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5) >
11월 17일 아침 강우진이 있는 곳은 도쿄에 있는 ‘퍼시픽 요코하마’라는 대형 복합 센터였다. 이곳에선 여러 가지 행사 등등이 열리며 현재 강우진의 팬 사인회로 대여한 곳은 내부의 컨벤션 홀.
크기는 적당했다.
중소형 정도의 넓이에 정면엔 무대가 있고 관객석이 마련된 느낌. 객석은 얼추 1500석으로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통은 기업의 발표나 각종 행사를 위해 이용되며 오늘 오전엔 강우진의 팬 사인회로 확정된 상태.
주체는 당연하겠지만 넷플렉스 재팬이었다.
이번 강우진의 일본 일정 중 확정된 것이었고 한량과 ‘남사친’의 인기가 이유긴 하다만 크게 보면 우진의 홍보와도 같았다. 한량과 ‘남사친’ 그리고 ‘아메토크 show!’ 등으로 일본에서 강우진의 인기는 드높아지는데 딱히 팬들과의 공식적인 소통이 없었으니까.
이번 팬 사인회가 어찌 보면 강우진이 첫 일본 팬 미팅이기도 했다.
따라서 넷플렉스 재팬은 이 팬 사인회를 진작에 대중들에게 알렸었다. 워낙 우진의 상승한 인기와 ‘낯기생’의 이슈가 한창일 때라 SNS 외로 퍼지는 건 삽시간.
덕분에.
『일본 온「강우진」 이벤트로 연 팬 사인회 티켓 몇 분 만에 매진』
애초 예정했던 300명의 사인회 신청자는 몇 분 만에 매진됐다. 그렇게 시작된 강우진의 첫 일본 팬 사인회였고 이미 한국에서 경험이 있는 우진은 300명 정도에 긴장하지 않았었다. 다만 타국의 팬들은 처음이기에 신기함과 떨림은 있었다.
허나.
“근데요 외부 광장엔 700명 넘게 몰렸다는데요?”
대기실에 있던 우진에게 한예정이 던진 소식은 퍽 당황스러움을 선사했다. 이미 컨벤션 홀에 300명이 자리를 잡았는데 ‘퍼시픽 요코하마’ 외부인 광장에 700명이 넘는 팬들이 더 있다? 아마 신청에서 탈락한 인원들이겠지.
그렇게 되면 몰린 팬들만 천 명이 넘는다.
수치로 보면 사인회를 넘어 거의 팬미팅에 가깝다. 이에 보던 태블릿을 내리던 우진의 근엄한 표정은 유지됐으나.
‘처 천명??!’
속으로는 악소리를 뱉었다. 300명 팬이 풀로 찬 건 이해됐지만 1000명 넘는 팬들이 올 정도라고?? 점차 흥분이 점철되던 강우진은 억지로 억누르며 한예정에게 낮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건데?”
파란 단발 한예정은 적당히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넷플렉스 재팬 직원들이 알아보러 나갔어요.”
“700명?”
“네. 근데 그것도 그냥 추측이고 아마 더 넘을 거예요. 저 여기 오기 전에 살짝 밖에 보고 왔는데 무슨 콘서트장 앞에 광장인 줄.”
“···”
“300명 선착순 신청에서 떨어진 팬들이 그냥 온 거 같아요.”
실제로 그랬다. 현재 커다란 ‘퍼시픽 요코하마’ 입구 앞의 광장은 인파가 미어터지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수백 팬들이 몰렸는데 나름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고 있다는 것. ㄹ자 형태로 저 끝까지 주르륵 이어졌다. 딱히 정해진 룰은 없으나 누군가 시작하니 모두가 동참한 듯.
대부분이 여자 팬들이지만 남자 팬도 종종 보였다.
700명? 아니 800명은 족히 넘는다. 핸드폰이나 액션캠을 든 인터넷 방송인 강우진의 포스터를 만들어온 팬 한글로 된 소형 현수막을 든 팬들도 보인다. 모습은 그야말로 각양각색.
그 사이 액션캠을 든 남자 스트리머가 어려 보이는 여자 무리에게 인터뷰 중이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오사카요!”
“헤에- 전부? 멀리서 왔네? 몇 살?”
“19살!”
“팬 사인회 신청 탈락했는데도 온 거죠?”
“네네 그냥- 강우진님 가실 때 잠깐이라도 보려구요!”
그랬다. 이들 모두는 그저 강우진의 퇴근 모습이라도 보려고 몰려든 것이었다. 사인회에 들어가면야 좋겠으나 힘들 것 같으니 잠시잠깐 강우진의 실물이라도 보고픈 마음이었다.
어쨌든.
“인원 파악됐어요??!”
“800명은 넘습니다!”
“일단 가드 분들 외부로 좀 보내세요!”
“네네!”
팬 사인회를 주체한 넷플렉스 재팬 직원들이 다급해졌다. 모두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으니까.
“와- 근데 어지간한 한국 아이돌급으로 팬들이 몰려버렸네요??”
“그러니까요. 당황스럽네.”
“확실히 강우진님 인기가 엄청 치솟긴 한 것 같아요.”
“일단 강우진씨 쪽이랑도 얘기를 해봐야겠어요.”
이 시각 우진은 컨벤션 홀에서 이미 팬 사인회를 시작한 참이었다. 관객석과 무대 앞으로 300명의 팬들이 대기 중이며 강우진은 무대 위 책상에 앉아 팬들에게 사인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물론 우진의 입에선 유창한 일본어가 뱉어지고 있다.
“안녕하세요.”
“와! 안녕하세요! 에에- 강우진님 진짜 멋있어요!”
“감사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요네츠 아키나요!”
“요네츠 아키나님.”
“저- 저! 성 빼고 이름 한 번만 불러주세요!”
“아키나님?”
“아키나!”
“아키나.”
“···네.”
홀려서 내려가는 여자 팬. 사인회 자체는 문제없이 진행됐다. 그것을 넷플렉스 재팬의 촬영팀이 찍고 있다. 너튜브 공식 채널에 올려야 했으니까. 초대된 기자들 너덧 명도 바쁘게 셔터를 눌러댔다.
이쯤 무대 옆쪽 꽁지머리 최성건에게 넷플렉스 재팬 팀장급 직원이 달려왔다.
“저 저기 죄송합니다!”
“음?”
곧 직원은 현재 외부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들었던 최성건이었다. 그런 그가 턱을 쓸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흠-”
사실 고민할 건 없긴 했다.
‘우리야 300명 사인회 소화하고 빠지면 되니까.’
예정된 시간은 얼추 2시간. 사인회를 마치면 퇴근하면서 밖에 있는 팬들에게 가볍게 인사만 해줘도 되고. 다만 최성건은 좀 아깝다는 판단이었다.
‘800명이 넘는다라- 무시할 수 없는 양인데. 다 합치면 천 명이 넘고.’
이미 강우진의 일본 두 번째 방문은 퍽 임팩이 컸으나 더 불어난들 나쁠 게 없다. 심지어 저 밖에 있는 팬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화력도 클 것. 일본의 SNS 너튜브 커뮤니티 등등. 저들이 시발점이 되면 강우진의 인지도는 더욱 단단해진다.
하지만 천 명 전부 사인해주는 건 무리다.
‘그래도 간단히 인사정돈 해줘도 문제 될 건 없어.’
인사 몇 마디 해봐야 몇 분이면 되니까.
‘미담까지 퍼져주면 금상첨화.’
곧 최성건이 넷플렉스 재팬 직원에게 기다리란 손짓을 보인 뒤.
-스윽.
한창 사인 중인 무대 위 강우진에게 붙었다. 진행이 잠시 멈췄고 최성건이 우진에게 귓속말로 현 상황과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뭐가 됐든 결정권은 강우진에게 있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냐?”
저는 상관없는데요? 속으로 답하던 우진은 진짜 뭐든 괜찮겠다 싶었다. 그저 알맹이가 소시민인 자신을 보러 우르르 와준 것이 고마울 뿐.
그러다 멈칫.
“아.”
우진이 어디선가 들었던 문구를 상기했다.
‘우리야 몇 분에서 몇십 분이지만 그 작은 액션은 스타를 보러 온 팬들에게 평생 간다 였나?’
아마 너튜브에서 얼핏 본 영상이었다. 팬 서비스의 중요성. 잘은 모르지만 이 상황에도 통용되는 게 아닐까? 이어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우진이 정면 관객석을 확인하면서도 낮게 말했다.
“대표님 이왕 이렇게 된 거면 제가 팬분들한테 ‘남사친’ OST를 불러주면 어떨까요.”
“어? 노래를?”
“예. 멀리서 오셨을 텐데 인사만 보여드리긴 좀 그렇고. 여기 컨벤션 홀 조건을 보면 노래가 제일 나을 것 같아서요. ‘남사친’ OST하고 제 너튜브 커버 곡 하나 해서 두 곡 정도면 되지 싶은데.”
“괜찮은데? 팬미팅 느낌으로 간다는 거지? 목 상태는?”
“두 곡 정도야 문제없습니다. 다만 사인회 신청으로 오신 300명과 차이는 있어야 하니까 팬 사인회는 다 끝난 다음에 외부 팬들을 불러야겠죠.”
“어어 그건 당연하고.”
“선물은 300명한테만 드리고요.”
여기서 말한 선물은 ‘남사친’ 포스터가 담긴 소형 액자였다. 강우진의 말로 계획이 금방 잡혔다.
“노래 두 곡이라- 얼추 30분 정도 딜레이 될 것 같은데 그러면 너가 밥을 차에서 먹어야 된다?”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최성건이 넷플렉스 재팬에게 의견을 전달했고 아무 문제 없다는 답변이 날아들었다. 강우진의 팬 사인회는 단박에 미니 팬미팅으로 변했다.
그리고
“헤에에에?!!”
“지 진짜요?!”
“꺄아아악!”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외부의 수백 팬들이 열광했다.
뒤로 약 한 시간 사인회를 마친 강우진은 핸드마이크를 든 채 무대 중앙에 섰다. 문제는.
‘···쎈척하면서 진행하긴 했는데 막상 서니까 심장 터질 것 같은디?? 어우.’
관객석에 몰린 천 명 넘는 팬들의 시선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는 것. 하지만 컨셉질 발동과 그간의 경험은 빈 깡통이 아니었다. 떨림을 애써 억누른 우진이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깔았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노래 두 곡을 불러드릴게요.”
금방 괴성과 비명이 쏟아졌다. 이 모든 걸 넷플렉스 재팬 촬영팀과 여러 기자들이 찍어댔다. 물론 천 명 넘는 팬들은 죄다 핸드폰을 머리 위로 들었다. 어느 각도에서든지 우진은 찍히고 있었고.
-♬♪
강우진이 부른 OST ‘남자사람친구’의 전주가 홀에 울려 퍼졌다. 이어 그의 수준급 보컬이 팬들의 귓속에 파고든다.
동시에 일본의 SNS 쪽으론.
[@__27GGGG__]
[(사진)난 이제 죽어도 괜찮아!! 난 정말 우진님 퇴근하는 모습만 잠깐 봐도 좋았는데….강우진님이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계셔….]
강우진의 미담이 번진다.
다음 날 18일. 늦은 점심쯤. 김포공항.
현재도 많은 이가 왕래하는 출국장에 대놓고 수십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급작스레 생겨난 분위기가 아니었다. 모인 기자들이 대화를 들어봐선.
“슬슬 나올 때 됐지?”
“어어 2시쯤 도착할 거야.”
이미 언론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있는 듯 보였다. 이에 주변 구경꾼들은 눈을 크게 떴다. 전부 신기한 듯 수십 기자들을 훑는다. 딱 봐도 잘나가는 연예인이 나올 거란 예측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 순간.
“어어! 강우진! 강우진씨!!”
기자들의 이구동성과 함께 출국장 쪽으로 번개가 쳤다. 아니 카메라 플래시였다. 나타난 연예인의 이름은 구경꾼들의 입에서 뱉어졌다.
“어어! 저기 강우진!”
“진짜??!”
“아 맞네! 강우진 일본 간다고 했었잖아?? 오늘 온 건 가봐!”
“가까이 가보자!”
일본 일정을 마친 강우진이 한국으로 돌아온 것. 출국장을 나오는 우진은 청재킷을 걸쳤고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그런 그와 수십 팀들이 우르르 움직였고 기자들이 쉴새 없이 그를 찍어댔다.
가히 탑배우 수준의 반응이었다.
특이한 것은.
-스윽.
공항을 빠져나가던 강우진이 로비의 어느 지점에 멈춰 선다는 것. 이유야 간단했다.
“강우진씨!! ‘낯기생’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습니까?!”
조촐하지만 수십 기자들과 작은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당연히 최성건이 준비한 자리였다. 너무 도망만 다니는 건 보기가 안 좋으니까. 거기다 일본과 한국 동시에 기사가 터져대는 것을 노린 것도 있었다.
어쨌든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지던 차에 한 기자의 외침이 우진의 귓가를 강타했다.
“오늘로 ‘마약상’이 700만 관객수를 달성했는데요!! 강우진씨에게도 러닝개런티가 있습니까??!”
같은 시각.
강우진이 한국에 도착했을 무렵.
“흠- 돌아왔나 보군.”
현 인터넷 상황을 핸드폰으로 보고 있는 안가복 감독. 그는 지금 어디론가 이동 중인 차 안이었다. 많은 이가 함께였다. 영화사 대표와 직원들. 이쯤 안가복 감독 핸드폰을 내리며 어제쯤을 상기했다.
일본에 있던 강우진이 전화를 했었으니까.
시작은 약간 고개를 갸웃한 안가복 감독부터.
“그래요 우진군. 납니다. 일본 도착한 소식을 들었어요.”
핸드폰 너머로 강우진의 낮은 음성이 들린다.
“네 감독님. 현재 일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거머리’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안가복 감독은 이미 최성건을 통해 우진의 합류 의사를 들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강우진이 따로 연락한 느낌이었다.
“허허 자네는 캐릭터가 중구난방이군.”
“그렇습니까?”
“뭔가- 계절감이 눈에 보일 정도로 확실해. 물론 매력을 말하는 거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해요. 참고로 오늘부로 ‘거머리’는 프리프로덕션을 시작했네.”
이쯤에서 다시금 차 안 현실로 돌아온 안가복 감독. 그런 그가 턱에 까끌하게 자란 흰 털을 쓸며 픽 웃었고.
“배포도 배폰데 묘한 부분에서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배우야. 영 특이해.”
운전 중인 직원에게 말했다.
“좀 빨리 가지.”
영화 ‘거머리’ 속력을 더욱 높이기 위함이었다.
한편 약간은 좁은 아파트의 거실.
턱 보기엔 일반적인 아파트였다. 허나 거실에 세팅된 가구들은 뭔가 가정집의 느낌이 아니었다. 허허벌판을 연상케 했으니까. 가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주방에 냉장고와 간단한 식탁 거실엔 보이는 거라곤 중앙에 2인 크기를 붙여 6인으로 만든 책상이 다였다.
공간은 생소하나 책상에 앉은 둘은 익숙했다.
“어 어떠세요? PD님??”
“···죽여요. 내 눈에는 그래.”
수줍은 최나나 작가와 턱수염 송만우 PD였다. 그런 둘 중 송만우 PD가 쥐었던 종이 뭉치 두 부를 겹쳐서는 읊조렸고.
“이 1 2화로 부딪혀 봅시다.”
“으- 네네!”
“각오하는 건 당연하고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는 말자고요. 솔직히 안 될 가능성이 크니까.”
“그렇···겠죠?”
송만우 PD의 얼굴이 흡사 전쟁을 앞둔 장수처럼 변했다.
“우진씨 몸값이 지금 최소로 잡아도 회당 4000이 넘어요.”< 낯선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