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 (4) >
롱패딩을 입은 강우진이 귀를 후빈다. 급작스레 간지러운 터라 어디선가 본인 얘기를 하나 싶었지만 뭐 누군가는 하고 있겠지 싶은 우진이었다.
‘청룡에서 질러버린 건도 있고.’
이슈가 터진 게 한 두 갠가? 아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강우진에 관해 떠들고 있을 게 빤했다. 그게 극찬이든 욕이든.
이쯤.
-스윽.
우진과 나란히 걷던 계속해서 통화하던 꽁지머리 최성건이 숏패딩을 여미며 강우진에게 물었다.
“뭐야 왜 그래? 귀에 뭐 들어갔냐? 봐줘?”
생각보다 과한 걱정에 우진은 표정을 단단히 하며 시니컬하게 답했다. 그의 입에서 추운 날씨 덕에 입김이 나온다.
“아니요 그냥 좀 간지러워서.”
“그래? 얼굴 좀 내려봐 내가 불어줄게.”
왜 그러시는 거예요 대체. 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이번엔 단발머리 색이 붉게 변한 오른쪽의 한예정이 쌀쌀맞게 끼었다.
“벌레 들어간 거 아니에요? 제가 봐 드려요?”
“됐어.”
그쯤.
“형님!!”
“우진 오빠 왔다!”
야외 주차장에 주차된 승합차 앞에 선 스탭들이 강우진을 반겼다. 장수환과 스타일리스트들이 손을 붕붕 흔들고 있다. 이어 우진이 다가오자 그들은 하나같이 축하를 던져댔다.
“‘실종의 섬’ 촬영 끝! 고생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진짜진짜! 아- 근데 이거 축하하는 거 맞는 건가?”
“맞지! 대형 작품 하나 털었는데!”
“오빠! 홀가분하시죠?”
“아- 근데 아직 할 게 좀 많이 남긴 했네요.”
어째 연기를 한 당사자인 강우진보다 그들이 더 기뻐 보인다. 그럴만하긴 했다. ‘실종의 섬’ 대부분의 촬영이 부여에서 진행됐고 서울에서 부여를 왔다갔다하는 스케줄은 강행군이었으니까.
우진이야 아공간에 들락이면 된다지만 스탭들은 지옥이었겠지.
‘탈출이라고 생각하면 방방 뛸만하네.’
물론 강우진도 내면으로는 어깨춤을 춘다.
‘흐흐 뭐가 됐든 하나 끝났다아! 과제 하나 정리한 기분이네.’
그러나 스탭들과 얼싸안고 파티를 벌일 순 없다. 우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들의 인사를 적당히 받았고.
“너희들도 고생했어.”
뒤쪽의 ‘실종의 섬’ 대형 세트단지를 돌아봤다. 본인만 이탈했을 뿐 지금도 촬영이 한창이겠지.
“···”
입을 다문 우진은 자신이 조금은 적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달 전만 해도 작품 촬영이 끝나면 좀 뭉클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보단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가?’
여전히 연기를 접한 지 1년 남짓한 새내기지만 확실히 연예계에 잘 스며들고 있다. 뭐 아직 그 누구도 강우진의 알맹이를 아는 이는 없긴 하지만.
어쨌든.
-텅!
강우진과 최성건 그리고 스탭들은 승합차에 재빨리 올랐고 운전대를 잡은 장수환이 액셀을 밟았다. 동시에 다이어리를 펼친 최성건이 룸미러를 통해 강우진을 본다.
“우진아.”
묵묵하게 창밖을 보던 우진이 그와 시선을 맞췄다.
“예 대표님.”
“‘낯기생’ 크랭크인 날짜 잡혔다.”
“그렇습니까?”
“어. 첫 촬영 날은 21일이고 배우들은 20일에 소집 떨어졌어.”
이미 얼추 예상은 했던 터라 강우진은 그리 놀라진 않았다.
“20일. 대충 열흘 좀 넘게 남았네요.”
“그렇지. 그때부턴 일본 한국 왔다갔다 해야될 거야. 뭐 ‘실종의 섬’이랑 비슷한데 장소가 부여에서 일본으로 바뀐 거지.”
미친 개빡세겠네. 최성건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랬다. ‘낯기생’의 촬영은 날을 최대한 붙여서 한다. 그리고 강우진의 기존 한국 스케줄은 하루나 이틀에 몰아서 정리. 어느 쪽이든 쉴 틈 따위는 없다.
금세 스탭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성건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19일 아니고 하루 일찍 18일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카시히 그룹 관련 광고 미팅도 있고 일본 쪽 언론사들 인터뷰하고 화보 촬영도 있어.”
일본 쪽의 스케줄도 늘어나고 있다. 카시히 그룹 광고 건이야 알고 있었지만 인터뷰나 일본 쪽 화보는 언제 잡은 거지? 강우진이 속으로 고개를 갸웃할 때 최성건이 다시금 입을 연다.
“좀 빡빡해 보일 순 있는데 이것도 일본 쪽에서 오는 섭외 대부분은 거른 거야. 고르고 고른 거란 얘기지.”
다이어리를 덮은 그가 몸을 뒤로 돌렸다.
“우진아. 너한테 지금 일본 쪽 방송에서 예능 섭외가 얼마나 들어오는지 알어?”
아니요 전혀요. 중요한 부분이야 최성건이 모두 전달하지만 자잘한 부분은 그가 알아서 처리하기에 우진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꽤 들어옵니까?”
“하하. 꽤? 아니지. 한 달 전부터만 계산해도 얼추 10개가 넘어. 이게 어느 정도냐면 화린씨네 그룹 엘라니가 일본에서 거의 1티어급 아이돌인 건 알지? 지금은 거기보다 많은 수준일걸?”
즉 현재로서는 강우진이 일본에서도 화제성 1위라 봐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뜻.
“근데 우진이 너 일본 예능 안 할 거잖아? 왜 관심 있어? 잡아줘?”
되물음에 강우진이 근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능은 ‘우리네 식탁’으로 충분합니다. 솔직히 연기보다 예능이 더 기가 빨리니까.
“아니요 지금처럼 전부 커트 부탁드립니다.”
강우진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뒤로
국내 인터넷에선 한창 일본에서 넘어온 기사가 번지는 중이었다.
『[스타IS]“폼 미쳤다” 한국을 넘어 일본 광고계도 접수? 강우진 일본 대기업 카시히 그룹 광고 계약 확정』
『일본 거대 기업 ‘카시히 그룹’ 광고모델로 발탁된 강우진 계약금은 얼마?』
이 건은 이미 일본의 카시히 그룹과 bw 엔터가 인정했다. 즉 강우진이 일본 대기업 카시히 그룹의 광고를 맡은 것은 팩트였다.
『‘이번에도 최초’ 강우진 일본 대기업 광고모델까지 뻗어 나간다···‘카시히 그룹’ 역사상 한국인 모델은 처음』
당연히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언론과 여론은 흥분했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우진 진짜 졸라 잘나가넼ㅋㅋㅋㅋ일본 대기업 광고 모델까지???
-또 강우진??? 아 개별로…얘 소식 안 보고 싶음….청룡 이후로 비호감
-헐….아이돌 빼고 일본에서 광고 찍는 거 첨봄….
-근데 이해는 됨ㅋㅋㅋㅋ강우진 남사친 그거 일본에서 초대박남ㅋㅋㅋ아직도 일본 넷플 10위 권 안에 있음
-미친놈이네 진짴ㅋㅋㅋㅋㅋ물건이긴 물건이넼ㅋㅋㅋ한국에서 8관왕하고 일본도 섭렵 시작했음ㅋㅋㅋㅋ
강우진 폼 지리넼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이미 섭렵한 상태임 한량이랑 남사친 터트리고 낯기생도 대기중
-여기 댓글들 호들갑 오지넼ㅋㅋㅋㅋㅋ그래봤자 전부 얻어걸린 거잖엌ㅋㅋㅋㅋㅋ?
-얻어걸려서 일본에도 팬클럽이 있냐?? 어딜가나 ㅂㅅ들이 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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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말을 기점으로 강우진을 까는 분위기도 퍽 늘었다. 눈에 띌 정도로 분명하게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이는 일본도 비슷했다.
착실하게 일본 팬들이 쌓이곤 있지만 반대로 우진의 일본 인지도가 커지는 만큼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많다. SNS든 댓글이든. 일본의 기업도 강우진을 견제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류를 겨냥한 것이 맞다.
『일본 중견기업 부사장 인터뷰에서 강우진 언급 “한국배우보단 자국 배우를 신경 써야 한다”』
이는 굳이 강우진에 국한된 상황은 아니었다. 원래도 유명하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 덕분에 ‘강우진 부캐’ 채널이나 우진의 SNS 등에도 악플의 수가 불어난다. 보통의 연예인이라면 최소가 스트레스고 심하면 공황에 빠질지도 모르는 상황.
실제로 이 정도쯤 되면 약을 먹거나 정신과를 다니는 연예인이 허다했다. 그래서 강우진은 어떤가?
“우진 오빠 오늘 SNS 댓글 보지 마요. 욕이 좀 있더라구요.”
“그래.”
“괜찮으시죠?”
“뭐가.”
“아니···전보다 악플이 늘어서.”
“아무 생각 없는데.”
어쩌라고? 내 알 바인가? 딱 그런 마인드였다.
와중 한국의 배우판에서도 강우진을 보는 시선이 곱진 않았다.
뭐 원래도 강우진의 미친 행보에 시기 질투하는 배우들은 많았지만 이번 연말 여러 시상식에서 우진이 보인 선전포고가 장작을 추가했다. 그중 청룡이 가장 강력했다. 그래서인지 배우들 사이에선 강우진의 언급이 잦았다. 촬영장이든 사모임 자리에서든.
“강우진? 애가 뒤가 없더라. 표정도 슴슴하니 싸가지도 좀 없는 거 같고.”
“솔직히 지금까지 보인 게 대단하긴 한데- 사건 하나 터져서 한 방에 훅 가는 타입?”
“다시 생각하니까 황당하네. 거기 선생님들이나 선배들 넘쳐나는데 어떻게 그리 당연하게 주연상 받는다고 씨불이지?”
“어려서 그런 거지. 아니고선 거물들 싹 모인 청룡에서 그런 짓을 하겠어?”
물론 이들은 알지 못했다. 우진이 성장하는 속력부터.
“딱 그냥 아시아용이지 아시아용. 일본 진출도 솔직히 한량 잘돼서 넘어간 거고.”
강우진이 올해 어떤 퍼포먼스를 보이게 될지 말이다.
10일. 이른 아침 서울의 한 오피스텔.
밖으로는 아침 해가 뜨고 있었지만 퍽 넓은 오피스텔의 203호 내부의 분위기가 어두침침하다. 창문마다 달린 암막 커튼이 햇볕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203호의 내부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는 곳과는 조금 달랐다.
가구가 없다시피 하다.
보이는 거라곤 냉장고 작은 식탁 거실에 놓인 침대 매트리스가 다였다. 허허벌판이라 봐도 무방. 와중 침대 매트리스위에서 자고 있던 남자가 부스스 일어났다. 얼추 30대쯤 됐을까? 머리는 반삭에 눈이 작은 사내였다. 그런 그가 일어나자마자 주변에 놓인 안경을 찾아 썼다.
“아으-”
기지개를 쭉 켠 그가 스륵 일어났다. 키도 적당하다. 이어 남자가 하품을 쩍 하며 냉장고에서 생수통을 꺼내 벌컥였다.
이어 시간 확인.
“7시 40분-”
겨울용 잠옷을 입은 그는 배를 벅벅 긁으며 가까운 방으로 움직였다. 닫힌 문을 남자가 열자마자 거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길쭉한 책상에 놓인 컴퓨터가 2대에 노트북까지.
뭔가 전문적인 냄새가 풍기는 방이었다.
안이 훤히 보이는 컴퓨터 본체들 비싸 보이는 복합기 대충 봐도 전문적인 키보드와 마우스 커다란 모니터 등등. 이 방에 몰린 컴퓨터 기기들은 모두 최고급일 게 분명했고.
-스윽.
남자가 잠들어 있는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리곤 있던 방을 나와 옆 방의 문을 열었다. 이쪽도 심상치 않다. 놓인 책상 의자는 그렇다 치지만 책상 앞에 설치된 것들이 묘했다. 삼각대 위에 올려진 고가의 카메라 그 주변에 조명들.
딱 봐도 촬영 방이 아닌가?
여기서 남자가 방문 주변 벽면에 걸린 여러 가면 중 늑대 모양의 가면을 집었다.
“오늘은 늑대.”
이유야 심플했다. 그는 너튜버였으니까.
[채널명: 팩트가이즈]
[구독자 188만 명]
구독자 188만 너튜버 팩트가이즈가 다루는 건 랜덤이었다. 대중들의 눈길을 끌 만한 것은 뭐든지. 그게 뉴스든 사건이든 고발이든. 그래서인지 그가 올리는 영상의 조회수는 항시 50만에서 100만 회는 넘었다.
다만 영상을 올리는 주기가 길었다.
얼추 1주에 한 번? 촬영과 편집부터 모두 혼자 하니까. 본인의 익명성을 위해서였고 소재는 본인이 찾거나 제보를 받는다. 특이한 점은 너튜버 팩트가이즈가 올리는 영상엔 한국의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
다른 나라의 것도 꽤 많았다.
최근엔 헐리웃 쪽의 스캔들을 다뤘다.
어쨌든 촬영 준비를 하던 남자가 재차 하품하며 방을 옮긴다.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곧 켜진 컴퓨터 앞에 앉은 그가 메일에 접속했다. 새롭게 제보된 게 있나 싶어서였다.
“···”
턱을 괸 그가 마우스 클릭을 여러 번 한다. 밤사이 많은 제보가 쌓였다. 물론 그중에서 반 이상은 쓰레기.
그러다.
“응?”
남자가 미간을 좁힌다. 눈에 띄는 제보 메일을 확인해서였다. 그런 그가 메일의 제목을 읽었고.
“비밀리에 헐리웃 영화 ‘라스트 킬3’에 스크린 테스트를 본 강우진?”
메일을 보낸 상대를 확인했다.
“누가 보낸 거야 이거.”
익명이었다.
이 시각 강우진의 집.
출근을 위해 집을 나온 강우진이 지하주차장에 등장했다. 모자를 쓴 그가 늘 그렇듯 자신을 데리러 온 승합차를 발견했다. 그런데.
‘응?’
강우진이 뭔가 변화를 느꼈다. 승합차가 변했으니까. 위로도 옆으로도 넓어진 외제 밴으로 말이다. 색은 검은색. 살짝 감탄한 우진은 최대한 티 안 나게 밴으로 걸었다. 그러자 조수석에서 롱패딩 입은 최성건이 내렸다.
“왔냐?”
표정이 위풍당당한 그. 반면 이미 컨셉질이 짙은 강우진은 그저 인사만 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응 그래그래.”
고개 끄덕인 최성건이 뒤쪽 커다란 밴을 눈짓했다. 한마디 해달라는 듯. 이에 강우진은 낮게 읊조렸다.
“크네요.”
“감상이 그게 다냐?”
“바꾼 겁니까?”
“너 팀 사람도 늘었고 위세도 커졌으니까. 뭐 전의 승합차도 멀쩡하긴 했는데 이 바닥이 워낙 보이는 걸 중요시 하니까.”
말을 마친 최성건이 돌연 주제를 바꿨다.
“그리고 출발 전에 네가 결정할 게 있는데.”
“뭡니까?”
“어제쯤 너한테 일본 쪽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컨텍 들어왔다.”
애니메이션? 갑자기 뭔. 강우진은 속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태연하게 답했다.
“애니메이션 말입니까?”
“어. 제작사는 ‘A10 스튜디오’라고 일본에서 TOP3에 드는 초대형이야. 당연히 제작하는 애니의 성우를 연기해달라는 내용이고.”
성우. 우진은 일단 신기했다. 배우를 하다 보니 이런 경우도 다 있구나. 일본 애니 하면 강우진도 몇 편은 본 적이 있다.
‘아- 은근 재밌을지도?’
그러다 멈칫.
‘어라? 잠깐만. 애니메이션도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있지 않나?’
우진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럼···애니도 아공간이 뜰라나?’
만약 뜬다면.
‘리딩(경험)은 어떻게 되는 거지.’
영화나 드라마를 제외한 새로운 장르. 피어난 호기심이 덩치를 키운다. 일단 강우진은 침착하게 목소리를 깔았고.
“한다 안 한다 전에 대본을 봐야겠네요.”
미소 짓던 최성건이 뜬금 조수석에서 뭔가를 꺼냈다. 적당한 두께의 종이뭉치였다.
“그럴 줄 알고 가져왔지. ‘A10 스튜디오’에서 애니 1화 대본 가안도 같이 보내줬거든. 그러니까 초고라고 볼 수 있겠네. 수정 전인 거. 스케치 정도?”
“···”
말없이 종이뭉치를 받는 강우진. 표지엔 애니의 타이틀이 아닌 제작사 ‘A10 스튜디오’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뜨네.’
종이뭉치 옆에는 검은색과 회색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즉 아공간의 통로가 붙어 있다. 이 순간에도 최성건이 무슨 말을 하고 있지만 우진은 본능적으로 검은 사각형에 손을 올렸다.
이내.
-스윽.
강우진의 세상은 삽시간에 주차장에서 온통 컴컴한 아공간으로 변했다. 집 같은 아공간에 도착한 우진은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퍽 늘어난 흰 사각형 앞에 도착한 그가 방금 추가된 것을 확인했다.
-[10/대본(제목: 불명) D급]
-[*완성도가 보통인 애니메이션 대본입니다. 50% 리딩이 가능합니다.]
잠시간 글자를 읽던 우진이 대수롭지 않게 흰 사각형을 선택했다. 금세 문구들이 바뀐다.
-[10/대본(제목: 불명)을 선택하셨습니다.]
-[리딩(경험) 가능한 인물을 나열합니다.]
-[A: 1 B: 2 C: 3···]
배역 이름이 숫자다. 가안이라 그런 건가? 작게 읊조린 우진은 일단 아무거나 선택했다.
[“‘A: 1’ 리딩 준비 중···”]
[“···준비 완료. 완성도가 보통인 대본이나 시나리오입니다. 구현도는 50%입니다. 리딩을 시작합니다.”]
곧 커다란 회색이 강우진을 덮쳤다.
여기까진 같았다.
하지만 강우진의 눈 앞에 펼쳐진 지금의 세상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의 리딩(경험)과 거리가 멀다.
-빵빵!
귀에 박히는 빵빵거리는 소음과 차들 높은 빌딩과 건물이 박힌 도심 인도를 걷는 또는 스치는 사람들 푸른 하늘 움직이는 구름.
분명 강우진이 알던 것들이지만 낯설다.
“···”
보이는 세상 전부가 애니메이션이었으니까.< 신년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