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주 (6) >
‘실종의 섬’ 연출팀과 얘기를 마친 얇은 반팔에 모자를 푹 눌러쓴 최성건이 대기 텐트로 돌아왔다. 시선은 손에 쥔 핸드폰. 그런 그가 텐트에 들어서려는 순간.
“자네 혹시 ‘칸 영화제’에 관심이 있나?”
텐트 안에서 늙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음성. 안가복 감독이 안에 있는 것을 인지한 최성건이 멈칫했다.
‘안가복 감독? 왔었나??’
오늘 온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그였으나 진작 와서 강우진과 얘기 중인 건 몰랐던 최성건이 텐트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칸 영화제? 느닷없이 돌직구로 물어본다고? 눈치만 주는 정도긴 한데···설마 우진이 대놓고 까진 않겠지? 응 그래. 아닐 거다.’
최성건은 속으로 염원했다. 솔직히 우현구 감독까진 어떻게 방법이 있을진 모르겠으나 안가복 감독에서 사고 터지면 아무리 최성건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니요 딱히 관심 없습니다.”
텐트 안에서 들린 강우진의 냉기 섞인 목소리는 최성건의 믿음을 와장창 무너트렸다.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진 건지 무릎을 양손으로 짚는 그.
‘···사고 터졌네.’
실제 텐트 안 영화사 대표나 직원들 등 안가복 감독과 함께 왔던 인원들은 단박에 미간을 팍 찌푸렸다.
“이 이봐!”
그리곤 전부가 무심한 얼굴인 강우진에게 언성을 약간 높였다.
“딱히 관심이 없다니!”
“강우진씨 이 바닥에선 거침없을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지금 앞에 앉아 계신 분이 누군지 몰라요?”
“감독님 앞에서 버릇없이!”
“···이봐요 우진씨. 현재 인기가 끝없이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까??”
후두둑 쏟아지는 공격들. 반면 강우진의 표정 없는 얼굴은 변화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겉으로만 그랬다. 내면으론 극심한 당황을 뱉어댔으니까.
‘뭐 뭐여. 깜짝이야 좀 쫄리는데?!’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해야 했다. 찬물을 얼음물을 죽어라 끼얹어라. 그런 그가 무던한 안가복 감독을 보다가 공격 중인 인원들에게 낮게 답했다.
“문제가 있습니까?”
“···뭐 뭐라고?”
“저는 그저 대답했을 뿐입니다. 칸 영화제에 관해 물으셔서 제 생각을 말씀드렸는데 왜 흥분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
“앞뒤 설명이 없는 상태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맞는 소리였다. 안가복 감독은 그저 칸을 물었을 뿐이고 우진은 대답한 게 다다. 다른 인원들이야 속사정을 알고 있으니 화를 낸 것이겠지만 강우진으로선 딱히 욕먹을 상황도 아니었다.
“제가 지탄받아야 할 상황이 맞습니까?”
아직 안가복 감독에게 정식 요청을 받은 건 아무것도 없다. 이때.
-스윽.
묵묵히 강우진을 바라보고 있던 흰 머리 자욱한 안가복 감독이 잔잔하게 말했다.
“사과하지.”
뒤쪽 직원들에게 던진 것이었고 영화사 대표가 말을 더듬었다.
“가 감독님!”
“사과해. 언성을 높여야 할 이유가 없었잖나.”
“···”
대표와 직원들은 입을 합 다물었으나 눈에는 불만이 꽤 번졌다. 그래도 안가복 감독의 지시를 거를 순 없는지 우진에게 작게 사과했고.
“···미안합니다.”
안가복 감독 역시 강우진과 시선을 맞췄다.
“미안해요 사람들이 나를 챙겨준다고 그런 거야.”
속으로 안도의 숨을 길게 뱉은 강우진은 뻔뻔함을 얼굴에 장착한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대답을 들은 안가복 감독이 작게 웃으며 뒤쪽 인원들에게 손짓했다.
“다들 나가 있지. 따로 얘기해야겠어.”
곧 영화사 대표나 직원들이 몸을 돌렸다. 이에 밖에 있던 최성건이 소리를 죽여 텐트 옆쪽으로 피한다. 이를 알 리 없던 대표나 직원들이 텐트를 나서면서도 투덜댔다.
“후- 아무리 그래도 안 감독님 앞에서 저리 대놓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구만. 뭐 지금 한참 뒤가 안 보일 때긴 하죠.”
“좀 있다가 촬영 들어가면 제대로 한 번 봐야겠습니다 저 탑들 사이에서 얼마나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텐트 안 마주 앉은 강우진과 안가복 감독 사이의 분위기는 여전히 고요했다. 둘 다 서로의 눈동자를 살피고 있을 뿐. 그중 먼저 물꼬를 튼 것은 안가복 감독이었다.
“관심이 없다라- 왜 칸 영화제에 딱히 관심이 없는지 물어도 되겠나?”
“···”
왜냐고? 진짜로 관심이 없으니까? 거기다 강우진은 안가복 감독이 썩 내키지 않았다. 뭐 칸영화젠지 뭔지도 생각 안 해봤었고.
‘그런 겁나 큰 영화제 같은 건 몇 년 뒤에나 가능할 거잖어?’
현재로서 우진은 눈앞의 이 영물을 지뢰를 피하고픈 마음이 컸다. 칸 영화제보다는 그쪽의 관심이 몇 배는 컸다. 최성건에게 들어보면 이 할아버지는 칸에 도전할 예정이랬지?
별로 관심도 없고 적당히 둘러대자.
강우진은 컨셉질이 포함된 진심을 뱉었다.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그저 딱히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흠- 그건 생각 못 한 대답인데.”
다시금 쏘아지는 온몸을 휘감는 듯한 노장의 눈빛. 살짝 움찔한 우진은 담담한 척을 하면서도 속으로 읊조렸다.
‘저번에 식당에서도 그렇고. 나보러 가벼운 눈이 얼핏얼핏 보인다 어쩐다 했었지? 그게 연륜인지 능력인지 몰라도 실험 한 번 찌그려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진은 과도한 컨셉질의 냄새를 조금 빼냈다. 금세 눈에 깃든 힘도 몸을 지배하는 긴장감과 쎈척 역시 옅어졌다.
“그런데 칸 영화제를 왜 물어보시는지?”
그리곤 다시금 컨셉질을 끌어 올린다. 짧은 순간 우진의 가오가 빠졌다 껴졌다 반복됐다. 딱히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늘상 하던 것이니.
특이한 것은.
‘음?’
우진의 실험에 안가복 감독의 반응이 매우 빠르다는 것.
‘역시···지금도 얼핏얼핏 보여. 가볍다고 해야하나- 농도가 옅은 눈이.’
그것을 대놓고 묻는 안가복 감독.
“역시나 특이해. 지금도 전에 봤던 그 낯선 것이 눈에 보이는구만?”
와- 씨 이 할아버지는 진짜 위험하다. 영물 그 이상이야. 내면으로 악 소리를 낸 강우진이 목소리를 최대치로 깔았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이때였다.
-스륵.
텐트가 열리며 최성건과 덩치 좋은 장수환이 입장했다. 입을 먼저 연 것은 최성건이었고.
“엇! 감독님??”
가만- 히 우진을 보고 있던 안가복 감독이 부드럽게 자리서 일어났다. 시선은 그대로 강우진에게 붙어있다.
“오늘 촬영 고생해요.”
뒤로 최성건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안가복 감독이 텐트를 나섰고 내리쬐는 햇볕에 사파리 모자를 다시금 쓴 그가 낮게 혼잣말을 뱉었다. 물론 강우진을 상기하면서.
“뭔가- 안개 속에 있는 느낌이군.”
1시간 뒤.
내리쬐는 햇볕을 가려주는 우거진 숲 바람 한 점 없는 후끈한 공기 어디선가 들리는 날벌레 소리 질퍽이는 땅 이름 모를 나무들.
그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소름 돋는 시선.
정적이 흐른다. 비릿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런 곳에 강우진이 서 있다. 비스듬한 방탄모 핏물과 똥물에 해진 군복.
“후흡- 후.”
과도한 심호흡을 해대는 우진은 총을 볼에 붙인 채였다. 개머리판이 어깨에 단단히 고정됐다. 하지만 어딘가를 가리키는지도 모를 총구 끝이 미세히 떨린다. 질퍽이는 땅에 박힌 군화가 움찔움찔댄다.
천천히 조금씩 견착한 총이 허공을 움직인다.
“···흐읍.”
카메라가 강우진의 총구를 따라 그의 얼굴을 가득 담는다.
응집된 공포가 팽배한 숲속을 훑는 강우진의 눈동자 힘은 빈약했다. 소심하다. 당연했다. 지금의 우진은 ‘진선철 상병’이었으니까. 여긴 촬영장이 아니었다. 아공간의 리딩(경험)으로 인한 진선철 상병의 세상 속이었다.
최소 강우진에겐 그랬다.
가득한 백여 명 스탭들 주변에 배치된 카메라와 오디오 기기 반사판 등은 사라졌다. 강우진은. 아니 ‘진선철 상병’은 오직 공포감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시 시발. 시발 시발!’
허상이 아니기에 우진을 진선철 상병의 모든 것이 지배한다. 심지가 유약하다. 한 몸에 박힌 두 자아 중 거친 놈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서워 무섭다고.’
아까부터 진선철 상병의 심장은 터질 듯 피스톤 운동을 해대고 있었다. 웅웅대는 관자놀이가 터질 것 같다. 견착한 총이 떨릴 정도로 호흡이 거칠며 불안정했다. 살짝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을 모니터로 확인하던 권기택 감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좋군 딱히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아. 혹시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
오른쪽 뒤쪽을 슬쩍 곁눈질했다. 사파리 모자를 쓴 무표정이 짙은 안가복 감독이 앉아 있다. 초거물인 그가 지켜보는 촬영. 밝혀진 건 아니지만 안가복 감독의 목표는 강우진일 것. 그럼에도 지금의 우진은 평소보다 안정됐으며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이 롱테이크 씬은 시작일뿐.
와중 촬영존 안의 강우진을 유심히 보던 안가복 감독이 추측했다.
‘빈약하고 소심하군. 심지가 약한 캐릭터인가? 대사는 없되 시선 처리와 호흡 그리고 행동의 디테일만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그의 주변으론 같이 온 영화사 대표 포함 너덧 명은 오직 강우진에 집중한다. 연기는 괜찮아 하지만 아직까진 그리 놀랄 정도는 아니다. 딱 그 정도의 눈빛. 물론 그것은 안가복 감독 역시 비슷했다.
‘그래 연기 준수한 거야 알지. 하지만 유약한 캐릭터는 보던 맛이야. 봤던 것. 저게 단가?’
분명 강우진은 좋은 연기를 보이고 있으나 좀 밍밍했다. 저 정도의 소심한 배역은 지금껏 영화판에서 너무도 많이 소비됐었으니. 뭐가 됐든 촬영존을 바라보는 백여 명 스탭들은 입을 다물었고 움직임이 있는 건 오직 카메라와 배우들 뿐.
이때.
-스윽.
진선철 상병을 찍던 카메라가 그의 시선을 따라 조금씩 앵글을 옮긴다. 모니터에 안 보이던 다른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진선철 상병과 같은 형태였다.
“후웁-”
“하아 후웁-”
질퍽이는 땅 위 한 걸음 거리로 여기저기에 박혔고 총을 견착했으며 보이지도 않는 뭔가를 견제하고 있다. ‘실종의 섬’에 진입하고서 이미 몇몇은 사망했기에 숫자는 줄었지만 여전히 십 수명. 그것을 찍는 카메라 몇 대 하늘에 뜬 드론까지.
덕분에 권기택 감독이 보는 여러 대 모니터엔 촬영 콘티에 맞춘 각양각색의 배우들 표정이 생생하게 담긴다.
류정민 김이원 전우창 하유라 외 조연급.
땀이 뚝뚝 떨어진다. 고요하지만 끈적한 절망이 가득한 얼굴. 그중에서 그나마 권총을 든 ‘최유태 중위’만이 나름 침착했다.
“후우- 천천히. 천천히 후퇴한다.”
소리가 들렸다. ‘실종의 섬’에 들어오고서 가장 경계할 공포스런 소리 말이다. 뭔지도 모를 지랄 맞은 괴생명체. 빼곡한 나무와 수풀 사이엔 뭣도 안 보이지만 분명 있다. 십 수명 병사들은 인기척을 최대한 죽이면서 뒷걸음질 친다.
-자박 자박.
호흡은 최대치로 낮췄으며 고동치는 심장 덕에 토가 쏠린다. 다들 그런 표정이었다. 눈알 또한 충혈될 정도로 커졌고 견착한 총에 붙인 오른쪽 볼이 부들부들 떨린다.
카메라 땀 범벅인 김이원의 얼굴을 잡는다. ‘조봉석’ 하사였다.
“조용히···경계만 하면서 조용히 빠져나가.”
‘남태오 병장’을 맡은 전우창이 근육질 몸과는 다르게 떨리는 목소리를 뱉는다. 뒤쪽을 힐끔대면서.
“그 괴물 새끼가 뒤 뒤쪽에 있으면 어쩝니까?”
“···일단 명령에 따라. 소리는 분명 앞에서 났다.”
몸을 살짝 낮춘 최유태 중위가 목소리가 크다는 듯한 손동작을 보인다.
“내가 신호하면 전속력으로 뛰어 느리면 전우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자박 자박.
점차 뒷걸음질 치는 병사들. 침을 꿀떡 삼키기도 시야를 가리는 땀을 닦기도 떨리는 발을 옮기며 울먹이기도 한다.
고요하지만 공포가 공기에 가득하다.
풍전등화. 누군가 긴박의 끈을 톡 끊으면 우수수수 무너질 것 같다. 그래도 일단 병사들은 어떻게든 진형을 유지하며 뒷걸음질을 이어간다.
이때 카메라 한 대가 숨이 가빠진 진선철 상병을 클로즈업.
“···”
얼굴은 여전히 유약하다만 잠시잠깐 모니터에 담긴 그의 얼굴에 변화가 보였다. 옆에 선 일병 병사의 얼굴을 힐끔하는 데에서. 그것을 캐치한 안가복 감독이 멈칫.
‘웃어? 방금 웃었나? 분명 입꼬리가.’
그 순간.
-스윽.
진선철 상병이 옆쪽의 온몸을 부들대는 일병의 군화를 티 안 나게 밟았다. 카메라 진선철 상병을 이어 일병의 얼굴로 넘어간다. 흠칫한 얼굴.
동시에 일병이 견착한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타앙!
침묵의 섬을 가르며 울리는 한 발의 총성. 당황한 일병을 클로즈업.
“아 아니. 이건.”
조봉석 하사가 어금니를 빠득 문다.
“저런 미친 새끼가.”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수십 전우들 모두가 일병을 돌아봤다. 일병이 울먹인다.
“뭐···뭔가가 제 발을 밟았습니다 흐윽. 진짭니다.”
여기서 들리는 기묘한 소리.
[“꾸릭 꾸룩.”]
화들짝 놀란 일병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총을 쏴댔다.
-탕탕탕!!
이미 이성을 잃었다.
“으아아아아! 개시발새끼!!”
-탕탕!
이 순간 적막함은 박살 났다. 최유태 중위가 조봉석 하사의 목덜미를 잡고 외쳤다.
“저 새끼 막아!! 다들 앞에 봐 앞!!”
조봉석 하사가 일병에게 뛰어간다.
“사격 중지! 야!! 안 들려??! 사격 중지!!!”
하지만.
[“꾸룩.”]
이어진 소리와 함께.
-휘릭 푹!!
우거진 수풀 속에서 기다란 것이 튀어나와 총을 갈기는 일병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물론 나중에 ‘그린스크린’에서 다시금 촬영 후 CG가 삽입될 컷이나 배우들은 일동 움직임이 뚝 멈췄다.
일병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에서 핏물이 울컥 쏟아진다.
“흐헉···끄윽. 주 중대장님.”
가슴에 구멍을 뚫은 길쭉한 것이 쑥하고 수풀로 사라졌다. 현실에선 보이진 않다만 배우들의 눈에선 명확히 보였고 그래야만 했다. 일병이 자리에 풀썩 쓰려졌다. 동시에 숨이 격하게 거칠어진 병사들 전원이.
“이 이 씨발!!”
“뒤져!! 뒤져 괴물 새끼야!!”
“으아아아아!”
-탕탕탕!!
-탕탕탕탕탕!!
길쭉한 것이 나온 곳을 향해 총을 갈겼다. 병사들 전원 이성이 날아갔고 최유태 중위가 조봉석 하사의 귓가에 악을 질렀다.
“이동해! 소대장!! 달려!!”
“중대장님! 갈겨야 합니다!! 애들만 죽어 나갑니다!!”
-탕탕탕탕탕!!
“뛰어!! 뛰라고!!!”
아비규환. 어금니를 꽈득 문 조봉석 하사가 남태오 병장의 멱살을 거칠게 잡았다.
“사격 중지!! 밑으로 뛰어! 시발 새끼들아 뛰라고!!”
-탕탕탕!!
카메라 가슴에 구멍 뚫린 일병을 위에서 찍는다. 옅은 숨을 색색 뱉고 있다. 그 옆엔 진선철 상병이 필사적으로 가슴의 핏물을 막고 있다.
“주 죽지 마.”
“상병···님.”
“말하면 아안돼.”
“살고···싶어···”
“마 말하지 마. 말하지 마.”
“···”
하늘을 바라보던 일병의 눈에 생기가 지워졌다. 생명이 다한 것. 그런 일병을 비추던 모니터가 진선철 상병의 얼굴로 바뀐다. 얼굴 근육이 부들대는 와중 입꼬리가 오묘하게 다시금 씰룩인다.
안가복 감독이 모니터로 조금씩 얼굴을 붙인다.
‘또. 저건 오열의 꿈틀거림이 아니야. 희열. 그래 희열이다. 괴롭게 그러나 즐거운. 왜? 왜 저놈은 제일 유약하면서도 가장 흥분했나.’
그의 물음표는 길지 않았다. 감독만 수십 년이니. 곧 이유를 인지한 영물 안가복 감독이 작게 읊조렸다.
“그래. 이중인격. 자아가 둘 그것을 표정만으로.”
지금의 떼샷에서 강우진의 대사는 많지 않았다. 오직 기민한 표현만 보일 뿐.
‘이 씬에서의 완급과 긴장감 그리고 풍부함 볼륨의 조율은 강우진 저 아이가 맡았구나.’
핵심을 책임지고 있다는 뜻.
‘목숨이 걸린 긴박한 상황. 다만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 봤던 그림이니까. 그것을 강우진이 다채로운 색감으로 비튼다. 십수 년 된 내로라하는 탑들 사이에서 저 핏덩이가 키를 쥐고 있는 거야.’
반면 이미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권기택 감독은 작게 침을 삼키면서도.
“좋아 좀 더.”
극의 절정을 부추긴다. 주변의 백여 명 스탭들은 이미 말문이 막혔다. 벌써 수십 번의 촬영을 목도한 그들이었으나.
“···와 흡입력이 그냥- 말이 안 되네.”
“진선철 상병 웃는 게 진짜 소름.”
“다들 연기 미쳤다 완전···”
이번에도 참을 수 없다는 듯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 사이.
-탕탕탕탕탕!!
후퇴하던 병사들이 하나둘 뛰기 시작했다.
“후퇴!! 후퇴하라고 새끼들아!”
“어디로! 어디로 후퇴합니까?!!”
“마을! 마을 쪽으로!”
“마을 쪽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시발! 그럼 여기서 뒤질래?!!”
“윽! 사격 중지!! 마을 쪽으로 달려!!”
선두의 조봉석 하사. 그를 시작으로 한 명씩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흐흑- 이 일어나. 일어나.”
방탄모까지 벗은 진선철 상병만이 죽은 일병을 감싼 채 오열 중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후퇴하던 최유태 중위가 확인하곤.
“진선철!! 너 이 새끼 뭐해!! 뛰라는 소리 못 들었어?!!”
“하 하지만! 대권이가! 박대권 일병이!”
최유태 중위가 진선철 상병의 뺨을 후렸다.
-짝!!
“정신 차려! 죽었어! 이미 죽었다고!! 닥치고 일어나!! 빨리!!”
“어···어- ”
어버버대던 진선철 상병이 스륵 일어나 방탄모를 쓰곤 엉거주춤 뛴다. 그것을 보던 최유태 중위는 다급하게 일병의 군번줄을 빡 뜯어선 죽어라 달린다.
카메라 둘의 정면에서 같이 뛴다.
모니터엔 진선철 상병의 얼굴이 앞 필사적인 최유태 중위가 뒤쪽으로 같이 잡힌다. 매우 대조적인 표정이었다. 진선철 상병은. 강우진의 양쪽 입꼬리는 어느새 활처럼 팽팽하게 휘었으니까. 입이 반달이다. 세상 환하게 웃고 있다. 동그란 눈엔 장난기와 광기가 가득했다. 소심한 놈은 온데간데없다.
소리는 없으나 ‘킥킥킥’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마스크. 무음의 환희.
그는 진선철 상병 중의 한 명은 게임을 하고 있다.
이것을 최유태 중위가 알아챌 리 없었다. 그저 진선철 상병의 뒤통수만 보일 테니까.
결국 둘 모두 카메라에서 이탈.
“···”
“···”
잠시간의 정적. 그런 여유컷 뒤로 권기택 감독의 낮은 신호가 던져졌다.
“컷. OK.”
이어 그의 뒤쪽 안가복 감독이 강우진. 아니 진선철 상병을 무던히 바라보며 늙은 목소리를 냈고.
“허-”
노장이 천천히 자신의 팔뚝을 내려본다. 아까부터 싸- 함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기에. 그리곤 작게 헛웃음을 짓는다.
‘이런···’
얼마 만인가? 탱탱함이 한없이 소실된 가뭄같이 말라 비틀어진 이 푸석한 팔뚝에 오돌토돌한 것이 난 것이.
“이 나이에 닭살이 돋을 줄이야.”< 독주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