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7) >
노장 안가복 감독의 선언. 그의 입에서 강우진이란 이름이 뱉어졌다. 까끌하면서도 늙은 음성. 짧고 명료한 목소리가 퍼지자마자 순간 그의 주변에 있던 십 수명의 거물급 인물들이 얼음처럼 굳었다. 놀람을 금치 못했기 때문.
“···”
“···”
김도희 감독을 포함한 유명 감독들이나 진재준 외의 배우들 언론사 편집장들 기자들 등등. 모두가 여유 넘치는 미소의 안가복 감독을 멍- 하니 바라본다.
반면.
“음? 왜들 그래요?”
안가복 감독의 미소는 짙어졌다. 물론 그의 옆에 선 심한호 역시 별수롭지 않은 표정. 현재 이 연회장에서 이 둘만 멀쩡했다. 이쯤 와인 한 모금을 넘긴 안가복 감독이 다시금 주름진 입을 열었고.
“알려달래서 말해줬구먼 모두 왜 넋이 나간 거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푸석거리는 머리를 거칠게 넘긴 김도희 감독이 커진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가 감독님. 방금 확정된 남은 배우가 강우진씨라고.”
“맞아요.”
“그러니까 이번 감독님 100번째 작품인 ‘거머리’에 시 심한호 선배님하고 나란히 캐스팅된 게···그 강우진씨라는 거죠? 제 ‘마약상’에도 나온.”
“지금 배우판에 강우진이 두 명인가?”
“아니. 그 그게 아니라.”
확실히 들었지만 믿기 힘들어서였다. 가뜩이나 화린 사건의 반전으로 국내를 뒤흔든 강우진이었다. 그런데 돌연 안가복 감독 작품에 투톱 주연이라니?
애초 그게 어떻게 성사된 거지?
덕분에 김도희 감독이나 진재준 등의 배우들은 여전히 어버버댔지만 기자들이나 언론사 편집장들은 눈빛을 달리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크크 재밌네? 왜 안가복 감독이 강우진을 잡았는지는 나중 일이다. 최대한 빨리 던져야 돼.’
‘강우진? 미친. 이 새끼는 제대로 스타감이야. 어째 주마다 이슈가 터지나?’
‘배우판에 역사인 심한호와 현재 역사를 다시 쓰는 새내기 강우진. 이 묘한 라인업은 못 참지.’
기자들은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조작했고 ‘파워패치’ 편집장 외의 나머지는 어디론가 전화 걸기 바빴다.
“어 난데. 내 말 그대로 타이틀만 박아서 기사부터 갈겨. 내용은 없어도 돼.”
“특종이다 특종. 질문하지 말고 일단 받아 적어. 그리고 최대한 빨리 기사부터 띄우고. 스읍! 질문하지 말라고.”
그런 인물들의 뒷모습을 보던 안가복 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원하는 그림이었으니까. 그리곤 옆자리 회색 장발의 심한호에게 속삭였다.
“불이 제대로 옮겨붙었구만.”
“···원래도 잘 타고 있었고 장작이 워낙 고급이라.”
뒤로 연회장 전체로 웅성거림이 커졌다. 모두가 상황파악을 마쳤기 때문.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안가복 감독의 말이 자연스레 전염된다. 점차 목소리가 커진다. 때때로 외침도 들려온다.
“뭐 뭐라고??! 진짜??!”
“강우진?! 방금 그렇게 말했다고??!”
많은 이가 놀라면서도 핸드폰을 꺼낸다. 이 연회장에 투하된 폭탄을 외부로 전달해야 했으니까. 그사이 몰린 배우들의 반응이 제일 컸다.
그들의 눈에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설마···가 강우진이라니.”
“뭐야 그럼. 강우진 걔는 고작 1년 차에 칸에 도전한다는 거야?”
“너무 뜬금없잖아? 아니 것보다 강우진 스케줄이 가능한가?”
“하- 말도 안 돼.”
“심한호 선배님하고 강우진을 붙여?? 그게 무슨!”
가장 도드라지는 건 질투와 시샘이었다. 강렬한 욕망이 역정으로 바뀌는 순간. 이때 안가복 감독과 가까이 있던 진재준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고.
“감독님. 우진씨를 선택하신 이유가···있으십니까?”
시선이 집중된 안가복 감독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칸에 딱히 관심이 없어 봬서.”
이 뒤로 정확히 15분.
딱 15분이 지난 시점에 연회장에서 터진 폭탄이 세상에 모습들 드러냈다.
『[속보]‘스타들의 밤’ 참석한 안가복 감독 “‘거머리’에 캐스팅 확정된 두 배우는 심한호와 강우진”』
강우진의 영웅담이 여전히 끓어 넘칠 때였다.
수 시간 뒤 미국 LA.
8일이 시작된 한국과는 달리 LA는 7일의 아침이 밝은 참이었다. 시간은 9시쯤. 노스 할리우드 공원 근방의 ‘우리네 식탁’ 팀의 숙소가 있는 곳. 많은 스탭들이 즐비한 숙소 중 특히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남자 출연진이 쓰는 집이었다.
이유야 심플했다.
LA에 도착 이후 ‘우리네 식탁’ 팀이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했으니까. 아니 촬영이야 한국에서 출발할 시점에 스타트됐지만 ‘우리네 식탁’의 주제를 위한 촬영은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와중 숙소 밖에선 출연자들의 스탭 ‘우리네 식탁’ 제작진이 여기저기 분포돼 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진짜??! 와 나 지금 일어나서 몰랐어요!”
“어어어 완전 팩트팩트. 그 안가복 감독이 직접 말했대요. 검색해봐 한국 뒤집혔다니까!”
“지금 한국 새벽인데??”
“기자들한테 밤낮이 어딨어?!”
“미쳤다- 우진씨는 뭐래요?”
“몰라 아직 못 만났어요.”
무척이나 부산스럽다는 것. ‘우리네 식탁’ 제작진이나 출연자들의 수십 스탭들 전부가 마찬가지다. 죄다 정신없이 강우진 얘기로 입을 쉬지 않는다.
“안가복 감독님이 ‘스타들의 밤’ 뒤풀이에서 직접 발표했다면서?”
“어어어 심지어 옆에 심한호 배우가 있었대요.”
“허- 그 블랙박스 영상 이슈가 식기도 전에···”
“아까 출연자들 모이자마자 윤 PD 장난 아니었다니까?”
“그건 나도 봤어요. 하강수는 눈이 뒤집힐라 하드만?”
“애초 ‘우리네 식탁’ 멤버가 배우가 많잖아요. 전부 놀라 자빠질만하지.”
“안가복 감독 심한호 라인업에- 강우진이 붙을 줄이야. 이건 진짜 대 사건이다 사건이야.”
이미 안가복 감독의 폭탄이 여기까지 번진 참이었으니까. 사실 처음 소식이 전해진 전 몇 시간 전인 이른 아침이었고 그땐 지금보다 반응이 몇 배는 극심했다. 현재는 나름 잠잠해진 편. 그럼에도 강우진 얘기가 끊기지 않는다.
“근데 우진씨 스케줄이 되나?? 이미 작품 많이 들어갔잖아요. 권 감독님 거하고 일본 거하고.”
“몰라요 어떻게 맞춰봤겠지? 여튼 예측 전부 빗나갔어. 우와- 이거 봐요 회사 단톡방 터질라 해.”
“그 대배우 심한호하고 1년 차 강우진을 붙였는데 조용한 게 말이 안 되지.”
이쯤 꽁지머리 최성건은.
“어어 아니 바로 입장 내면 안 되지. 조금 달구자고.”
거리를 설렁설렁 걸으며 통화하기 바빴다. 전화가 쉴 틈이 없을 테니까. 그의 주변으론 각 출연진의 실장들이 달라붙어 있다.
궁금하기도 하겠지.
그래서 강우진은 어딨는가?
그는 남자 출연진의 숙소 1층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니 여기엔 ‘우리네 식탁’ 출연진 전부가 모였다. 단독 소파엔 안종학이 3인 소파엔 화린과 홍혜연이 남은 긴 소파엔 하강수와 연백광.
모자 쓴 우진의 오늘 상태는 평소보다 더 근엄했다.
“···”
물론 남들이 보기에나 그렇고 속으로는 그저 극심한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개피곤하다. 살짝 아공간에 들어갔다 나와야 될 듯.’
이미 거친 태풍을 겪은 뒤였으니까. 의도치 않게 터진 영웅담이 채 식기도 전에 ‘거머리’ 건이 이곳을 덮쳤다. 그 덕에 ‘우리네 식탁’ 출연진 전부는 물론 윤병선 PD나 작가들의 폭풍 질문을 받아야 했다.
‘우진씨!! 이거 기사 뜬 거 진짭니까??!’
‘무슨 핵폭탄이 이렇게 연달아 터져요!!’
‘진짜 안가복 감독님 영화 찍어요?!!’
‘이만한 일을 왜 숨긴 거예요?? 우진씨 진짜 칸 가는 거야?!’
대충 1시간 넘게 말이다.
윤병선 PD는 거의 어깨춤을 출 지경이었다. 특히 ‘우리네 식탁’ 출연진은 대부분 배우였기에 반응이 거셌다. 안종학과 하강수의 끝없는 궁금증 화린의 숨겨진 선망 막내 연백광의 텐션 높은 극찬. 홍혜연은 의외로 큰 리액션이 없었다. 마치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는 느낌.
이곳의 상황이 이 정돈데 한국에 복귀하면 어떻게 될까? 살짝 한국의 인터넷 상황을 본 우진이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면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벌어질 일이 조금 빨리 터진 것이라 생각해야지.
‘뭐 피할 순 없으니까 즐기긴 하는데. 그 영물 할아버지 너무 뜬금없이 터트렸잖아.’
주변 지인들의 연락들도 골치였다. 특히 여동생 강현아와 불알친구들. 뭐 이래저래 재난이던 상황이긴 하나 어찌어찌 ‘우리네 식탁’팀은 진정됐다.
촬영은 해야 하니까.
어됐든 강우진이 앉은 소파 주변으론 수많은 미니캠이 놓였고 곳곳에 카메라들이 배치됐다. 그 주변으론 윤병선 PD나 스탭들이 수십.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네 식탁’ 출연진의 모습은 상당히 네추럴했다. 모자 쓴 강우진을 포함해 모두가 편한 복장이었고 화린이나 홍혜연의 화장은 옅었다.
그런 그들은 지금 메뉴 선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일부턴 밖에 대기하고 있는 푸드트럭을 타고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해야 하니까. 즉 오늘 재료들을 모두 산 뒤에 준비 출연자들의 동선까지 짜 둬야 했다.
이때 1인 소파에 앉은 야구 모자를 쓴 안종학이 물꼬를 텄다.
“일단- 메뉴부터 확정 지어야겠지? 주방팀 생각해둔 거 있나? 리더 생각은 어때.”
던져진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묵묵한 강우진에게 붙었다. 우진은 태연하게 답했다. 각인된 셰프의 지식 덕에 이미 정한 답이 있었으니까.
“푸드트럭은 음식 나오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메뉴가 많을 필요도 없고 2개면 적당할 것 같아요.”
“2개. 어떤?”
“밥하고 면류. 둘 다 초벌이 가능합니다.”
“셰프님이 생각한 건?”
“안 매운 쪽으로 불고기 덮밥하고 김자반 막국수면 괜찮지 싶어요.”
안종학이 바로 손을 올렸다.
“난 찬성-”
뒤이어 홍혜연과 화린이 동참하고 결과적으론 모두가 동의했다. 그 어떤 의견도 나오지 않는다. 이에 앵글 밖에서 지켜보던 윤병선 PD가 픽 웃으며 끼었다.
“아니 그렇게 삽시간에 정리할 거면 미팅은 왜 해요?”
시끄럽다는 듯 안종학이 손을 내저었다.
“히어로 셰프님이 결정을 지었으면 바지사장인 나는 따라야지. 뭐야 윤 PD는 메뉴에 불만 있나?”
“있을 리가. 딱 좋네요.”
“오케이. 그럼 재료들 리스트 작성 시작하면 되고 동선은- 보자···어차피 푸드트럭이니까 주방에 4명 붙고 서빙으로 2명이면 되지 않겠나?”
이번에도 답은 금방이었다. 셰프인 강우진에겐 홍혜연 포함 화린 연백광이 보조하고 외부는 안종학과 키가 길쭉한 하강수가 맡기로 했다.
여기서 후드 입은 하강수가 의견을 냈다.
“마실 거는?”
바로 강우진의 낮은 톤이 들린다.
“커피 외의 마실 건 초반엔 빼는 게 좋아요. 까딱 마실 거 두고 대화가 길어질 수 있고 회전율이 더뎌질 수 있어요.”
“아- 그렇구나.”
“일단 간단한 물 정도만 주면서 분위기부터 파악하죠.”
안종학과 하강수가 엄지를 추켜세운다.
“크- 역시 히어로 셰프님 안가복 감독님의 남자. 든든하구만.”
“이런 매력에 안가복 감독님이 반하셨네.”
긴 생머리를 묶은 홍혜연도 거들었고.
“역시 영웅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어.”
우진을 힐끔대는 화린은 속으로 찬양 중.
‘저 미지근한 카리스마가 진짜 킬포라니까?!’
극찬을 빙자한 놀림.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셰프의 레시피’를 상기하고 있었다.
“재료 구매하는 조 하고 숙소에서 준비하는 조를 나누죠.”
“옙! 리더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다.
다음 날 점심쯤 노스 할리우드 공원 근방.
드넓은 공원엔 많은 외국인이 산책 중이었다. 헤드폰을 끼고 조깅을 여자 강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남자 풀숲에 누워 책을 보는 커플 등등. 딱 영화서나 보던 풍경. 꽤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만 워낙 공원이 넓어선지 그리 빡빡한 느낌이 들진 않았다.
그중 공원에 난 인도를 걷는 미국인 노부부가 눈에 띈다.
둘 다 백발이었고 손을 잡은 채 공원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하며 걷던 노부부 중 할머니 쪽이 앞쪽 갓길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바로 입을 여는 그녀. 물론 영어가 뱉어진다.
“저 푸드트럭은 못 보던 건데?”
나긋나긋한 톤인 그녀의 말에 할아버지의 시선도 앞쪽을 향한다. 노부부는 늘 이 시간에 공원을 지나다녔고 덕분에 평소에 없던 푸드트럭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 푸드트럭.
트럭의 위쪽엔 영어와 한글이 섞여서 걸렸다.
-‘KOREAN FOOD’
-‘우리네 식탁’
간판을 확인한 할머니가 빙긋 웃었다.
“한국의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인가 봐.”
“그래 보이는군. 어떤 걸 파는 거지?”
“저기서 먹을까?”
“타코가 먹고 싶다며. 그리고 저번에 떡볶이 먹었다가 눈물까지 흘려놓고?”
“이번엔 맵지 않게 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 타코는 언제든 먹을 수 있잖아. 당신의 레스토랑 옆에도 있으니까.”
“음.”
“기억에 남는 식사가 될 거야. 어차피 먹는 거라면 특별한 음식이 좋지 않아?”
할머니의 설득에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에 먹어봤는데 맛이 없다면 바로 말해야 돼.”
“물론.”
그렇게 노부부는 한국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으로 움직였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모든 직원들은 한국인처럼 보였다.
“오 정말 전부 한국인이야. 그런데···전부 멋지고 아름다운데?”
“그렇군. 한국인은 피부가 정말 좋아 어려 보여서 나이가 가늠이 어려워.”
이때였다.
-스윽.
푸드트럭에 가까워진 노부부에게 여자 몇 명이 다가와 영어로 물었다.
“저기 혹시 이 푸드트럭을 이용하실 거세요?”
대답은 할아버지가 했다.
“맞아요 왜요? 아직 준비 중인가?”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이 푸드트럭은 한국의 TV 쇼거든요. 이용하시면 쇼에 나오게 되는 거라 동의를 구하고 있어요.”
승낙은 인자한 웃음의 할머니가 했다.
“기쁜데요? 저희는 상관없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편히 이용하셔도 돼요.”
곧 여자들이 멀어지고 할머니가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한국의 TV 프로래.”
“어쩐지 그렇다는 건 일하는 사람이 전부 연예인이라는 건가?”
“그렇겠지.”
“음식 맛은 기대하기 힘들겠어.”
곧 노부부가 6개의 테이블이 놓인 곳에 당도하자 푸드트럭 앞에 있는 한국인이 다가온다. ‘우리네 식탁’ 로고가 박힌 네이비 유니폼을 입은 머리를 뒤로 깔끔히 넘긴 바지사장 안종학이었다.
“안녕하세요 첫 손님이세요 두 분.”
안종학의 영어 실력은 꽤 유창했다. 강우진 정도는 아니지만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고 노부부를 중앙 테이블에 안내한 안종학에게 할아버지가 물었다.
“TV 프로라 들었는데 어떤 주제인가요?”
“한국의 음식을 해외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당신과 저들은 전부 연예인?”
“맞습니다.”
“멋지군요.”
“감사합니다 여기 메뉴판입니다. 현재 준비할 수 있는 메뉴는 두 가진데. 설명해드릴까요?”
“부탁해요.”
곧 안종학이 메뉴에 박힌 불고기 덮밥과 김자반 막국수를 설명했다. 설명을 가만히 듣던 할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불고기 덮밥이란 건 매운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럼 저는 불고기 덮밥으로 당신은?”
할아버지는 메뉴판 속 면 요리를 찍었다.
“이거. 귐좌반···”
“김자반 막국수라고 합니다.”
“음 그걸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신사적으로 메뉴판을 회수한 안종학이 노부부와 멀어지면서도 푸드트럭 안 사람들에게 외쳤다. 한국어였다.
“불고기 하나! 김자반 하나!”
그런 그를 보던 노부부 중 할머니가 입을 열었고.
“한국어는 어감이 예쁜 것 같아.”
할아버지는 주변에 보이는 카메라나 제작진들을 훑고 있었다.
“흠- TV 쇼라면 음식을 하는 셰프 역시 배우라는 건가?”
“저기 푸드트럭 안쪽에 저 사람 같은데?”
곧 할머니의 손짓에 따라 푸드트럭 안을 확인하는 할아버지. 남녀 4명 정도가 보인다. 그중 방금 요리를 시작한 청년이 눈에 띈다. 짙은 인상에 시니컬한 분위기. 머리엔 두건을 썼다.
그의 외모를 본 할아버지는 확신했다.
“저 셰프 역시 배우가 맞겠어.”
“응 잘생겼네.”
“역시 타코를 먹을 걸 그랬나? 이런 쇼에 나오는 음식은 맛이 없다고.”
“그래도 저 셰프 움직이는 걸 보니 열심히 배운 것 같은데?”
“확실히···두건이나 마스크를 쓴 걸 보면 위생에 신경을 썼고 웍을 다루는 것을 보면 연습을 열심히 했나 보군. 하지만 역시 본업은 배우인 거잖아.”
“당신은 너무 깐깐해 같은 셰프면 여러 가지 경험과 음식을 맛봐야지.”
“이미 여러 한식을 맛봤어. 혹시 고추장을 먹어봤어? 맛있어서 내 레스토랑에서 쓰게끔 연구 중이야.”
그랬다. 사실 이 할아버지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였다. 위치는 이곳과 가깝다.
그때였다.
-슥.
이번엔 안종학이 아닌 키가 길쭉한 남자가 노부부에게 다가왔다. 하강수였다.
“음식 나왔습니다.”
살짝 어색한 영어였지만 노부부는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하며 주문한 음식을 맞이했다. 이어 안종학까지 등장해 음식을 먹는 법을 설명한다. 그렇게 설명을 마친 두 남자가 빠지고 노부부 중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김이 풀풀 나는 불고기 덮밥을 비빈다.
“냄새가 좋아. 당신은 어때?”
할아버지는 앞에 놓인 김자반 막국수를 유심히 내려보다가 말했다.
“국물이 갈색이군 면도 그렇고. 냄새는- 고소하고 나쁘진 않아. 일본의 라멘과 비슷해. 하지만 확실히 다르고 약간 거부감이 들어. 국물에 뜬 이 검은색이 김이라고?”
“먹어 봐.”
약간 탐탁지 않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어렵사리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살며시 떴다. 그리곤 후르릅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
표정이 굳는다. 아니 뭐랄까 애매한 얼굴. 할아버지는 말없이 다시금 국물을 떠먹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더니 아예 그릇째 들어선 크게 한 모금 넘겼다. 그 모습에 불고기 덮밥을 뒤집던 할머니가 눈을 크게 떴고 할아버지가 가만히 김자반 막국수를 내려보다가 포크를 들었다.
면을 돌돌 말아 국물과 함께 입에 넣는 그.
이들은 몰랐지만 이 순간 푸드트럭 주변에 분포된 ‘우리네 식탁’ 팀 카메라 전부는 노부부를 찍고 있었다.
곧 불고기 덮밥을 뜨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 갈색 면의 맛이 어때?”
포크 든 손을 멈춘 할아버지는 면을 오물거리곤 있지만 표정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런 그가 천천히 고개를 올리며.
“우리가 틀렸어.”
“음? 왜 맛없어?”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아버지의 파란 눈동자엔 파도가 치고 있었다.
“요리를 만든 저 남자는 배우가 아니야 진짜 셰프야.”< 미국 (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