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2)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감각도 무뎠다. 그저 몸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의 강우진 얘기였다.
“···”
뭐랄까 현재 그는 모든 게 애매했다. 의식은 있지만 흐렸다. 누워있는지 서 있는지도 불명확했다. 주변의 온도도 모호했고. 눈을 감고 있나? 아니 뜬 상태인가? 뭐지?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다만 딱 하나.
‘편하다.’
애매한 강우진은 지금 너무나 편했다. 평생 이대로 있고 싶었다. 그러다.
‘아.’
강우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이건 자의적인 게 아니었다. 타의에 의해서였다. 이름 모를 무언가가 강우진을 깨웠다. 그런 감각이었다.
이내.
“···으.”
옅게 신음을 뱉던 강우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아마 눈을 감고 있었던 모양. 그렇게 몇 초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가 잠시간 멍때렸다.
이유야 간단했다.
“여기···어디?”
본인이 지금 어디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으니까. 아니 여긴 어떠한 공간이 맞긴 한 건가? 우진은 눈을 떴지만 감은 것과 다름없었다.
사방팔방이 캄캄했으니까.
마치 불빛 한 점 없는 밀실에 박힌 것 같다. 없던 폐소공포증이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분위기.
덕분에 강우진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야!! 김대영!!”
“···”
하지만 들려오는 건 없다.
“저기요!! 저기요!!!”
재차 외쳤지만 여전히 조용하다. 메아리조차 없다. 대체 여긴 뭐란 말인가? 끝없이 검은색에다 넓이조차 가늠이 안 됐다. 뭔가 한계가 없는 아공간같기도 했다.
어쨌든 이때야.
“야 야! 김대영! 아씨 뭐야 여기!”
어마어마한 불안과 공포가 강우진을 감쌌다. 그러다 우진이 여기 이전의 기억을 상기했다.
“분명 뭐 이상한 사각형을 눌렀었어.”
검은색과 회색이 회오리치는 형태의 사각형. 대본 옆 허공에 뜬 그것을 우진이 검지로 눌렀었다.
“···뭔데? 영화냐? 여기로 빨려 들어왔다고??!”
곧 강우진이 자신의 짧은 머리를 감쌌다. 사고가 멈췄으니까. 아무리 봐도 이건 현실이다. 꿈이 이리 생생할 리 없었다.
이 아공간은 대체 뭘까?
뭐가 됐든 지금 최대의 과제는 이곳의 존재보다 탈출이었다.
이때.
“엇?”
몸을 돌린 우진이 우뚝 멈췄다. 온통 검은색인 와중에 흰색의 사각형이 보였으니까. 거리는 세 걸음 정도. 방금도 있었나? 모르겠다. 하지만 빨리 확인해야 했다.
곧 강우진이 흰색 사각형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고.
-스윽.
가까이서 흰색을 확인했다. 딱 A4용지 정도의 크기. 위치는 우진의 가슴팍 정도. 떠 있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글자?”
흰색 사각형 위로 흰 글자들이 박혀 있다는 것.
-[1/쪽대본(제목: 불명) F급(판단 불가)]
-[*완성도가 매우 낮습니다. 손상된 대본이나 시나리오입니다. 100% 리딩은 불가능합니다. (약 10% 구현가능)]
동시에 강우진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뭔데 이거. 손상된 대본? 시나리오?”
흰 글자들은 온통 개소리였다. 그것도 잠시. ‘쪽대본’이란 글자에 우진이 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아 그 쪽대본.”
방송 여자 스탭에게 받았던 몇 장짜리 쪽대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쪽대본을 받은 직후 이 아공간인지 뭔지로 빨려 들어왔다. 그렇다면.
“설마. 네모난 이거가- 그 쪽대본?”
얼추 앞뒤는 맞았다. 어쨌든 강우진이 천천히 손을 올려 흰색 사각형을 집었다. 하지만 움직이진 않는다.
그때였다.
-스으.
돌연 흰색 사각형 아래로 없던 글자들이 나열됐다.
-[1/쪽대본(제목: 불명)을 선택하셨습니다.]
-[리딩(경험) 가능한 인물을 나열합니다.]
-[A:겁먹은 사내 B:괴한]
이건 또 뭔가? 이쯤 강우진은 짜증과 불안이 퍽 넘실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뭔가를 해야만 했다.
“아 시발 몰라.”
그가 뜬 글자 중 아무거나 터치해댔다. ‘A:겁먹은 사내’였고 갑작스럽게 여자 목소리가 아공간 전체로 울려 퍼졌다.
[“‘A:겁먹은 사내’ 리딩 준비 중···”]
톤이 일정하며 정적이다. 마치 로봇 같기도 했다. 무슨 상관이야? 이곳에서 처음 들린 사람 목소리였다. 우진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저기요! 누구세요?! 여기 사람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 목소리는 엉뚱한 대답을 내놨고.
[“···준비 완료. 손상된 대본이나 시나리오입니다. 구현도는 약 10%입니다. 리딩을 시작합니다.”]
직후 커다란 회색이 강우진을 집어삼켰다.
차갑다. 이상했다. 분명 직전까지는 모호한 온도였다. 그런데 강우진은 지금 싸늘함을 느끼고 있었다. 밖인 건가? 우진은 그대로 고개를 내렸다. 어?
“···!!”
변했다. 자신이 걸쳤던 패딩은 온데간데없고 웬 갈색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순간 이질감을 느낀 그가 고개를 다시 팍 들었다.
시야 역시 조금 변했다.
확실히 여전히 온통 컴컴하긴 했다. 다만 옅긴 하지만 실루엣이 보인다. 나무? 저건 전부 나무들인가? 그리고 자신의 발 주변에 밟히는 건 낙엽?
그럼 여긴 산속인가?
목소리를 내고 싶었으나 잘 안됐다. 몸이 거부하는 느낌. 동시에 없던 소리와 감각이 느껴졌다.
-사아.
을씨년스럽게 부는 바람과 그 바람이 나뭇가지를 때려서 들리는 소음. 분위기와 느낌만으로 온몸이 미세히 떨리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도망. 도망쳐야 된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강우진은 현재 어떠한 감정과 기분이 때려 박히고 있었다. 움직여라. 발을 움직여.
쉬지 말고 뛰어라 도망쳐.
곧 우진이 대뜸 뛰기 시작했다. 방향 따윈 몰랐다. 그저 위로 저 위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빠르게 차오르는 숨 따위는 무시했다. 실루엣만인 나뭇가지가 볼을 할퀴는 것도 무시했다.
그저 뛰었다.
“허억! 커헉!”
왜? 나는 지금 왜 뛰고 있는 거야?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우진은 다급한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점점 더 빨라진다.
그래 쫓긴다. 난 지금 쫓기고 있다.
-사박! 사박!
우진은 낙엽을 미친 듯 짓밟으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뒤쪽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어둠에 싸인 산속.
이때였다.
“야.”
뒤를 돌아본 우진의 옆쪽에서 낮은 남자 목소리가 돌연 들렸다.
“귀찮아 그만 뛰어.”
-파악!
강우진은 뭔가를 인지하기도 전에 다리가 걸렸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팠다. 지랄 맞게 아팠다. 아니 왜 아프지? 이 고통은 진짜였다. 바닥에 쓸려 핏물이 흐르는 볼의 따끔함도 진실이었다.
거기에.
“너 때문에 배고프잖아.”
엎어진 등 뒤로 들리는 남자 목소리. 아니 괴한 역시 현실이었다. 여기서 강우진이 할 수 있는 건 발버둥이었다. 그럴 수밖에. 애초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다.
별안간 괴한에 쫓기는 경험 따위 누가 해 봤을까?
죽는다. 왜인지 죽을 것 같다. 우진은 필사적으로 기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등 뒤의 괴한이 우진을 발로 눌렀으니까.
“으읍! 흐흐으-”
그럼에도 우진의 발버둥은 멈추지 않았다. 기고 또 기었다. 제자리지만 계속 기었다. 바닥의 흙이 콧속으로 심심치 않게 쑤셔 들어온다. 반대로 눈과 코에서 물이 줄줄줄 나왔다.
죽는다 죽는다 살고 싶다.
필사적인 감정 정신없이 바닥의 낙엽과 흙을 긁는 두 손 등이 눌리는 감각 흐르는 콧물과 눈물 거칠어진 호흡.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응 정했어. 내려가서 피자 먹어야겠다.”
읊조리는 괴한 역시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 이때 엎어진 우진이 뒤집혔다. 괴한이 그렇게 한 것. 덕분에 온몸이 벌벌 떨리는 강우진의 시야에 괴한이 보였다.
“···?”
얼굴이 없다. 정확하게는 얼굴은 있지만 검은색이다. 동그란 검은색이 목 위에 달렸다. 하지만 괴한의 몸통 실루엣은 확실히 보였다. 어렴풋이긴 했지만.
이 순간.
-푹!!
널브러진 강우진의 옆쪽 배에 뭔가가 박혔다.
“아아악!!!”
박힌 게 뭔지 알 새도 없다. 지랄 맞게 아팠으니까. 오장육부가 단숨에 끊긴 것 같은 고통.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격통.
덜덜덜.
우진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었다. 다리가 부들댔고 팔과 얼굴이 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감각이지? 시발 진짜 너무 아파. 명백한 현실이었다.
빌자 그래 빌자. 제발 살려달라고 빌자.
부들대는 양손을 붙인 우진은 싹싹 빌었다. 검은색 얼굴에 대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뭐든지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살려달라고. 표정 따윈 안 보이는 괴한이지만 사람이긴 하잖아?
그런 괴한이 웃었다.
개뿔 검은색 밖에 안 보이는 얼굴이지만 웃었다. 망상 속 희망 때문인지 우진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강우진도 억지웃음을 지었고 무언가가 재차 몸에 박힌 것은 이다음이었다.
-푹!!!
“끄악!! 아아악!!”
이때였다.
[“‘A:겁먹은 사내’의 리딩을 종료합니다.”]
로봇 같은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나 지난 걸까.
멍한 강우진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요! 저기요!!”
동시에 핸드폰을 귀에 댄 강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일자 책상에 앉은 3명이 보였다. 30대 남자와 턱수염 난 50대 남자 그리고 예쁜 여자. 방금 우진을 부른 것은 30대 남자 같았다.
곧.
‘어- 여긴 아까 거긴데. 아 돌아왔구나.’
강우진이 귀에 댄 핸드폰을 천천히 내렸다. 그런데 우진의 표정이 뭔가 좀 요상하다. 약간 취한 느낌. 그런 얼굴인 우진이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시간이 1분 정도 지나 있었다. 이상했다 직전의 산속에서만 한 30분은 지났어야 했다.
뭐가 됐든.
“···”
강우진은 무념무상인 듯 별 신경 안 쓰는 표정을 지었다. 뇌 작동이 더디다. 이때였다.
“저기요 안 하실 건가요? 김대영씨는 계속 연락 안 되시고?”
정면 일자 책상의 30대 남자가 쪽대본을 흔들며 강우진에게 물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보던 우진이.
‘···쪽대본. 아 그래 저거 난 이미 경험했어. 보여달라는 건가?’
의자서 천천히 일어났고.
-스윽.
30대 남자가 살짝 놀랐다.
“오? 하시려구요? 이야- 친구분이랑 우정이 두텁구만?”
이어 강우진이 일자 책상에 앉은 3명의 앞에 섰다. 거리는 대충 두 걸음. 왤까? 이유는 불분명했다. 지금의 우진은 그저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직전의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당한 모든 것을.
심지어 천천히 자세를 잡는 강우진에게는.
-스윽.
아직 모든 것이 생생했다. 직접 경험했기에.
약 10분 뒤.
쪽대본에 담긴 모든 것을 전부 보여준 강우진은 바닥에 누워있었다. 양손은 하늘을 향했다. 왜? 방금까지 싹싹 빌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아.”
계속해서 뭔가 붕 떠 있던 그의 정신이 맑아졌다. 사실 의식이 계속 또렷하긴 했다. 다만 보일 것이 끝나니 약간 느렸던 뇌의 작동이 신속해진 감각?
어쨌든.
-슥.
올렸던 양팔을 천천히 내린 강우진이 가장 처음 느낀 것은.
‘아 시발. 내가 방금 뭘 한 거냐?’
거대하게 밀려드는 수치심.
그다음이.
‘하- 지금까지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여? 나 정신에 문제 있나?’
사태파악이었다. 분명 뭔가가 벌어졌는데 아닌 것도 같았다. 전부 뒤죽박죽 엉켰다. 정신이 없다. 뭐가 됐든 귀신에게 홀렸더라도 방금 우진은 모두에게 보였다.
그게 경험이든 뭐든 퍽 열정적이었다.
곧 누워있던 강우진이 작게 헛기침하며 스르륵 일어났다. 큼큼. 여기서 우진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아닌 척. 자연스럽게. 일단 정리는 도망친 다음에.’
무척이나 쪽팔리고 수치스러웠지만 애써 담담한 척을 하자. 주문을 외워라.
‘난 당당하다. 난 멋지다. 강우진 넌 지금 하나도 안 쪽팔리다’.
최대한 쎈척을 하자.
이때.
“···있잖아요.”
여자 목소리가 침투했다. 일자 책상에 앉은 3명 중 오지게 예쁜 여자였다. 아니 잠깐만. 이 여자는?
‘헐? 미친. 홍혜연?!’
긴 생머리에 깨끗한 피부. 지금 우진의 눈앞엔 자타공인 탑여배우인 홍혜연이 앉아 있었다. 왜 아깐 못 알아봤지? 너무 낯설어서 그랬나? 천사다. 천사가 실존하면 분명 저럴 거야. 어쩌면 인간 같지 않은 외모라 그럴지도 몰랐다.
덕분에 우진은.
‘와 진짜 감탄만 나오네. 와-’
바지 터는 것을 멈추고 두 걸음 앞에 앉은 홍혜연에게 홀렸다. 미간을 좁힌 그녀의 질문이 던져진 것은 이때였다.
“어디 대학교 연영과 나왔어요? 중서? 한동?”
뭔 소리지? 어쨌든 우진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팬이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직전의 수치심과 더불어 쎈척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이 미친 수치심이 조금이나마 중화될 거잖아?
이어 우진이 멈췄던 손을 움직였고 바지의 먼지를 여유롭게 털던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최대한 낮고 무겁게. 까짓거 허세 좀 넣지 뭐.
그랬더니 우진도 놀랄 만큼의 낮은 톤이 나왔다.
“아니요. 그냥 경기도권에 있는 대학교의 디자인과 나왔습니다. 잘합니다 디자인.”
미친. 끝에 ‘잘합니다 디자인’은 왜 했지? 실수를 눈치챘지만 우진은 얼굴을 더욱 굳건히 했다. 재밌는 건.
“디자인···과?”
“···?”
앞에 앉은 탑여배우 홍혜연 포함 3명이 모두 얼굴이 구겨진다는 것. 왜 그런지야 명확진 않지만 어쨌든 놀란 것은 확실했다.
“그 그럼 연기는 어디서 배웠어요?”
배우긴 개뿔. 평생 관심 없던 분야였지만 우진은 일단 대강 둘러댔다. 빨리 도망치고 싶었으니까.
“독학했습니다. 주말에 잠깐잠깐.”
“···뭐요?”
그것이 우진의 허세를 증폭시켰다. 본인은 잘 몰랐지만.
곧.
“그럼.”
일자 책상 중앙에 앉은 턱수염 난 50대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질문을 추가했다.
“방금 건 어떻게 했나? 처음 해봤을 거잖아요. 근데 어찌 쪽대본 잠깐 보고···어떻게 했어요?”
방금 거? 쉿. 내 수치심을 강조하지 말란 말이다. 슬슬 도망 각을 잡던 우진이 뒤쪽을 한 번 본 뒤에 답했다. 물론 이번에도 쎈척과 근엄해야 했다.
“별로 어렵진 않던데요.”
답을 마친 우진이 앞의 3명에게 대강 하는 듯 마는 듯 인사했고.
“그럼.”
속은 급했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뒤쪽 문으로 걸었다. 부르지 마라를 속으로 계속 읊조리면서. 곧 문 앞에 선 스탭에게 주의 비슷한 말을 뱉는 강우진.
“죄송한데 저 방금 한 거 절대 방송에 쓰지 마세요. 쓰면 고소합니다.”
역시 허세였다. 이따위 지옥 빨리 탈출하고 싶었으니까. 어쨌든 다행히 강우진은 있던 방을 별 탈 없이 나올 수 있었다.
앞엔 여전히 대기하는 참가자들이 있었고.
“···”
무표정이던 우진이 그들을 스치자마자 걸음을 점점 빨리했다. 흡사 가벼운 조깅과도 같았고.
-스윽.
꽤 멀어진 틈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가 깊게 탄식했다.
“하- 시발. 개쪽팔려.”
한편 방금 강우진이 빠져나온 방에선.
“···PD님. 방금 쟤 별로 어렵진 않았다고 한 거예요? 그만한 연기를 보여줘 놓고??”
탑여배우 홍혜연이 과하게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흥분은 이곳에 퍽 만연했고 홍혜연의 질문을 중앙에 앉은 턱수염 50대 남자가 붙잡았다.
“디자인과? 디자인을 잘해? 황당한 놈일세.”
“독학? 거짓말! 무조건 배웠어 저건!”
“배웠어도. 그랬어도. 연영과도 아닌 데다 본업이 디자인이라는데 방금 거 연기 깔짝 배워서 쉽게 보여 줄 수 있다고 봐? 연출밥 20년인 난 불가능하다 보는데.”
“···그건.”
“대답할 때의 여유 자신감. 저건 진짜야. 진짜 쉬웠던 거라고. 심지어 대본 1분 띡 보고 그만한 연기가 주르륵 나왔어. 과거가 어땠는지 가늠 안 되는 놈은 또 처음이군.”
곧 턱수염 50대 남자가 강우진이 빠져나간 문 쪽을 바라보며 픽웃었다.
“별종 천재과. 간혹 나타나지 저런 괴물이.”
오해의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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