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신 (2) >
나름 깨끗한 주방을 보며 낮게 읊조린 강우진. 그런 그를 보며 옆에 앉은 홍혜연이 약간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준비한 요리가 있는 거야? 그 바쁜 와중에 대체 언제- 아니 근데 약간 기대되는데?’
이미 일전의 촬영에서 강우진의 요리 실력과 맛에 반한 홍혜연이었고 마찬가지로 윤병선 PD나 작가들 역시 단숨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우진은 정식 셰프에게 착각을 선사했던 실력자니까.
따라서.
“어어어! 다 당연하죠!! 무조건 돼요! 주방 쓰세요!”
작가들이 흥분했다. ‘절을 올릴 테니 부디 주방을 써주세요’ 따위의 얼굴. 이쯤 윤병선 PD는 메인 작가가 속삭이고 있었다.
“이거 그림 무조건 찍어야 돼 알지?”
“당연하죠 이걸 놓치면 안 되지.”
“지금 우리밖에 없으니까 너가 저기 액션캠으로 붙어서 찍어.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네네 근데 우진씨가 진짜 준비해왔을 줄은 몰랐어요 확실히 츤데레 재질이 있다니까?”
“나도 그래. 촬영이 밀려 있다고 들어서 솔직히 크게 기대도 안 했어. 어쨌든 출격.”
“넵.”
곧 메인 작가가 핸드캠을 집어선 조작하기 시작했고 쓴 안경을 추켜 올린 윤병선 PD가 일어선 강우진 보며 비죽 웃었다.
“재료는? 여기에도 조미료는 좀 있는데 필요한 건 사야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낮게 답한 우진이 주방의 이곳저곳을 서치했다. 당연히 그의 머릿속엔 셰프의 ‘레시피’와 ‘테크닉’이 작동하는 중이었다. 그게 얼추 3분쯤. 답을 내린 그가 덤덤하게 읊조렸다.
“우선 메밀면이 필요하고 멸치 다시마 대파 양파 생강 마늘하고 간장은 있네요. 그러니까 들기름하고 또···”
무심하게 수많은 재료들을 나열하는 강우진. 그것을 빠르게 받아 적던 작가 몇몇이 재빨리 오피스텔을 나섰다. 곧 시니컬하게 앞치마를 매던 강우진에게 고개 갸웃하던 윤병선 PD가 물었다.
“메밀면? 우진씨 생각해온 게 어떤 요리?”
강우진의 대답은 짧았다.
“이름은 안 정했는데 대충 간장 막국수 느낌입니다.”
“···오호- 막국수.”
바로 눈을 반짝이는 윤병선 PD. 홍혜연이나 남은 작가들도 똑같았다. 몇몇은 침을 꿀떡 삼키기도 했다. 일전에 우진이 해준 라면이나 스파게티 등이 떠올랐으니까.
그때.
“우진씨 여기 좀 봐주세요!”
액션캠을 든 메인 작가가 손을 흔들었다. 자연스레 그녀와 눈을 맞추는 강우진. 말은 메인 작가가 빨랐다.
“좋다! 딱 좋아요. PD님 이거 우진씨 앞치마 맨 거로 티저 썸네일 무조건 가야될 것 같아요.”
“흐흐 그러고 보니 언론엔 출연자 팀별을 아직 발표 안 했었나? 슬슬 그것도 던져도 되지 싶은데?”
“아- 그럼 오늘 안에 돌릴까요?”
“그러자. 주방팀 메인이 우진씨인 거 보면 팬들 또 난리겠는데요?”
뭔가 일이 멋대로 굴러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진에겐 퍽 익숙한 풍경이었다.
‘뭐 알아서들 잘 하시겠지. 근데 앞치마 맨 거를 썸네일로 쓰는 건- 아 좀 쪽팔린디.’
그렇게 지난 시간이 약 30분. 재료를 사러 갔던 작가들이 복귀했고 어느새 주방 앞 책상에는 갖가지 채소와 조미료들이 놓였다. 손을 깨끗이 씻던 우진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배치를 시작했다.
-스윽.
필요한 냄비와 웍 그리고 칼 등의 장비를 챙긴 뒤 거침없이 요리를 시작했다. 이때 홍혜연이 조심히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나도 도와줄까요?”
우진의 대답은 냉랭했다.
“거기 마늘이랑 생강 좀 썰어주세요.”
“또??”
“핵심인데요.”
“아- 오케이.”
긴 생머리를 묶은 홍혜연도 자리를 잡았다. 어색하지만 열심히 칼질을 진행. 이 모든 건 당연히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고 도마에 대파와 양파 등을 올린 강우진이 현란한 칼질을 시전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
다시금 감탄하는 윤병선 PD나 작가들.
“저건 진짜 봐도봐도 신기하네.”
“막 멍하니 보게 되지 않아요?”
“이거 TV 타면 시청자들 반한다 백퍼.”
여기서 두 배우의 모습을 찍는 메인 작가가 칼질하는 우진의 팔뚝에 집중했다.
‘잔근육 핏줄. 미쳤다.’
과연 메인 작가의 짬밥이 있어선지 그녀는 담아야 할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뭐가 됐든 재료 손질을 마친 우진은 담담하게 웍을 흔들었다. 채소에 약간의 불맛을 입힌다.
바로 옆 냄비에는 메밀면이 익고 있었다.
뒤로 우진은 육수를 낸다. 볶던 채소들과 약간의 간장 그리고 물을 투하. 마지막으로 홍혜연이 썬 마늘과 생강이 추가됐다. 피날레는 들기름.
육수와 메밀면이 보기 좋게 완성돼간다.
생각보다 과정은 길지 않았다.
“···”
우진이 다 익은 메밀면을 식힌다. 자작하게 끓는 육수 역시 불을 뺀다. 모든 움직임에 고민 따윈 보이지 않았고 어느새 마무리.
-슥.
미리 준비해둔 오목한 그릇을 꺼낸 그가 적당히 식은 메밀면을 담고 그 위로 고소한 향의 육수를 부었다. 와중 숟가락으로 육수를 슬쩍 맛보는 윤병선 PD. 어라? 약간 의아하다는 듯 되묻는다.
“우진씨 이거 좀 싱거운데요?”
차가운 음성의 우진은 대수롭지 않았다.
“미국이니까요 육수는 적당히 밍숭맹숭한 게 좋아요.”
“아-”
“그리고 간을 맞추는 건 이거요.”
읊조린 우진이 그릇에 미리 썰어둔 깻잎 약간과 참깨를 뿌렸고.
“깻잎은 향이 세니까 확인해보고 바꿔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밑에서 손바닥만 한 봉투를 꺼냈다. 김자반이었다.
“간 조절은 김자반으로.”
솔솔 뿌려지는 김자반. 이윽고 강우진의 요리가 완성됐다. 삽시간에 만들어진 거치고는 퀄리티가 상당했고 액션캠으로 메밀면과 김이 폴폴 오르는 자태를 찍던 메인 작가가 대뜸 젓가락을 들었다.
“냄새부터 죽이는데요??”
그녀가 뜨끈한 육수에 담긴 메밀면을 휘휘 젓다가 작은 그릇에 메밀면을 조금 덜어 후루룩 삼켰다. 반응은 금세 쏟아졌다.
“···헐! 맛있어! PD님 이거 미쳤어요!!”
곧 대기하던 윤병선 PD나 홍혜연 그리고 작가들이 달려든다. 먹은 뒤 하나 같이 눈에 감격의 파도가 쳤다. 윤병선 PD는 아쉬운 듯 몇 번이나 젓가락질하다가 대뜸 결정했다.
“이건 팔죠! 팔아도 돼!! 와- 해장으로도 딱이고 이렇게 맛있으면 무조건 팔아야지!”
이쯤 흥분한 그들을 가만히 보던 우진이 작게 읊조렸다.
“이름은 김자반 막국수가 낫겠네요.”
이후.
강우진의 개발 요리인 ‘김자반 막국수’를 즐기던 윤병선 PD가 ‘우리네 식탁’ 관련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우진과 홍혜연 둘 모두에게.
“연말 시즌이기도 해서 미국 촬영은 내년도 생각했었는데 가게 대여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아요. 그래서 1차와 2차로 나눠서 촬영을 진행해야 될 것 같아요.”
회차를 나눠서 촬영하는 건 예능판에선 자주 있는 일이었다. 특히 ‘우리네 식탁’처럼 해외 촬영 같은 경우 배우들의 스케줄 등이 겹치기에 더 그랬다.
“1차 촬영은 대략 일주일 정도. ‘우리네 식탁’은 총 10화 방영 예정이고 그중 1차 촬영분은 5화 정도의 분량이 나올 겁니다. 연말 즈음엔 편집에 돌입할 거고 정식 첫방은 내년 초로 보고 있어요.”
웃으며 말하긴 하지만 윤병선 PD로서는 거의 지옥행 일정이었다. 그 역시 연말엔 더없이 바쁜 거물 중 하나니까.
“내년 초에 첫방 나갈 때쯤 2차 촬영 출발하게 될 거고 ‘우리네 식탁’ 방영 중에 후반부 회차 편집이 시작되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어- 시즌1 미국편은 장소나 가게 등 거의 확정됐고 명확한 기획은 소속사로 보내드릴 건데. 얼추 일주일 중에 이틀은 푸드트럭으로 손발 맞춰보고 나머지는 섭외한 가게를 운영하는 식. 쉽죠?”
악동스레 웃던 윤병선 PD가 마무리 멘트를 쳤다.
“1차 촬영 출발은 11월 말에서 12월 초라는 건 들으셨죠?”
즉 연말을 지나 내년까지 강우진의 스케줄에 여유 따윈 존재치 않는다는 뜻.
이어 ‘우리네 식탁’의 사전 촬영이 모두 끝난 뒤 강우진은 다시금 지옥의 스케줄 열차에 탑승했다. 해외로케 그리고 이틀의 휴식으로 인해 숨죽이고 있던 일정들이 폭발했으니까.
따라서 강우진을 포함한 모두의 시간이 녹아내렸고.
『[단독]윤병선 PD의 초거대 프로젝트 예능 ‘우리네 식탁’ 윤곽 잡혔다 시즌1은 미국에서 시작···강우진 홍혜연이 주방?』
‘우리네 식탁’ 측이 모아 놨던 정보들을 풀어 재꼈다.
『‘우리네 식탁’에서 강우진 요리 볼 수 있나? 푸드트럭부터 ‘우리네 식탁’ 팀 미국에서 한식으로 장사해본다』
가뜩이나 예능계 거물 윤병선 PD의 프로엔 팬들이 많았고 뭣보다 이번 ‘우리네 식탁’은 규모가 전과 달리 퍽 큼지막했기에.
『안종학 하강수 화린 강우진 등 ‘우리네 식탁’ 촬영 임박! 대중들 기대감 폭발』
금세 예능계 여론이 들썩였다. 특히 시즌1 촬영지가 미국이라는 점 푸드트럭 출연자들이 맡은 직책 한식을 파는 가게 강우진의 요리 등이 관심을 받았다.
그사이 ‘마약상’도 조용하진 않았다.
『‘마약상’ 300만 관객 목전···‘청불 최단 기록’』
『‘진재준 강우진’ 활짝···‘마약상’ 300만 넘어 신기록 질주中』
독주인 ‘마약상’은 250만을 넘어 300만 관객수가 코 앞이었으니까. 흡사 폭주 기관차 급의 ‘마약상’의 기세를 시작으로.
『[무비톡]적수 없다···단독으로 달리는 ‘마약상’ 역대 청불 흥행기록 경신』
『벌써 ‘300만 관객수’ 영화계 전문가들 “마약상 500만은 거뜬할 듯”』
‘실종의 섬’과.
『[스타톡]류정민·하유라·강우진 등 탑들 즐비한 ‘실종의 섬’ 해외로케 촬영 끝났다/ 사진』
『‘실종의 섬’ 관계자 측 “촬영 약 30% 완료 국내 세트단지에서 촬영 이어갈 것”』
강우진의 얘기를 각종 언론이 다뤘다.
『[이슈체크]‘이상만’ 강우진 몰래 영화관 가서 인증샷 찰칵···SNS에 수줍게 올린 근황』
『‘남사친’이어 ‘마약상’까지 초대박! 이슈 괴물 강우진 ‘실종의 섬’ 해외로케 끝나자마자 영화관 출몰/ 사진』
대중들에겐 즉각 반응이 왔다.
-헐ㄹㄹㄹㄹㄹ여기 영화관 우리집 옆에 있는 거다!!!!
-ㅋㅋㅋㅋ강우진 졸귀넴ㅋㅋㅋ칭칭 가리고 영화보러갔넼ㅋㅋㅋㅋㅋ
-어쩔??그래봤자 마약상 500만 못 넘김
-ㅠㅠㅠㅠ퓨ㅠㅠ우진 오빠….여기 영화관에도 출몰해줘요…..
-이상만 폼 미쳤다!!!
-근데 진짴ㅋㅋㅋㅋㅋㅋ강우진 개바쁠듯ㅋㅋㅋ촬영할 것도 많은뎈ㅋㅋ남사친 마약상 잘돼섴ㅋㅋ
-솔까 강우진 없었으면 마약상 흥행 힘들었음 ㅇㅈ?
-근데 진짜….이상만은 역대급 빌런이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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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럴수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우진의 마약설’ 등의 잡소리도 퍼졌으나 bw 엔터는 이를 좌시하지는 않았다.
『[공식]무분별하게 번지는 강우진 마약설에 ‘bw 엔터’ 측 “자료 수집중 강경대응할 것”』
『bw 엔터테인먼트 울트라급 루키 강우진 관련 유언비어 및 찌라시 법적 대응 검토 중』
빠른 피드백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우진 오빠 싹 다 그냥 개소리니까 무시하시면 돼요.”
“뭐가?”
“아니 마약설 어쩌고 그거요.”
“몰라 딱히 본 적이 없어서.”
소시민 버프가 작용한 것이지만 우진의 주변 팀들은 그게 강철멘탈로 비췄다. 이쯤 bw 엔터로 연말 관련 첫 번째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중요] 안녕하세요 청룡영화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에서 보내드립니다.
스타트는 청룡이었다.
주말이 지난 9일 월요일 아침.
한 광고 촬영장. ‘실종의 섬’ 촬영 복귀가 목전에 다가온 시점 강우진은 광고 촬영장에서 연신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당연했다. 여긴 ‘맥스날드’의 광고 촬영장이니까.
“나이스!! 좋아요 우진씨! 이번엔 좀 더 우걱우걱! 응? 못 참겠다는 듯이!”
“아- 예.”
‘맥스날드’는 강우진이 데뷔하고 처음으로 맡았던 광고기도 했고 우진이 모델이 된 후로 판매량이 쭉쭉 오르는 상태. 그렇기에 장기적인 파트너로서 자리 잡았다.
그런 고군분투 중인 우진과 비슷하게 촬영장 한쪽 의자에 앉은 꽁지머리 최성건도 손이 바빴다.
“12월도- 시상식들 생각하면 무리를 좀 해야되겠구만.”
다이어리를 펼친 채 강우진의 스케줄을 정리하고 있었으니까. 예정된 게 차고 넘쳤다. 덕분에 울리는 핸드폰은 잠시 무시해야 했다. 부재중을 확인하고 나중에 전화하지 뭐.
그러다.
“음?”
머리 긁던 최성건이 방금 진동을 뱉은 핸드폰의 발신자를 보곤 멈칫했다.
-안가복 감독님.
왔군. 예상하였던 그의 연락. 그래도 안가복 감독 본인이 직접 전화하는 건 좀 의외였다. 어쨌든 안가복 감독은 무시하기 좀 껄끄러운지 최성건이 촬영장을 벗어나며 전화를 받았고.
“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핸드폰 너머로 늙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최대표님. 바쁠 텐데 잠깐 통화할 수 있겠어요?”
“말씀하십쇼.”
“시나리오를 주고 싶은데. 딱 까놓고 말해서 내 영화가 발판이어도 괜찮아요.”
“···예?”
발판? 국내 영화계의 역사인 안가복 감독의 100번째 작품이 발판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최성건은 안가복 감독의 말을 당장 이해하기 어려운 듯 보였다.
반면 안가복 감독은 톤은 여유가 묻었으나 왜인지 퍽 필사적이었다.
“있는 곳으로 내가 가도 됩니다 한가한 사람이 움직여야지.”
한편 대형 언론사 안.
복도에서 통화하다가 방금 왁자지껄한 연예부 사무실로 들어온 여자 기자 한 명이 눈에 띈다. 무슨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상기된 얼굴. 그런 그녀가.
-덜컥!
정신없는 기자들을 지나 대뜸 편집장실에 들어섰다. 이에 편집장이 길쭉한 한숨을 뱉었다.
“하- 뭐야 임마. 노크는 국 끓여 먹었냐??!”
그러거나 말거나 책상에 앉은 턱살 나온 편집장에게 여자 기자가 바로 말했다. 톤이 의미심장하다.
“국장님 강우진 1년 계약이라는데요?”
바로 미간을 좁히는 편집장.
“···강우진? 1년 계약이라니 그게 뭔 개똥 같은 소리여?”
곧 편집장에게 다가선 여자 기자가 목소리를 죽였다.
“bw 엔터랑 강우진이 1년짜리 계약이라고요.”< 경신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