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7
“위대한 조국의 영도자 이성준 각하께서 현지 지도를 나오셨습니다. 모두 우렁찬 박수로 각하를 환대해드립시다.”
바람잡이의 선동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와! 총리 각하 만세! 민족의 지도자 만세!”
저거 절반은 사복 경찰이었다.
사실 도시에서 내 인기는 썩 좋지 않았다.
이 이성준이는 중산층들에게 상당한 적의를 사고 있는 민주주의의 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이 적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무반이라는 잠재적 적대 계층의 존재를 생각하면 더 그랬다.
“각하. 거기 들어가시면 양복이 상하십니다.”
염려해주는 건 고맙다만
“괜찮네.”
나는 더러운 의자에 대충 궁둥이를 붙였다.
사실 이거 현대 정치인들이 뉴스에서 하는 걸 보고 한번 따라 해보는 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21세기식 선진 정치를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나는 오뎅탕 한 그릇 마시고 순대를 맛나게 씹었다.
“어머니 이거 맛이 너무 좋군요. 포장해 가서 공관 식구들에게도 좀 주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암요 되고 말고요.”
이정윤이가 눈치껏 신호를 주자 멀리서 기자들이 사진도 박았다.
팡팡.
음 이걸로 시장 방문의 목적은 140% 달성했다.
점심때는 근처 콩나물 국밥집에 들어가 국밥을 먹었다.
경호를 위해 손님들을 받지 않은 대신 주인에게 두둑한 돈을 쥐어주었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이거 너무 허기가 져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아닙니다 각하. 각하를 저희 식당에 모신 것만으로도 평생의 영광입니다.”
“아 거기 임자들도 앉아. 여기 국밥이 아주 구수하고 맛있어.”
“예 각하.”
우리는 국밥을 단번에 뚝딱 비워낸 다음 시장 여기저기를 돌며 물건을 팔아주었다.
그렇게 사들인 물건들은 지역 고아원 등에 기부했다.
그 과정 역시 모두 사진으로 찍었다.
“각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임지가 수고했지. 내가 한 게 뭐가 있겠어. 가서 쉬라고.”
대한에서 공식적으로 내가 벌이는 일정은 모두 선전 선동의 대상이었다.
전시 지도자로서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국민의 생활 점검까지 한다.
정말이지 모범적인 지도자상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건 연출된 이미지에 가까웠다.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살겠는가.
숨도 쉬면서 살지.
나도 아내랑 침대에서 레슬링 하고 휴가도 다니고 할 건 다 하고 살았다.
단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을 뿐이었다.
이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두자.
나는 이렇게 꾸민 이미지를 가지고 외신 기자들을 대했다.
“각하. 보안사에서 고문이 은밀하게 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하하. 기자님도 참.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잡겠습니까. 그건 다 오해입니다.”
막연하게 군부 독재자 잔혹하기 그지없는 전쟁광 같은 선입견을 품고 날 만나러 온 자들은 뜻밖에 풍기는 사람 냄새에 호감을 표하곤 했다.
이 역시 훌륭하신 선배님인 마오쩌둥 선생님께 배운 기술이었다.
마오쩌둥은 이런 식으로 에드거 스노를 홀려 ‘중국의 붉은 별’이란 훌륭한 선전물을 쓰게 만들었다.
나 또한 그런 맥락에서 기자들을 동등한 위치로 대했다.
그들을 정말 존중해서가 아니라 날 잘 포장해주길 바라서였다.
“각하. 정말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분인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느꼈다면 착각이다.
내가 맞춰준 거니까.
이렇게 노력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
그건 운동으로 풀었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조깅을 했다.
오래 살아야 대한을 고칠 시간을 벌지.
물론 그 김에 대한제국의 운동도 좀 손을 보기로 했다.
“이성준 체조 시작.”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전 국민이 공터로 나와 라디오 방송에 맞춰 몸을 푸는 일은 일상이 됐다.
생각 같아선 전두환이의 3S라도 실시하고 싶었지만 그걸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나라가 전쟁 중인데 스포츠에 돈을 쓰는 건 아무래도 무리수였다.
대신 성 산업에 해당하는 맥주 보급을 늘리고
“각하 따흐흑.”
영화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전쟁 중 영화에 투자하는 게 좀 웃길 수 있겠지만 이것도 엄연한 선전 활동의 일환이었다.
나는 유대계와 러시아계에 조악한 독일 군복을 입힌 다음 대한의 늠름한 군인들에게 패배하는 역할을 맡겼다.
“크 자랑스러운 국군이 유럽을 해방하는구나.”
그리고 아름다운 서양 여성들이 국군 병사들에게 환영의 포옹과 키스로 감사를 표하는 장면을 슬쩍 넣었다.
과연 병사들이 유럽 해방에 대한 열의를 느끼는 모습이 강하게 느껴졌다.
역시 영상의 힘은 전쟁에 도움이 됐다.
물론 업적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라면을 보급하시오.”
“예?”
“면을 튀긴 다음 건조시켜 먹는 음식을 만들어보란 말이지.”
내 기억이 정확지 않아서 대충 해보란 식으로 지시했다.
“바 받들겠습니다.”
치킨도 개발했다.
사실 개발했다기보단 미국 흑인들의 요리법을 훔쳤다고 해야 정확했다.
“다 닭을 튀겨요?”
“거기 간장소스를 좀 졸여서 넣어보도록.”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성과물들이 등장했다.
이 음식들은 먼저 군에 배급됐다.
반응은 아주 열렬했다.
“각하! 따흐흑. 입이 음식을 도둑질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방송도 확대 개편했다.
기존의 음악 방송에 더해 라디오 드라마도 방영하게 했다.
내용은
“대장연.”
황실 수랏간 나인 장연이 요리를 만지다 황상 폐하와 썸씽이 생기는 궁중 로맨스극이었다.
황실을 소재로 했기에 당연히 금기가 되어야 할 작품이었다.
하지만 나는 묵인했다.
“아 황족이라고 몸에 총알 안 박히나?”
나는 의식적인 차원에서 황실에 대한 숭배 의식을 천천히 무너트릴 생각이었다.
‘애초에 유사 일본 천황제 상태로 살아남은 것부터 눈꼴시렵단 말이지.’
하물며 황실은 법적으로는 전제 군주제에 가까운 권한을 여전히 가지고 있어 사문화된 법을 살릴 수 있는 군주가 등장하면 골치 아픈 일을 벌일 여지가 있었다.
그걸 방지하려면 황실을 하늘 위에서 땅으로 처박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황실을 공격했다.
“황족! 이번에도 비행을 저지르다!”
나는 이렇게 죄를 지은 황족들은 본보기를 보인다는 이유로 비행기에 실어 태평양에 수장시켜버렸다.
대만 시절 장제스식 부패 혐의자 처리법이었다.
“아 아니. 이 총리도 황족이면서 종친에게 이럴 수 있는 거요?”
항의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 그러게 누가 대한에서 범죄를 저지르래?
부패도 잡고 문화에도 투자하고 음식도 개발하고.
뭔가 보여주는 게 많은 것 같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폭력으로 국민을 짓누르는 이성준이가 위에 설 당위를 설명하려면 업적이 좀 더 필요했다.
“역시 국민에게 보여주기엔 뭔가 그럴듯한 게 제일 좋지.”
나는 다시 꿈을 팔기 시작했다.
“이성준 집권 2기. 집집마다 냄비에는 닭 주차장엔 자동차 2대. 국민의 꿈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물론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어떻게 그걸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그러니까 우리 국정 목표가 그렇다는 홍보였다.
질소 과자 같은 포장술 같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실제로 ‘할 생각’은 있으니까.
그게 10년이 될지 15년이 될지 몰라서 그렇지.
아무튼 나는 전쟁 중에도 꾸준히 실생활과 관련된 성과를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체감시켜주었다.
그 결과
“각하. 지방 선거 득표율이 80%를 넘었습니다.”
그건 예상했다.
내가 좀 심력을 쏟았던가.
도시에서도 꽤 높은 득표율이 나왔다.
전시 지도자에게 힘이 쏠리는 걸 고려해도 이전과 차원이 다른 지지였다.
이제 좀 정치하는 맛이 났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도 좀 개혁해야겠다.
정당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황실을 좀 수술하겠단 거지.
나는 비대하기 짝이 없는 궁내부부터 손을 봤다.
“가 각하. 안 됩니다. 궁내부는 대한제국 전통의 기관으로.”
“야!”
“예.”
“내가 하겠다는데. 무슨 군말이 그렇게 많아.”
나는 힘으로 궁내부를 짓밟았다.
황실 내탕금으로 쓰던 궁내부 자산은 몽땅 뺏어서 재무성으로 넘겼다.
“아니 그럼 짐은 뭘 먹고 살란 말인가.”
얼마 전에 갓 즉위한 젊은 황제가 앙탈을 부렸다.
“재무성에서 매년 황실 품위 유지비를 드릴 겁니다.”
쥐꼬리만큼.
딱 현대 일본 왕실과 유사한 수준으로 줄 거다.
그걸로 만족해주면 관광 상품으로 살려줄 용의는 있었다.
황실 식구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싹 무시했다.
“앞으로 황실 쪽에서 여론전 시도하면 신분 가리지 말고 쓴맛을 보여주도록 해.”
“받들겠습니다.”
나는 이 나라 대한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입맛에 맞는 대로 천천히 고쳐나가고 있었다.
그 끝이 북한이 될지 대한민국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있었다.
‘적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
그래야 이 이성준이가 혁명해서 대한의 권좌에 오른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나도 권력자로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단 욕심이 있었다.
헛된 명성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유산.
나는 대한제국 국민들에게 기억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히틀러가 우스웠다.
따갚돼의 늪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히틀러는 비스마르크를 잇는 위대한 독일 총리로 기억됐을 텐데 그자는 너무 도박에 빠졌다.
국가를 두고 도박해선 안 된다는 걸 잊은 순간 그자는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위버멘쉬?
그런 것 이전에 제대로 된 지도자부터 되라지.
나는 히틀러를 향해 냉소를 지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성준이는 초인 같은 건 관심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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