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 (6) >
21일 아침 9시 30분쯤.
‘이네후나야’ 마을 근처의 중형 호텔. 주로 관광객이 이용하는 숙소. 그중 한 층을 ‘낯기생’ 팀이 모두 빌렸다.
다만 현재 ‘낯기생’ 팀의 층은 한산했다.
모두 ‘이네후나야’ 마을에 출근한 상태였으니까. 아침 일찍부터 촬영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 덕분에 호텔에 남은 인원은 몇 없었다. 그중 하나는 강우진. 현재 모자 쓴 우진은 식당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조식을 먹고 있었다.
‘오- 이거 계란볶음밥 같은 거 존맛인디?’
겉으론 단단한 얼굴이나 호텔의 조식에 감탄하는 중. 물론 그 혼자만 있는 건 아니었고 최성건 포함 우진의 팀 십수 명이 함께였다.
그렇게 몇 분 뒤.
“우진아.”
식탁에 커피들이 올려졌을 무렵 최성건이 몇 가지 소식을 전했다. 강우진이 ‘낯기생’ 연기에 빠졌을 쯤 최성건도 다른 일로 바빴으니까.
처음으로 강우진의 앞에 올려진 건 계약서였다.
“애니메이션 ‘남사친’ 어제 확정 지었다. 계약서 확인해봐.”
며칠 전 미팅했던 ‘남사친’ 애니메이션.
‘오- 이거 엄청 빨랐네?’
최성건의 말로는 계약 자체는 일사천리였다고 한다. 뭐 이미 ‘A10 스튜디오’ 측이 제작에 들어가기도 했고 워낙에 강우진을 욕심냈으니 그럴만했다. 우진으로서도 ‘남사친 리메이크’는 긍정적이었다. 피아노 능력과 신박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어쨌든 이로써 애니 ‘남사친 리메이크’에 강우진 합류가 확정됐다.
아직 ‘남사친 리메이크’의 제작 관련 소식이나 강우진 합류 정보는 대외비.
하지만.
“‘A10 스튜디오’ 쪽이 입장 정리되면 금방 발표한다고 했으니까 빠르면 다음 주? 쯤에는 오픈될 거야. 그다음에 우리가 따라붙기로 했고.”
시간문제였다.
“성우 더빙 녹음 같은 경우엔 아직 ‘A10 스튜디오’ 측도 확정은 아니라는데 얼추 7월 런칭 목표라면 4월에서 5월엔 들어가겠지. 그 전에 OST나 테스트 녹음은 있을 거고. 차차 알려줄게.”
이다음 우진이 계약서에서 확인 한 건 몸값 부분.
‘헐- 생각보다 개쩌네.’
최성건이 주도했으니 당연하겠지만 퍽 놀라운 몸값이 책정돼 있었다. 거기에 OST 부분은 따로였다.
더불어.
“이건 ‘카시히 그룹’ 쪽 첫 광고 콘티.”
일본 활동 중 찍을 ‘카시히 그룹’ 쪽 광고의 콘티도 도착했다. 강우진이 맡을 계약사 광고는 건설과 식품 쪽이었다. 건설 쪽 하나 식품 쪽 두 개.
“촬영 일정은 다음 주가 될 것 같네 그쪽도 뭐가 급한지 엄청 서두르는데 우리야 좋지 뭐.”
급하게 가는 게 좋긴 했다. 광고 촬영은 짧게 잡아도 반나절 이상이고 ‘낯기생’ 촬영에 돌입한 우진의 스케줄은 뒤로 갈수록 빡빡해진다. 거기에 한국 스케줄로 인해 귀국들도 생각하면 광고 촬영은 ‘낯기생’ 촬영 초반에 쳐내는 것이 형편에 좋았다.
이어 대뜸 최성건이 엄지를 들었다.
“그리고 어제 연기 죽여주더라 우진아. 넌 몰랐겠지만 현장 나온 영화사 배급사 애들 난리도 아니었어. 극찬하느라고 바빴더라.”
결과적으로 우진의 팀 모두가 흥분했다.
“아- 맞아요 어제 오빠 진짜 찢었어!”
“전 ‘낯기생’ 책 안 읽어 봤는데 이번에 사 보려고요!!”
“어제 진심 형님만 보였습니다!”
“일본 배우 스탭들 죄다 허- 헤- 거렸다니까요?”
민망함을 애써 숨긴 우진은 낮게 답할 뿐이었다.
“그랬나 연기하느라 못 봤어.”
한편 ‘낯기생’ 촬영장.
아침이 밝은 ‘이네후나야’ 마을은 밤이었던 어제완 달리 약간 활기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으스스함이 옅어졌다. 그래도 공허함은 여전했다. 어쨌든 어제 촬영의 핵심이었던 부둣가 주변엔 수십 스탭들이 분주하다.
“스탠바이 10분 전!!”
“카메라 세팅 들어갑니다!!”
“감독님! 여기 배우님들 분장 좀 확인 부탁드립니다!”
약 10분 뒤 본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니까. 당연히 숙소에 있는 강우진이 포함되지 않은 씬이었다. 원래 촬영이라는 게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을 순 없다만 ‘이네후나야’ 마을에 있는 동안엔 차례로 찍는 수밖엔 없었다.
따라서 현재는 긴조가 사망한 다음 날의 컷이었다.
쿄타로 감독은 방금까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지금은 여기저기 현장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모니터 주변 오늘도 시찰 나온 아카리 작가가 눈에 띈다. 거기다 투입될 배우들도 어젯밤과 비교해서 몇 배는 늘었다. 경찰 관련으로 보조출연자만 30명이 넘으니 당연했다. 다들 경찰 복장이었다.
“다들 긴장하지 마시구요! 액션 사인 떨어지면 다들 정해진 것만 해주시면 됩니다!!”
점차 촬영장 세팅은 사건 현장으로 변해갔다. 몰린 경찰들 구경꾼들 구경꾼들을 막는 출입금지 판과 줄 웅성대는 기자들까지. 곧 시체 연기를 해줄 야스타와 ‘미사키 슈토쿠’를 맡은 조·단역 배우가 입장했다.
“오오기모토씨 도착했습니다!”
야스타는 설정상 나체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어젯밤에 다 찍었다. 현재는 상체만 벗었고 하체는 입었다. 어차피 덮개가 깔릴 거고 반쯤만 오픈할 거라 상관없었다. ‘미사키 슈토쿠’를 맡은 조·단역 배우는 머리통 깨진 분장이나 의상이 어제와 같다.
그렇게 시체까지 세팅이 끝났다.
이내 수십 보조출연자들 사이로 현 촬영의 핵심이 될 주연배우가 들어섰다. 대강 입은 듯한 청바지에 네이비 경량패딩 짧은 머리 적당히 푸석한 피부 얼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일본의 탑배우 마나 코사쿠였다.
그가 ‘낯기생’에서 맡은 역은 ‘요시자와 모치오’였고 설정상 조금은 더럽혀진 형사였다. 야쿠자들이나 양아치들에게 용돈도 받는다. 겉으로는 귀차느즘에 대명사. 다만 웃기게도 게으른척하면서도 수사는 꼼꼼하게 하는 시나리오상 ‘낯선 이’인 이요타 키요시를 끝까지 쫓는 인물이었다.
그런 형사 역을 맡은 마나 코사쿠는 ‘낯기생’에서 강우진 다음 두 번째로 캐스팅된 배우.
일본 유명 밴드의 리더였고 오랫동안 일본에서 사랑받아온 가수 겸 배우였다. 이어 마나 코사쿠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스탭들이 우르르 붙었다. 분장팀이었고 메이크업 수정을 받으면서도 대체로 얼굴 선이 짙은 코사쿠는 촬영 현장을 천천히 둘러봤다.
“···음.”
딱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읽었던 ‘낯기생’과 같다. 뭣보다 어젯밤의 강우진 연기를 본 뒤라 그런지 더 생생했다.
곧 코사쿠가 예전 과거를 떠올렸다.
정확하게는 쿄타로 감독이 자신을 처음 찾아왔을 때였다. 코사쿠가 뭔가를 물었고 쿄타로 감독이 간단하게 대답했었다.
‘왜 이요타 키요시 역에 그 한국 배우가 캐스팅된 겁니까?’
‘그여야만 하기 때문이죠.’
그땐 그 뜻을 명확히 몰랐다. 하지만 코사쿠는 어젯밤에 쿄타로 감독의 심정을 절절하게 이해했다. 왜 그 한국 배우가 키요시를 맡았는지. 왜 그여야만 하는지.
코사쿠가 작게 혼잣말을 뱉는다.
“그여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밖에 하지 못 하기 때문이었어.”
코사쿠는 우진의 연기를 보고 연기 인생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 야스타가 말한 그대로였다.
강우진은 괴물이었다.
괜히 1년 차에 바다 너머 있는 일본 거장 쿄타로 감독의 눈에 든 게 한류를 일으킨 한국의 연말에 시상 8관왕을 먹은 게 아니었다. 코사쿠도 궁금증에 우진의 한량과 ‘남사친’을 모두 봤었다.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의 강우진은 차원이 달랐다.
그런 우진의 뒤꽁무니를 ‘낯기생’ 촬영 내내 쫓아야 하는 코사쿠였다.
‘배우로서도 형사로서도.’
코사쿠는 감정을 끌어 올렸다. 형사 ‘요시자와 모치오’를 몸에 번지게 한 것. 강우진은 현장에 없지만 쉐도우복싱을 할 준비는 끝냈다. 그가 있든 없든 계속해서 견제할 생각이기 때문.
‘이렇게라도 안 하면 촬영 끝까지 비교된다.’
유일하게 강우진과 끝까지 가는 인물이었다. 코사쿠는 진심으로 긴장감이 들었다. 그쯤 쿄타로 감독의 호출이 있었고 감독 또는 아카리 작가와 간단히 대화를 나눈 코사쿠가 카메라 뒤쪽에 섰다.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탁!!
곧 슬레이트 소음과 함께 모니터 앞 쿄타로 감독의 확성기 외침이 울렸다.
“하이- 큐!”
동시에 경찰복 입은 수십 보조출연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누구는 사진을 찍고 누구는 구경꾼을 통제하고 누구는 부둣가 주변에서 증거를 샅샅이 뒤진다. 여기에서 마나 코사쿠. 아니 형사 요시자와 모치오가 등장한다.
“어후- 멀다 멀어. 치바는 진짜 오랜만인데.”
투덜대며 등장한 형사 요시자와 모치오. 그의 옆에 선 후배 형사가 검지로 부둣가를 찍었다.
“저기부터 시작하시죠.”
“그래그래.”
카메라 둘의 뒤에서 따른다.
형사 모치오가 다가가자 나무배 위에 있던 경찰 한 명이 인기척을 알아차렸다. 모치오가 시체 위에 덥힌 것을 치우라는 시늉을 했다.
“얼굴 좀 봅시다.”
“아! 옙!”
경찰이 빠르게 덥힌 천을 반쯤 치웠다. 눈뜬 채 사망한 시체가 창백한 나체로 웅크린 모습. 긴조였다. 모치오는 명복을 빈다는 뜻의 합장을 취한 뒤 대수롭지 않게 부둣가 끝에 쪼그려 앉아 턱을 괸다. 시체를 자주 보는 모양. 그리곤 대뜸 사망한 긴조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당신은 왜 여기서 죽었습니까?”
후배 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 대답할 리가 없잖습니까.”
“알아 그냥 좀 물어볼 수도 있지.”
카메라는 그의 옆모습을 찍었고 답한 모치오가 고개를 살짝 꺾으며 시체의 모습을 눈으로 세세히 훑었다.
“목을 졸린듯한 자국. 밧줄 같은데? 뒤에서 졸랐나?”
조사 중이던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옙 확실히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이 밧줄인 것 같습니다.”
증거품 봉투에 담긴 나무배 정박용 밧줄을 올리는 경찰. 그것을 귀찮은 듯 바라보던 모치오가 검지로 긴조의 가슴팍을 찍었다.
“저 허연 건 뭐지?”
“정액입니다.”
“···아- 하긴 반반하게는 생겼네. 정액이라 그러니까 여기서 얘를 겁탈하고 목 졸라 죽였다?”
읊조리던 형사 모치오가 가까이에 놓인 시체의 소지품들을 확인했다. 입었던 옷과 속옷 그리고 지갑. 작게 숨을 뱉은 모치오가 장갑을 끼며 지갑을 열었다. 돈과 카드는 그대로였다.
“강도는 아니고.”
어쨌든 지갑에서 시체의 신원이 밝혀졌다.
“코나카야마 긴조-”
여기서 잠시 침묵. 쿄타로 감독의 컷 사인. 모두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재차 액션. 대략 3번의 리-액션만에 OK가 나왔다.
이어 다음 씬.
모치오가 긴조의 신원을 확인한 뒤 두 번째 시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60대가량의 머리통 깨진 시체였다. 옷은 입고 있었다. 이번에도 모치오는 합장과 함께 시체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범인입니까?”
카메라가 마나 코사쿠 뒤로 빠지고 후배 형사가 그의 옆에 붙으며 재차 한숨 쉰다.
“하- 선배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안다고. 그보다 이 사람은···”
말끝을 흐린 그가 고개를 위로 올려 앞의 높은 건물을 확인했다.
“저 위에서 떨어졌나.”
“정황은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쪼그려 앉아 턱을 괸 채 시체를 내려본 모치오가 옆의 경찰들에게 물었다.
“저항이나 가격 흔적은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까진 없습니다. 혼자 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흠-”
침음을 뱉은 모치오가 시체의 소지품들을 본다. 담배와 지갑 그리고 라이터. 역시 지갑에서 시체의 이름을 확인하는 그.
“마사키 슈토쿠. 이 아저씨 취향 특이하네.”
후배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남자를 좋아하니까 긴조란 애를 겁탈한 거잖아.”
“아-”
“하여튼 정리하면 이건가?”
느릿하게 일어난 모치오가 한 손을 주머니에 쑤시며 정리했다.
“여기 이 슈토쿠란 양반이 저기 배 위의 긴조를 납치해서 여기로 데려와서 겁탈. 즐겁게 즐긴 후에 밧줄로 긴조를 목 졸라 죽였고 자기도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정황 현재까지 나온 증거론 그렇습니다. 좀 더 세세히 파봐야겠지만. 이동 수단이나 뭐 등등. 뭣보다 나무배 위 시체에서 나온 정액이 여기 이 남자 것이면 100%죠.”
“···”
맞는 소리였지만 마나 코사쿠. 아니 모치오는 뭔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턱을 긁는 것은 덤.
“스읍-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부러 빵부스러기를 흘려놓은 기분이 들지 않냐?”
“그게 무슨.”
“일단 저 정액. 뭐랄까 대놓고 봐주십사 하고 가슴에 뿌려놨잖아.”
“아니 뭐 그거야···”
“거기다 저기 저 긴조라는 얘 몸이 너무 깨끗해.”
“예?”
“남자 둘이 붙었다고 가정해 봐. 아무런 저항을 안 했을까?”
“음-”
“그리고 이건 그냥 궁금증인데.”
형사 모치오가 어촌마을 전체를 훑으며 대사 쳤다.
“왜 하필 여기였을까?”
“그냥 ‘외지고 사람이 없으니까’겠죠.”
“글쎄. 굳이 치바까지 안 와도 외지거나 사람 없는 곳은 많지 않나?”
“그렇긴 한데.”
“흠 영 귀찮은 게 걸렸네. 구린내도 나고.”
“예?”
어깨를 으쓱인 모치오가 다시금 긴조가 누운 방향으로 걸었다. 카메라는 옆에 붙었다. 이어 그가 나무배에 웅크린 창백한 긴조를 내려보며 낮게 혼잣말을 뱉었다.
“이 장소는 뭔가 메시지가 아닐까 싶은데. 이봐 말해봐. 진짜 둘만 있었어?”
그다음 울린 것이.
“···커엇!!OK!!”
쿄타로 감독이 OK 사인이었다.
같은 날 점심쯤 한국.
장소는 부여에 있는 ‘실종의 섬’ 대형 세트 단지. ‘낯기생’팀과 비슷하게 ‘실종의 섬’ 팀도 촬영이 한창이었다. 위치는 학교 형태의 커다란 건물의 뒤쪽 공터.
군복 상의를 벗은 한 손에 총을 든 인물이 홀로 서 있다.
“···하하.”
류정민이었다. 허탈하게 웃는 그. 지금 그는 ‘최유태 중위’였다. 카메라 한 대는 그가 보는 방향을 한 대는 ‘최유태 중위’의 얼굴을 바싹 당겨 찍는다. 지금 최유태 중위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먼지와 그을음이 가득했고 볼이나 이마나 목이나 찢긴 상태가 가득했다.
눈동자는 어떠한가?
“하하- 크크 시발. 개 같은.”
초반 총명하던 그의 생기는 변했다. 반쯤 미쳤다 봐도 무방했다. 광기도 언뜻 서렸다. 그런 그를 모니터로 유심히 지켜보는 권기택 감독. 그리고 그 주변의 백여 명 스탭들.
이때.
-스윽.
큭큭 웃어대는 최유태 중위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의 앞엔 녹이 슬고 이끼가 잔뜩 낀 안내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 안내판의 위쪽 부분을 손바닥으로 털어내는 최유태 중위.
곧 안내판 상단에 어렴풋 글자가 보였다.
-[배 이용 시간]
잠시간 글자를 물끄러미 보던 그가 권총을 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진다.
“크크큭 아- 뭐야 이게. 현실에 있는 섬이었어?”
뒤로 약 10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백여 명 스탭들도 숨을 죽였다. 그들이 보는 건 모니터 앞 진중한 얼굴의 권기택 감독.
이윽고.
“···후-”
작게 한숨을 뱉은 권기택 감독이 느릿하게 일어나 확성기에 대고 나긋나긋 말했다.
“컷 OK. 류정민씨 수고했어요.”
류정민이 웃음기를 약간 뺀 뒤 감독과 스탭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곧 백여 명 스탭들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졌고.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허허 웃은 권기택 감독도 천천히 박수를 따랐다.
“다들 수고 많았어.”
이때야 백여 명 스탭 중 깍두기 머리인 조명 감독이 환희의 물꼬를 텄다.
“드디어 끝났드아아아아!”
‘실종의 섬’이 크랭크 업.
즉 모든 촬영이 종료된 순간이었다.< 희생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