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10) >
“···괴한을 제압해?”
산타를 연상케 하는 배 나온 남자가 황당하다는 듯 낀 선글라스를 벗었다. 반면 태연한 갈색 단발의 외국인 여자가 대수롭지 않은 투의 영어를 뱉었다.
“네 연출이 아니라 실제로.”
“너튜브에 그런 영상이 돈다?”
“맞아요.”
비치 벤치에 누웠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여자가 말한 한국의 배우 강우진을 상기해본다. 반년도 더 된 일이었다. 한국의 퍽 유명한 단편 영화제에서 ‘흥신소’를 봤고.
‘결과적으론 영화제 전체로 봤을 때 그 배우가 제일 괜찮았었지?’
산타 남자는 신인이라는 배우 강우진에 관심을 가졌었다. 실제로 많은 배우들을 제치고 미장센 영화제서 연기대상까지 받았다. 뭐 신인들의 연기상이라지만 뭐가 됐든 남자는 강우진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연기가···기가 막혔지. 특히 그 지하실에서의 표정 연기.’
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흐릿한 와중 강우진의 연기는 남자의 뇌리에 또렷했다. 그 덕에 헐리웃에 돌아와 캐디에게 강우진에 관해 언급했었다. 한국에 괜찮은 배우가 있더라 그러니 알아봐라.
하지만 그뿐.
세상은 넓고 배우는 차고 넘친다. 특히 강우진 같은 신인은 더더욱. 그렇기에 산타 남자는 자연스레 강우진을 잊었었고 반대로 생업이 배우 모니터링인 캐디 여자가 다시금 상기시켜 준 것.
이어.
-스윽.
정장의 캐디 여자가 배 나온 남자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핸드폰엔 한 너튜브 영상이 멈춰진 상태였고 산타 남자가 검지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약 2분짜리 러닝타임. 익숙한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여자에게 달려드는 송곳 든 괴한을 단숨에 제압하는 강우진. 일반인이 봐도 신기할 정돈데 우진에게 관심이 있던 산타 남자는 어떨까. 단숨에 눈이 커지며 재차 영상을 재생시키는 그였다. 결국 약 4번 정도 영상을 되풀이하던 산타 남자가 작게 탄성을 뱉는다.
“허- 과연 재미있는 영상이 맞군.”
갈색 단발 여자가 웃는다.
“그렇죠?”
“이 영상이 연출이 아닌 실제라는 거지?”
“맞아요. 알아보니 진짜 일어난 사건이고 한국의 뉴스에도 보도됐어요. 한국의 여자 배우를 강우진이 구했고 덕분에 한국에서 그가 시끄럽게 이슈가 되는 중이에요.”
“이 정도 건이면 여기 헐리웃에서도 이슈되고도 남아.”
이때.
-스윽.
둘을 스치던 비키니 입은 외국인 여자 두 명. 그중 살짝 통통한 여자가 비치 벤치에 앉은 산타 남자를 보곤 속삭였다.
“저 사람 조지 멘데스 아니야?”
“응? 누구?”
“저기. 몰라? 배우로 영화에도 나오고 감독으로도 유명한.”
“아아- 누군지 알겠다.”
이내 두 여자는 산타 남자를 향해 미소가 함유된 인사를 날렸다.
“안녕하세요-”
그녀들의 손 인사에 산타 남자는 익숙한 듯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나중에 점심이나 같이할까요?”
“아니요?”
단숨에 거절당한 산타 남자가 여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현실을 부정했고.
“하하. 민망한 모양이군.”
정장 입은 캐디 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감독님 민망한 게 아니라 그냥 싫은 겁니다.”
“그런가? 이런.”
이래 보여도 산타 남자. 아니 조지 멘데스 감독은 헐리웃에서 나름 유명한 감독이었다. 과거 배우로 이름을 알린 그는 흥행한 작품 몇 개에 출연 후 급작스레 영화감독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대략 수 작품을 말아 먹던 조지 멘데스 감독은 가까스로 중박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 그다음 ‘라스트 킬’이란 영화를 제작했다.
이게 대박이 났다.
후로 ‘라스트 킬’의 후속인 ‘라스트 킬2’까지 흥행에 성공했고 조지 멘데스 감독은 헐리웃에서 감독으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시리즈로 전향한 ‘라스트 킬3’를 준비하는 중. ‘라스트 킬’ 시리즈는 제목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액션이었다.
은퇴한 킬러가 어떠한 이유로 인해 킬러 조직을 쓸어버리는 내용.
스토리보단 액션에 치중한 작품이며 시원시원한 전개와 멋들어지는 무술이 장점. 그렇기에 ‘무술’은 필수며 ‘무술’을 겸비한 배우가 퍽 많이 필요하다. 이번 ‘라스트 킬3’에는 세계관 확장을 노렸기에 아시아 쪽 배우들까지 합류시켜야 하는 상황.
한창 ‘무술’을 겸비한 아시아 배우를 찾던 중에 강우진이 다시금 물망에 오른 것.
당연하겠지만 찾는 배역의 비중은 그리 크진 않다. 조·단역 정도. 하지만 대사도 있고 뭣보다 주인공과의 액션씬이 있기에 중요도가 낮지는 않았다.
어쨌든 멀어지던 여자들에서 손에 든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린 조지 감독이.
“음-”
돌연 진중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핸드폰 속 강우진의 움직임에 관해 평가했다.
“배웠군. 그것도 꽤 오래.”
갈색 단발 여자가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움직임이 우연으로 나왔을 리는 없으니까.”
“특히 이 괴한의 손을 꺾어 넘어트리는 동작이 기가 막혀.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군 그렇다는 건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는 거야. 촬영이 아닌 현실에서 이러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배짱이 마음에 드는데?”
읊조리며 통통한 볼을 쓰다듬던 조지 감독이 고개를 올려 캐디 여자와 눈을 맞췄다.
“며칠 뒤에 스크린 테스트가 있었지?”
“네. 예정된 중국 쪽 배우들을 보실 예정입니다.”
“그날에 이 강우진도 추가시키면 어때.”
조지 감독이 말한 스크린 테스트란 실제 촬영과 거의 비슷하게 촬영해보는 테스트를 말한다. 일반적인 오디션과는 결이 매우 달랐다. 배우가 모니터에 어떻게 찍히는가? 조촐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놓고 실제 촬영과 흡사하게 가는 경우도 많다. 주변 환경과 상대 배역 대사 연출 등 정해진 시나리오 속 장면을 테스트로 본다.
헐리웃에선 거의 필수적인 과정.
뭐 따지면 실제 촬영에 가깝다. 다만 촬영이란 글자 앞에 ‘테스트’가 붙을 뿐. 그래도 감독은 물론이며 많은 스탭들이 참여하게 된다. 그런 대형 테스트에 강우진이 언급된 셈.
“아- 며칠 뒤 스크린 테스트는 조금 갑작스러운가?”
팔짱 낀 조지 감독의 물음에 왜인지 캐디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은 생각이에요 현재 강우진은 한국이 아닌 LA에 있기 때문이죠.”
“오- 그래? 왜지?”
“TV 프로 촬영차 왔나 봐요.”
“그렇군.”
짧게 답한 조지 감독이 이어 말했다.
“그럼 그 날에 한 번 불러봐.”
몇 시간 뒤 늦은 점심 LA의 허모사 비치.
LA 국제공항의 아래쪽 부근에 위치한 유명한 해변. 덕분인지 점심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허모사 비치엔 수많은 외국인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허모사 비치와 인접한 곳에 한글 간판이 눈에 띈다.
-‘우리네 식탁’
그리 크진 않지만 확연히 눈에 띄는 음식점이었다. 한식을 파는 가게였으니까.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선 모습. 그랬다. 바로 이곳이 ‘우리네 식탁’팀이 운영할 가게였다. 푸드트럭을 운영하던 노스 할리우드와는 거리가 꽤 멀고 숙소도 바뀌었다.
벌써 3일째 운영 중.
물론 손님은 넘쳐났다. 푸드트럭 때의 유명세와 맛집이라는 소문이 벌써 근방으로 퍼진 탓. 거기다 SNS와 한류의 힘도 한몫 거들었다. 어쨌든 ‘우리네 식탁’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줄 선 손님들만 십수 명이고 가게 내부는 이미 자리 잡은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푸드트럭 때보다 몇 배는 바쁠 수밖에.
덕분에 주방의 강우진은.
“불고기 제육 김자반 추가요!!”
“확인!”
“아! 제육은 안 맵게!”
컨셉질이고 나발이고 음식 만드는 기계였다. 그의 주변 홍혜연이나 연백광 역시 웃을 새 없이 할 일을 할 뿐. 안종학 화린 하강수는 홀에서 바삐 움직였다.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자리를 치우고. 와중에 질문들도 받아야 했다.
“이 TV쇼는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넷플렉스?”
“아니요 넷플렉스는 아니에요.”
한국에선 내로라하는 탑배우들의 생고생. 이 순간 입이 활처럼 휘는 건 ‘우리네 식탁’ 가게를 지켜보는 윤병선 PD와 그의 사단들뿐. 하지만 ‘우리네 식탁’ 제작진이 마냥 노는 건 아니었다. 손님들의 인터뷰 주변 명소의 인서트 컷 따기 홍보 등등 그들도 할 게 빼곡했다.
유일하게 조금 한산한 건 출연자들의 매니저 외의 스탭들.
출연진이 촬영에 들어가면 그들은 딱히 할 게 없었고 덕분에 몇몇은 가게 주변에 있는 허모사 비치를 즐기기도 했다.
다만 꽁지머리 최성건은 예외였다.
-♬♪
그의 핸드폰은 쉬지를 않았으니까. 물론 70% 이상은 강우진 때문이었다. 따라서 최성건은 ‘우리네 식탁’ 가게 주변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자리 잡고 연신 통화를 이어갔다.
“아- 예 감독님. 하하. 오랜만입니다. 예예. 우진씨 내년 초 스케줄이요? 흠···글쎄요. 확인 좀 해보고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약 1시간이 흘렀다.
가까스로 한산해진 핸드폰을 내린 최성건이 길쭉하게 기지개를 쭉 켰다.
“어윽! 뒤지겠네.”
하지만.
-♬♪
다시 울리는 그의 핸드폰. 커피를 한잔 마시던 최성건이 긴 한숨을 뱉는다.
“하- 이거 부실수도 없고.”
짧게 투덜거린 그가 발신자를 확인했다. 상대는 bw 엔터. 곧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는 꽁지머리 최성건.
“예- 음? 어어. 어?!”
급작스레 동공을 확장 시킨 그가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그 그러니까- 그쪽에서 직접 그렇게 말했다고? 아···알았어요 일단 끊어 봐.”
핸드폰을 내린 최성건이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일리 카라?’
그럴만한 소식이었다.
‘카라가 ‘강우진 부캐’만을 원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세계적 스타 마일리 카라가 ‘강우진 부캐’ 출연을 원한단다. 그것도 그쪽이 먼저 요청했다. 이미 그녀가 한국을 내한한 것은 최성건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그림은 예상치 못했다.
“설마 ‘강우진 부캐’에 올린 그 영상을 본 건가?”
‘강우진 부캐’의 영상 중 카라의 커버 영상을 떠올리는 최성건. 뭐 헐리웃 스타가 한국에 내한해 너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실제 카라만이 아닌 여러 헐리웃 스타가 그래왔으니까.
카라 쪽의 조건은 간단했다.
‘강우진 부캐’에서 컨텐츠를 짜서 제안을 달라는 것. 신작 영화 홍보와 카라에 관한 코너가 확실히 포함돼야 할 것. 그들의 한국 스케줄의 일정은 18일까지고 그 안에 촬영이 진행될 것.
전부 가능한 얘기였다. 바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최성건.
‘그렇다고 우리가 딱히 눈치를 볼 필욘 없어 ‘강우진 부캐’도 뽑아 먹을 건 최대한 뽑아야 하고. 우진과의 듀엣곡 토크와 요리 거기다 아바타 요리까지 종합 선물세트로 밀어보지 뭐.’
그러다 최성건이 마일리 카라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 마일리 카라를 게스트로 쓰면···파급력이 대체 얼마나 된다는 거야?’
무려 마일리 카라였다. 가뜩이나 수백만 조회수가 거뜬할 정도의 ‘강우진 부캐’ 채널인데 거기에 마일리 카라를 끼얹으면 파괴력은 몇 배나 상승할 것.
뭣보다.
‘은근 그림이 기대되네.’
강우진과 카라의 케미도 호기심이 땡기는 최성건이었다. 헐리웃 슈퍼스타 앞에서의 강우진은 어떨까? 하지만 이내 그는 답을 내렸다.
“하하 별반 다를 거 같진 않긴 해.”
다음 날 아침.
LA에 해가 뜨고 있다. 이쯤 ‘우리네 식탁’ 출연진 숙소와 조금 떨어진 비슷한 모양새인 주택 숙소 앞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최성건이 걸어 나왔다.
“으하함!”
하품을 길게 쩍 하는 그. 한 손엔 김이 폴폴 나는 커피를 들었다. 꽁지머리를 풀어헤쳐선지 단발에 가까운 그가 숙소 앞마당에 비치된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스윽.
커피 한 잔을 넘기면서도 바로 핸드폰을 확인하는 그. 시차가 있어선지 톡이나 메시지 전화 등 많은 연락이 쌓였다.
그중 bw 엔터 쪽 직원이 보내온 기사부터 확인하는 최성건.
『[단독]한국 내한한 글로벌 슈퍼스타 ‘마일리 카라’ ‘강우진 부캐’ 채널에 게스트 확정!』
다행히 마일리 카라 건은 문제없이 진행됐다. 자세한 컨텐츠나 촬영 날은 계속 협의를 하겠지만 그녀의 출연 자체는 확정이었다. 아마 한국 쪽 언론은 이미 이 소식을 퍼다 나르고 있겠지.
“분위기 좋고-”
최성건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풀어헤친 머리를 묶으려던 차였다.
-♬♪
테이블에 올려진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모르는 번호. 그런데 한국 쪽이 아닌 이쪽 LA의 번호같았다. 곧 고개를 갸웃한 그가 일단 전화를 받았다.
곧 핸드폰 너머로 정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영어였다.
“저희는 ‘위너 무비 픽쳐스’ 영화삽니다. bw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님이 맞으십니까?”
순간 최성건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위너 무비 픽쳐스’ 영화사??!’
헐리웃에서도 퍽 유명한 곳이었으니까.
‘위너 무비 픽쳐스’ 영화사. 최성건 역시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헐리웃에 산재한 수많은 영화사 제작사 중 ‘위너 무비 픽쳐스’는 나름 중견에 속하는 곳이었으니까. 영화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방송 쪽 컨텐츠도 손대는 곳.
하지만 역시 주력은 영화 제작이었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최성건의 머릿속에 잠시잠깐 한 영화 제목이 스쳤다.
‘최근에 흥행한 작품이라면- 역시 ‘라스트 킬2’였지?’
물론 이전에도 히트작은 꽤 있지만 최근이라고 하면 역시 ‘라스트 킬’ 시리즈였다. 뭐가됐든 어마무시한 영화사나 제작사가 즐비한 헐리웃에서 중견급이면 어쭙잖은 영화사는 아니다.
그런 곳이 왜 나에게 전화를 걸었나?
일단 최성건은 살짝 어색한 영어로 핸드폰 너머 여자에게 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bw 엔터의 대푭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정적인 여자의 대답은 빨랐다.
“소속된 배우 중 강우진씨를 보고 싶어서요.”< 미국 (1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