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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MMGA Chapter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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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3) >

히데키 회장의 인생을 통틀어 대본리딩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목적은 강우진을 보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손주에게 생기와 생명을 되찾아 줬으며 꿈을 다시 꾸게 해준 한국의 배우. 은혜를 입었다. 그 역시 힘든 삶을 살아왔겠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히데키 회장의 마음이었다.

동질감과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강우진. 히데키 회장이 이 홀에서 우진을 처음 봤을 때의 감상은 이빨을 감춘 맹수였다. 겉으로는 딴딴하지만 묘한 여유와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었다. 눈동자엔 힘이 가득했고 음성에는 강단이 섞였었다.

과연 강우진은 범상치 않았다.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인 히데키 회장이었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에너지를 내뿜는 강우진을 단박에 알아봤다. 저 나잇대에선 보기 힘든 아우라. 그만큼 강우진의 컨셉질이 대단함을 뜻했다.

어쨌든.

‘···저게 뭔가.’

대본리딩이 시작되고 우진이 연기에 돌입하는 걸 보는 순간 팔짱 낀 히데키 회장은 흰 털이 자욱한 눈썹을 꿈틀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 저런 걸 연기라 부르는 건가?’

평생 연기에 신경을 써보지 않은 사업 말고는 관심이 없던 히데키 회장이 보기에도 강우진의 변화는 명백했다.

‘가득했던 것들이 전부 빠졌어.’

그를 휘감고 있던 아우라는 온데간데없어졌다. 지금 키요시를 내보이는 강우진은 빈털터리였다. 텅 비어있다. 눈이 목소리가 움직임이 생각이. 좀 전까지 꽉 차 있던 것을 어찌 저리 한순간에 비워버릴 수 있는 거지? 히데키 회장은 점차 강우진의 연기에 집중했다. 눈을 떼지 못했다.

배우란 건 원래 다 저 정도인가?

하지만 리딩이 거듭될수록 강우진의 연기가 서사를 쌓아갈수록.

“널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점심 먹을 시간이야.”

히데키 회장은 더 선명히 알아차렸다. 그만이 특별하다는 것을. 연기를 펼치는 우진의 주변엔 일본의 내로라하는 배우가 많다. 그러나 강우진과 같다고 보기 힘들었다.

‘다른 배우들에겐 분명 흉내의 냄새가 있어. 허나 강우진은 보여야 할 간극이 없다.’

우진만 유별났다. 다른 배우들은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강우진은 여기서 또 다른 인생을 보이고 있었다. 최소 히데키 회장의 눈엔 그리 보였다.

그는 다시 한번 스스로 물었다.

저건 연기인가?

아니다. 저건 연기가 아니었다. 사람이 바뀌었다. 히데키 회장은 강우진의 눈에서 불꽃을 봤었다. 허나 지금의 강우진. 아니 키요시는 물이었다. 무색무취. 어떠한 감정도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존재.

‘그저 흐르고 있는 게야.’

순간 히데키 회장은 강우진의 모습에서 어렴풋 과거가 떠올랐다. 자신의 것이 아닌 손주의 것. 생기와 생명을 잃고 오직 숨만 쉬던 눈이 죽어버렸었던 손주의 모습. 그래 그것과 유사했다.

곧 히데키 회장이.

-스윽.

가까스로 우진에게 붙었던 시선을 움직였다. 자신의 주변 백여 명의 인간들 수십 배우들 쿄타로 감독과 아카리 작가까지. 모두 우진을 보고 있었다. 그의 존재감은 특출났다. 눈길을 사로잡는 압도가 있다.

사람을 홀리며 상황을 조율하는 기술. 매력 그 이상의 것.

상당히 귀한 능력에 속한다.

이때.

“지금은 안 돼.”

강우진이 독백을 시작했다. 토카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 자신이 ‘낯선 이’가 되어 ‘기괴한 희생’을 하고자 리스트를 작성한다.

“잊혀야 해.”

강우진은 키요시는 끝자리의 토카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없어졌으니까. 그리고 그의 시선은 특정되지 않은 허공 어딘가를 표류했다. 표정에 실린 것은 없다. 그러나 입은 쉬지 않는다. 대사의 리듬이 일정하다. 그는 미동조차 없는 수면 위를 가만히 떠 있는 듯했다.

이어.

“숙제.”

황폐한 키요시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목적지를 찾아 움직인다. 정면의 배우들 몇몇에서 잠시간 표류한다. 9명. 특정된 9명의 리스트를 확인한 것이었다. 지금 키요시와 눈이 마주친 배우들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성이나 본능도 보이지 않아.’

그렇기에 더 공포스럽다. 막연하게 두렵다. 이유나 결과는 없다. 쾌감? 쾌락? 의도? 증오? 광폭? 전부 아니다. 감정이 섞인 행동은 없다. 시스템. 그래 시스템이다. 그에겐 오직 할 일만이 있을 뿐.

그런 강우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쿄타로 감독이 지문을 읊었다.

“키요시 부산스런 교실의 자리에 앉아 정면 칠판을 보고 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얼굴이다.”

시나리오상 학교에서 학생 둘이 죽어 나간 후 세상이 발칵 뒤집혔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처럼 학교는 정상화를 위해 애썼다. 물론 전교생의 정신은 온전치 않았다.

오직 키요시의 시간만이 멈췄다.

토카가 난간에 걸쳐 앉아 미소를 보이던 그 순간 그대로.

다만 학교에 변화가 있긴 했다. 키요시가 작성한 리스트의 9명 중 몇몇은 전학을 갔고 몇몇은 자퇴를 했다.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몇몇도 있었다.

키요시는 괘념치 않았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건.

“공부.”

지식을 쌓는 것이었다. 장기전을 봐야 했으니까. 9명의 기본적인 정보는 있다. 그간 쌓아온 데이터와 학생 기록부까지. 여기서부터 키요시는 모자란 것을 채워나가야 했다.

쿄타로 감독이 지문으로 시간을 보낸다.

1년 2년 3년. 그 사이 강우진의 마음가짐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통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조금만 더 이제 곧.’

그는 세상에서 잊히고 있었으나 이미 계획은 실행된 참이었다. 뒤로 4년 그리고 5년. 여기서부터 씬은 쿄타로 감독의 지문보다 우진의 독백이 늘어난다. 장면은 상대를 보여주지만 밑으로는 키요시의 목소리가 깔리니까.

홀에 있는 모두가 ‘낯선 이’를 응시한다.

강우진은 표정 없는 얼굴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자세는 빳빳하다. 눈길과 호흡은 일정하며 손에 떨림과 심장 박동은 차분하다. 그러나 할 것은 분명했다. 그의 모습은 차분한 광기를 연상케 한다. 우진의 머릿속은 계산으로 가득 찼다.

‘시작하자 모두와 세상은 나를 잊었어.’

형체를 알 수 없는 목적이 꿈틀했다. 그리곤 강우진의 밋밋한 입에서 대사가 뱉어졌다. 독백이었다.

“5년. 나는 부족한 것을 채우는데 5년을 할애했다. 그리고 지금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희생을 시작하려 한다. 9명 중 한 명. 코나카야마 긴조.”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리듬이 일정한 음성. 이게 사람의 목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담긴 것이 없다. 누구보다 우진의 주변에 앉은 배우들이 가장 적확하게 느끼고 있었고.

‘일본어 연기가 자연스러운 건 둘째 치고···저런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처음 보는 연기법. 애초부터 감정 없이 살던 사람처럼- 그런데 왜 이렇게나 잘 들리지?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는데 힘이 좋아.’

배우 중 ‘코나카야마 긴조’를 맡은 이목구비가 완벽하며 꽃미남 스타일인 배우를 지긋이 보는 강우진. 잠시간 숨을 고른다. 묵묵히 시선을 유지한다. 멀리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모두에게 피력한다. 독백이 이어진 건 그다음.

“내가 ‘전조 없는 재난의 재시작’으로 ‘코나카야마 긴조’를 선택한 건 그의 외모가 유려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화려하며 남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잘 아는 남자다. 물론 그 9명 중에서 나와 접점이 가장 멀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점찍었다. ‘코나카야마 긴조’의 기괴한 희생은 단숨에 눈길을 끌겠지만 나에게 해당하는 관심은 없을 것이다.”

꽤 긴 대사였다. 허나 강우진은 흐트러짐 없이 튀는 것 없이 일직선으로 독백을 마쳤다. 점점 강우진의 주변엔 몽환적인 공기가 감돌았다. 이에 코끝에 걸친 안경으로 강우진을 보던 아카리 작가는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을 작품을 썼을 때의 키요시를 내 눈으로 보고 있어. 두렵지만 욕심이 나. 그는 키요시의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이때 강우진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시늉을 했다. 과거 5년 전 토카의 책상에서 적었던 9명의 명단을 꺼낸 것이었다.

“‘코나카야마 긴조’는 결혼했다. 가정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를 좋아한다. 사람의 버릇은 무섭도록 치밀하게 짜여있다. 그렇기에 긴조에겐 버릇의 흔적이 남았다. 성매매 원조교제 불륜. 겉으로는 가정적이나 속은 곯아 터지고 있어. 가정엔 출장이라 말하고 그는 성적인 범죄를 일삼는다. 치부가 많다.”

끝없는 설계를 읊조리던 우진이 작게 고개를 꺾었다. 텅 비어있는 표정은 그대로였고 공허한 눈빛이 건너편 일본 배우에게 서린다.

“어떠한 형태의 ‘기괴한 희생’이 좋겠어? 긴조 너는 폭죽이 돼야만 해. 그래서 화려한 너를 골랐지. 산재한 파편이 나머지 8명에게 튀어야 하니까. 일단 너와 가정의 갈등부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네 아내는 내 할 일에 포함돼 있지 않아.”

곧 약간 멍하게 있던 일본 배우. 아니 ‘코나카야마 긴조’를 맡은 야스타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강우진의 독백이 끝난 뒤 자신의 일상 컷이 나오며 대사를 쳐야 했으니까.

그가 혼잣말처럼 정해진 대사를 뱉는다. 회사에서의 모습.

이쯤 진중한 히데키 회장은 느낄 수 있었다.

‘확연히 다르군. 연기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두 배우의 연기는 격이 달라. 저 야스타 배우는 정형화된 연기를 하고 있어.’

강우진과 일본 탑배우들의 격차가 꽤 심하다는 것을. 비교 대상이 없다면 모를까 구심점이 되는 키요시의 우진이 있다 보니 선명하게 보이며 들렸다. 지금 일본 배우들은 한국의 신인배우에게 밀린다.

동시에 강우진의 뒤쪽에 앉은 최성건 역시 알아차렸다.

‘연기 티가 많이 나 일본 배우들은 나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냄새가 심해. 과잉된 감정 격앙된 대사 힘 들어간 시선 처리.’

왜 쿄타로 감독이 강우진에게 매달렸는지 일본의 배우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째서 일본의 컨텐츠 시장을 헤집고 싶어하는지.

‘같이 있었을 땐 못 느꼈겠지만 눈앞에 우진이가 저리 날뛰고 있으면 싫어도 알게 되지. 부족하다는 것을.’

일본의 거장 쿄타로 감독은 강우진이라는 배우로 모든 일본 배우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거였다. 너희들은 고여있다. 그러니 보고 깨우치며 배웠으면 한다.

실제 쿄타로 감독은 충격받은 일본 배우들을 훑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이만한 배우가 몇 달 전만 해도 홀로 배우며 기나긴 무명을 지내왔고 이제사 빛을 보고 있어. 자네들은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해.’

틈새 착각은 보너스.

그렇게.

“페이드 아웃.”

시나리오상 초중반 리딩쯤 쿄타로 감독이 뭉근한 리딩장 전체로 읊조렸다.

“잠시 쉬도록 하죠.”

몇십 분 후.

‘낯기생’의 대본리딩 중 쉬는 시간은 약 20분이 주어졌다. 허나 배우들 누구도 자리를 뜨진 않았다. 강우진도 마찬가지. 분위기가 요상했다. 배우들 대부분은 시나리오를 보는 척하면서도 무던한 얼굴인 강우진을 힐끔댔다.

기자들이나 백여 명 스탭들은 수군대기 바빴다.

와중 꽁지머리 최성건은 홀의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표정이 진지했다.

“그렇습니까? 음- 알겠습니다. 메일로 보내주신 제안서 답변은 꼼꼼하게 확인해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예.”

-뚝.

통화를 마친 최성건이 핸드폰을 내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쯧.”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던 모양.

사실 지금 최성건이 통화한 상대는 bw 엔터의 확장을 위한 투자자였다. 퍽 예전부터 진행하던 프로젝트였고 최성건과 미팅한 투자자는 기업 포함 꽤 많았다. bw 엔터는 소형에 신생이지만 홍혜연이란 탑여배우 뭣보다 등장과 함께 미친 기세를 올리는 강우진이 있다.

덕분에 관심 가지는 투자자는 많았다.

최성건은 회사 확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작업을 수행해왔고 결과적으론 투자가 목전인 상황까지 끌어냈다.

다만 문제는.

‘죄다 주무르려고 하는군.’

가능성 큰 모든 투자자의 조건에 경영 간섭이 포함이라는 것. 물론 에둘러서 말하지만 파고들면 최성건을 바지사장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같았다. 시작부터 대놓고 간섭하진 않겠으나 조금씩 본색을 드러낼 것이 틀림없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연예계서 산전수전 다 겪은 최성건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도 넘쳐났다. 그러니 경영 간섭 쪽 조건은 지양해야 했으나 죄다 말만 조금씩 다를 뿐 원하는 것은 bw 엔터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후-”

고민이 깊어지는 최성건.

‘혜연이와 우진이. 둘을 담기엔 지금 bw 엔터는 너무 작아. 더욱 광활한 케어를 위해 확장은 필수고 계속해서 둘에게만 의지하는 건 안 돼. 신인 발굴도 필수.’

이때였다.

“실례합니다.”

올곧은 여자 목소리가 침투했다. 일본어였다. 살짝 움찔한 최성건이 고개를 돌렸다. 뒤쪽엔 긴 머리를 한 줄로 묶은 깔끔한 정장의 여자가 서 있었다. 히데키 회장의 비서실장 테츠가와 리리였다. 최성건도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 히데키 회장의 뒤에 서 있던 걸 봤었으니까.

이어 최성건이 작게 인사하며 어색한 일본어를 뱉었다.

“아- 말씀하세요.”

리리의 대답은 느리면서도 또박또박했다.

“잠시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저 말입니까?”

“예. 최성건 대표님 맞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어설프게나마 의사소통이 진행됐고 살짝 몸을 튼 리리가 공손한 손짓을 보였다. 따라오라는 것. 최성건은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일단은 그녀의 뒤를 따른다.

-스윽.

둘이 도착한 것은 ‘낯기생’ 대본리딩장을 스쳐 복도 끝에 있는 직원 전용 룸이었다. 앞서던 리리가 룸에 노트한 뒤 문을 열었다. 금세 룸의 내부가 최성건의 눈에 보였다. 룸은 직원용이라 그런지 사무실의 성격이 짙었다.

그중 중앙에 놓인 5인 소파.

“아.”

약간 눈이 커지는 최성건. 이유야 간단했다. 5인 소파 상석엔 눈썹에도 흰털이 자욱한 카시히 그룹의 총수 히데키 회장이 앉아 있었으니까. 그의 옆엔 정장 입은 남자도 함께였고 최성건을 안내한 리리가 히데키 회장의 옆 소파에 손짓했다.

“앉으세요.”

당황이 짙어진 최성건. 대뜸 일본의 재벌가 오너가 눈앞에 앉아 있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그는 최대한 유연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동시에 주름진 미소를 짓던 히데키 회장이 입을 열었다.

“인상적이더군요.”

까끌한 톤의 일본어. 그것을 최성건의 건너편 정장 입은 남자가 한국말로 통역한다. 곧 한국어도 괜찮겠다 싶은 최성건이 히데키 회장에게 되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강우진 배우. 좀 전의 봤던 연기들은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보는 것이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허허 내 손주 놈이 강우진씨의 흉내라도 내주면 좋겠다만.”

“예?”

“아닙니다. 그보다- 그렇지. 나는 강우진씨에게 가능성을 봤습니다. 연기도 그렇지만 그의 가치는 매우 높아요.”

여유롭게 읊조리던 히데키 회장이 리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녀가 준비해둔 투명 파일을 최성건에게 건넸다. 설명은 히데키 회장이 했다.

“제안입니다.”

“···어떤?”

“강우진 배우를 우리 카시히 그룹에서 섭외할까 해요. 계열사 몇 곳의 광고 모델로서.”

눈이 커진 최성건이 투명 파일을 펼쳤다. 한국어로 된 제안서. 대충 봐선 백화점 식품 등의 단어들이 보였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여러 종류였다. 뭐지? 최성건은 약간 의아했다. 일본에서 한국 연예인이 광고를 찍는 일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빈번한 건 또 아니었다.

거기다 제안 준 곳이 카시히 그룹이다.

뜬금없음이 정도가 심했다.

‘이게 대체 뭔···앞뒤 상황 없이 갑자기??’

히데키 회장은 오늘 강우진을 처음 봤을 텐데 이만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하도 난데없었기에 최성건은 잠시잠깐 사긴가? 싶기도 했다.

그 순간.

“며칠 전에 한국의 기사를 봤어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히데키 회장의 늙은 목소리가 이어졌고.

“강우진씨의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고 하던데. 이적하는 건가요?”

최성건은 히데키 회장이 강우진을 넘본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뭔가 연계된 에이전시가 분명 있을 테니까. 따라서 강하게 나가는 최성건.

“계약 기간 부분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적은 없을 겁니다.”

“···그럼 강우진씨는 계속해서 bw 엔터와 이어진다는 얘긴지요?”

“그렇습니다.”

대답을 들은 히데키 회장이 잠시간 최성건의 눈을 응시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그였으나 시선만큼은 역시 거물이었다. 그런 히데키 회장이 돌연 미소를 보이며.

“bw 엔터는 확장을 노린다고 들었어요.”

잔잔하지만 커다란 제안을 던졌다.

“내가 개인적으로 투자하고 싶은데 어떤가요?”< 낯선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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