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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MMGA Chapter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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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3)

콘도에 도착하고부터 강우진의 심장은 쉴 새 없이 쿵덕댔다.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은 것.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나? 싶기도 했다. 낯선 곳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너무 단박에 던져졌다.

우진은 애써 무표정을 일관하긴 했다만 속으론 전쟁터였다.

‘침착해. 쫄지마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난 당당하다 난 쎄다.’

소시민인 알맹이를 덮기 위한 마인드컨트롤을 미친 듯이 해댔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홍혜연 너 이 작품 언제부터 확정됐었냐??”

탑여배우 홍혜연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배우들 전부는 강우진을 신경도 안 쓴다는 것. 알아보는 게 이상하긴 했다.

덕분에.

‘홍혜연님 뒤에 숨어있어야지.’

시간을 벌었다. 강우진은 홍혜연을 방패 삼아 조용히 심호흡에 집중했다. 이 콘도는 어찌 보면 우진의 컨셉질에 있어 핵심 장소였다. 보는 눈만 수백에.

‘죄다 연기 쪽으론 쌉고수니까.’

난다긴다하는 베테랑들이 모여 있었으니까. 지금껏 컨셉을 잘 유지해왔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평소보단 더 기민해야 했다.

‘아우- 씨. 표정관리 표정관리.’

솔직히 대본리딩이 코 앞인 이 순간 강우진은 ‘연기’보다 ‘컨셉’에 인생을 걸고 있었다. 이즈음이었다.

“홍혜연 너 오늘 리딩 끝나고 뒤풀이 할 거냐?”

커다란 홀의 입구에서 키가 장신인 잘생긴 배우가 홍혜연에게 붙었다. 그를 보자마자 우진은 바로 인지했다.

‘아 류정민. 개잘생겼네.’

기사에서나 보던 ‘프로파일러 한량’의 남주 류정민인 것을. 오면서 많은 배우를 봤지만 과연 류정민은 내뿜는 포스가 남달랐다. 류정민이 바로 옆에 있는 강우진 관련 얘기를 꺼낸 건 이때였다.

“야 너 박대리 역 배우 봤어?”

우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올릴 뻔했다. 가까스로 참았긴 했다.

‘그 배우 여기 눈앞에 있습니다만.’

문제는.

“오- 이분 매니저하긴 좀 마스크가 좋은데? 잘생기셨네요.”

류정민이 돌연 강우진에게 관심을 가졌다. 대뜸 우진더러 홍혜연의 매니저란다. 뭐지 왜 멋대로 착각하시는지? 다만 우진은 류정민의 입에서 나온 ‘잘생겼다’라는 칭찬에 집중했다.

‘미친. 웃을 뻔했다.’

무려 국민 남친인 류정민이 잘생겼다는데 빈말이라도 어깨춤이 나와야지. 하지만 이에 끝나지 않고 류정민은 우진에게 한 걸음 다가서선 말을 건다.

“진짜 배우 한 번 해봐요. 얼굴이 아까워서 그래.”

아 근데 이 양반 진짜 잘생겼네. 가까이서 보니 더 그랬다. 장발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얼굴. 남자가 봐도 이 정돈데 여자들이 보면 미치지. 강우진은 저도 모르게 말없이 류정민의 얼굴을 감상하고 말았다. 아니 빠져들었다.

“···”

그랬더니 류정민이 홍혜연에게 멋대로 읊조렸다.

“이분 시크하시네. 분위기가 있어. 아니 긴장하신 건가? 신입이셔?”

오해였다. 이런 이건 진짜 의도치 않은 건데. 이때쯤 홀의 입구로 익숙한 인원들이 등장했다. 송만우 PD와 박은미 작가였고 류정민은 홍혜연에게 인사하며 멀어진다.

이어.

“우진씨.”

홍혜연이 강우진의 어깨를 치며 ㅁ자 책상 중간을 가리켰다.

“저기가 인기 스타 박대리 자리. 뭐 긴장되진 않겠지만 쫄지마요.”

아니? 미친 듯이 긴장됩니다만. 우진은 티 안 나게 긴 호흡을 뱉었다. 그리곤 그녀가 알려준 중간 자리를 확인했다. 난다긴다하는 배우들 사이 ‘박대리’ 역 배역표가 보인다.

-스윽.

이윽고 우진은 발길을 옮겼다. 수백에 가까운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기 위해서. 나름 진정됐던 그의 심장이 다시금 쿵덕쿵덕 고동친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와- 돌겠네.’

난생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우진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젠 뒤가 없다. 그리고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다.

허세를 위한 마인드컨트롤.

강우진은 한 걸음 한 걸음 주문을 외우며 걸었다. 다행인 건 홀 안에 그 누구도 우진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우진이 박대리 역 자리에 도착했을 때.

“PD님 아- 대체 뭡니까. 박대리 배우분 없잖아요. 설마 안 오시는 거예요?”

“왔는데?”

미소 섞인 송만우 PD가 우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스윽.

홀 안의 수백 넘는 인원들의 시선이 강우진에게 집중됐다. 어우 씨 잠깐만. 우진은 얼어붙었다. 수십 배우들의 눈빛 수군대는 배우들의 매니저들 고개 갸웃하는 기자들 등등.

백여 명이 강우진에게 대답을 갈구하고 있다.

너 누군데?

강우진은 몸과 정신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재밌는 것은 이성이 날아간 이 상황에 뇌의 선명한 명령이 하나 있었다.

‘시발 몰라.’

컨셉질. 노빠꾸 직진. 자잘한 것 없이 하나만이 명확했다. 버릇이 이래서 무섭지. 그러니 우진은 순수하게 그것만을 쫓을 수 있었고 자신을 보는 모두를 훑으며 비정한 표정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게 몇 초.

조금씩 이성이 돌아온 우진이.

‘아 자기소개.’

낮은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박대리’ 역을 맡은 강우진입니다.”

곧 쑥덕임이 만연하던 거대한 홀이 조용해졌다. 분위기가 뭔가 요상하다. 일단 강우진은 앉아야 할 것 같아 의자를 빼냈다.

-드륵.

이 거대한 리딩장에 오직 우진이 의자 빼는 소리만이 퍼졌다.

“···”

“···”

그것이 집중도를 높였다. 눈을 희번뜩 뜬 유명 원로배우도 예능서도 잘나가는 여자배우도 최근 찍은 영화가 흥행한 남자배우도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배우들 등등.

‘아 그만 좀 봐라. 떨린다고.’

그중 한 배우를 힐끔한 우진이 속으로 읊조렸고.

‘아 저 배우가 찍은 광고 보고 나 패딩 샀었는데.’

앞쪽 자리인 홍혜연은 혼자 입꼬리를 씰룩인다. 웃음을 참는 듯. 남주 류정민은 여전히 우진을 보며 두 눈이 커진 상태. 퍽 황당한 표정.

어쨌든 홀의 백여 명은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기대했던 ‘박대리’ 역으로 듣도보도 못 한 배우가 앉았으니까. 사실 모두에게 강우진은 그저 일반인과 다른 바 없긴 했다. 그러니 배우진 모두는 이해 안 되는 얼굴인 게 당연했다.

이는 대본리딩에 온 기자들이나 매니저팀들 등도 죄다 마찬가지.

그쯤.

“자자.”

홀의 고요함을 송만우 PD가 깼다.

“다들 그렇게 궁금해하시던 박대리 역 배우님 강우진씨. 눈인사들은 했죠?”

이때야 강우진에게 집중됐던 모두의 시선이 거둬졌다. 우진은 티 안 나는 안도의 숨을 뱉었고 송만우 PD가 대본리딩을 속행했다.

“자세한 소개는 리딩 들어가면 하고. 다들 대본 1부 펼칩시다.”

-팔락 팔락.

곧 당황 섞인 배우들이 얼결에 대본을 펼쳐댔다. 그러면서도 우진을 힐끔대며 쑥덕댔다.

“누구지 쟤? 알아?”

“아니 처음 봐. 무명?”

“무명···치곤 너무 무명인데. 나 연극 쪽 좀 아는데도 완전 낯선데?”

누구 할 것 없이 죄다 똑같다.

“송 PD님 무명이나 신인 캐스팅 잘 안 하시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거기다 ‘박대리’ 역 이거 준·조연급 아닌가? 그걸 무명으로 앉힌 거야? 대박이네.”

물론 강우진의 주변에 앉은 배우들은 인사를 던지기도 했다.

“반가워요 강우진씨? 연극 하셨어요?”

“안녕하세요 연극 안 했습니다.”

“목소리 좋으시다 이게 첫 작?”

“예. 첫 작입니다.”

강우진은 근엄한 척을 이었다. 아는 게 없으니 대답은 최대한 짧아야 했다. 다만 이것이 주변 배우들에겐 다르게 평가됐다.

“뭐야 반응이 왜 저리 딱딱해? 벌써 스타병 걸린 거 아니에요?”

“마스크는 나름 괜찮은데···원래 성격이 저런 거 아닌가?”

“‘박대리’ 솔직히 좀 기대했는데 연기 자체는 좀 밋밋하겠네요.”

“그래도 송 PD님이 앉혔는데 기본은 하지 않겠어요?”

“기본만 하면 뭐- 상관없긴 하죠.”

이쯤 송만우 PD의 말로.

“소개부터 시작합니다.”

대본리딩이 본격적으로 스타트했다.

잠시 뒤.

연출진의 소개부터 배우들의 소개가 한 바퀴 돌았다. 중간 강우진의 소개에선 쑥덕거림이 커졌긴 했지만 소개 타임은 무리 없이 끝났다.

리딩의 시작은 송만우 PD의 지문부터였다.

“S#1. 산속 아침. 경찰들이 산속에 우르르 포진되어 있다.”

‘프로파일러 한량’은 2010년의 이야기였다.

아직 완결까지 집필이 끝난 건 아니지만 기획상으론 총 네 가지 에피소드를 4화씩 엮어 16부까지 달려갈 예정이었다. 그중 ‘박대리’는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요인물이었다. 극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며 제대로 뚜껑을 열 인물이기도 했다.

첫 장면 산에서 한 50대 남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여기서 남주인 류정민이 등장한다. 그가 맡은 것은 프로파일러 ‘유지형’ 역이었다. 설정상 천재의 머리를 가졌지만 천성이 한량이라 유한량이라 불린다.

유한량이 등장과 함께 대사를 친다.

“아아- 시신 상태가 영 별로네. 아침 먹고 왔는데.”

이다음 등장하는 것이 홍혜연. 그녀는 열혈 형사인 ‘정연희’ 역을 맡았다. 설정상 한번 물면 죽어라 쫓아가는 악바리 형사였다.

정현희가 유지형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린다.

“왜 유한량씨가 나왔어요? 다른 분 없어요?”

“프로파일러가 전국으로 많지가 않으니까? 뭣하면 정형사님이 하시던가. 난 가서 디저트나 먹을게요.”

“하- 어이없어.”

둘은 원래도 아는 사이인 듯 티격인다. 뒤로 남성 시체를 두고 다른 배우들도 합류한다. 리딩 분위기는 단숨에 질펀해진다. 연기 좀 한다 하는 배우들이 나름 분석한 대사들을 주고받는다.

“사망 추정 시간은?”

“어젯밤 같아요.”

“손톱에 저 빨간 건 뭐지?”

“매니큐어요.”

“매니큐어? 뭐야 이 아저씨 취미?”

배우들 전부는 무아지경으로 자신의 연기를 이어간다. 리딩이지만 퍽 농도가 짙다. 다만.

‘음-’

강우진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도 티 안 나게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저 배우. 방금 대사 좀 대충 한 것 같은데.’

그의 시선에선 이곳이 리딩장이 아닌 ‘프로파일러 한량’ 1부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이미 각 배역의 인생을 직접 경험하고 온 강우진이었다. 직전에 대사친 저 배역도 지금 읊조리고 있는 저 배역도 대사를 준비 중인 배역도.

사실 이 리딩장에 그 어떤 배우보다 가장 적나라한 연기가 가능한 그였다.

‘아니지 거기선 강조해야지. 마음이 다급하잖아? 왜 저렇게 심심하게 대사 치냐?’

아니나 다를까.

“태산씨 방금 대사는 밋밋했어. 좀 강세를 줍시다.”

강우진이 속으로 아쉬워한 것처럼 송만우 PD가 배우에게 덤덤하게 지적했다. 이에 우진이 속으로 반응했고.

‘것 봐라. 애초 저 배우는 처음부터 좀 표현이 이상한데?’

동시에 헤어밴드 찬 박은미 작가가 서브주연을 맡은 장태산을 혼냈다.

“태산씨 인물 분석 제대로 한 거 맞죠? 왜 그렇게 힘이 쭉 빠진 건지 모르겠네.”

“···죄송합니다 좀 달리 분석한다는 게.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강우진의 생각대로였다. 물론 여자 배역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박대리 역은 거진 남자 배역과 붙기에 별 상관없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강우진은 긴장감은 가득하지만 은근 리딩을 즐기는 법을 깨우쳤다.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을 비교해보는 것. 때때로 직접 뛰어들어 보이고 싶기도 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라고 할 뻔.’

뭐랄까 운동장 조회 시간에 조용히 숨어 흙장난하는 느낌? 여기서 우진은 돌연 느꼈다. 아 이게 배역 욕심이라는 건가? 와중 ‘프로파일러 한량’ 1부의 중반 쯤 극을 뒤흔들 반전이 터진다.

프로파일러 유지형의 대사부터였다.

“이거 좀 보죠? 빨간 매니큐어 상체만 벗긴 옷 흉기 살해 후 굳기 전에 다소곳이 자세를 잡은 것. 과거에도 같은 수법이 있었네? 미제사건 중에.”

알고 보니 이번 살인의 방법이나 수법이 아직 미제사건인 과거 5구의 시체를 만든 연쇄살인범과 같은 방식이었다. 때문에 전국이 발칵 뒤집힌다. 여기서 여주 정연희의 대사.

“2004년에···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6년 만에 돌아왔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실력이 딱 그놈이잖아요? 화려하게 복귀한 느낌?”

“복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니 근데 이제와서 왜 갑자기?”

그렇게 1부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극의 긴장감은 서서히 치솟는다. 물론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호흡 때문인지 리딩장의 공기는 뜨겁다.

이때였다.

“페이드아웃.”

송만우 PD가 대본 한 장을 넘기며 다음 등장인물을 가리켰다.

“한적한 공원. 아 우진씨.”

1부 중후반부. 박대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박대리 첫 등장은 상대 없이 솔로 연기니까 적당히 느낌만 살려서 해줘요. 극 진행 톤만 좀 맞추게.”

“예 알겠습니다. 적당히 하겠습니다.”

다만 지식이 부족한 강우진은 ‘적당히’라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저 양반이 말하는 적당히는 어느 정도인가? 표현을 반쯤 줄이라는 건가? 아니면 대충하라는 건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우진은 대강 결론을 내렸다.

‘후- 긴장되네. 아 몰라. 어차피 앉아서 하는 거니까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표현은 제대로 하지 뭐.’

이렇게 백여 명 넘는 인원들 앞에서 것도 배우들이 즐비한 곳에서 하는 연기는 우진에겐 처음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티가 나면 안 됐다. 최대한 의연한 척 여유있는 척.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단순해졌다. 묵직한 박대리만 생각하자.

직접 보고 맡고 느꼈던 박대리의 경험에만 오롯이 집중한다. ‘적당히’ 움직임을 좀 줄이고.

그렇게 모두의 관심과 시선이 집중된 강우진은 박대리가 됐다. 서서히 감정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 순식간에 강우진의 냄새가 달라졌다. 이는 우진에게 그닥 어려운 과정도 아니었다.

십수 번 리딩했고 경험했으며 이해하고 소화했다.

어느새 우진의 눈앞은 광경이 달라져 있었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죄다 사라졌고 한적한 낮의 공원이 펼쳐졌다. 리딩실의 뜨거운 온도가 햇볕이 되어 피부에 닿는다. 온도가 따듯했다.

지금 박대리의 표정은 온화했다.

생동감이 넘친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저 강우진은 박대리였다. 아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미 다른 바 없으니까.

-스윽.

박대리가 고개를 올렸다. 온화하면서도 메말랐던 박대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기묘한 표정이었다. 눈은 짙으면서도 은은하게 광기가 서렸다.

불쾌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이 순간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던 박대리가 돌연 표정을 지웠다. 직전의 기묘한 웃음은 온데간데없다. 주름 한 줄 없이 빳빳했다. 왜인가? 고개를 갸웃할만한 변화였다. 박대리가 다시 웃었다. 좀 전과는 정도가 다르다. 살짝 이빨이 보일 정도.

보이는 웃음에 약간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미세하지만 뜻이 숨겨져 있었다. 이를 베테랑 배우들이 모를 리 없었다. 박대리를 지켜보는 배우들은 점점 입이 벌어졌다. 저따위 표현 어디서도 본적이 없었으니까.

하나라도 놓칠세라 박대리를 응시하는 홍혜연도.

‘긴장은 개나 줬어 여유가 넘치잖아. 오히려 전보다 더···진하지 않아? 뭔가 깊어진 듯한. 2부는 어떻게 짜왔을까? 하- 씨 빨리 보고 싶어.’

박대리를 창조한 박은미 작가도.

‘이 즐비한 탑배우들한테 보란 듯이···심지어 그때보다 몇 배는 더 선명해. 미쳤다 쟤는 진짜. 계속 발전하고 있는 거야??’

총괄 연출인 턱수염 송만우 PD도.

‘백여 명 시선들 따윈 아랑곳없는 거겠지. 자존감이 하늘에 있으니까. 뭐가 됐든 아- 모니터 당장 모니터로 보고 싶은데 저건.’

이때 박대리가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금 올렸다. 그리곤 배우들을 훑는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움직임이 부드러우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쌓아온 감정이 그에게서 눈을 못 떼게끔 하는 것이었다.

곧.

-스윽.

박대리의 진한 눈이 어느 지점에 도착했다. 눈에 충격이 가득한 남주 류정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근방. 이어 박대리는 작게 고개를 꺾으면서도 뻣뻣한 얼굴에 입꼬리를 이질적으로 끌어올렸다.

웃지만 눈빛은 정적이다.

살의와 쾌감. 그 두 가지를 감싼 기대.

약 몇 초간을 류정민 근방을 지긋이 보던 박대리의 입이 작게 열렸다.

“아 저깄네. 개새끼.”

이 순간 박대리의 타겟이 된 남주 류정민은.

“···소시오패스.”

강우진을 처음 경험한 그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저 연기가 적당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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