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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MMGA Chapter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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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 (2) >

정해 놓은 사안이었다. ‘이요타 키요시’의 과거 촬영에 돌입하기 직전 9명 가량의 숙제들을 보던 우진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키요시. 그리고 진선철 상병.’

배역 합성. 그리고 시나리오에 표시된 타이밍. 강우진은 이번의 씬에서 키요시와 진선철 상병을 합성할 생각이었다. 섞어볼 요량이었다.

왜 진선철 상병이냐고?

그저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였다. 뭣보다 진선철 상병은 자아 또는 페르소나가 둘. 소환수로 보자면 소심한 놈과 거친 놈으로 두 명이다. 그렇게 따지면 진선철 상병으로만 배역 둘을 빼낼 수 있었다. 실제로 우진이 느끼는 내면의 진선철 상병은 두 명이 서 있는 이미지였다.

그러니 키요시와 소심한 놈을 섞어보자.

진선철 상병은 영악했다. 두 자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거친 놈보다 소심한 놈이 몇 배는 잔악해진다. 그 성향은 ‘실종의 섬’을 느끼며 서서히 자란 게 아니었다. 소심한 놈은 처음부터 영악했다. 아닌 척을 할 뿐.

그런 놈과 키요시를 합친다.

이미 시도는 해본 강우진이었다. 걱정은 없다. 다만 이 연기를 보는 다른 이들을 어떤 생각을 가질까. 연기가 어떻게 보일까. 대중들은 어떻지? 배우들은? 감독과 저 수많은 스탭들은? 눈앞에서 슬레이트가 쳐졌을 때 우진은 또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까짓 NG면 되돌리면 그만이고. 판단이야 남들 몫이지. 응 갈겨보자.’

연기 자체는 늘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흥미로웠다. 배역마다 가진 세상을 리딩(경험)하고 그들을 가지는 것도 즐길 정도로 발전한 강우진이다. 그런데 지금은 결이 다른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뭐랄까 신제품을 고객들에게 처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하이- 큐!”

이번 씬 연기에 미약하게나마 강우진의 손때가 탔기 때문이었다.

“소름 돋아 쟨 볼 때마다 얼굴이 기분 나쁘지 않아? 무슨 로봇 같아.”

물론 여전히 우진의 신들린 연기에는 아공간의 힘이 상당했다. 거의 90% 이상이라 봐도 무방했다. 강우진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했다. 아쉽게도 지금 아공간을 벗겨내면 현재의 강우진도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쭉 이용해먹을 생각이다.

하지만 주인이라는 마인드는 잊어선 안 됐다.

아공간이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강우진의 자세 문제였다. 그렇게 따지면 이번에 새로 주입된 능력인 배역 합성은 긍정적이었다. 강우진에게 있어 주인이라는 태도의 구심점을 만들어주니까. 내가 요리한다. 내가 요리사다. 이런 주체적인 자세를 일깨워준다. 그것이 무의식이든 아니든 말이다.

“기분 더럽게 쳐다보지 말고. 반응해보라고. 어?”

그래? 반응? 배우도 감독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카메라도 우진의 옆에 붙었다. 이미 키요시 그 자체인 강우진이 스스럼없이 대기하고 있는 진선철 상병을 불러냈다. 정확하게는 그의 소심한 자아. 호출된 소환수는 단숨에 주인의 명령을 따랐다.

두 소환수가 합성되는 건 눈 깜짝할 새였다.

키요시라는 건조한 근간은 유지되지만 그 위로 영악한 소심이 발라졌다. 그랬더니 참으로 기묘한 인물이 탄생했다. 가뭄이 난 마음 위를 한 사내가 조심조심 걷는다. 버석버석. 부들대지만 말라비틀어진 땅은 끝없이 이어졌고 걷는 사내는 후들대면서도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공포와 공백이 공존한다.

“그 그만해. 하지마. 무무무서워. 때리지마. 도 돈을 줬잖아.”

오묘함은 우진의 입에서 굴러나온 딕션에서도 묻어났다. 눈코입.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빡빡한 이마 평평한 얼굴 근육 움직임이 적은 코와 입. 그러나 우진의 눈동자엔 합성된 자아가 출렁였다.

던졌다. 자 그래서 너희들은 어때?

키요시가 자신을 이지메하는 ‘숙제’ 9명을 하나하나 훑었다. 제일 큰 반응을 보인 것은 방금까지 뺨을 때리던 신노스케였다. 그가 움찔하며 얼어붙었다. 당황했나? 아니면 두려워? 잘 보니 9명 모두가 비슷한 얼굴이었다. 강우진 또는 키요시는 불렀던 진선철 상병을 빼냈다.

삽시간에 그의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텀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괴기스러울 정도의 얼굴 변화였다. 원래의 키요시로 돌아온 그는 건조한 눈으로 9명을 응시했다. 할 일은 마쳤고 다음은 저들의 차례였으니까.

하지만 신노스케가 정신을 놨다.

“···아.”

그러다 가까스로 사태를 인지한 그가 어렵사리 다음 대사를 쳤다.

“잘하잖아? 뭐야. 시키면 다 할 줄 아는 거였어?”

정해진 대사였다. 충격을 받았지만 신노스케는 어떻게든 대사를 해냈다. 이다음은 미남인 긴조의 차례였다.

“그러게. 이 자식 키요시. 할 줄 알면서 그동안 입 다물고 있었던 거야? 하니까 인간적이고 좋잖아? 어이 신노스케. 이번엔 다른 걸 시켜보자고.”

“음. 화내는 건 어때?”

“좋은데?”

“크크 키요시. 넌 지금 열 받았어. 우리에게 화를 내보라고.”

-스윽.

강우진의 팔이 곧장 움직였다. 그 뻗어진 팔은 바로 앞 신노스케의 멱살에 닿았다. 그리곤 우진이 신노스케를 자신의 얼굴로 팍 끌어당겼다.

“어이 쓰레기.”

또 변했다. 강우진의 안광이 직전과는 판이했다. 건조한 목소리엔 위압이 발렸다. 순간 신노스케는 이 멱살을 풀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아니 대체 왜 키요시 위로 다른 인물이 느껴지는 거냐고. 반면 강우진의 대사는 멈추지 않았다.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질이야. 시멘트 발라서 바다에 빠트려줘? 그만 살고 싶냐?”

이상만이다. 지금 우진은 이상만을 합성했다. 하지만 길진 않았다. 필요한 만큼 썼으니 돌아가라 명령했다. 금세 냄새가 빠진 키요시가 신노스케의 멱살을 풀며 영혼 없는 톤으로 읊조렸다.

“했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신노스케였다.

‘연기? 이런 걸 연기라도 부를 수 있는 건가?’

옆의 긴조도 그랬다.

‘무슨···여러 영혼들이 빙의한 것 같잖아. 표정만 변한 게 아니었어 분명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고.’

뒤의 나머지 배우들도 같았다.

‘방금 몇 명이 왔다 갔다 한 거야??!’

명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득했으니까. 나름 일본 연예계서 잔뼈가 굵은 그들이었지만 방금 목도한 이질적인 것은 난생처음 보는 거였다. 같은 연기자의 입장을 망각했다.

그들은 관객이었다.

물론 관객은 배우들만이 아니었다. 강우진을 바로 옆에서 찍던 촬영감독도 배우들의 음성을 담기 위해 붐마이크를 든 스탭도 현장을 지켜보는 백여 명의 스탭들도.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

“···”

이곳의 ‘낯기생’ 제작진은 이미 촬영 중인 것을 잊었다. 숨 막히는 연극 무대를 관람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주연은 강우진. 하지만 인물은 하나가 아니다. 몇 명이었지? 그러다 몇몇 스탭들이 저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자아냈다.

“와···”

배우구나. 저런 게 진짜구나. 연기라는 건 저렇게 하는 거였구나. 스탭들은 하나 같이 일맥상통한 결과를 냈다.

가뜩이나 일본 쪽 스탭들이라 더 그랬다.

이미 이 시장에 팽배한 분위기 또는 연기법. 늘 과도하거나 정형화된 연기만 봐왔던 터였다. 그런 그들에겐 강우진의 연기가 가히 파격적이었다. 와중 번뜩 정신을 차린 안경 쓴 조감독이 미동도 없는 새치 가득한 쿄타로 감독에게 붙어 귓속말했다.

“감독님···이 일단 중지시킬까요? 시나리오와 약간 어긋난 것 같은데.”

약간? 아니었다. 조감독은 은연중에 시나리오가 잡아 먹혔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나 감독에게 그대로 말할 순 없었고 일본의 거장 쿄타로 감독은 모니터에 얼굴을 붙은 채 숨만 쉬고 있었다.

“···”

약 5초 정도. 그런 쿄타로 감독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진행한다.”

“예?”

지금 우진이 보이는 키요시는 분명 시나리오를 잡아먹었지만 거장 쿄타로 감독이 보기엔 여전히 ‘이요타 키요시’였다.

다만 말라비틀어짐이 극심해져 몇 배는 더 쭈글쭈글해졌을 뿐.

“어긋나지 않았어.”

키요시의 입체적인 변주에 불과했다.

뒤로.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지 않자 강우진 포함 배우들은 계속해서 연기를 펼쳤다. 동선이 아직 좀 남았으니까. 이어 모니터에서 천천히 고개를 올린 쿄타로 감독이 현장 속 강우진에게 시선을 맞췄다.

“단 한 씬.”

해봤자 몇 분. 편집이 들어가면 그보다 짧을지 몰랐다. 하지만 일본에 존재하는 그 어떤 배우도 해낼 수 없는 연기였고 수십 년 감독으로 구른 쿄타로 감독 본인도 처음 본 광경이었다.

어쩌면.

“···”

이 순간 우리는 연기적인 신문물을 목격한 게 아닐까. 쿄타로 감독은 우진의 과거가 아득해졌다. 당최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지 감조차 안 왔다.

‘저만한 연기를 펼치기 위해서 얼마나 갈고 닦아왔는가? 오직 연기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왔을 거야. 자신을 난도질한 뒤 아물기도 전에 지속된 혹사가 가득한 삶을 살았을 테지.’

쿄타로 감독은 강우진을 보며 감복했다. 착각이 섞인 감복이었다.

‘이 짧은 씬을 위해 저런 연기를 준비해 왔어. 이걸 끊는 건 감독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이건···이 신문물은 일본은 물론 세상에 알려져야 해.’

그리고 결심했다. 목도한 신문물을. 착각을 세상에 퍼트리겠다고.

그렇게 몇 분 후 그가 현장 전체로 외쳤다.

“컷! OOOK!!!”

가열찬 사인을 던진 그가 벌떡 일어나 현장 속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걸음이 빠르다. 쿄타로 감독은 배우들에게 좋았다는 손짓을 한 뒤 앉아 있던 강우진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고마워요 우진씨.”

갑작스런 감사 표현. 새치 가득한 쿄타로 감독의 눈엔 포근함이 가득했다.

“우리 영화 힘들 때도 자리를 지켜줬고 키요시를 위해 터무니없는 연기를 준비해줘서.”

안을 기센데? 강우진은 약간 벙쪘다. 갑자기 분위기가 요상해졌으니까. 뭐지? 몰라 일단 대충 넘기자.

그가 목소리를 최대한 깔았다.

“아닙니다.”

작게 미소짓던 쿄타로 감독이 우진의 손을 놓으며 주변 일본 배우들에게 말했다.

“난 방금 컷으로 시나리오를 바꾸고 싶은데. 다들 어때요?”

배우들은 딱히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기가 딸려서 도망쳐? 다들···저런 연기 본 적 있어?”

충격에 한 손으로 입까지 가린 고요한 스탭들 속 메건 스톤이 주변 팀원들에게 읊조렸다.

“최소한 나는 처음 보는데.”

“얼굴이···순식간에 몇 번이 바뀌었지?”

“맞아. 그런데 주인공 키요시는 유지됐어.”

“두 번째는 광기였나? 그런데 거칠진 않았는데.”

“그래 목적 없는 광기라 느껴졌어 난.”

눈 커진 뚱뚱한 남자가 턱을 쓸었고.

“새로운 연기법? 그런데 대체 여러 페르소나를 저렇게 빨리 갈아 끼우는 건 어떻게 습득한 걸까.”

갈색 단발을 쓸어 넘긴 메건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주변을 한 번 봐.”

팀원들이 근방의 백여 명 ‘낯기생’ 스탭들을 본다. 배우들의 수십 스탭들도. 구경나온 배우들도 몇 끼어있다. 그중 ‘미사키 토카’역을 맡은 신인 여배우 나카죠 키미는 입을 쩍 벌린 상태였다. 강우진의 연기에 뇌가 멈춘 듯 보였다.

“대사 몇 마디 짧은 연기로 이 많은 사람들을 홀렸어. 심지어 대단한 씬도 아니었지.”

메건 스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스타네. 스타들의 스타가 될 거야 저 한국의 배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촬영은 속도를 높였다.

점심쯤 본격적으로 시작된 ‘낯기생’의 과거씬 촬영은 늦은 오후가 돼서도 계속됐다. 강우진의 아무도 모를 ‘배역 합성’이 파란을 일으켜서인지 어쨌는지 쿄타로 감독을 포함해 일본 배우들과 ‘낯기생’ 스탭들은 급작스레 열정을 뿜어댔다.

쿄타로 감독의 입에서 NG가 많이 나왔다.

“컷 NG. 미후유씨 ‘아미에’가 표독스러운 건 좋은데 너무 흥분했어요. 응집된 흥분을 보여주세요.”

“네 네! 감독님. 다시 해보겠습니다!”

일본 배우들의 연기 폼에 디렉팅을 주기도 했지만 연출적인 부분이 아쉽다 느껴지만 가감없이 현장에서 컷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 수정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건 단 한 명의 배우였다.

“···강우진.”

지금 갈색 단발의 메건 스톤이 읊조린 것처럼 우진이었다. 촬영은 단연 그가 중심이 되어 굴러갔다. ‘이요타 키요시’가 현실에서 걸어다니고 말도 하고 있으니 그럴만했다.

심지어 지금의 키요시는 어제의 것보다 더욱 입체적이었다.

언뜻 파악이 될 것 같으면서도 종잡을 수 없다. 강우진이 연기하고 있는 키요시는 시나리오 속 그 자체이면서도 시나리오를 찢고 나와 보는사람들로 하여금 연막을 뿌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과하지 않았다. 현장 책임자인 쿄타로 감독의 눈에서도 그랬지만 퍽 오랬동안 헐리웃에서 굴렀던 메건도 같은 판단이었다.

‘폭주가 아니야. 저건 폭증이지. 거기다 영역을 넓힌 캐릭터성을 다룰 줄도 알아. 인물의 근본은 확고히 지키면서···원할때만 부피를 늘린다.’

‘선을 지킨다.’ 이것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중견 이상급의 배우들이나 가질 수 있는 기술이며 지금 강우진이 자유자재로 소화하고 있는 저 연기법은 메건으로서는 처음 보는 수준이었다.

‘신인류? 진짜 외계인이야 뭐야?’

자신이 배우로서 돋보이는 법을 안다. 현장과 작품의 세계를 휘어잡는 방법도.

한마디로 강우진은 지금 날아다니고 있다.

그런 강우진은 방금 작게 혼잣말을 뱉은 참이었다. 물론 속으로.

‘오케이- 이렇게 써먹으면 되겠네. 얼추 적응 됐으.’

배역 합성에 관한 말이었다.< 성장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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