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 (3) >
키요시와 미사키 토카가 학교 옥상에서 마주 보는 씬이 진행됐다. 즉 강우진과 토카를 맡은 일본의 신인 여배우 나카죠 키미의 차례. 서로 나라는 다르지만 둘 다 신인이었다. 심지어 경력으로 보면 키미가 더 길다.
하지만 아우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는 그저 보는 눈으로도 그랬고 쿄타로 감독이 보는 모니터에서도 생생하게 잡혔다. 나카죠 키미는 우진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괘 괜찮아. 할 수 있어. 호흡해 호흡.’
본인이 긴장한 탓도 있지만 배우로서의 기량 차이기도 했다. 반면 강우진은 평온할 뿐.
“···”
물론 그녀를 빤-히 보는 우진은 속으론 키미를 약간 걱정하고 있었다. 긴조 때와 비슷했다.
‘옥상이라서 그런가. 고소 공포증이 있나 본데.’
와중 쿄타로 감독은 잠시 고민했다.
‘키미씨도 잘해 하지만 너무 긴장했다. 끊고 잠시 쉬었다 갈까. 아니···씬을 가기도 전에 그러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자신감과 자존감의 문제였다. 키미는 가뜩이나 신인이기에 멘탈이 상당히 약했으니까. 곧 결정을 내린 쿄타로 감독은 덤덤하게 사인을 외쳤다.
“하나둘! 하이- 큐!”
둘의 연기가 시작됐다. ‘낯기생’에서 꽤 중요한 장면. 키요시의 ‘숙제’가 처음 발현되는 씬. 그런 강우진의 연기를 가만히 지켜보던 외국인 무리 중 팔짱 낀 메건이 작게 읊조렸다.
“이미 할 줄 아는구나.”
적당히 읊조린 그녀가 주변 팀들에게 눈치를 줬다. 슬슬 빠지자는 얘기였다. 그렇게 조용히 현장을 이탈한 메건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헐리웃의 대배우들을 상기했다. 헐리웃엔 어마무시한 배우들이 존재하지만 아카데미상 등에서 연기상을 타며 이름을 날리는 대배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들과 비슷한 냄새가 나.’
메건이 우진에게 맡은 향은 그런 것이었다. 배역을 완벽히 연기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너무 완벽하면 도리어 눈에 안 띌 때가 있지.’
오히려 배우에게 ‘당연함’은 독이 되는 경우가 존재했다. 그럴 땐 변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내는 이는 드물다. 연기를 매우 ‘잘’하는 걸 유지하면서도 감독 스탭 상대 배우 대중 등 충격이나 자극을 주입해 시선을 독차지하는 기술.
여기서 핵심은 연기를 잘하는 게 디폴트라는 것.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는 완벽한 연기여야지 대중들에게 최면을 걸 수 있고 핵폭탄이 터지며 최면에서 깨어나면 대중들의 눈엔 그 배우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경이로운 연기력은 몇 배나 두드러지지.’
어느새 학교 밖으로 나온 메건. 그녀의 머릿속에 헐리웃 대배우의 얼굴 몇몇이 스쳤다. 그런 메건과 팀이 외부에 주차된 승합차에 올랐다. 시간은 6시를 넘기고 있었다. 하늘이 어둑어둑하다.
-부웅!
헐리웃의 캐디 팀을 태운 승합차가 엔진음을 뿜으며 도로에 들어섰다. 팀의 리더인 메건의 표정은 진중했다. 그 상태로 창밖을 보는 중. 외국인 팀원들도 얼굴이 딱딱하다. 부정적인 분위기라기보단 당황에 가까웠다.
이어 짧은 머리를 긁던 뚱뚱한 남자의 입에서 영어가 뱉어졌다.
“대체···강우진은 ‘라스트 킬3’를 왜 마다한 거지? 소문과는 전혀 달랐어. 저 연기 텐션을 보이는 배우가 연기가 부족해서 도망갔을 리가 없잖아?”
조수석에 앉은 주황머리 남자가 동의했다.
“완벽한 헛소문이야. 조지 멘데스 감독도 저 연기를 봤으면 매달렸을 게 빤해.”
“아까 강우진이 보인 연기는 정말···그 초마다 인물이 바뀐 것 같은 연기. 어디선가 본 적 있어?”
“전혀.”
“나도 그래. 세상에 유일무이한 연기법을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 강우진은 왜 헐리웃을 패스하고 있지? 저 연기 텐션과 그 무술 실력이면···먹히고도 남을 텐데.”
이때 계속해서 창밖을 보던 메건이 강우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상기하며 날 선 판단을 내놨다.
“선포야.”
“선포?”
아니 날 선 착각이었다.
“그래.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과시해둔 거지. 처음부터 ‘라스트 킬3’의 조·단역엔 관심조차 없었을 거야. 실제로 접촉도 내가 먼저 했었어. 하지만 배역에 관심 없던 강우진은 굳이 나타났지.”
“···그런 뒤에 당당하게 배역을 까냈고.”
“그 정도 조·단역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라고. 모르겠어?”
“아.”
이때야 메건의 속뜻을 이해한 팀원들의 눈에 느낌표가 떴다. 하지만 갈색 단발을 쓸어넘긴 메건은 날 선 착각의 전염을 멈추지 않았다.
“헐리웃에 도전하는 게 아닌 헐리웃이 자신을 찾게 할 자신이 있는 거지. 오늘도 봐. 우리를 보고 아무렇지 않았잖아.”
“심하게 평온했지. 헐리웃 캐디팀이 접촉하면 흥분하는 게 보통의 배우들 리액션인데.”
메건이 길쭉한 다리를 꼬며 턱을 쓸었다.
“···강우진은 한국의 안가복 감독 작품으로 칸 진출을 준비 중이야.”
“아- 그렇지.”
“안가복 감독은 칸 헐리웃에서 꽤 이름값이 높아. 100번째 영화를 찍을 만큼 노장에 거장다운 실력도 있고. 그 감독과 강우진이 합친 작품이 칸에 던져진다고 생각해봐. 우리가 알아볼 정돈데 칸의 세계적 거물들은 어떻겠어?”
팀원들이 알만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전부가 눈독 들이겠군. 헐리웃의 오디션 같은 건 필요도 없겠어.”
“그 스토리대로 간다면 조·단역은 할 이유가 없지.”
메건이 픽 웃었다.
“조·단역? 칸을 뒤집으면 헐리웃을 조연. 아니 그 이상으로 시작하게 될 거야.”
그리곤 약간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고.
“조셉 펠튼- 그 남자는 이걸 일찍이 간파하고 먼저 움직였어.”
팀원들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날 24일 아침. 한국.
일요일. 시간은 10시쯤. 오늘은 ‘우리네 식탁’의 1화 방영이 있는 날이었다. 저번 주 0화에 이어 약 일주일간 수많은 떡밥과 이슈들 ‘우리네 식탁’ 팀이 업로드한 많은 예고편 등의 영상들로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 ‘우리네 식탁’ 멤버들은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 모여 있었다.
촬영 준비가 한창인 스튜디오. 많은 카메라들과 조명 등이 촬영존을 향해 설치됐다. 주변엔 ‘우리네 식탁’ 관련 포스터 등이 붙었다. 그런데 수십 스탭들의 모습이 퍽 익숙했다.
이 스튜디오의 촬영팀은 윤병선 PD의 ‘운동회’팀이었으니까.
오늘의 게스트는 ‘우리네 식탁’팀. 두 쪽 모두 예능계 대부 윤병선 PD 라인이라 잡힌 촬영이었다. ‘운동회’ 역시 인기 예능이고 현재 ‘우리네 식탁’은 물이 들어오는 터라 윤병선 PD가 작정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카메라 포커스 확인!”
“1번 OK!!”
“2번 OK!!”
촬영팀의 여러 카메라가 향하는 촬영 존에 주르륵 앉은 ‘우리네 식탁’ 멤버들. 안종학 하강수 홍혜연 화린 연백광까지. 모두 풀메에 각자 뽐낼 코디로 멋을 챙겼다. 허나 일본에 있는 강우진은 참석하지 못했다.
강우진이 메인 셰프지만 어쩌겠는가?
뭐가 됐든 멤버들과 그들의 앞에 선 윤병선 PD는 촬영 전 신명나게 떠들고 있었다.
“근데 우진이 헐리웃 그거 진짜냐?”
주제는 당연하겠지만 강우진이었다. 어제 터진 강우진의 헐리웃 진출설이 한국을 뒤집어놨으니까. 그러니 ‘우리네 식탁’ 멤버들의 흥분은 이상하지 않았다.
“야야 홍혜연. 너 뭐 아는 거 없어?”
안종학의 물음에 긴 생머리를 쓸어넘긴 홍혜연이 미간을 좁혔다.
“몰라요. 같은 회사라도 다 아는 거 아니라니까?”
“하긴. bw 엔터 더 커져가지고 더 그렇긴 하겠네.”
홍혜연이 아랫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나도 놀랐다구요.”
베이지 니트를 입은 막내 연백광이 훅 끼었다.
“근데 우진형 헐리웃 나가는 거 진짜면 대박이잖아요?”
하강수가 길쭉한 다리를 꼬며 인정했다.
“초초초대박이지. 데뷔하고 1년만에 헐리웃 나가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영상 보면 사진은 찐 헐리웃 같던데. 와- 진짜면 좋겠다. 월클 배우랑 친하다고 자랑도 하고.”
“근데 우진씨는 아직 아무 말 없잖어?”
와중 아까부터 조용한 흰색 후드를 입은 화린은 핸드폰을 쪼물딱 거리고 있었다.
‘연락···해봐? 근데 나 아니어도 연락 엄청 받고 계실 것 같은데. 으- 전화하고 싶다.’
최최최애의 헐리웃 진출은 어깨춤을 출 정도의 대사건이지만 왜인지 강우진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 드는 화린이었다. 그런 화린이 조용히 강우진의 ‘강심장’ 카페에 접속했다. 어제도 그랬지만 현재도 ‘강심장’ 팬클럽 카페는 포화상태였다.
이때 안종학과 얘기하던 윤병선 PD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근데 정말 우진씨는 끝없이 이슈가 터지네. 히트야 히트. 처음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 했는데. 어후- 이건 진짜.”
안종학이 보던 핸드폰을 흔들며 거들었다.
“기사 터지는 속도 맞냐 이거? 미쳤는데. 홍수네 홍수.”
“당연하지. ‘위너 무비 픽쳐스’면 헐리웃에서도 꽤 큰 곳이잖아? 형 거기 가봤어?”
“가보기야 했지. 정확하게는 스친 거지. 들어가 보지는 못 했고.”
“형도 못 가본 ‘위너 무비 픽쳐스’를 우진씨가 직접 트라이 한 것도 아니고 거기서 직접 컨텍을 줬던 정도면- 급이 그냥 훅 뛰네.”
윤병선 PD를 잠깐 째려본 안종학이 주제를 바꿨다.
“아니 근데 우진이 걔는 그 바쁜 와중에 언제 스크린 테스트를 본 거여?”
“형은 100% 확실하다고 보는 거야?”
“에이- 증거도 있고. 나는 한 80% 맞다고 봐.”
이때 막내 연백광이 양손을 짝 쳤다.
“아!!! 그때 아닙니까?? 저희 ‘우리네 식탁’ 촬영 다 끝내고 복귀할 때 우진 형은 헐리웃에 잠깐 남았었잖아요!”
순간 고요함이 퍼졌고 안종학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때네.”
이 시각 언론이든 여론이든 국내 연예계든 흥분도는 최대치였다.
『[스타톡]강우진 헐리웃 진출 임박?』
『헐리웃 ‘스크린 테스크’ 보는 강우진 국내 최초로 1년 만에 헐리웃 확정 짓나』
뭐 한국 연예계에 헐리웃 진출 관련 소식이 지금껏 전혀 없는 건 아니었으나 매우 소수였고 이번 주인공이 그 강우진인게 대단한 파급력을 일으켰다.
『‘강우진’ 헐리웃 진출설에 국내 연예계 발칵···‘위너 무비 픽쳐스’ 쪽은 조용』
특종으로 이슈를 터트린 너튜버 팩트가이즈의 영상은 하루만에 대박 조회수를 달성했다.
-【특종 단독!!】돌풍의 배우 강우진!! 비밀리에 이미 헐리웃 영화 스크린테스트까지 받았다?! 헐리웃 입성 코앞!(결정적 증거 입수!)|팩트가이즈
-조회수 788만 회
현재는 후속으로 따라붙은 수많은 너튜버들로 인해 어뷰징 영상은 끝없이 파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잘 팔렸다. 댓글도 폭발했다.
점차 잡소리 찌라시가 넘쳐났다.
터진 건 어제였지만 오늘이 몇 배는 난리였다. 특히 한국 대표로 강우진이 일본에 나가 있는 터라 더 심했다. 상황이 이 정돈데 강우진의 부모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죽집에 있는 강우철과 서현미는 반응이 좀 미묘했다.
“···헐리웃? 이게 우리가 아는 거기 맞지. 미국.”
“그거 맞지.”
“그럼 우리 우진이는 아니지 않나?”
“음?”
“아니- 일단 우진이가 연락이 없기도 했고. 우리 아들이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 않았어?”
강우철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도 듣기는 잘했어. 듣기만.”
수 시간 뒤 LA.
한국이나 일본은 정오쯤이었다. 이쯤 LA는 늦은 오후였다. 그 시각 LA의 헐리웃 쪽에 있는 턱 봐도 거대한 집들이 줄지어 지어진 곳. 그중 많은 유리들로 인테리어가 된 마당의 거대한 수영장이 눈에 띄는 집 안 익숙한 남자가 보였다.
거인 같은 키 우람한 덩치 흑인인 외국인.
헐리웃 유명 프로듀서 조셉 펠튼이었다.
“후우-”
방금 퇴근한 듯 보이는 그는 거대한 거실에 나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었다. 조셉이 꺼낸 것은 초록색 음료였다. 그닥 맛있어 보이진 않았다. 실제로 맛이 별론지 음료를 삼키던 조셉이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먹어도 쓰레기 같군.”
혼잣말을 뱉은 그가 어렵사리 음료를 삼키면서도 시간을 확인했다. 9시를 넘기고 있다. 조셉은 이미 헐리웃 영화 3개를 운영하고 있었고 내일도 일찍부터 미팅이 줄줄이었다. 오늘은 일찍 잘까 싶은 그였다.
이때.
-♬♪
비싸 보이는 소파 위 그의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었다. 조셉은 혼잣말로 ‘시작이군’ 따위를 뱉으며 핸드폰을 집었다. 그런데.
“음?”
상대가 의외였는지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메건?”
전화 건 이는 유능한 캐스팅 디렉터 메건 스톤이었다. 허나 이 시간에 전화해온 건 의아했다. 처음 있던 일이니까.
“흠-”
뭐가 됐든 초록색 음료를 내린 그가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메건? 밤에 무슨 일이야.”
핸드폰 너머 메건 스톤의 목소리는 뭔가 침착했다.
“여긴 낮이야.”
“낮이라니?”
“난 지금 일본에 있거든.”
“일본?”
되물은 조셉이 순간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그래. 일본의 영화제에 간다고 했었나? 아직 복귀를 안 한 거야?”
“맞아. 돌아가는 건 이틀 뒤야.”
“직접 갔어? 팀을 보내도 됐을 텐데.”
“난 내 눈으로 본 것만 믿어.”
“하하 그렇겠지. 그래서 괜찮은 배우가 있었나?”
“있었어. 제대로 된 스타가.”
“스타?”
약간 황당한 답변이었으나 워낙에 메건이 괴짜라 조셉은 대충 넘겼다.
“다행이군. 그래서? 무슨 일이야. 메건 네가 이 시간에 전화 준 건 처음이잖아.”
“강우진.”
순간 조셉이 멈칫했고.
“강우진?”
“일본에서 강우진을 만났어.”
“아.”
그의 뇌리에 쿄타로 감독과 ‘낯기생’이 스쳤다. 강우진의 조사표에 적혔던 사안이니까. 그러고 보니 강우진은 ‘낯기생’ 촬영을 시작했었다.
“설마···메건 방금 말한 스타가 강우진을 말하는 건가?”
“그의 연기를 봤어. 생생하게.”
이런. 나보다 빨랐군. 우연이라지만 조셉은 약간 진듯한 기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땠어?”
“···”
“메건?”
급작스레 조용해진 메건 스톤을 부른 조셉에게 그녀가 돌연 물었다.
“강우진의 ‘라스트 킬3’ 스크린 테스트 정보를 푼 게 조셉 너지?”< 성장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