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1)
‘이 사각턱 감독님 왜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지는 거지?’
카페 안 창가 쪽 자리에 앉은 강우진은 겉으론 무척이나 태연했다. 하지만 건너편 신동춘 감독을 보며 적잖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방금 쎈척은 그렇게 심하게 안 했는데.’
저 양반 원래도 좀 마음이 심약한 건가? 강우진이 속으로 읊조리는 반응은 대체로 정상이었다. 그도 그럴 게 대화하던 사람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면 누구라도 그럴 것. 것도 40대 중반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아저씨가 울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거지? 컨셉 유지가 맞나? 아니 애초 왜 저러는 거냐고.’
강우진은 어렵사리 쎈척을 유지하면서도 격하게 고민했다. 반면 신동춘 감독은.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우진씨. 정말로.”
분위기가 점점 더 뭉근해지고 있다. 마치 감동영화를 감상하는 듯. 눈가도 심히 촉촉해진다.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저렇게 된 걸까?
강우진은 자신이 이 카페에 와서 뱉은 말들을 곱씹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상처 줄 말을 뱉진 않았다. 사실 신동춘 감독에게 울림을 준 단어는 ‘애정’과 ‘애착’이었지만 강우진은 이 같은 사정을 몰랐다. 당연히 신동춘 감독의 현 인생도 알지 못했고.
‘점점 심해지는데. 말려야 되나.’
뭣보다 우진은 ‘흥신소’를 애정하는 정도도 아니었다. 그가 고른 ‘애착’이란 단어는 그저 적당한 단어를 찾은 것뿐이었다.
그렇게 된 배경은 간단했다.
최근 ‘프로파일러 한량’을 제외하고 나름 신경쓴 것이 ‘흥신소’였으니 애착 정도가 적당하겠지 싶은 게 다였다. 좀 오바스럽나? 하긴 했지만 아무리 쎈척을 장착해도 상대에 관한 예의는 지켜야 했다. 관심보다는 좀 멋을 부린다는 게 애착이었다.
뭐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
실제로도 우진은 ‘흥신소’에 살짝이지만 관심이 있기도 했으니까. 그 관심을 상대가 듣기 좋게 애착으로 포장한들 문제는 없겠지. 그런데 왜 저리 눈가가 촉촉해지냐고.
곧 우진은 티 안 나게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눈 주변을 적당히 훔친 신동춘 감독이.
-스윽.
울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 작품을 애정 또는 애착하는 남자가 배우가 앞에 앉아 있는데 더 이상의 추태는 부리면 안 되니까.
“···강우진씨.”
이어 신동춘 감독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우진에게 물었다.
“‘흥신소’의 어떤 부분이 애착···아니 좋았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어떤 부분이 좋았냐고? 강우진은 약간 귀찮은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신동춘 감독의 묘한 상태를 진정시키는 게 더 우선이었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힐끗대기 시작했으므로.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칭찬. 응 칭찬을 해주자.’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게 칭찬이었다. 따라서 우진은 ‘흥신소’에 관해 좋은 점을 늘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근엄한 음성은 유지하면서.
“우선. 주인공인 김류진의 심리 변화가 세세해서 좋았습니다. 시작은 심드렁이었지만···”
뒤로 우진은 신동춘 감독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칭찬을 덤덤하게 읊조렸다. 퍽 세세하고 꼼꼼하게. 시나리오를 쓴 신동춘 감독도 ‘흥신소’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없다. 허나 강우진은 ‘흥신소’의 모든 것을 리딩한 상태였다.
따라서 우진이 뱉는 말들은 말도 안 되게 디테일했다. 아공간을 가진 강우진만이 할 수 있는 칭찬.
이 부분에서
“아.”
눈시울이 붉어진 신동춘 감독은 다시금 충격과 울림을 받았다.
‘이 이렇게나 자세히 알고 있다니. 마치···‘흥신소’ 세상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그만큼 강우진이란 배우는 ‘흥신소’의 구석구석을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인물의 생각부터 심리 작품 배경 세트 심지어 날씨까지. 내가 깜빡한 부분까지 상기시켜 준다. 이건 내 시나리오를 수십 번. 아니 그 이상을 본 거야.’
이미 분석은 끝낸 듯싶었고 인물 조형까지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곧 신동춘 감독은 강우진을 빤히 보면서도 자신을 책망했다.
‘야 신동춘. 이렇게나 ‘흥신소’를 애정하고 애착을 가지는 배우가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건 오해였다.
‘고작 세탁질 시키는 용도로 ‘흥신소’를 내다 버릴 거냐?’
뭐가 됐든 신동춘 감독은 이 순간 속으로 결심했다.
‘연기는 영화사에서 보여준 거로 충분해. 이미 작품 분석이 이렇게도 꼼꼼한데 더 고민할 건 없어.’
‘흥신소’의 모든 판을 뒤집겠다고.
“판을 엎어야겠어요.”
“···예?”
“우진씨.”
어느새 얼굴에 확신이 서린 신동춘 감독이 몸을 건너편 우진에게 천천히 밀었다. 반면 포커페이스인 강우진은 티 안 나게 몸을 뒤로 뺐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동춘 감독이 퍽 강하게 말을 뱉었다.
“‘흥신소’의 주인공을 김류진을 맡아주세요.”
한편 북한산 주변.
노란 미니버스 두 대에서 인원들이 우르르 내렸다. 대략 열댓 명. 언뜻 여행객들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조금 힘드시겠지만 산 타면서 주변을 확실히 확인해주세요! 특이점 발견하시면 PD님께 바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들은 드라마 ‘프로파일러 한량’의 키스탭들이었다. 촬영팀 조명팀 등등 각팀의 리더들. 물론 이 모든 인원의 총괄인 턱수염 송만우 PD도 보였다.
“생수 챙겨라-”
“옙! 선배님!”
송만우 PD가 수요일인 평일 아침에 것도 칼바람 부는 겨울 끝자락에 북한산을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프로파일러 한량’의 야외 로케(야외 촬영) 장소 헌팅을 나온 것. 첫 장면에 쓰일 컷을 확인하기 위해 산을 타야 했다.
이어 송만우 PD가 짐을 챙기는 조연출에게 지시를 추가했다.
“모두한테 포인트 지점 다시 한번 확실히 알려줘 괜히 헷갈려서 길 잃으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선배님!”
이때였다.
-♬♪
턱수염 송만우 PD의 바람막이 속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발신자를 확인한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홍스타?”
상대가 탑여배우 홍혜연이었으니까. 드라마의 여주니 전화하는 건 자연스러우나 시간이 문제였다.
“얘가 이 아침에 왜 전화를?”
작게 미간을 좁힌 송만우 PD가 조연출에게 먼저 올라가란 손짓 후 전화를 받았고.
“어 홍스타.”
핸드폰 너머로 홍혜연이 웃었다.
“응 PD님 어디세요?”
“나?? 나 지금 북한산.”
“아아- 장소 헌팅 나가셨구나?”
“어. 근데 이 아침에 뭐야? 설마 내 스케줄이 궁금해서 전화한 건 아닐 거고.”
“음 다른 건 아니구요.”
살짝 말끝을 흘리던 홍혜연이 본론을 뱉었다.
“어제 한식집에서 우리 밥 먹을 때요 중간에 PD님이 전화 받을 때 강우진씨 얘기하면서 막 나가셨잖아요?”
“···그랬지?”
“아니- PD님 표정이 엄청 굳었길래 뭔 일이 났나 싶어서요. 왜요? 우진씨가 뭐 했는데?”
어제인 청담동 쪽 고급 한식집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송만우 PD는 신동춘 감독의 전화를 받고 VIP룸을 나갔었다.
“아아 그게.”
순간 송만우 PD가 하던 말을 뚝 멈췄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로 홍혜연이 약간 재촉했다.
“응응 그게 뭔데요?”
“···”
하지만 왜인지 송만우 PD는 말을 잇지 않는다. 머리가 핑핑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면···내가 다시 룸에 돌아갔을 때 홍스타가 강우진 얘기를 물어보려는 뉘앙스도 풍겼었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탑여배우 홍혜연은 ‘슈퍼액터’서 강우진을 처음 본 뒤부터 그를 무척이나 신경 쓰는 태도를 보여왔다. 최소한 송만우 PD의 눈에선 그랬다.
그게 강우진을 남자로 생각해서인가?
전혀 아닐 것이다. 신빙성 있는 쪽은 연기겠지. 강우진의 미친 연기를 홍혜연이 신경 쓰는 것. 이유야 간단했다. 홍혜연은 탑치고는 연기 욕심이 그득하니까. 즉 그녀는 강우진의 연기에서 뭔가를 느끼고 있다. 그것이 열망이든 갈망이든 뭐든 간에.
이 부분이 송만우 PD가 홍혜연을 높이 사는 이유였다.
홍혜연은 자신의 몸값과 급이 해마다 올라감에도 늘 언제나 연기를 갈구했다. 홍혜연쯤 되면 광고나 찍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늘 발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성장해왔고.
‘그런 애가 보기에 강우진은 그냥 외계인 같겠지. 자기는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굴러왔다만 강우진 걔는 솔로로 해왔으니까.’
그럼에도 독학으로 해왔음에도 강우진은 송만우 PD와 박은미 작가를 홀렸다. 당연히 홍혜연도. 어쩌면 그녀는 은연중에 느낀 게 아닐까?
‘인지도 제외하고 배우로선 강우진 걔보다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하나?’
어쩌면 홍혜연은 안달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질투가 독기로 바뀌고 있는 과정이랄까? 곧 머리를 굴리던 송만우 PD가 턱수염을 쓸었고.
‘그래. 홍혜연. 얘는 원하면 연기에 도움만 되면 독립 영화고 단편이고 할 애야. 자신의 위치 상관없이.’
신동춘 감독에게 받았던 ‘흥신소’ 시나리오 내용을 상기했다.
‘그리고 ‘흥신소’엔 괜찮은 여자 캐릭터가 나오지. 이 상황들을 잘 섞으면···어째 재밌는 판이 나올 것 같은데?’
어느새 송만우 PD는 비죽 웃고 있었다. 이쯤 핸드폰 너머로 홍혜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PD님?? 계세요? 산이라 안 터지는 건가? PD님??”
그런 그녀에게 답한 송만우 PD가.
“어어어 잠깐 안 들렸네.”
속으로 결론을 던졌다.
‘어째 강우진 그놈 주변으로 대어들이 몰리는데? 뭐 일단 떡밥은 던져보고.’
물론 모든 것의 중심은 강우진이었다. 그가 신동춘 감독이나 홍혜연을 홀릴 역할. 송만우 PD의 입이 열린 것은 이다음.
“아니 강우진씨가 내 친한 동생 놈을 뜬금 찾아갔다길래. 놀래서 그랬지.”
“동생 놈이요?”
“어. 아- 홍스타도 알지? 신동춘이라고.”
“아아 알죠. 동춘 PD님. 최근에 영화 하신다고 안 보이시던데.”
“맞아. 동춘이가 쓴 단편 영화를 하겠다고 우진씨가 찾아간 모양이야.”
“그게 무슨···갑자기요?? 지금 드라마 대본리딩도 안 열었는데?”
“글쎄. 정확한 건 나도 모르겠네. 확인해봐야지. 근데 그 단편 영화 상황이 좀 거시기해서.”
“왜요?”
핸드폰 너머로 홍혜연의 되물음이 던져졌지만 미소 머금은 송만우 PD는 회피했다. 다 알려주면 궁금함이 덜하니까.
“나중에. 나 지금 바뻐 홍스타. 일단 끊자고.”
“자자잠깐만요!”
“응?”
“그 동춘 PD님. 아니 감독님 거 단편 영화 시나리오는 보셨어요? 제목 뭔데?”
“봤지. 잘빠지긴 했어. 타이틀은 ‘흥신소’.”
“···”
여기서 찌를 날리는 송만우 PD.
“왜? 시나리오 궁금해? 빌려줘?”
그것을 바로 덥썩 무는 홍혜연이었다.
“크흠! 주시면 읽어는 볼게요.”
10분 뒤 홍혜연의 집.
청담동 근방에 있는 그녀의 집은 호화스럽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인테리어에 가구들은 죄다 고급스러웠다.
그중 홍혜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입고 있는 파자마도 검은색이었다. 긴 생머리는 단정하게 한 줄로 묶었다. 그런 그녀는 뭔가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는 게 생각에 빠진 얼굴이다.
“···”
그러다 홍혜연이 손에 쥔 핸드폰에 시선을 돌렸다. 10분 전 송만우 PD와의 통화를 떠올리는 것.
‘갑자기 단편을 간다고?’
즉 홍혜연은 별종인 강우진을 생각하는 중이기도 했다.
‘왜 ‘프로파일러 한량’ 같은 대형판에 낀 뒤에 갑자기 단편 영화로 틀었지??‘
그녀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지금 폭발하는 중이었다. 강우진이란 배우에. 정확하게는 그의 결 다른 신들린 연기에 관심이 깊어졌다는 게 옳다.
“···그 단편 보고 싶은데.”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홍혜연이 지금 보고싶다 말한 건 영상 같은 게 아닌 강우진 그 자체. 직접 두 눈으로 볼 그의 연기였다. 바로 앞에서 그의 연기를 봐야 연기법을 체감할 수 있으니까.
홍혜연의 못 말리는 연기 욕심이 제대로 발동된 것.
이어.
-스윽.
시선을 핸드폰에서 앞쪽 탁자로 옮긴 홍혜연. 탁자 위엔 ‘슈퍼액터’에서 예전에 받아 온 3장짜리 쪽대본이 올려져 있었다. 사실 그녀는 남몰래 이 쪽대본을 연습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강우진 걔가 한 만큼 안 나와.’
비슷하게도 구현이 안 됐다. 며칠간 시간 날 때마다 연습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강우진은 이 쪽대본을 1분 보고 연기를 줄줄 보였다.
‘과거야 모르겠다만 걘···뜨기만 하면 탑들 죄다 씹어 먹을 거야. 틀림없어. 나도 마찬가지고.’
이 순간 홍혜연은 이름 모를 짜증이 확 솟구쳤다.
“하- 진짜. 밀리는 건 싫은데!”
동시에.
-띵동♬♪
누군가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아마 누군가 오기로 돼 있던 모양. 덕분에 홍혜연은 짜증을 유지한 채 현관문을 열었고 곧이어 신발장으로 테 없는 안경을 쓴 남자가 등장했다.
“배고프다 배고파. 혜연아. 집에 뭐 먹을 거 있냐??”
홍혜연을 퍽 친숙하게 부르는 남자. 그는 홍혜연의 소속사 대표였으니까. 다만 스타트업인 엔터였다. 따지고 보면 아티스트는 홍혜연이 전부였고 소속사 대표는 홍혜연이 데뷔할 때부터 그녀를 케어해 온 인물. 즉 지금까지 쭉 함께 해왔다.
그런 그가 구두를 벗고 있을 때.
“오빠.”
팔짱 낀 홍혜연이 대뜸 요청했다.
“‘흥신소’라고 단편 영화 있거든? 그거 현 상황 좀 파볼 수 있어?”
-멈칫.
‘단편 영화’라는 단어에서 대표가 한 쪽 눈썹을 올렸다.
“다 단편??”
“응. 파볼 수 있어 없어.”
“뭐 단편 영화 상황 따보는 거야 어렵겠냐? 나는 니가 단편을 물어본 게 이상해서 되묻는 거야. 너···설마 이 타이밍에 단편 하려는 건 아니지? 응? 아니라고 해라.”
이어 홍혜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니. 살짝 구미가 당기는 정도야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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