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 (2) >
스크립터의 물음에 모니터에 얼굴을 박은 사각턱 신동춘 감독이 작게 웃었다.
“우진씨 화린씨 퀄이 좋아서 그래요.”
금세 스탭들 사이로 이름 모를 몽글몽글함이 번진다.
“뭔가 청량하죠? 여기에 음향 필터 깔고 영상미까지 올리면 크- 청량감 진짜 터질 것 같은데.”
“배우들 비주얼이 극이랑 딱 어울려서 로코 분위기가 몇 배는 살아요 좋다 진짜.”
첫 씬에 첫 테이크. 이제 뚜껑을 열었을 뿐임에도 스탭들이 ‘남사친’ 그림에 푹 빠졌다. 이에 신동춘 감독에게 만족스런 미소가 짙어졌다.
‘현장 스탭이 이 정돈데 시청자들은 어떻겠어.’
‘남사친’의 포인트는 설레임이긴 하다만 대본을 쓴 최나나 작가의 노림수는 다른 것도 있었다. 누구나 지내온 또는 지낼 학창시절. 그 시절만의 감성 또는 추억.
현재를 공감하거나 공감을 끌어낼 이야기.
심히 포근하면서도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될 ‘남사친’의 연출 신동춘 감독이.
“컷!! 좋아요 바로 다음 씬 갑니다!”
강당 전체로 지시를 던졌다. 그러자 분장팀이 강우진과 화린에게 달려갔고 왜인지 모여있던 80명 이상의 보출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이내 강당엔 강우진과 화린 두 명만 남았다.
연출이었다.
그림상 주위 학생들은 모두 빠졌지만 대본상으로는 모두 있는 것과 같았다. 그저 학생들로 꽉 찬 모습에서 한인호와 이보민을 강조하기 위한 두 인물의 표현과 생각 등을 시청자에게 집중시킬 연출.
곧.
“한인호 오케이요!”
“이보민도요!”
메이크업 수정이 완료됐다는 사인을 받은 신동춘 감독이 다시금 확성기를 들었다.
“하이- 액션!”
카메라 먼저 강우진에게 붙는다.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그. 직전에 하품했으니까. 금세라도 잠에 빠질듯한 얼굴. 무던하며 무뚝뚝하다. 그런 강우진이 지루한 듯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사락.
강우진은 이미 ‘한인호’를 절절히 보이고 있었다.
이어 한인호가 눈을 끔뻑끔뻑한다. 현재 강당은 고요하지만 그의 귓가에는 교장의 연설이 확연히 들리고 있었으니까.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 전부가 가능성이기도 한 시기. 그곳에 던져진 한인호.
그럼에도 한인호는 입학식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체 저 머리 벗겨진 교장의 말은 언제 끝나는 거지? 약간 고개를 꺾은 한인호의 눈은 이미 죽어 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게 카메라에 가득히 담긴다.
그때였다.
-슥.
멍청하게 교장을 바라보던 한인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대각선 벽 쪽에 선 이보민을 본 것. 카메라 역시 한인호의 시선을 따른다. 다만 한인호의 시선은 빠르게 정면으로 복귀했다.
“···뭐 하냐 쟤.”
사망했던 흥미가 이보민에 의해 살아난다. 궁금했다. 이 강당에서 유일하게 한인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이보민뿐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힐끔.
“또 작곡인지 나발인지 그거 하고 있나 보네.”
무시하자. 저러다 걸려서 혼나면 보는 재미야 있겠네. 한인호의 눈이 재차 정면을 향한다. 그러나 미세히 흔들린다. 볼까? 아니 그만 보자. 그래도 잠깐 정도만? 여러 고민이 그의 눈에서 헤엄친다.
본인도 모르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서투른 감정이 그의 눈동자를 움직인다.
결국.
-스윽.
한인호의 시선이 이보민에게 다시 붙었다. 그런데.
“아.”
방금과는 달리 이보민도 한인호를 본다. 서로 눈이 맞은 둘. 그 둘을 번갈아 찍는 카메라. 묘한 시선 처리가 약 5초 정도. 이 기분 뭐지? 싶었던 한인호가 본인도 눈치 못 챈 감정을 숨긴다.
그리곤.
“먹어라.”
이보민을 향해 중지를 펼쳐 보인다. 뻐큐? 미쳤나? 황당하게 콧방귀 낀 이보민은 혀를 삐죽 내밀었다. 둘의 소리 없는 전쟁은 길지 않았고 이보민은 삐진 듯 고개를 정면으로 휙 돌렸다.
그것을 심드렁하게 보던 한인호는.
“또 삐졌네.”
작게 읊조렸다. 재밌는 건 그저 무뚝뚝했던 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는 것.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고 미세하지만 재미와 진심이 서렸다.
물론 한인호는.
“냅두면 알아서 풀리겠지 뭐.”
아직 자신의 마음이 뭔지는 잘 몰랐다. 그런 서투른 것들이 한인호에게는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자극이 형성시킨다. 마음을 안달나게 한다.
그 증거로 지금의 컷을 지켜보는 보조출연자들이 난리였다.
“강우진···개귀엽다 진짜.”
“그쵸? 방금 웃는 거 심하게 치이는데.”
“뭔가 츤데레 연하랑 연상 질감이 같이 있지 않아요? 하 미치겠네.”
“저런 연하가 앞에서 빤히 보고 있으면 다 넘어가죠.”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다음 날 느즈막한 아침. 안양.
안양의 한 드넓은 공원에 어제 첫 촬영을 잘 마친 ‘남사친’ 촬영팀이 뿌리를 내렸다. 이들이 자리를 편 것은 공원 내부의 일명 ‘벚꽃길’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일자로 쭉 이어진 길 양쪽으로 벚꽃 나무가 주르륵 펼쳐졌다.
국내 수많은 벚꽃 명소를 찾다가 결국 채택된 벚꽃길.
선택된 이유는 간단했다. 대본상 이미지와 가장 흡사했으니까. 어쨌든 공원에 나타난 촬영팀 덕에 주변으로 구경꾼이 모인다.
“어머어머 여기 뭐 촬영하나 봐!”
“뭐지? 드라마? 영화?”
“연예인 누구 왔는지 보여요?”
하지만 구경꾼을 통제하는 건 촬영존에서 꽤 먼 곳부터였기에 속이 잘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남사친’ 팀은 왜 고등학교가 아닌 야외에 나와 있는가? 답은 심플했다.
‘남사친’ 대본의 첫 씬을 촬영하기 위함이었다.
즉 과거가 아닌 현재. 그 현재의 한인호와 이보민이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컷.
그리고 확인하는 마음을 증폭시킬 키스씬.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중요한. 아니 어쩌면 ‘남사친’의 흥망성쇠를 책임질 정도의 씬이었기에.
“벚꽃잎 준비됐습니다!”
“어디?! 야야 안 돼! 몇 박스 더 가져와! 촬영 중에 두 번 일 하지 말자고!”
“옙!”
“저어기 뒤에 우리 스탭이야??!”
“구경하시는 분 같습니다!”
“왜?? 계속 구경하게 둘라고?! 카메라 잡히니까 빠져달라고 부탁드려!”
촬영 준비에 임하는 수십 스탭들의 열정이 퍽 뜨거웠다. 당연 총괄 연출인 신동춘 감독 역시 그랬다.
“자자 강풍기 틀어 봅시다! 2대 전부!”
현재 신동춘 감독은 세팅된 강풍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벚꽃잎을 멋들어지게 흩날려줄 장치였다.
“더 세게 안 되나?? 어어 됐어요! 벚꽃잎 살짝 날려봅시다!”
곧 리허설로 벚꽃잎이 뿌려진다. 다만 박스에 마련된 벚꽃잎은 전부 만들어진 가짜였다. 그럴 수밖에. 애초 지금은 7월 중순의 여름이니까. 벚꽃이 있을 리 만무. 하지만 ‘남사친’의 계절은 봄이며 제작진은 그와 비슷한 그림을 만들어내야 했다.
“감독님 어떠십니까!”
“음- 괜찮은 거 같아요. 일단 한 번 찍어보고 그림 봐야겠네.”
“뒤쪽 나무들에도 벚꽃잎 좀 붙일까요??”
“붙이려면 저 끝까지 다 손대야 되는데? 그럼 밤 돼도 카메라 못 돌리지. 청소도 일이고. 뭐 배경은 cg로 최대한 발라봐야죠.”
“알겠습니다!”
다행히 넷플렉스에서 뿌린 제작비는 나름 빵빵했다. 그렇기에 특수효과에 돈을 많이 들일 수 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이렇듯 제작진이 배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무렵.
“···”
촬영존 중 나무 그늘 아래에 강우진이 말없이 앉아 있다. 무심한 얼굴로 다리 꼰 채 대본을 내려보고 있는 그. 의상으론 무더운 여름이나 봄에 맞춘 흰 셔츠에 청바지. 헤어도 나름 만졌다. 분위기는 세상 차분하며 여유가 넘친다.
지나치는 스탭들 몇몇이 감탄을 뱉을 정도.
“우진씨 첫 로코 아니었어요? 엄청 덤덤하네.”
“감독님한테 들었는데 우진씨 원래도 그런 편이래요. 뭐든 딱히 흥분하는 법이 없대.”
“그래도···이제 곧 키스씬이 있잖아요? 것도 꽤 찐하게 수정됐고.”
“하긴 좀 많이 차분하긴 하네. 나 같으면 진짜 1초가 가만히 못 있을 거 같은데.”
아니었다.
‘아니 잠깐만.’
사실 강우진은 지금 필사적으로 컨셉질을 유지하고 있을 뿐.
‘죽겠네 개떨리는데 진짜.’
심장이 토할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울렁거림이 심하다. 그 날이 이 순간이 드디어 당도하고야 말았으니까. 작품의 성공은 논외로 두고 오직 키스씬이 시원해서 선택한 ‘남사친’. 난데없이 합류한 탑스타 겸 걸그룹 1티어 화린.
그녀와의 키스씬 촬영이 코앞.
‘진짜 하나? 가는 거냐? 와- 씨 이거 진짜 현실감 없는데.’
무표정의 강우진은 연출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은 점점 키스씬을 향해 치닫는다. 세팅되는 카메라 설치되는 조명 실험 중인 강풍기 쌓인 벚꽃잎 테스트 중인 음향기기 저 멀리 몰리는 구경꾼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돌겠네.’
우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류정민이나 홍혜연은 이 상황에 의연할까? 하- 모르겠다. 아니 몇 달 전만 해도 TV에서나 보던 그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여자 연예인과 키스씬이라니? 다 알고 선택한 거긴 했다만 우진은 무의식중에 이날이 안 올 거란 망상이 있었다.
‘나 진짜 출세했네 완전.’
다만 연기일 뿐. 허나 강우진의 인생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이때였다.
-툭.
앉은 강우진의 어깨를 누군가 쳤다. 움찔한 우진이 고개를 돌린 곳엔 꽁지머리 최성건이 서 있다. 뒤론 강우진의 팀도 보인다. 그중엔 우람한 김대영도 함께였다. 오늘도 지원 나왔으니까.
이어 웃음이 짙은 최성건이 우진에게 말했다.
“뭐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온 건데 네 표정을 보니 별 감흥 없구만? 맞지?”
아니요 오바이트 나올 것 같은데요. 그러나 솔직한 심정을 말할 수 없는 우진은 그저 근엄히 답했다.
“연기니까요.”
“하하 그래 연기지. 여튼 10분 뒤 슛들어간단다.”
“예 대표님.”
말을 마친 최성건이 멀어진다. 한예정과 장수환도. 다만 주변 눈치를 보던 우람한 김대영은 우진의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야 강우진.”
작게 속삭였다. 진한 진심이 섞인 말투.
“시발 존나 부럽다.”
대본을 보는 척 강우진이 응답했다.
“닥쳐. 심장 터질 것 같으니까.”
“부럽다. 개같이 부럽다.”
약간 현타가 왔는지 긴 한숨을 뱉던 김대영이 우진에게.
-스윽.
생수와 함께 뭔가를 은근슬쩍 내밀었다. 작은 통의 구강청결제였다.
“간식 사러 갔다가 보여서 사 왔다. 가글 준나 하고 투입하도록.”
“···오케이.”
마지막으로 ‘부럽다’는 말을 재차 던진 김대영도 멀어진다. 우진은 조용히 구강청결제를 따곤 과하지 않게 입을 헹궜다. 그것을 반복했다.
한편.
“화린씨 이 나무쯤이 좋을 것 같거든요? 여기서 꽃놀이 즐기다가 한인호에게 달려갈 거고.”
“네 감독님.”
청재킷을 걸친 화린은 신동춘 감독과 적당히 구두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메이크업이 고등학교인 과거와는 달리 살짝 짙다. 머리는 길게 늘어트렸고. 그런 화린에게 신동춘 감독이 은근슬쩍 물었다.
“···괜찮죠? 제 욕심에 딥하게 바꾼 컷이라- 음 찐하게 덮치는 게 좀 부담되면 지금이라도 좀 약하게 바꿔도 돼요.”
사실 이 씬에선 강우진도 그렇겠지만 핵심은 화린이었다. 그녀의 폭발력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신동춘 감독은 화린의 멘탈을 챙겼다.
하지만 화린은 단단했다.
“괜찮아요 감독님. 부담될 게 뭐 있어요. 연긴데.”
얼굴에 미소까지 번진다. 이에 신동춘 감독이 안심했다.
“다행이네요. 혹시 좀 힘들면 바로 말해요.”
“네네. 그럴게요.”
실제 화린은 지금 마음을 단단히 먹은 상태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대본리딩 직후부터 그랬다. 여전히 최애인 강우진을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긴 했다만.
‘진짜 좀 나아진 것 같아 그때보다 덜 예민해. 응. 할 수 있어. 잘 덮칠 수···잘 찍을 수 있어. 연기니까. 맞아 연기.’
진정한 성덕이 되기 위해선 오늘 최고의 그림을 뽑아내야 했다. 그러니 화린의 멘탈은 지금 돌보다 딴딴했다.
곧.
“자- 그럼! 5분 뒤 카메라 돌립시다!”
신동춘 감독의 외침으로 스탭들의 움직임과 강우진의 가글이 빨라졌다. 이미 경험이 있는 화린도 가글에 동참한다. 딸기향 립밤을 바르고 혹시 몰라 향수까지 뿌린다.
이쯤.
“보출들 들어가실게요!”
배경을 채워 줄 보조출연자들이 촬영존에 자리를 잡았고.
-스윽.
카메라 앞으로 강우진과 화린이 마주 섰다. 약간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강우진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큼큼 헛기침한 화린이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네. 잘 부탁해요 우진씨.”
간지럽다. 우진은 왜인지 화린의 저 짧은 대사에서 간질거림을 느꼈다. 아 돌겠네. 하지만 이제 뒤가 없다. 에라이 씨 모르겠다. 이젠 직진해야 했다. 이내 우진이.
“후-”
작게 심호흡하며 잠들어 있던 한인호를 깨웠다. 그것을 온몸에 퍼트린다. 금세 풋풋한 감정이 우진의 혈관을 타고 번진다. 각인된 한인호가 장착된 것.
동시에.
“강풍기!”
“오케이!”
“벚꽃잎!”
“옙!”
카메라 앞 스탭이 슬레이트를 탁! 쳤고.
“하이- 액션!!”
눈웃음을 머금은 화린이. 아니 이보민이 뒤쪽 나무로 우다다다 달려간다. 신남이 과했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벚꽃잎을 훅훅 뛰며 잡아댄다. 그것을 가만- 히 지켜보는 한인호.
카메라 한인호의 옆모습을 담는다.
얼굴에 많은 생각이 섞였다. 여기에 내가 왜 왔나? 그래도 볼만은 하네. 귀찮다. 쟤 혼자 신났네? 귀엽긴 하다만. 집에 가고 싶다 등등. 대사는 없지만 눈빛과 눈을 감는 속도 표정 정적인 움직임으로도 한인호의 속마음이 보일 정도.
그때.
“야! 한인호!”
언제 모았는지 양손에 벚꽃잎을 모은 이보민이 한인호에게 빠르게 달려온다. 청량함이 넘친다 그런 기세였다. 이어 멀뚱히 선 한인호의 앞에 선 이보민이 씨익 웃는다.
“이거 봐봐.”
양손에 모은 벚꽃잎을 한인호의 얼굴 앞에 붙이는 그녀. 한인호는 작게 한숨을 쉰다.
“어쩌라고.”
“아! 향기 맡아보라고 향기!”
미간 좁힌 한인호가 적당히 읊조렸다.
“아무 냄새 안 나는데.”
욱한 이보민이 벚꽃잎에 자신의 코를 가져다 댔다.
“좀 더! 이렇게 붙어서!”
“꺼져 니 인중 냄새나.”
“죽고싶냐?”
경고를 뱉는 이보민. 이건 안 해주면 종일 삐지겠네. 한인호는 별수 없이 벚꽃잎에 코를 천천히 붙였다. 덕분에 이보민과 한인호의 얼굴이 매우 가까워졌다. 손가락 두 개 정도의 거리.
순간.
“···”
한인호에게 향기가 스친다. 이건 벚꽃잎에서 나는 게 아니다. 지척의 이보민에게서 풍기는 것. 여기서부터 한인호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아니 강우진의 것인가? 왜인지 본체인 강우진과 각인된 한인호의 경계선이 흐릿해진다.
뭐가 됐든 그의 심장이 정신없이 널뛴다.
이 순간 한인호 또는 강우진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본인의 두쿵대는 심장 박동 소리뿐. 얼마나 심한지 관자놀이가 둥둥둥 울릴 지경.
그 상태로 한인호는.
-스윽.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코앞 이보민과 눈을 맞췄다. 둘의 모습을 측면으로 담는 카메라 두 배우의 적나라한 감정이 출력되는 모니터. 침을 꿀떡 삼키는 신동춘 감독.
‘죽이네 저 오묘한 표현을 둘 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주변 스탭들은 약간 흥분했다.
“어으 겁나 달달하네. 당뇨 오겠다.”
“설렌다아. 그림 미쳤어요 진짜.”
“연기가 무슨···진짜 서로 좋아하는 게 느껴지지 않아요?”
반면 눈을 마주친 한인호와 이보민은.
“···”
“···”
둘 다 말이 없다. 눈빛은 서로를 향하지만 내포된 감정의 결이 상이 했다. 농도가 짙은 건 한인호 쪽. 그대로 아이컨택 5초쯤. 마음의 물살에 못 이겨 둑이 먼저 무너진 건 한인호.
그가 이보민을 보는 시선에 진한 애정이 담긴다.
이어.
-스으.
한인호가 이보민의 손 위 쌓인 벚꽃잎을 뚫고 얼굴을 천천히 움직인다. 쌓인 벚꽃잎들이 한인호의 볼을 간지럽힌다. 덕분에 몽글몽글 감정이 증폭됐다.
이보민의 붉은 입술 감촉이 느껴지는 건 금방이었다.
한인호의 입술이 이보민의 입술에 살짝 붙었다. 세상의 시간이 멈췄다. 한인호든 강우진이든 정지됐다. 그저 한인호에겐 입술에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다였다. 딸기향이 난다.
그때였다. 이보민. 아니 화린이 대뜸.
“끄흡!”
움찔하며 딸꾹질했다. 소리가 퍽 크다. 순간 화린과 입술이 맞닿은 강우진이 약간 당황했다.
‘뭐 뭐지? 애드립같은 건가?’< 벚꽃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