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습 (4) >
일본에서 뜬금없이 카시히 그룹 관련 첫 소문이 던져진 뒤.
『카시히 그룹 무너지는「낯기생」에 관심 가진다? 영화계에 소문 솔솔』
마치 짜고 친 듯 최근 벼랑 끝에 몰렸던 ‘낯기생’ 측이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공식]「낯기생」측 “투자금 문제 해결 제작에 온 힘을 다할 것”』
갑론을박이 질펀한 전쟁터와 같은 ‘낯기생’이었다. 솔직히 언론·여론은 ‘낯기생’이 이대로 무너질 줄 알았다. 그런 그림이었으며 내부적으로도 비슷했으니까.
그런데 기생 회생했다?
눈이 번쩍 뜨일 소식이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100억을 넘어 200억에 가까운 투자금이지 않나? 뭣보다 각종 소문부터 개소리 잡소리가 난무하며 이미지가 똥창에 빠지던 ‘낯기생’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투자금을 해결했다니?
『투자금 약 70% 빠졌던 「낯기생」이 다시 살아난 이유』
빨리도 너무 빨랐다. 보통 ‘낯기생’과 같은 경우가 영화계에는 종종 있긴 했지만 일이 스무스하게 해결될 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움직이는 법이었다.
즉 과정이란 게 존재한다는 뜻.
허나 ‘낯기생’은 너무 단박이었다. 규모도 200억인데 말이다. 이것을 접한 일본 쪽 언론은 일단 기사를 갈기면서도 의아했다.
“‘낯기생’이 투자금 전부 해결했다는 게 진짜일까?”
“글쎄. 근데 가뜩이나 여론이 쓰레긴데 설마하니 거짓말로 공식 입장을 발표했겠어? 그건 그냥 언 발에 오줌 누기 밖에 안 되잖아? 금방 탄로 날 거고.”
“그렇지? 희한하네. 짧은 기간 투자금의 거의 반 이상이 날아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구할 수 있었지? 전체 투자금이 100억이 넘는다며?”
“200억대 얘기도 있던데? 이상하긴 해. 하향곡선을 타는 바람에 ‘낯기생’ 쪽에 손을 벌릴 투자자들은 전무했을 텐데 말이야.”
그렇기에.
“이봐! 이것 좀 보라고! 지금 ‘낯기생’ 투자금 막아 준 게 카시히 그룹이라는 소식이 떴어!!”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나야 모르지!”
누가봐도 황당한 어처구니없는 카시히 그룹의 찌라시에 무게가 실렸다. 거의 같은 타이밍에 터진 것도 있었다.
『무너진「낯기생」을 살린 건 카시히 그룹? 출처가 어디인가?』
카시히 그룹과 ‘낯기생’은 전혀 접점이나 전조가 없었다. 어떠한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파고들겠지만 그런 건 전혀 전무했다. 그러니 무조건 얼토당토않은 개소리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일단 기사를 뿌리고 본다.
일본 재계서열 10위 안의 카시히 그룹이었다. 잠시 잠깐의 애피타이저라도 이만한 먹잇감을 놓치는 건 병신이었다.
『「카시히 그룹」 낯기생을 시작으로 문화 산업 시작하나』
따라서 카시히 그룹과 ‘낯기생’이 뒤섞인다. 종종 히데키 회장의 이름도 보였다.
『낯기생의 투자금 완납한 게 히데키 회장의 지시? 범람하는 소문에 언론 들썩』
사회면과 연예면이 단박에 비슷한 기사들로 범벅됐다. 하지만 손가락만 소문을 퍼트리는 건 아니었다. 드넓은 일본의 연예계 속 배우들 외 기타 등등이 미친 듯 떠들어댔으니까.
“카시히 그룹이 ‘낯기생’에 붙었다는거 말이 된다고 생각해? 거긴 문화 산업 관련으론 아예 생각이 없는 곳이잖아.”
“나도 이건 그냥 찌라시라고 생각해. 다른 재벌가에서 작정하고 흘린 게 아닐까? 파워게임 뭐 그런 거.”
“영화를 찍는데 현실이 영화가 돼버렸네? 근데 이게 진짜면 ‘낯기생’은 진짜 대박인 거 아닌가?”
“에- 설마 진짜겠어?”
점차 소문의 눈덩이는 몸집을 불리지만 ‘낯기생’ 측은 묵묵히 본인들에 관한 팩트만 쏘아댈 뿐이었고.
여기서부터.
-카시히?? 왜 뜬금없이 카시히 그룹이 나오는 거야wwwwwww
-언론이 헛소리 뱉어대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너무 황당하긴 하네 투자자들 다 떠났는데 카시히 그룹만 돈을 붓는다는 게 말이 돼?
-근데 낯기생은 투자금 해결했다고 했잖아? 진짜 같기도 해.
-대기업이 붙은 거면 진짜 이익을 보고 움직였다는 거고 낯기생의 가능성을 본 거 아닌가?
-한류 때문일 거야 낯기생엔 강우진이 있잖아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너무 넘어가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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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기생’의 여론이 조금씩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하겠지만 카시히 그룹은 그 어떤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헛소문? 그러나「카시히 그룹」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찌라시의 덩치를 한없이 키우려는 듯이.
다음 날 22일 ‘얼어죽는 연애’ 촬영장.
‘낯기생’이 어제인 21일부터 오늘까지 일본을 뒤덮는 중에 강우진은 ‘얼어죽는 연애’의 이틀 차 촬영이 한 창이었다.
“액션!!”
어제의 촬영이 대화 단절에서 오는 오해가 주된 주제였다면 오늘은 남주인 ‘송태형’이 약간 마음을 열며 ‘옆집 묘한 남자’를 이해하게 된다. ‘옆집 묘한 남자’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하고 수어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기도 한다.
“컷컷!! 오케이!! 나이습니다 나이스!!”
물론 강우진과 정장환의 촬영은 막힘없이 쭉쭉 진행됐다. ‘옆집 묘한 남자’를 연기하는 우진의 연기와 수어는 디렉팅할 껀덕지가 없었고 그로 하여금 각성한 정장환 역시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대치를 보였으니까.
이어 오후쯤.
“컷!! ok! 아 좋았습니다!”
강우진의 촬영 분량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쯤.
“소품 교체도 있으니까 10분만 쉬었다 갈게요!”
연출 PD가 촬영 세트장 전체로 여유를 선포했다. 금세 세트장 안으로 달려드는 여러 스탭들 대본을 확인하는 정장환 메이크업을 고치는 강우진. 그런 현장을 확인하던 연출 PD가 자리에 천천히 앉았고 옆자리 이월선 작가에게 미소를 보였다.
“이제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알겠습니다.”
참고로 이월선 작가는 현장에 약 두 시간에 전에 도착한 참이었다. 아마 강우진의 연기는 모조리 눈에 담을 작정인 듯 보였다. 어쨌든 그녀가 물 한 모금을 넘기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그러자 연출 PD가 현장 속 강우진에 시선을 맞췄다.
“저게 송 PD님을 알거든요 몇 주 전에 한량 관련해서 축하 전화를 드렸었는데 그러시더라구요. 강우진은 한 번 카메라 돌리면 끊고 넘기기가 미치도록 아쉬울 거라고.”
“연기를 계속 보고 싶다는 얘기?”
“그렇죠.”
대답을 들은 이월선 작가 역시 옅게 웃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NG는 아닌데 구도나 소품 바꿔가면서 리-액션 주신 거구나?”
“욕심이 난 것도 있는데 필요하기도 해서요. 근데 진짜 묘하지 않습니까? 아니 찍을 때마다 변주는 있지만 폭발적인 폼은 일정해요. 저 어려운 장애 연기가 쉬워 보일 지경입니다.”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닌데 말이죠.”
“제가 감히 장담하건대 저희 드라마 방영 시작하면 앞으로 연기 판에선 장애 연기하면 무조건 우진씨가 제일 먼저 회자 될 겁니다.”
다분히 이해되는 이월선 작가였다. 그러면서도 약간 황당했다.
“단 이틀 촬영으로 그 정도 임팩트를 남긴 셈이네요 새삼 어이가 없어. 이 정도나 되니까 국내고 일본이고 거물들이 달라붙는 거겠죠.”
“아! 일본 그거 ‘낯기생’ 기사 봤는데 갑자기 뭔 일본 재벌이 꼈더라고요?”
“맞아 나도 보고 좀 희한하다 싶었어요. ‘카시히 그룹’은 연예계 쪽 사업 안 하는 거로 알아서.”
“어뷰징이겠죠? 좀 터무니없는 소식이라.”
“어뷰징이던 아니던 투자금 해결한 건 사실 같던데요 그럼 된 거 아닌가?”
한편 방금 메이크업 수정을 마친 우진이.
-스윽.
촬영존에서 조금 떨어진 자신의 자리로 잠시 복귀했다. 목이 말라서였다. 이를 눈치챈 장수환이 호탕하게 물통을 내밀었고.
“형님 시원하게 해놨습니다!”
“응. 땡큐.”
낮게 답한 강우진이 차분히 물을 꿀떡이면서도 속으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재벌?? 카시히 그룹이란 곳 처음 들어보긴 하는데 뭐 여튼 개구라겠지? 일본 언론도 한국 못지않게 찌라시 심하네 진짜.’
그 역시 ‘낯기생’ 소식을 접했으니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는 안 됐다. 몰락하기 일보 직전이던 ‘낯기생’을 살린 게 아무 연고도 없는 일본의 어마무시한 재벌가란다.
그걸로 현재 일본은 시끌벅적했다.
카시히 그룹의 등장 타이밍도 어이없을 만큼 생뚱맞고 뭣보다 그 어떤 증거나 팩트는 1도 가미되지 않았다. 우진은 당연히 허무맹랑하다곤 생각했지만.
‘쿄 감독님이 어쩌면 거기 재벌가랑 연이 있을지도? 그래서 S+급이 된 건가?’
묘한 가능성은 열어뒀다. 어느쪽이 됐든 투자금 문제가 해결된 건 확실했다. 무려 150억을 넘나드는 금액이라 속으로 입을 쩍 벌리긴 했지만.
이때.
“형님.”
장수환이 강우진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 확인하시겠습니까?”
“아- 어.”
그의 핸드폰엔 어제부터 뭐가 많이 도착했다. 각종 톡부터 문자나 전화들. 당연히 ‘낯기생’ 관련 때문이었다. 덕분에 강우진은 무던한 표정으로 대강 핸드폰을 훑었다. 이 순간.
-우우웅 우우우웅.
때마침 긴 진동이 울렸다. 바로 강우진의 눈에 보이는 발신자. 일본에 있을 쿄타로 감독이었다. 투자금 문제 이후로 첫 연락이었다. 곧 강우진이 티 안 나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감독님.”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일본어. 쿄타로 감독의 음성은 전과 달리 확실히 상기돼 있었다.
“우진씨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직접 말하고 싶어 전화했어요. 모든 문제는 말끔히 해결됐습니다.”
“예. 다행이네요.”
“그래요 정말 참 다행이지.”
“그런데···아닙니다.”
강우진은 카시히 그룹 관련을 물어보려다 말을 삼켰다. 그런 속사정까지 일일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뭐 잘 해결됐으면 된 거지. 이때 핸드폰 너머 잠시 침묵하던 쿄타로 감독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신경 써준 것 감사합니다.”
엥? 뭔 소리지. 내가 신경 써준 게 뭐가 있어? 아- 그냥 걱정해줬다는 소린가? 우진이 고개를 갸웃할 때 쿄타로 감독이 다시 말했다.
“우진씨 덕분에 이번 문제 터지기 전보다 제작규모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투자금이 더 커졌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내 덕분이냐니까요? 이상하다 싶은 우진이 물음을 던지려 했지만.
“감독님.”
“아아 통화가 길었네요. 서로 바쁠 테니 ‘낯기생’ 일정이 확정되면 회사 통해서 알려줄게요. 다음은 대본리딩때 보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봅시다”
-뚝.
통화가 재빨리 끊겼다. 강우진은 핸드폰을 천천히 내리면서도 살짝 미간을 좁혔다. 뭔가 뭔지 모르겠는데 익숙한 착각의 냄새가 풍겼으니까.
뭐지? 뭔가 거대한 게 씐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깊은 생각은 거절했다.
‘그냥 기분 탓인가.’
와중 다시금 촬영존으로 복귀하는 강우진을 보며 배우들은 수군대기 바빴다.
“기사 봤어요? ‘낯기생’ 망했다 어쩐다 하더니 해결했던데요?”
“아아- 맞아 투자금 해결했다는 기사?”
“어 정말요? 그럼 ‘낯기생’ 안 엎어지고 제작 진행되겠네요 다행이네!”
부정적인 말을 뱉는 것이 아닌 희소식을 퍼트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곧 우진씨 일본으로 떠나겠네.”
“그 전에 ‘실종의 섬’부터 촬영 드가지 않나?”
“어후- 스케줄이 무슨. 직전에 ‘남사친’도 정리하지 않았나? 근데 우진씨는 왜 저렇게 쌩쌩해요? 나 같으면 반쯤 죽어지낼 것 같구만.”
“그보다 카시히 그룹 얘기는 뭐래요? ‘낯기생’ 투자금 대준 게 그 일본의 재벌가래.”
“에이 그건 그냥 누가봐도 찌라신데?”
“찌라시치곤 타이밍이 좀 어처구니없잖아?”
문제는 점점 오묘한 착각이 번진다는 것.
“···저 예전에 그런 댓글 본 거 같아요.”
“무슨?”
“우진씨가 재벌가랑 관련이 있다는 거.”
“아! 저도! 재벌가 아들이랬나? 그건 그냥 헛소문 아니었어요??”
“근데 타이밍상 카시히 그룹이란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면 뭐냐 일란성 쌍둥이 설도 진짜겠네?”
“아- 그건 말도 안 되죠.”
이렇듯 여러 오해와 추측들이 범람하면서도 ‘얼어죽는 연애’ 세트장은 촬영을 막힘없이 이어나갔고.
“커어엇!! OK!! 아이고 우진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강우진의 이틀간의 촬영 여정은.
“수고하셨어요 우진씨.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봐요. 작품에서.”
“네 작가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PD님.”
밤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이후.
강우진의 ‘얼어죽는 연애’ 촬영이 정리된 다음 날 23일. 저번 주쯤 편집이 완벽히 마무리된 ‘마약상’은 이미 홍보 스케줄이 한창이었다.
『‘마약상’ 진재준 예능 시장에 뜬다』
그러던 중 23일 점심쯤 공개된 ‘마약상’의 3차 예고편에는 변화된 점이 삽입됐다. 약 1분 남짓의 예고편 내용은 1차와 2차 예고편과 비슷했으나.
제일 마지막 부분.
-[10월 28일 수요일 대개봉]
개봉날이 확정적으로 출력되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같은 날 오후에 ‘남사친’의 공식 런칭 날짜도 공개됐다는 것.
-남사친|공식 예고편(미공개분 포함)|넷플렉스 코리아
이 영상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남사친’의 장면들과 함께 강우진과 화린의 듀엣 OST의 일부분이 짤막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끝부분엔.
-[10월 19일 월요일 오픈]
확정된 런칭 날짜가 박혀 있었다. ‘남사친’은 19일 ‘마약상’은 28일.
약 일주일의 차이였다.
10월 25일 이른 오후.
커다란 벤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벤의 안엔 익숙한 탑배우가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
-팔락.
“···”
맡은 배역에 맞춰 머리가 짧아진 류정민이었다. 현재 류정민이 보는 시나리오는 ‘실종의 섬’ 그리고 그가 탄 벤의 목적지는 부여의 초대형 세트 단지였다.
왜?
『[스타픽] ‘류정민’ ‘강우진’ ‘하유라’ 등 권기택 감독의 ‘실종의 섬’ 오늘 첫 촬영 올린다!』
오늘 ‘실종의 섬’이 크랭크인을 올리니까.< 역습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