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종 (3) >
‘1일 식당’? 윤병선 PD의 말에 강우진의 머릿속에 간단한 상상이 펼쳐졌다. 소시민적 그나마 봐왔던 예능들을 떠올린 것.
‘본 촬영 출발 전에 간단하게 한 번 해보는 건가? 장사 시작에 앞서 알바하는 느낌. 오오- 재밌을 것 같은데?’
자신이 PD는 아니다만 얼추 예능 속에 자신을 삽입해보는 강우진. 뭔가 좌충우돌하며 어색하게 손님들과 부대끼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이게 묘하게 뭐랄까 부담감이 있으면서도 떨렸다.
기분상으로는 호들갑이지만 컨셉질이 장착된 우진은 냉정한 투로 되물었고.
“가게를 빌려서 하루 정도 운영해보는 겁니까?”
안경을 추켜 올린 윤병선 PD가 미소를 띄웠다.
“그런거죠. 가게 섭외는 이미 끝난 상태고 음- 왜 그런 음식점 있잖아요? 김밥천당 같은.”
“아.”
“우린 미국에서 K분식을 운영해볼 건데 또 너무 분식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컨셉은 김밥천당처럼 다채롭게 갈 겁니다.”
즉 주메뉴는 분식이지만 즉석 김밥 등으로 여러 한식을 다뤄볼 거라는 얘기. 이어 윤병선 PD가 주변 작가들에게 종이들을 받아 우진에게 내밀었다. 내용으론 실제 사진도 있고 그려진 것도 있었다.
대충 ‘우리네 식탁’의 컨셉을 표현한 느낌.
-팔락.
그런 종이들을 우진이 보고 있을 때 몸을 살짝 앞으로 민 윤병선 PD가 말을 이었다.
“이번 ‘실종의 섬’ 해외로케 촬영이 내일 30일에 출발해서 약 한 달 조금 넘게 있는다고 들었어요.”
“예 맞습니다.”
“최대표님 말로는 촬영 도중에 10월 17쯤? 국내 스케줄로 한 일주일 정도 들어올 거라고 그러시던데 그래서 고쯤으로 촬영도 맞춰볼 거거든요?”
“그렇습니까?”
고개 끄덕인 윤병선 PD가 이번엔 투명 파일을 내밀었다.
“음 최대표님이랑은 이미 통화는 했어요. 이건 예상 스케줄푠데- ‘1일 식당’ 촬영을 대략 이틀 정도 보고 있어요. 출연자들 사전 미팅하고 요리들 연습하는 그림 하루 다음 날 바로 투입돼서 가게 운영해보는 거 하루.”
충분한 연습 없이 그게 끝? 거의 스파르타였다. 뭐 예능이니까 당연한가? 어차피 말이 연습이지 감을 잡아보는 게 다겠지. 뭐가 됐든 요리 연습 쪽으로는 별 긴장이 안 되는 강우진이었다.
‘훗. 레시피 테크닉이 있다고 나한텐.’
아공간의 은혜로 셰프의 기술을 습득한 상태니까. 이즈음 윤병선 PD를 이어 그의 옆에 앉은 여자 메인 작가가 촬영에 관해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PD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1일 식당’용 음식점 섭외는 끝났구요. 일단 서울은 아니에요. 서프라이즈 운영에 올 손님들은 당연히 신청을 받을거고- 참참 요리는 막 진짜 김밥천당처럼 30가지 넘게 하진 않을 거예요.”
“그럼?”
“일단 적당히 다섯 개 정도만 보고 있어요. 돌아가는 거 보고 늘릴지 줄일지 판단하려구요. 기본적인 것만. 라면이나 김밥 또는 떡볶이 등등.”
과연. 우진은 다행이다 싶었다. 솔직히 김밥천당처럼 음식만 수십 개면 잘하는 걸 떠나서 정신이 없을 테니까. 이때 메인 작가가 태블릿을 보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 셰프님 아시죠?”
태블릿엔 익숙한 얼굴의 셰프 프로필이 출력되고 있었다. 예능에 자주 나오던 인물. 강우진도 과거 너튜브서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예 방송에서 본 적 있습니다.”
“그 연습 촬영 날에 각 파트마다 스승님이 투입되는데 요리 파트는 이 분 섭외했어요. 세프님이 오셔서 요리들 레시피 기본적인 건 전수해줄 거예요.”
“그렇군요.”
윤병선 PD가 끼어든다. 미소가 악동스럽다.
“물론 전수된 레시피에서 창작이 가미돼도 됩니다. 직접 만들어보고 시식은 우리 스탭들이 해보는 느낌.”
“드셨는데 별로면?”
“아웃이죠. 근데 이게 미국에선 파는 음식으로 갈 거니까 적당히 먹을만해서도 안 돼요.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전수받는 레시피로 가야 할 거고.”
당연하긴 했다. 명색의 한식을 외국에 알리는 프론데 적당히 만든 거론 안 되겠지. 이를 윤병선 PD가 덧붙였다.
“뭐 솔직히 그런 거 본 적 있죠? 방송에서 출연자가 창작 요리를 보였는데 그게 하도 인기를 끌어서 시중에 시판되는 거? 그 정도가 아니면 좀 힘들긴 하죠.”
아- 그런 거 말하는 건가? 희미하지만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 우진이었다. 연예인들이 여러 음식 프로에 나와서 보인 라면 피자 스파게티 외의 요리가 실제 상품으로 팔리는 것.
돌연 군침이 돌던 우진에게 윤병선 PD가 주제를 바꿨다.
“여튼 이런 뉘앙스로 촬영을 갈 거고 그게 1화의 반 정도는 차지할 겁니다. 다만 출연자들 전부 포맷이 같지는 않지. 주방 홀 카운터 및 홍보. 각 섹션마다 교육할 것도 직책도 다를 거고. 그래서 말인데.”
“저 요리 좀 합니다.”
그런데 윤병선 PD의 질문이 끝나기 전에 무심한 우진이 끼어들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윤병선 PD부터 작가들이 눈을 약간 크게 떴고 이내 약간의 웃음이 섞여들었다. 재밌는 장면을 찍었다 싶었으니까. 물론 현재 모든 것은 촬영 중.
“오 그래요? 우진씨가 요리를 잘해? 뭔가 좀- 상상이 안 가. 아무리 봐도 요리를 잘하는 타입으론 안보이잖아요? 투박해서 그런가. 너희는 어때?”
주변 작가들에게 윤병선 PD가 묻자 너덧 명 작가들이 묵묵한 우진을 바라보며 답했다.
“아- 음 그냥 막 현란하실 것 같진 않은?”
“맞아. 심드렁하게 툭툭? 그냥 생존 요리를 하신다는 거죠?”
“근데 연기에 보컬에 외국어에···요리까지 잘하시는 거면 너무 사기캐다. 뭐 하나 못하셔도 돼요.”
대부분 우진이 그저 자취 요리 정도를 하겠구나 싶은 표현들이었다. 윤병선 PD의 눈빛도 비슷했고. 뭐 여기선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싶은 우진은 침묵을 택했다. 이어 윤병선 PD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오케이 그럼 우진씨는 주방. 요리할 것처럼 안 보이는 게 더 눈길을 끌 것 같으니까. 뭐냐 직책이 메인이 될지 보조가 될지는 촬영 날 우리 스탭들이 먹어보고 판단하는 거로!”
“그럼 전 주방 확정입니까?”
“예 우진씨는 요리부 확정으로 가죠.”
뭔가 묘한 미소를 뿜어댔다. 당연히 작가들도 같았다. 강우진이 근엄하게 실패하는 모습을.
“기대되네 우진씨 요리.”
원하는 얼굴이었다.
같은 시각 정리가 덜 된 한 사무실 안.
수많은 종이뭉치부터 각종 포스터 책 등등이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사무실. 얼핏 쓰레기장과 비슷한 사무실에 놓인 책상. 책상 위 역시 어지럽긴 마찬가지. 다만 눈에 띄는 건 ‘프로파일러 한량’ 포스터가 끼워진 액자였다.
그런 책상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익숙한 턱수염. 바로 송만우 PD였다. 즉 이곳은 그가 새롭게 연 제작사.
“흠.”
어쨌든 그새 살이 올랐는지 얼굴이 퉁퉁해진 송만우 PD가 책상 위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표정이 퍽 진지한 것이 심각하다.
“괜찮았다라-”
혼잣말을 뱉은 그가 보는 곳엔 종이 뭉치 2부가 겹쳐 놓여있었다. 물론 대본이었다. 잘 보니 눈에 익은 것이었다. 왜? 이 2부의 대본은 예전 강우진에게 넘어갔다 돌아온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송만우 PD는 그 대본들을 내려보며 고심하고 있나?
이어 송만우 PD가.
“···”
대본을 내려보면서도 며칠 전 대본을 돌려받은 뒤 강우진과 나눴던 통화를 상기했다.
시작은 기대 가득한 송만우 PD의 목소리부터였다.
“어어! 다 봤어요??! 어땠어?”
돌아온 강우진의 대답은 늘 그렇듯 시니컬하며 명료했지만.
“괜찮았습니다 PD님.”
송만우 PD에겐 이게 좀 애매하게 들렸다.
“···괜찮았다?”
“예.”
“두 개다?”
“예. 둘 다 괜찮았습니다. 굳이 말씀드리면 ‘칭송받는 셰프’가 조금 더 나았습니다.”
괜찮았다? 이건 좋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송만우 PD는 잠시 입을 다물다가 다른 방법으로 되물었다.
“그럼 만약에 내가 우진씨에게 이 두 대본을 넘긴다면? 우진씨는 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줘도 돼요. 어차피 그러겠지만.”
“욕심이 나진 않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
낮게 들리는 사과에 번쩍 정신을 차린 송만우 PD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요 우진씨가 뭐가 죄송해. 그보다 한량은 1화 쪽대본만 보고 결정했었잖아요?”
“예.”
“근데 이것들은 아니란 소리네?”
“그렇습니다.”
여기서 다시 현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송만우 PD가 등을 의자에 움푹 기댔다. 그러면서 긴 한숨.
“푸후- 강토템이 그렇다는 건 이 두 개 다 밍밍하단 소린데.”
턱수염을 천천히 쓰는 송만우 PD. 강우진은 돌려서 말한 건 아니겠으나 예의를 차린 뉘앙스는 있었다. 아마 송만우 PD와의 연을 생각해 적당히 팩트를 덜어낸 거겠지.
‘토템이 발동하지 않더라도 괜찮단 말만 들어도 해볼까 싶었는데. 후- 막상 들으니 영 꺼림칙하네.’
뭣보다.
‘우진씨가 욕심이 안 날 정도면 대본 수정 작업을 거친다 해도···의미가 없어.’
송만우 PD의 청사진엔 무조건 강우진이 포함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대본 평가를 빙자해서라도 강우진에게 제일 먼저 대본을 보인 것.
하지만 이러면 후진한 것과 같다.
덕분에 송만우 PD는 보던 대본들을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얼굴에 진중함을 짙게 만들었다.
“이거론 안 돼 다시 찾든지 해야겠어.”
다음 날 9월 30일 공항.
여러 비행기가 오가는 드넓은 공항이었다. 다만 풍경이 낯설다. 외국인이 보이긴 하지만 많지는 않고 한국인 역시 꽤 스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당연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었으니까.
이 공항은 베트남에 있는 다낭 국제공항이었다.
그런 다낭 국제공항은 퍽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이 순간 입국장을 통해 대형 무리가 우르르 나왔다. 대충 봐도 심상치 않은 인원수였다. 50명은 가뿐히 넘을 정도였으니까. 이에 공항 로비에 포진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외국인들은 물론이며 여행 온 한국인들까지.
“어!! 야야 저기! 류정민같은데?!”
“진짜?! 어디?”
“저기 있잖아! 입국장 쪽! 저 여자는 하유라고! 뒤에 쟤는 강우진인데?!”
“미친! 진짜네??! 아! 이거 그건 가봐! ‘실종의 섬’ 그거 촬영!”
“우와! 빨리 와 봐! 가까이서 보게!”
사실이었다. 저 거대한 무리는 진짜 ‘실종의 섬’ 촬영팀이었으니까. 다낭에서야 조용했으나 이미 한국에서는 한 차례 난리가 났었다.
『[스타톡]류정민 하유라 김이원 전우창 그리고 강우진···권기택 감독의 ‘실종의 섬’ 사단 해외로케 촬영 출발/ 사진』
『‘실종의 섬’ 팀들로 인해 북적이는 인천공항』
『몰린 팬들에게 덤덤히 사인해주는 ‘이슈 괴물’ 강우진/ 사진』
‘실종의 섬’의 해외로케 스케줄이 시작된 것. 따라서 거대한 무리에는 권기택 감독을 필두로 수십 스탭들과 주연 배우들이 뒤섞여 있었다. 곧 ‘실종의 섬’ 팀들 주변으로 삽시간에 구경꾼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국인들도 퍽 많다.
“우와!! 안녕하세요!!”
“꺄악!! 류정민! 류정민!!”
“우진 오빠! 저 ‘강심장’인데!!”
“하유라 미친! 비율 미쳤네!”
“저 뒤에 김이원이랑 전우창이지?!!”
어마무시한 탑배우들이 대거 뭉쳐 있었으니까. 물론 그들 말고도 조연급 배우들도 있었으나 구경꾼들은 그저 탑배우들을 보기에 바빴다. 서서히 ‘실종의 섬’ 팀은 몰리는 구경꾼들로 인해 고립될 위기에 처했지만.
“잠시만요!!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공항 입구 쪽에서 수십 사내들이 달려들어 길을 만들었다. 해외로케를 책임지는 라인 PD가 나타난 것. 이내 배우들과 ‘실종의 섬’ 팀은 가드들이 만들어 준 길을 따라 공항을 빠져나간다. 와중에도 구경꾼들은 핸드폰으로 사진찍기 바빴다.
이윽고.
-스윽.
‘실종의 섬’ 팀은 공항 바로 앞에 정차된 여러 승합차와 미니 버스 앞에 도착했고.
“차례로 탑승하시면 됩니다! 바로 숙소로 움직이겠습니다!!”
라인 PD의 외침에 하나둘 차에 오르기 시작하는 ‘실종의 섬’ 팀. 그 사이 모자를 푹 눌러쓴 강우진이 눈에 띈다.
“···”
포커페이스를 장착한 채 공항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는 그. 냉정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나 속으로는 방방 뛰고 있었다.
‘와- 씨 다낭. 여긴 그래도 좀 해외 같은데? 저 나무들 죄다 야자순가?? 뭔가! 뭔가 확실히 다른 나라 냄새가 난다!’
이어 강우진이 얼굴에 비추는 살인적 햇볕을 올려보며 뱉은 첫 감상은 간단했고.
‘근데 개덥네? 미친. 살 익겠다 익겠어. 여기서 연기를 한다고??!’
우진의 옆으로 꽁지머리 최성건이 땀을 닦으며 붙었다. 얼굴에 지옥이 가득하다.
“으어- 덥다더워 야 살인적인데? 괜찮냐 우진아?”
강우진의 대답엔 쎈척이 가득했다.
“충분합니다 대표님.”
‘실종의 섬’이 해외로케에 돌입했다.
약 2주 뒤 서울. 10월 17일.
장소는 으리으리한 주택의 거실. 대체로 원목 인테리어가 가득한 거실 소파 상석에 앉은 늙은 남자. 짧은 흰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 나이로 따지면 권기택 감독보다 한참 위 같다. 내뿜는 포스 역시 남달랐다.
약간 노장의 파워가 물씬 풍긴다.
그런 그의 옆자리엔 난감함이 가득한 40대 남자가 한창 말을 하고 있었다.
“가 감독님. 아무리 그래도···수어를 통달한 배우를 찾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 보통은 죽어라 연습을 하거나 대역을 쓰는걸 잘 아시잖습니까?”
“그렇지.”
“예예 거기다 연기 전부가 수어도 아니고 수어 연기는 수십 컷이 전부 아닙니까? 그걸 위해 수어를 배운 배우를 찾는다는 게 아무래도- 감독님 배우들은 영어 포함 외국어를 배우지 수어를 배워두진 않습니다.”
“흠.”
“더군다나 국제 영화제를 노리면서도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 아닙니까? 조건은 무조건 연기가 1등이 돼야죠.”
“···”
남자의 말에 노장 감독이 입을 다물었다. 그저 남자를 지긋이 바라볼 뿐. 허나 맹수가 조용히 으르렁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곧 진땀을 뻘뻘 흘리던 남자가 눈을 내리깔며 말을 바꿨고.
“이 일단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겠습니다.”
노장 감독이 돌연 주머니서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켰다. 그리곤 핸드폰을 남자에게 보였다.
“이 친구 지금 어딨나?”
고개를 갸웃한 남자가 핸드폰에 시선을 붙였다. 핸드폰엔 너튜브 영상이 출력되고 있었다. 일본의 유명 토크쇼의 편집본. 한 배우가 방청객과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일본 국민 토크쇼 아메토크 show에서 강우진이 일본 수어하는 장면!!(내멋대로 편집본)|갓이슈킹TV
‘아메토크 show!’ 속의 강우진이었다.< 실종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