를 반면교사(?)삼은 히틀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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