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값 (1) >
최나나 작가는 송만우 PD가 연출 총괄 겸 대표로 있는 DM프로덕션과 계약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녀는 박은미 작가 사단에서 독립했고 이 작업실은 DM프로덕션이 마련해준 곳. 현재는 최나나 작가와 송만우 PD가 한창 초반 대본 회의 중.
그런 최나나 작가가 강우진의 몸값을 듣자마자 동그란 안경 너머 두 눈을 크게 떴다.
“회 회당 4000···”
‘남사친’으로 입봉한 그녀로서는 어마어마한 금액. 반면 드라마판 거물인 송만우 PD에겐 그리 놀랄만한 액수도 아니었다.
“최솝니다 최소. 그러니까 4000은 깔고 가는 거고 거기에서부터 쇼부를 봐야 한다는 소리지.”
“아아- 그럼 막 5 6000도?”
“충분히 가능해요. ‘남사친’ 때보다 많이 올랐죠?”
“저···는 자세한 건 못 들었어요. 동춘 감독님이 알아서 하셔서.”
송만우 PD가 턱수염을 쓸며 등을 의자에 푹 기댔다. 그러면서 ‘프로파일러 한량’의 초반을 상기한다.
‘그때 우진씨 회당 출연료가 350. 지금은 6000도 넘나들 정도.’
황당하게 미소짓는 송만우 PD.
‘1년도 안 돼서 20배가 뛰었어.’
350 출연료도 쌩신인치고는 대단한 수치였으며 회당 4000에서 6000 정도의 출연료는 어지간한 A급 이상의 배우들 몸값이었다. 물론 현재 강우진의 기세만 보면 억대 출연료도 넘볼 수준이긴 했다. 허나 시장 가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나 경력이었다.
강우진은 아직 1년 차니까.
‘그래도 시장에서 평가하는 우진씨의 몸값은 이미 상식선을 넘었다.’
데뷔 1년이 채 넘지 못한 신인의 가치가 회당 육천까지 붙는 건 개소리에 가까웠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연예계선 존재치도 않았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걸 강우진이 해낸 셈이었고 유일무이했다. 한 획을 그었지만 앞으로 우진과 같은 인물이 나올 리는 없다.
애초 강우진의 필모 자체가 환상에 가까우니.
이어 작게 숨을 뱉던 송만우 PD가 최나나 작가의 대본 두 부를 내려보며 입을 열었다.
“6000만- 흠 우진씨를 잡으려면 맥시멈 7000까진 생각해 둬야 돼요.”
“···어 얼마요??”
“그것도 우진씨가 이걸 안 하면 거론할 필요도 없지. 뭐 제작비는 작가님이 걱정할 건 없어요. 이건 우리 DM프로덕션의 첫 작이고 자금은 빵빵해. 제작팀 꾸리는 것도 문제없어요. 이미 핵심 키스탭들은 섭외했으니까. 이 작품은 남주 원맨쇼. 그러니까 배우. 캐스팅보드만 잘 작성하면 돼요.”
“아.”
“괜찮아요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아. 알아본 바로 우진씨는 예능 제외 아직까진 ‘실종의 섬’이랑 ‘낯기생’까지니까.”
당연히 이들은 안가복 감독에 관한 것을 전혀 몰랐다. 즉 송만우 PD의 계산은 딱 안가복 감독의 전까지였다. 어쨌든 호리호리한 최나나 작가의 얼굴에 단숨에 긴장이 서렸다. 아니 부담감이랄까? 이를 눈치챈 송만우 PD가 미소에 여유를 묻히면서도.
“작가님은 딴 생각할 거 없어요. 그냥 대본에만 집중해주면 돼.”
눈동자엔 결단이 가득했다.
“나는 섭외에 목숨을 걸 테니까.”
뒤로.
김포공항에서 수십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친 강우진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승합차에서 핸드폰을 내려보고 있었다.
“···”
표정은 냉랭했다. 다만 내면에선 과한 어깨춤을 시전하고 있었다.
‘700만! 미쳤네? 700만 관객??!’
‘마약상’의 누적 관객수를 확인한 것. 일본에서도 언뜻 전해 듣긴 했었다. 600만을 가뿐히 넘겼다고. 허나 일본 쪽 스케줄이 정신없어서 관심을 두진 못했다. 허나 한국에 돌아오니 절절하게 느껴진다.
『[무비톡]설마설마했던 ‘마약상’ 700만 관객 돌파! 십수 년 유지되던 기록 깨졌다』
하반기 영화판에 ‘마약상’이 센세이션한 태풍을 선사했다는 것을. 그만큼 한국의 영화계가 유난을 떨고 있었으니까. 물론 ‘마약상’의 김도희 감독이나 영화사 등 역시 축포를 터트리고 있었다.
“감독님! 700만입니다 700만!!”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말이 700만이지 ‘청불’ 아니었으면 1000만도 가뿐했을 겁니다!”
이들이 켜놓은 박스오피스 결과에는 선명한 700만이 출력되고 있었고.
[일별 국내 박스오피스]
1. 마약상/ 개봉일: 10월 28일/ 관객수: 151257/ 스크린수: 1002 / 누적관객수: 7028995
영화계 언론은 이 최초의 기록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바빴다.
『[오늘의 연예가] ‘마약상’ 700만 돌파···역대 청불영화 1위 달성』
『국내 영화판을 ‘청불’ 마약상이 살렸다!』
최근 300만을 넘긴 인기작이 없을 만큼 가뭄이었던 영화판이었다. 그것을 ‘마약상’이 깨부수었나 봐도 무방했다. 새로 정립된 기록은 뉴스에도 소개됨은 물론 영화 관련 많은 프로와 평론가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그 사이 강우진의 언급이 빠질 리는 없었다.
『[스타톡]‘이상만’ 강우진 700만 관객의 최대 수혜자 되나?』
다만 아쉬운 것은 700만 관객을 달성한 ‘마약상’의 속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점. 이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었다. ‘마약상’이 아무리 한계를 깼다곤 해도 결국 끝은 있는 법이니까.
흐름과 분위기상 ‘마약상’의 기록은 800만까진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렇듯 영화 쪽 업계가 ‘마약상’의 얘기로 왁자지껄할 때쯤 강우진의 이름은 다른 곳에서도 펑펑 터지고 있었다. 오늘 일본에서 돌아왔으니 당연하긴 했다.
『[스타포토]일본 일정 마치고 돌아온 강우진 공항에 몰린 기자들과 인터뷰···‘낯기생’ 대본리딩 재미있었다/ 사진』
일본 거장 감독의 작품에 주연으로 발탁된 최초의 한국 신인배우. 막상 현실로서 목도하니 대중들이 재빨리 달라붙는다.
-크ㅋㅋㅋㅋㅋㅋㅋ국뽕오지넼ㅋㅋㅋㅋㅋㅋ
-강우진 혼자만 한국 배우라는 게 지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본 촬영 하러 가면 일본 배우들 싹 짓밟고 와라!!!
-근데 강우진이 도리어 발리면 우짬???
-↑ㅂㅅ아 한국 탑들도 씹어먹는데 고작 일본에 밀리겠냐??
-여기 국뽕 좀 역한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솔까 강우진 별론데 일본한테 밀리는 게 더 싫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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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만했다. 쿄타로 감독과 일본 탑배우들 사이 강우진이 선 그림은 생소했다. 그만큼 신박한 행보이며 지금껏 없던 일이니까.
뒤로 이틀.
20일 늦은 점심쯤. 부여.
‘실종의 섬’ 대형 세트 단지의 외부 우거진 숲속에서 권기택 감독의 나긋한 신호가 퍼졌다.
“컷 오케이.”
동시에 뭔가 지시를 받은 조감독의 외침이 터졌고.
“오케입니다!! 정비하고 10분 뒤에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멈췄던 수십 스탭들이 각자 할 일을 위해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간다. 촬영팀은 카메라 세팅을 만지고 조명팀과 미술팀은 다음 컷을 위해 권기태 감독과 촬영 콘티를 점검한다. 분장팀은 촬영존 안에 있는 류정민 등의 배우들에게 붙었다.
그중.
-스윽.
군복에 핏물이 잔뜩인 강우진은 자신이 자리로 빠지고 있었다. 다음 씬은 그가 포함되지 않는 컷이었으니까.
강우진은 어제쯤 ‘실종의 섬’ 촬영에 다시 합류했다. 약 3일간은 주변 숙소에서 출퇴근하며 촬영을 쳐낼 예정에 나머지 7일간은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다른 스케줄도 소화해야 하니까.
그래도 핵심은 ‘실종의 섬’ 촬영.
‘실종의 섬’ 측이 사정을 봐주는 만큼 강우진은 촬영에 더더욱 집중해야 했다. 다만 스탭들 사이에서는 우진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워낙 우진씨가 NG가 적어서 그런가? 촬영 스케줄이 쭉쭉 진행되네요.”
“희한하지? 보통 배우들이 사정상 빠졌다가 합류하면 감정선이 튀기 마련인데. 우진씨는 그런 게 전혀 없으니까.”
“다른 배우들이 NG가 더 많아요 내가 감독이라도 우진씨는 진짜 예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촬영터에서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은 강우진은.
‘숲속이라 그런가? 아니면 날씨가 추워져서? 어째 좀 쌀쌀한디.’
겨울로 바뀌는 계절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때.
“형님!”
어디선가 나타난 덩치 좋은 장수환이 강우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물하고 핸드폰이요!”
핸드폰과 생수통을 건네는 그. 우진은 시니컬한 톤으로 답한 뒤 생수통부터 땄다. 동시에 그의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는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가 슬슬 턱을 긁는다.
‘서구섭 대표. 아 맞다. 이 양반 까먹었어.’
강우진은 한국에 돌아와서 스카웃 관련으로 연락 왔던 엔터들에게 연락을 돌렸었다. 정확하게는 정중한 거절. 와중에 대형 GGO 엔터의 서구섭 대표를 빼먹은 것을 강우진이 인지했다.
뭐 어때. 전화 온 김에 지금 말하면 되겠지.
이어 그가 의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핸드폰 너머로 바로 들리는 불독 서구섭 대표의 시원한 음성.
“허이구- 우진씨. 우리 만나야죠. 약속이 있잖아? 하하 기다리다 지쳐서 먼저 전화했습니다.”
“예.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던 참입니다.”
“그래요? 좋아 그럼 언제 보면 되겠어요. 피차 바쁘니까 최대한 빨리 만났으면 하는데.”
“그 건 말입니다만. 죄송합니다. 이미 결정된 상태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뵀으면 싶습니다.”
핸드폰 너머 서구섭 대표의 목소리가 단숨에 서늘해진다.
“···결정된 상태다? 그렇다는 건 다음 소속사를 결정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허 나를 만나보지도 않고 결정을 했어요? 왜?”
“전부를 말씀드리긴 곤란합니다.”
“강우진씨. 이러면 피차 불편해는 건데? 뭐 어디랑 했습니까.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아니 혹시 최성건이랑 연장했어요?”
“아직 대답하기 힘듭니다.”
서구섭 대표의 음성이 괴팍하게 변했으나 컨셉질 짙은 강우진에겐 별 타격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간 침묵. 고요함을 깬 것은 서구섭 대표.
“우진씨와 나랑은 영 안 맞는 모양이야. 그렇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어긋나는군.”
“···”
“잘 알았어요.”
-뚝.
바로 끊기는 통화. 핸드폰을 내리던 우진은 작게 미간을 좁혔다.
‘뭐여 이 새끼. 성격 더럽네.’
순간 뒤쪽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들렸다.
“우진. 거기서 뭐 하냐?”
돌아보니 꽁지머리 최성건이 입을 재킷을 여미며 다가오고 있었고 우진의 앞에 도착한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흔들며 바로 본론을 뱉었다.
“송 PD님한테 전화 왔는데. 이틀 뒤쯤 부여로 직접 오시겠다네?”
“그렇습니까?”
“응. 목적이야 저번처럼 대본을 주려는 것 같어. 사정상 움직일 수가 없다니까 단박에 오겠다고 말했고. 근데 어째 이번엔 송 PD님이 뭔가 작정한 느낌이더라고. 아는 바 있냐?”
예전에 다른 대본도 봐주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서 우진에게 송만우 PD가 연락한 적은 없었다.
“아니요.”
“그래? 여튼 오라고 해? 너 불편하면 나중에 보자고 연락하고.”
“상관없습니다.”
“오케이- 그럼 촬영 전에 잠깐 보는 거로 하자.”
답하던 최성건이 돌연 픽 웃는다.
“강배우님 진짜 대단해지셨네? 드라마판 거물 송만우 PD를 부여까지 오게 하고? 것보다 뭔 일 있냐? 누구 전화였는데.”
“GGO 엔터 서구섭 대표요.”
바로 미간을 구기는 최성건.
“그 불독이 왜?”
강우진이 서구섭 대표와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했고 대놓고 혀를 찬 최성건이 작게 읊조렸다.
“불독 새끼 성격에 또 뭔 짓을 할까 싶은데. 좀 서둘러야겠네.”
서둘러? 뭘? 속으로 고개 갸웃한 우진이 되물었다.
“무슨?”
“아니. 혼잣말. 여튼 그 불독. 아니 서구섭 대표 일은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미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긴 했으나 강우진이 덤덤하게 답했고.
“예 대표님.”
핸드폰을 꺼내던 최성건이 말을 이었다.
“너 소속사 얘기도 충분히 어그로끌었으니까 내일쯤 발표해야겠네.”
이 시각 GGO 엔터테인먼트.
커다란 대표실 자리에 앉은 서구섭 대표의 얼굴은 매우 울그락붉그락했다. 어금니를 얼마나 무는지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런 그가.
“강우진 이 핏덩이가.”
꽉 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다.
-쾅!!
“시발 거.”
빡침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얼굴. 따라서 불독과 더욱 유사해진다.
“‘미장센 영화제’ 사태를 덮고 이 내가 숙이고 들어갔구만···감히 두 번이나 날 물 먹여?”
강우진에게 두 번이나 통수를 맞았으니까. 당연히 서구섭 대표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체면을 구겼고 자존심이 짓밟혔다. 통화할 때 강우진의 그 싸가지는 또 어떠한가?
‘좀 떴다고 나댄다 이거냐?’
서구섭 대표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오냐. 두고 보자 이 새끼.”
피부톤이 붉어진 그가 인터폰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곧 대표실로 간부들 몇몇이 입장했다. 그들에게 서늘한 지시를 내리는 서구섭 대표.
“야 강우진 기스 좀 내자. 걔랑 관련해서 돌았던 찌라시들 싹다 모아와.”
다음 날 아침.
‘실종의 섬’ 촬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리조트 호텔. 시간은 아침 8시쯤. 약간 이른 시간이지만 호텔 로비에 머리를 푼 최성건이 보였다.
“보자- 오늘 메뉴가 뭐냐.”
하는 말을 들어선 아마 조식을 먹으러 내려온 듯. 그러다 뭔가 떠오른 그가 핸드폰을 들어선 검색사이트에 접속했다. 최성건이 확인하려는 것은 간단했다.
『[공식]bw 엔터 측 강우진과 3년 연장 계약 확정』
몇십 분 전 발표한 bw 엔터의 공식 입장. 이거로 강우진은 FA 시장에 나갈 일이 없어졌고 기사를 확인하던 최성건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고.”
짧게 읊조린 그가 대뜸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 받는 것은 빨랐다.
“네 오빠.”
약간 떨리는 여자 목소리.
“잤냐?”
“아니요. 샵 가려구요. 점심에 촬영 있어서.”
“확장 자금 해결했어 너 받아 줄 수 있다. bw 엔터는 커질 거고 조만간 정식으로 스카웃하러 갈게.”
“···정말?”
“그래 그러니까 우리 하려던 거 좀 앞당길까 한다.”
“아.”
이어 로비 구석진 곳으로 움직이는 최성건이었고 핸드폰 너머 그녀에게 말했다. 거의 속삭이듯.
“한나야. 슬 서구섭 부러트리자.”< 몸값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