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배 (4) >
왜 갑자기 S+급이지? 강우진은 ‘낯기생’의 흰 사각형을 바라보면서도 약간 멍때렸다. 그게 얼추 5초. 돌연 강우진이 두 눈을 끔뻑이면서도.
-스윽.
손을 올려 흰 사각형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약간 그런 거였다. 뭔가가 고장 나면 대충 때리고 보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흰 사각형에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맞냐 이거?? 오류 난 거 아녀?”
강우진의 눈엔 당황과 황당이 점차 번졌다. 그도 그럴 게 C까지 폭삭 내려앉은 ‘낯기생’의 등급이.
“상황이 더 거지 같아졌는데 S+으로 올랐다고?”
도리어 폭발적으로 올랐으니까. 충분히 이상함을 느낄만했다. 이에 우진은 미간을 좁히면서도 온통 컴컴한 아공간에다 대고 외쳤다.
“야! 이거 이상한데?! 진짜 맞어?”
로봇 같은 목소리의 여자에게 던진 대화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드넓은 아공간에선 그 어떤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씨 그냥 좀 대답해주면 덧나냐? 강우진은 작게 투덜대면서도 턱을 쓸었다.
‘투자금 문제가 있을 때 C까지 떨구고 그게 세상에 터졌으면 상황은 더 안 좋아진 게 맞아. 근데 S+급.’
현재로선 S+급은 아공간에서의 최고 등급이었다. 참고로 한량이 S급이었고 ‘실종의 섬’이 S+급인 상태. 그 뒤를 이어 세 번째 출연. 그런데 ‘낯기생’은 한량과 실종의 섬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이건 아무리 봐도 오륜데.’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기상천외한 아공간이 오류를 범할까도 싶었다. 곧 강우진은 혹시 몰라.
“퇴장.”
아공간을 벗어난 뒤 다시금 입장해봤다. 허나 흰 사각형이 출력하는 ‘낯기생’의 등급은 같았다. 여전한 S+급. 여기서 우진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모르겠다 강우진은 생각에 빠질수록 진창에 발을 담그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하- 씨 뭐 냅둬보면 알겠지. 당장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답을 내리기를 중단했다. 심플하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뭔가 문제가 있는 거면 내일이나 다시 바뀌겠지. 고민을 가볍게 만들던 그는 은연중에 이런 생각도 했다.
어디선가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아무리 봐도 아공간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낮았다. 뭐 이대로 안 바뀌고 S+급이면 그건 그거대로 ‘개꿀’이긴 했다. 조금 찜찜한 감이 없진 않다만.
“퇴장.”
강우진은 아공간을 빠져나와 다시금 현실의 승합차로 복귀했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혼잣말을 뱉었다.
“등급 내일쯤 다시 한번 보자. 근데 안 바뀌는 게 베스트긴 해.”
현재 그로서는 한국도 아닌 타국 일본의 거대한 뒷배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이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옆에 놓인 그의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었다. 덕분에 고개를 돌린 우진의 시선에 발신자가 보였다. 핸드폰 화면에 찍힌 발신자는.
“쿄타로 감독님?”
일본에 있을 쿄타로 감독이었다. 우진은 분명 ‘낯기생’의 나빠진 상황 때문에 전화 온 것이라 확신했다.
어쨌든 전화는 받긴 해야 했고.
-스윽.
강우진이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네 감독님.”
한편 일본의 ‘토에가’ 영화사.
‘낯기생’의 제작을 맡은 영화사의 회의실에 새치 가득한 쿄타로 감독이 보인다. 얼굴엔 미약한 미소가 실렸지만 전체적인 얼굴 느낌은 근심이 가득했다. 그런 그는 방금 강우진에게 전화를 건 참이었고.
“우진씨.”
핸드폰 너머론 한국에 있을 강우진의 낮은 음성이 들렸다.
“예 말씀하세요 감독님.”
판단하기가 힘들다. 쿄타로 감독은 강우진의 목소리에서 기분을 파악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옅은 숨을 뱉은 쿄타로 감독이 핸드폰에 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진씨. 현재 일본에서 ‘낯기생’의.”
“예. 얘기 들었습니다 감독님. 일전에 말씀하신 투자자 문제 건 크게 터졌다고.”
대신 답한 강우진을 이어 쿄타로 감독의 씁쓸함 묻은 설명이 이어졌다.
“맞아요 생각보다- 상황이 그리 좋진 않습니다. 대형 언론사들 위주로 1면에 실리니···중소형 쪽에서도 재빨리 복사하는 중입니다.”
“어디서 얘기가 샜는지 확인하셨습니까?”
“글쎄요. 워낙 급속도로 번지는 탓에 특정하긴 어렵습니다. 내가 안일했어요. 아마 발을 뺀 투자자들이겠지요. 함구의 약속을 하긴 했지만 그게 잘 안 지켜진 것 같습니다.”
읊조리던 쿄타로 감독이 앞에 놓인 태블릿에 시선을 돌렸다. 포털사이트 기사면에 ‘낯기생’ 관련 기사가 줄지어 걸린 그림이 보인다. 타이틀은 죄다 자극적이었다.
“언론에선 불화설부터 시작해 수많은 어뷰징 기사를 쏟아내고 있어요 워낙 재빨라서 덮기엔 늦은 듯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어느 정도 식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찌라시들이 던져지면 일이 더 커질지도 모르겠네요.”
“맞아요. 현재로선 앞날을 예측하기가 좀 힘듭니다. 더 큰 문제는 빠져나간 투자자들에 더해서 남아 있던 투자금도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직까진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말끝을 흐리는 쿄타로 감독.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낯기생’의 논란이 이대로 커진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투자자들도 발을 뺄 가능성은 컸으니까. 배우들도 마찬가지. 시간이 갈수록 패색이 짙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쿄타로 감독의 얼굴은 어둡다.
다시 투자금을 구하려 해도 구멍은 점점 좁아질 수밖엔 없으니.
“저번에 말한 딜레이가 어쩌면 내년 초가 아닌 내년 중반까지 길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새치머리를 쓸어 넘긴 쿄타로 감독이 어렵게 말을 추가했다.
“이대로면 우진씨의 이미지에도 꽤 큰 타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 언론·여론이 가장 자극을 느낄만한 게 우진씨일 겁니다.”
반면 핸드폰 너머 강우진이 답한 일본어는 여전히 차분하며 근엄했다.
“그렇겠네요.”
“이미 깔리고 있는 기사엔 우진씨 이름이 많습니다. 그렇기에···우진씨의 의중을 묻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사태는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굴러갈 겁니다. 캐스팅한 배우들도 눈치를 보고 시작했고요. 지금 우진씨가 빠진다 말해도 괜찮습니다 잘못은 나에게 있어요.”
상황이 더 진창으로 빠지기 전에 너는 살았으면 한다는 뜻. 물론 여전히 쿄타로 감독은 강우진이 필요했다. 아니 그만 있어도 아무 문제 없었다. 배우진은 다시 꾸려도 됐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쿄타로 감독만의 욕심일 뿐.
우진에게 쏟아질 화살을 그는 못 본 척할 순 없었다. 그저 욕심 때문에 잡아 두는 건 아집.
“‘낯기생’ 문제로 우진씨의 이미지가 내려앉는 건 안 됩니다. 그러니 부담 가지지 말고 말해도 돼요 지금 우진씨가 빠진다고 말한다면 바로.”
“아닙니다.”
허나 핸드폰 너머 강우진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극히 담담했다.
“기다리겠습니다.”
“···”
“뭣보다 지금 제가 빠진다면 언론의 잡소리를 전부 인정하는 꼴이기도 하죠.”
“그건- 그렇지만.”
“이미지 좀 타격 입어도 됩니다.”
“그래도···우진씨는 그 긴 무명생활 끝에 이제야 빛을 보는 중 아닙니까?”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진 않습니다. 전 그저 ‘낯기생’이 하고 싶습니다.”
울컥하는 쿄타로 감독.
“고마워요 정말.”
“아닙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물론 감독님이 괜찮다면요.”
“나야- 나는 너무 감사하지.”
“알겠습니다 전 그럼 스케줄이 있어서.”
“그래요.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뚝.
천천히 핸드폰을 내리는 쿄타로 감독. 이때 그의 건너편에서 여자 목소리의 일본어가 끼었다.
“우진씨가 뭐라고 하나요? 역시···빠진다고? 그래도 이해해야죠. 상황이 무척 안 좋으니까.”
60대 정도의 중년 여자. 아니 ‘낯기생’의 원작자 아카리 작가였다.
“논란 터지고 고작 몇 시간 만에 언론은 벌써 우진씨를 집중 타격하고 있으니.”
뭔가 진한 안타까움이 번지는 아카리 작가 뒤로 쿄타로 감독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요 작가님. 우진씨는 기다리겠답니다. ‘낯기생’을 꼭 찍고 싶다고 했어요.”
바로 두 눈이 커지는 아카리 작가.
“정말? 진짜 우진씨가 그렇게 말했나요?”
“예. 이미지 타격 따윈 상관없다네요. 그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자기 걱정은 말라는 투였습니다.”
“···강우진씨는 정말. 하- 모르겠어요. 신인인데 너무나 단단하달지.”
“그렇죠. 저도 본 건 짧지만 과거 ‘낯기생’의 첫 미팅 때도 그렇고. 우진씨는 진짜 뒤가 없는 느낌입니다. 감독만 수십 년짼데 우진씨 같은 배우 처음 봤어요 최소 일본에선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카리 작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여기서 바보같이 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네요.”
“네 작가님.”
이어 쿄타로 감독이 자리서 스르륵 일어났다.
대체로 오해 짙은 대화였으나.
“그만한 배우가 기다리겠다고 하니 왜인지 힘이 솟네요.”
지금 쿄타로 감독에겐 용기가 질펀해졌다.
뒤로.
쿄타로 감독이 힘이 솟은 것과는 반대로 일본 내에서 ‘낯기생’은.
『겉만 번지르르했나? 「낯기생」투자금 유지에 난항 중』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의 고집이 많들어낸 결과 그는 원작 팬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아야 했다』
추락하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8일에 터진 투자 논란이 우후죽순으로 불어났으니까.
『이슈가 끊이질 않는 「낯기생」 너무 큰 도전이었나? 투자자들 자금 회수 중』
예전에도 작게나마 뜬 소식이긴 했으나 이번에는 대형 언론사들 위주로 움직였기에 그 화력이 남달랐다.
그렇기 때문일까?
금세 중소형 언론사들까지 따라붙었다.
떡밥은 일본 1등 포털사이트의 연예뉴스 1면을 차치한 뒤 8일 내내 일본을 뒤흔들었다. 워낙에 이슈가 강대했던 ‘낯기생’이었고 먹잇감이 던져지자마자 언론·여론의 태세는 급작스레 전환됐다. 공격을 퍼붓는다.
『투자금 줄줄 새는 「낯기생」에 관계자들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을지도”』
『「낯기생」의 위험한 도전 그 결과는 투자금 회수로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언론은 그저 이때다 싶어서 달려든 것이고 여론에선 지금껏 숨어 있던 반대파들이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것.
그렇게 하루가 지난 9일부터는 팩트가 전혀 담기지 않은 개소리까지 등장하기 시작한다.
배우끼리의 불화설 투자자와 쿄타로 감독의 입장차이 숨죽이고 있던 아카리 작가가 빠졌다 강우진의 있지도 않은 스캔들 등등.
『「낯기생」의 강우진과 캐스팅된 배우들의 의견 차이? 이대로 영화 제작 무산되나』
‘낯기생’은 수많은 어뷰징 기사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만큼 일본 대중들도 흥분했다.
-이럴 줄 알았어! 애초에 한국의 신인 배우를 데려다 주연시키는 건 말이 안 됐지! 낯기생 원작 팬들이 그렇게 반대했는데!
그런데 반대로 보면.
-온통 낯기생 영화 기자 천지네! 아! 나는 정말 관심 없었는데 계속 보이니까 보게 되잖아!
어느 때보다 관심도가 핵폭탄급이기도 했다. 희한한 그림이었다. ‘낯기생’의 최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는 극강이었다. 강우진이 ‘한국의 신인 배우’임을 밝혔을 때보다 몇 배는 강대하다.
이게 매스컴 세상에 파다한 자극의 힘이었다.
밍밍한 것보단 짜디짠 것이 후킹력은 몇 배는 더 강하니까. 어쨌든 ‘낯기생’은 이틀이 지난 10일까지도 의도치 않는 ‘노이즈 마케팅’이 제대로 힘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강우진의 언급 역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현실적으로만 보면 우진에겐 그리 나쁜 그림은 또 아니었다.
『오르락내리락 관심이 롤러코스터 타는 「강우진」 어떤 입장으로 나올까?』
이대로 ‘낯기생’이 망하더라도 강우진에겐 준비된 작품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다였다. 좋든 나쁘든 그의 일본 인지도는 거대해진다.
이쯤.
“PD님! 이거 ‘낯기생’ 기사들 보셨죠?! 일이 너무 커지는데요??”
최근 강우진과의 녹화를 마친 그렇기에 편집이 한창인 ‘아메토크 show!’에선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빼싹 마른 신조 PD는.
“알아요 나도 봤어.”
“이 일단 잠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지 않아요??”
“왜요?? 내가 봐서는 이대로 방영 때리면 시청률 최고치 찍을 것 같은데?”
오히려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뭐가 됐든 날이 갈수록 요란한 ‘낯기생’의 떡밥은 당연하게도 한국까지 넘어왔다. 국내에서는 일본과는 다르게 약간 제3자의 시선으로 이 사태를 바라봤다.
『[단독]괴물 신인 ‘강우진’의 첫 일본 주연작이 될 낯기생 돌연 투자길 막혀···급작스레 찾아온 위기』
『‘낯기생’ 벌써 전체 투자금 중 반이 빠졌다 논란 터진 뒤 더욱 투자는 얼어붙을 전망』
뭐 똑같이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는 건 같으나 무게감이 가볍달까? 이는 대중들 역시 비슷했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나 SNS 등 반응은 재빨랐으나 뉘앙스는 일맥상통했다.
-엥? 뭐임? 저 일본 영화 엎어지는 거냐?? 까비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모든 사태의 중심인 강우진은.
『[스타픽]일본은 ‘낯기생’ 존폐 위기? 정작 ‘강우진’은 아무 리액션이 없다』
세상 조용했다.
9월 12일 아침 한 광고 촬영장.
시간은 9시쯤. 수십 스탭들이 촬영 세팅에 여념이 없다. 그중여러 모니터가 모인 책상의 광고 감독이.
“요런 느낌인데- 여기여기 청바지 입고 뛰는 컷이요. 혹시 상의 탈의가 가능한가 싶어서요.”
오늘 있을 촬영분의 콘티를 꽁지머리 남자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최성건이었고.
“흠 글쎄요. 애초 그런 얘기는 없었어서요.”
“알죠. 조금 있다가 광고주 쪽 직원들 오면 다시 얘기해볼 텐데 그 전에 우진씨 생각은 어떤가 해서요. 내가 볼 땐 상의 없는 게 청바지가 훨씬 부각될 것 같거든요?”
당연하겠지만 광고 촬영의 메인은 강우진이었다. 그런 우진은 현재 촬영장에 없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승합차 안에 있었다. 혼자도 아니었다. 간만에 보는 턱수염. 즉 승합차엔 강우진 포함 드라마판 거물 송만우 PD가 함께였고.
-팔락.
강우진은 송만우 PD에게서 받은 두 부의 얇은 종이 뭉치 중 첫 번째 것을 방금 펼친 참이었다. 종이 뭉치의 표지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고.
-시놉시스.
무심한 얼굴로 내용의 첫 줄을 읽던 우진이 옆에 앉은 약간 긴장 섞인 침을 꿀떡 삼킨 송만우 PD에게 뜬금 시선을 맞췄다.
“PD님. 이거 주인공이.”
“어어 맞아요.”
이어 송만우 PD가 빠르게 고개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주인공이 셰프지 셰프.”< 뒷배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