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신 (7) >
“···음? 우진씨 방금 뭐라고 그랬지?”
강우진의 칼 같은 거절에 핸드폰 너머 서구섭 대표의 목소리가 식었다. 허나 우진의 대답은 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통화가 힘듭니다.”
서구섭 대표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런 어투였다.
“강우진씨 내 이름 정확히 들었습니까? GGO 엔터인 것도?”
“잘 들립니다.”
“그런데?”
그런데는 뭔 그런데야. 작게 한숨을 내쉬는 강우진. 마음 같아서는 보이스피싱을 취급하며 냅다 끊고 싶었지만 정글 같은 연예계선 소문이 빛보다 빠르다. 괜한 잡소리가 도는 건 사양이었다. 최성건도 조심하라고 일렀었고.
‘GGO 엔터 많이 들어 봤지. 뭐 여튼 적당히 끊자.’
대기업 엔터면 입김이 더 세겠지. 어느새 우진은 나름 본인의 이미지까지 챙기는 수준까지 올랐다.
곧 강우진이 낮은 톤으로 다시 말했다.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요.”
“아- 그래요? 그럼 짧게 용건만 해야겠구만. 1년 계약 소식을 들었어요 그거 관련해서 우리 GGO 엔터가 관심이 상당히 깊어요.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은데.”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습니다.”
잘하면 내년까지도.
“···힘들다?”
“일본 스케줄도 포함돼서요.”
“아아 ‘낯기생’?”
아쉬우면서도 묘한 숨을 뱉은 핸드폰 너머 서구섭 대표가 대뜸 웃었다.
“하하 좋아요 그럼 그거 다녀와서 최대한 빨리 봅시다. 우리가 ‘미장센 영화제’로 시작은 별로였어도 비즈니스로 보면 인연으로 봐야지.”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기다리지.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우린 우진씨가 원하는 조건 다 들어줄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뚝.
통화가 끊기고 나서야 강우진은 상대인 서구섭 대표가 누군지 명확히 생각났다. 힌트는 ‘미장센 영화제’. 뭐 얼굴은 희미하지만 ‘미장센 영화제’에서 스치기도 했었다. ‘흥신소’로 이미지 세탁을 하려던 몰락한 탑배우 박정혁도 떠올랐다.
“내가 끼면서 판이 엎어졌었나?”
하지만 우진은 딱히 길게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이 연예계가 왜 정글이라 부르는지 조금은 이해했다. 과거엔 공격하며 얼굴을 붉혔지만 지금은 친구마냥 하하하 웃어준다.
여긴 모든 관계가 비즈니스로 엮이는 느낌이 조금은 별로인 강우진이었다.
‘어쩌겠냐 적응해야겠지.’
속으로 읊조린 그가 방금 우수수 연락 온 엔터들에게 적당히 답장을 보냈다. 내용은 서구섭 대표에게 한 것과 비슷했다. 굳이 미운털 박힐 이유는 없으니 예의는 차려둔다. 그렇게 핸드폰을 내린 강우진이 짧은 순간 공상에 빠졌다.
“흠-”
뭐랄까 아주 예전 ‘한량’의 리딩날 많은 명함을 받았던 때와 현재는 취급이 판이했다. 우진의 계약 건이 기사로 터져대는 것이 그랬고 GGO 엔터 등의 내로라하는 엔터들이 직접 연락 오는 것도.
심지어 모두 대표가 직접 움직였다.
‘명함 받고 그럴 땐 높아 봐야 실장급이었는데.’
그만큼 배우판에서 강우진의 위치가 상당히 높다는 걸 뜻했다. 즉 허투루 생각할 수 없다. 향후 몇 년을 책임질 계약이니까. 덕분에 알맹이가 초짜인 강우진은 나름의 공부를 해왔다.
자기 전이나 쉬는 날 등등.
주로 혼자 있을 때 현재의 계약서를 몇 번이고 검토했고 인터넷으로 여러 탑배우들의 조건들을 확인하기도 했다.
추가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
지금까지 이룬 것 또는 앞으로 해낼 것들을 파악해 정리해뒀다. 하지만 역시 어렵다. 해봤자 계약 한 번 해본 이제 1년 차인 그가 빠삭하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했다.
다만 강우진은 한 가지는 확실히 하고자 마음먹었다.
‘아 이건 좀 오반데? 싶을 정도까지 질러보자.’
계약에도 컨셉질을 포함하기로 한 것. 이미 강우진의 캐릭터야 확고하니 시원하게 불러도 상대는 의아해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적당 값을 도출하겠다는 설계.
“훗 나쁘지 않아.”
자아도취에 빠졌던 강우진을 멈칫하게 한 것은.
-드르륵.
승합차의 차 문이 열려서였다. 꽁지머리 최성건이 엄지로 뒤쪽을 가리킨다.
“스탠바이란다! 가자 우진아.”
“네 대표님.”
군복 입은 강우진이 승합차에서 묵묵하게 내렸다. 그러면서도 옆에 선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 최성건을 힐끔했다.
‘흠- 역시 엔터들한테 연락 온 거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지?’
점심 무렵 공중파 SBC.
여러 히트작의 포스터가 걸린 복도. 그 끝에 ‘프로파일러 한량’도 눈에 띈다. 최근에 추가됐는지 포스터 상태가 매우 깨끗했고 포스터들을 지나 보이는 유리문 안 대회의실엔 많은 인물들에 모여 있었다.
대체로 나이가 많아 보이는 구성.
다만 SBC 간부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연예계와 관련된 각계각층의 걸물들. 이유야 간단했다. 이들은 이제 두 달도 안 남은 SBC 연기대상의 ‘심사위원단’이었으니까.
분위기는 엄숙했다.
커다란 ㅁ자 책상에 둘러앉은 인물들 앞에는 태블릿이나 종이들이 넘쳐났다. 올해 확정된 수상의 종류와 SBC 작품들 그 작품을 빛내준 배우들이 삽입됐다. 그것을 매우 심도있게 보는 심사위원단.
재밌는 것은.
“흠- 역시나 올해는 ‘프로파일러 한량’이 강세네요.”
작품도 수상 후보에도 ‘프로파일러 한량’의 배우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 자연스러운 그림이긴 했다.
“한량이 시청률부터 대중성 작품성 연기 등 전부를 다 잡았으니까 뭐.”
“배우들 연기력도 칭찬받아 마땅했는데 워낙 시청률이 잘 나와서 후보에 한량 배우들 없으면 시청자들이 들고일어날 겁니다.”
“어후- 올해는 좀 논란 없이 끝냈으면 싶어요.”
“동감이네.”
이때 좁은 안경을 추겨 올리던 남자가 끼었다. 드라마국의 본부장이었다.
“신인상 말입니다. 올해는 쪼개기가 애매해요.”
“아- 강우진 때문인가?”
“맞아요. 다른 신인 후보들이 강우진이랑 차이가 너무 납니다.”
“흠 아무래도 그렇지.”
여럿이 동의한다. 매년 연기대상의 신인상은 많은 신예들이 상을 받아왔다. 남녀 포함해서 최소 4명. 근데 올해는 강우진의 강세가 너무 드셌다. 같은 신인상인데 배우의 격차가 심한 건 무조건 논란으로 터지게 된다.
다년간 쌓인 데이터니 확실했고.
“그럼 올해는 신인상은 단독으로 가야겠구만.”
“대신에 원래 신인상 급인 친구들은 다른 쪽으로 돌려야죠 씬스틸러 상이나.”
“음. 다들 괜찮긴 했어요 강우진이 너무 막강해서 그런 거지.”
이때 중년 여자 한 명이 끼었다.
“신인상이라- 근데 강우진을 신인상 후보에만 넣는 건 좀 약하지 않아요?”
한편 bw 엔터.
모든 팀이 정신없다. 홍보팀은 미팅룸에서 열띤 회의 중이었고 다른 팀들 역시 전화를 받거나 노트북을 때려대기 바빴다. 소속 배우는 고작 둘이지만 그 둘의 위세가 너무 대단했으니까.
특히 강우진.
더군다나 강우진의 1년 계약설 때문에 bw 엔터의 사내 전화는 쉴 시간이 없었다.
-♬♪
정말 미친 듯이 울려댄다. 그런 수십 직원들 사이 매니지먼트 팀의 한 남자 직원이 방금 정리한 투명 파일을 집어선 자리서 일어났다. 그의 목적지는 매니지팀 팀장이었고.
“팀장님 말씀하셨던 우진씨 올해 시상식 관련 정리한 겁니다. 혜연씨 거는 어제 드렸고.”
“아아 오케이. 지금까지 우진씨한테는 어디어디 왔어?”
“예상한 대로 섭외 자체는 청룡 대종상 공중파 3사 다 왔습니다. 수상 후보 확정은 영화제 쪽만.”
고개 끄덕인 팀장이 투명 파일을 펼쳤다. 내용엔 이래저래 많은 글자가 적혔으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청룡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보내드립니다. (최종/ 강우진씨 후보 포함)
-신인남우상 후보(마약상/ 강우진)
-인기스타상 후보(강우진)
청룡 대종상 영화제가 선정한 강우진의 가치랄까?
-대종상 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후보 확정 보내드립니다(강우진씨)
-신인남자배우상 후보(마약상 강우진)
-뉴웨이브상 후보(강우진)
곧 투명 파일을 내려보던 매니지팀 팀장이 황당함과 더불어.
“1년 차 배우 섭외 건이 맞나 이거? 이런 그림은 또 처음 보네.”
질린다는 듯한 미소가 짙어졌다.
“데뷔 첫해에 이게 가능한 그림이냐?”
같은 날 늦은 오후 다시 부여.
해가 지고 있음에도 ‘실종의 섬’의 대형 세트 단지의 열기는 뜨거웠다. 권기택 감독 포함 백여 명 스탭들은 촬영에 혼신을 다했으며 배우들 역시 그에 상응하는 열연을 펼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더운 날씨가 조금 쌀쌀해진 것?
덕분에 텁텁한 군복을 입는 것이 나름 편해졌다.
어쨌든 외부 주차장에 세워진 수많은 차 중 익숙한 승합차로 군복 입은 남자가 다가간다. 뻐근한지 목을 이리저리 꺾던 강우진이었다.
“후-”
작게 숨을 뱉은 그가 차 문을 열곤 승합차에 올랐다. 내내 촬영을 이어오던 그에게 약 1시간의 대기가 부여됐으니까. 30분 이상의 대기가 걸리면 촬영장에서 기다리긴 버겁다. 따라서 강우진은 차에서 쉴 요량으로 넘어온 것이었고 이 같은 모습은 나름대로 익숙한 그였다.
곧.
-스윽.
좌석에 등을 붙인 강우진이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특이한 건.
‘나름 나쁘진 않네. 진짜 체력이 늘었나?’
종일 촬영을 했음에도 강우진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인다는 것. 분명 과거의 그와 비교하면 이쪽이 과하게 쌩쌩했다. 뭐 반복되는 촬영과 연기에 컨셉질이 아닌 실제 체력이 늘었겠지. 적당히 답을 내린 우진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뭐가 많이도 왔네.”
부재중 전화 문자 톡들. 촬영 중 쌓인 연락만 수십이 넘었다. 상대도 각양각색. 당연히 여러 엔터들도 보였고 불알친구 등의 지인들도 포함됐다. 그중 엄마의 톡에서 멈춘 강우진.
-오마니: 우진아 일본 언제 간다고 했지?
‘낯기생’의 대본리딩을 상기한 우진이 엄마에게 답장을 보낸 뒤 오른쪽 자리에 쌓인 여러 책들에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대본과 시나리오들. 체력도 남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던 그가 손을 움직인다.
‘거머리’를 봐도 됐지만 지금 강우진이 집은 것은 ‘낯기생’ 시나리오였다.
이미 몇 번 완독했고 리딩(경험)도 했으나 반복하는 것은 필요했다. 그만큼 생생해지니까. 곧 대본리딩이기도 하니 복습해두는 것도 좋겠지. 그렇게 강우진이 ‘낯기생’ 시나리오를 펼쳤다.
전부 일본어였다.
한글로 번역된 시나리오도 받았지만 강우진은 원문 시나리오를 고집했다. 작가 감독의 의중을 확실히 보려면 원문을 익혀두는 게 맞으니까.
‘번역본이랑 비교하니까 다른 점이 확실히 보이기도 했고.’
사실 이미 원어민급 일본어를 가진 강우진에겐 어느 쪽이든 별 상관없긴 했다. 이내 집중해서 시나리오를 읽어나가는 강우진.
-팔락 팔락.
일본의 초인기 작가 타키카와 아카리의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은 복수극이다. 물론 쿄타로 감독이 각색한 영화 시나리오도 마찬가지. 그러나 복수에 치열함은 빠졌다. 격정적이지 않았다.
점잖고 정적이며 처연한 복수.
하지만 분명 자비는 없다. 무던한 처절함이 돋보인다. 그것을 이끄는 것이 강우진이 맡은 ‘이요타 키요시 역’이었다. ‘이요타 키요시’는 재일교포였다.
이 설정은 원작과 달랐다.
영화로 넘어오면서 바뀐 설정. 그러나 ‘이요타 키요시’를 맡는 것이 한국 배우라 잘 들어맞았다. 모두 의도된 설정이니 당연했다. 그런 ‘낯기생’의 시작은 한 고등학교의 ‘이지메’부터였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이나 일본이나 뿌리뽑히지 않는 역겨운 문제.
그 ‘이지메’의 당사자는 ‘이요타 키요시’였다.
시작은 매우 단순한 것부터였다. 그저 키요시가 음침해서 또는 기분 나쁜 얼굴이라서. 아주 시시콜콜한 이유가 커지고 결과적으로는 ‘재일교포’까지 들먹이며 키요시는 학교 전체로 외톨이가 된다.
허나 키요시는 아무렇지 않았다.
키요시는 책상이 없어지거나 신발장에 쓰레기가 가득 차도 갑작스런 폭행이나 체육복·교복이 없어져도 매점에서 파는 우유팩을 자신에게 던져도 돈을 뺏겨도.
그 어떤 괴롭힘이 있어도 반응이 없었다.
동요하는 기색조차 없다.
얼굴엔 표정 감정 생각 고통이 보이지 않았다. 키요시의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고장 난 로봇 같았다.
그런 키요시의 반응이 이지메를 더 키웠다.
학교에서 키요시는 가축과도 같은 취급이었다. 그럼에도 그 가축은 키요시는 그저 입을 다물고 살았다. 학교도 빠짐없이 등교했다. 악인들은 슬슬 이지메를 즐기기 시작했다. 도가 심해졌다.
여기서 참다못한 여학생 한 명이 등장했다.
그녀의 이름은 ‘미사키 토카’였다. 토카는 전학생이었고 학교의 분위기를 보곤 무슨 용기에선지 키요시를 감쌌다. 모두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그만하라고. 그리곤 키요시에게 물었다. 괜찮냐고. 키요시로서는 난생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왜일까. 저 여자는 왜 나를 감싸지?
여전히 무던한 키요시였지만 그는 토카에게 관심을 가졌다. 이성적인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저 인간으로서의 존경심에 가깝다. 관찰하며 지켜본다. 다행히 그녀의 등장으로 키요시에 가해지는 이지메가 잠시잠깐 멈췄다.
덕분에 키요시는 토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점심을 같이 먹고 대화도 나눴다. 그녀는 사람을 사람으로 봐준다. 토카와 있으면 황폐한 마음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는 키요시였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지메는 멈춘 게 아니었으니까. 키요시도 모르게 타겟이 토카로 바뀌어 있었다. 이를 키요시가 알게 된 건 며칠간 그녀가 학교에 오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가 학교에 다시 왔을 때 얼굴에 흉터가 보였다.
다만 토카는 키요시처럼 덤덤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마지막을 본 것 역시 키요시였다. 물론 강우진은 토카의 끝을 글이 아닌 두 눈으로 생생하게 겪었다.
-[7/시나리오(제목: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S+급]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영화 시나리오입니다. 100% 리딩이 가능합니다.]
주인공 키요시가 되어.
[“‘A:이요타 키요시’ 리딩 준비 중···”]
[“···준비 완료. 완성도가 매우 높은 대본이나 시나리오입니다. 구현도는 100%입니다. 리딩을 시작합니다.”]
강우진의 시선이 ‘이요타 키요시’와 공유됐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애매한 것이 퍼진다. 마음이 말랐다. 심정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볼을 스치는 바람과 내리쬐는 햇볕은 따사롭다.
저 멀리 벚꽃이 흩날린다.
-사아.
봄인가? 표정 없는 강우진의 키요시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가 움직인다. 우진이 서 있는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그리고 저 앞의 난간에 교복 치마를 펄럭이는 여자가 보인다. 단발에 적당한 키.
‘미사키 토카’였다.
그녀는 아찔한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정면 어딘가를 응시 중이었다. 위험하다. 그러나 강우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빳빳한 얼굴로 토카의 뒷모습을 볼 뿐. 동시에 그녀의 교복 상의를 파악한다. 왜 단추가 풀렸는지 왜 먼지가 저리 많이 묻었는지 어째서 상처가 더 늘었는지.
이때.
“키요시.”
정면을 보던 토카가 고개를 돌려 키요시에게 말을 걸었다. 온화하지만 미련이 없는 얼굴.
“널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아까부터 같은 자세인 강우진이 감정 없는 투로 답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야.”
하지만 난간에서 내려올 기미가 없던 토카가 우진에게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사라졌다.
허나.
“···”
강우진의 표정 없는 얼굴을 그대로였다. 그저 지금은 아무도 없는 난간을 하염없이 본다. 흥분은커녕 호흡도 일정했다.
그리곤.
-스윽.
가만히 선 채로 오른손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접는다. 나지막이 이름을 읊조린다. 한 명 두 명 세 명···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같다. 그때였다.
-타닷!
누군가 옥상으로 뛰어 올라왔다. 얼굴이 뾰족한 남학생이었다. 방금 말하던 리스트에 포함된. 이어 그는 옥상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옆에 선 키요시에게 물었다.
“봤냐?”
“응.”
“크큭 좀 더 빨리 올걸.”
웃음 짓던 남학생이 성큼성큼 걸어가 좀 전까지 토카가 있던 난간에 배를 걸친다. 그리곤 아래를 슬쩍 내려봤고.
“헤- 대단하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어떻겍! 끄악!!!”
순간 남학생이 기묘한 괴성을 지르며 난간 아래로 훅 자취를 감췄다. 저 밑에서 재차 들리는 비명. 그것을 행한 강우진이 표정 없는 얼굴로 천천히 옥상을 나섰다. 계단에선 토카에게 뒤늦은 대답을 하기도 했다.
“난 후회돼.”
곧 강우진이 펼친 열 손가락 중 오른손 엄지를 접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무던한 어투였다.
“일단 한 명.”< 경신 (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