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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MMGA Chapter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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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 (5) >

강우진은 처음 ‘거머리’ 리딩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살짝 떨렸다. 심지어 1등으로 도착한 터라 배우는 우진 혼자였다. 대본리딩 자체는 꽤 해온 터라 문제될 건 없지만 역시 낯선 환경이나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건 늘 그렇듯 바로 적응은 힘들었다.

퍽 간만에 하는 대본리딩 현장이라 더 그랬다.

‘어우- 씨 혼자 덩그러니 있으니까 개어색하네. 누구든 좀 오지?’

물론 점차 두쿵대는 심장을 숨기기 위해 근엄함을 장착한 채 분위기 있게 시나리오를 보는 척하는 우진이었으나 집중 따위 될 리가 없었다. 오늘은 겉과 속이 유별나게 달랐다.

‘리딩장 사이즈도 뭔가 좀 크지 않냐??’

한국 영화계의 최고봉인 안가복 감독이 현장이며 참여하는 배우들도 죄다 대배우에 탑배우도 넘쳤다.

거기에.

“우진씨 엄청 일찍 왔네요? 역시 먼저 와서 시나리오 점검하려고?”

“그렇겠죠. 단단한 표정만 봐도 딱 알겠구만 뭘. 그나저나 오디션 때 우진씨가 상대역 연기 봐준 거 봤어요?”

“당연히 봤죠. 그날 스탭들 전부 진짜 완전 뒤집어졌었잖아요.”

‘거머리’ 오디션 때에 강우진이 보인 상대역 연기 때문인지 대본리딩 세팅을 서두르는 수십 스탭들의 시선들이 따가웠다. 추가로 입장하는 키스탭과 영화사 배급사 관계자들의 시선 역시 비슷했다.

“강우진씨가 와있네? 대본리딩 시작하기 1시간 정도 남지 않았나?”

“소문 들어선 겉으론 깡깡한데 속은 은근 말랑말랑하나 봐요.”

“의외네···울트라급 이슈들도 터지고 솔직히 오디션 때 분위기 씹어먹어서 은근 콧대 좀 세울 거 같았는데.”

“아- 오디션 때 우진씨가 상대역 봐주면서 난리 났다고 하더라고요?”

눈빛이 따갑다. 오디션 때 힘을 좀 더 뺐어야 했나? 아니 나름 뺀다고 했잖아? 긴장감이 슬슬 몸집을 키워선지 우진은 아랫배에 알싸함이 느껴졌다.

‘방구 마렵네.’

소리 없는 살포가 가능하겠지만 언젠가 과거의 실수가 상기된 우진이 묵묵하게 괄약근에 힘을 줬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우진씨.”

한소진이 등장했다. 내내 혼자 있던 우진은 그녀가 은근 반가웠다. 마음 같아서는 비죽 웃으며 외로웠다 말하고 싶었으나 컨셉질에 가로막혔다.

‘이분 저번에 오디션 때도 느꼈는데 미모가 미쳤긴 해.’

하지만 한소진은 묘하게 성깔이 있었다.

“네. 그래서 더 확고해졌어요. 우진씨를 넘어서고 싶어졌어요 꼭.”

아니 이 여자는 왜 날 볼 때마다 이긴다 넘어선다 선포하는 거여? 전쟁광이신가? 우진은 그냥 대충 넘기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배우들이 추가됐다. 많은 조연 배우 진재준 오희령 등 강우진의 컨셉질 역시 더더욱 진해졌다. 솔직히 긴장감이 팽배할 땐 누가 말 안 거는 게 더 편했다.

쎈척을 등에 업으면 사람들이 약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에 편했다.

그쯤.

-스윽.

자연인. 아니 대배우 심한호가 등장했다. 거친 아우라를 뿜으며 우진의 앞으로 직진하는 그. 강우진은 위엄있게 일어났지만 속으로는 바로 앞 심한호를 보곤 화들짝 놀랐다.

‘헐?!! 와- 씨 뭐지? 심한호님 포스 지리네!!’

꺼끌하게 자란 수염도 그렇고 전체적인 심한호의 이미지가 확 변했다. 수컷의 향이 훌훌 풍겼다. 원래도 범 같은 느낌인데 외면까지 이러니까 딱 맹수 같은 에너지를 흘린다.

그에게 반한 우진이 목소리를 깔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심한호의 답변은 무겁고 짧았다.

“오늘 내 연기가 좀 사나울 수도 있지 싶어요.”

강우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와 대사가 무슨 영화네! 따위의 반응. 물론 속으로. 맹수나 수컷의 향이 진해서인지 심한호의 지금 멘트가 너무 찰떡이었다.

‘존멋. 이게 대배우의 아우라지!’

오진다 오져. 심한호의 포스를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다니. 더불어 우진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무게감이나 분위기 같은 거. 심한호는 컨셉질이 아닌 진짜배기였지만 지금의 형태를 기억해두면 차후 쎈척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젠 강우진의 차례.

워낙 강대한 아우라를 목격해서일까? 강우진은 오기가 생겼다. 바로 앞의 이 맹수에게 최고의 컨셉질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 극한의 뻔뻔함을 얼굴에 깔고 목소리를 저 바닥까지 떨어트리자.

마음이 동하니 급작스레 추진력이 생겼다.

근데 뭐라고 답하지? 연기가 사납다고 했으니까- ‘제가 잘 조련해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오바였다. 결과적으로 우진은 약간의 거만함과 예의를 챙겼다.

“예 잘 받아보겠습니다.”

앞뒤 없이 안쪽 꽉 찬 직구로 질러버렸다. 강우진은 일단 평정심을 유지하려 마인드 컨트롤을 되새겼다.

‘아오- 씨 흔들리지 마.’

여기서 눈을 피하는 건 하수다. 세상 차가운 톤으로 답한 우진은 대배우 심한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뒤로 잠시간의 공백.

“···”

“···”

강우진도 심한호도 입 여는 것 없이 시선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차분한 심한호의 안광. 그는 찐 맹수 우진은 눈속임을 위해 털을 바싹 세운 모양새. 하지만 이 리딩장의 그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진 못했다.

지금껏 차곡차곡 쌓아온 착각의 빌드업 덕분.

뭐가 됐든 리딩장은 삽시간에 살얼음판으로 변질됐다. 거대한 긴장감이 출렁였다. 수십 스탭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고 배우들은 벙찐 얼굴을 유지했다. 와중 우진과 심한호의 건너편에 선 한소진은 내면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니! 가 강우진! 진짜 저런다고?!! 심하게 직진이잖아???!’

당연히 꼿꼿한 우진을 향한 괴성이었다. 그녀의 눈엔 맹수와 괴물이 스산하게 으르렁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아니 근데 저런 게 어떻게 가능하지? 심한호는 배우판의 전설 중의 전설이었다. 그 안가복 감독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

그러나 강우진은 일말의 꺾임이 없다.

이때.

“어머.”

한소진의 오른쪽에 앉은 묘하게 웃는 오희령이 작게 읊조렸고.

“당차네?”

눈 커진 한소진이 어렵사리 되물었다.

“···네?”

“우진씨 말이야. 처음 보는 캐릭터같지 않니?”

“아-”

“저 심한호 선배 기세를 눈앞에서 보면 주눅 들기 마련인데 쟤는 그냥 평온하네~ 해외파 출신이라던데 진짠가봐?”

“에? 해외파요?”

한소진이 착각의 늪에 발을 들였을 쯤 리딩장 입구 쪽에 모인 기자들의 수군댐이 커졌다.

“워- 뭔 일이래? 특종인가? 찍어야 되나?”

“미쳤어? 저거 담았다가 퇴출 당할라고?”

“어 어쨌든 말려야 되잖아. 왜들 가만히 있는 거여.”

순간.

“처음 본 상황에 얼어붙은 게지.”

기자들 뒤쪽에서 늙은 목소리가 침투했다. 어느새 도착한 노장 안가복 감독이었다. 그의 등장에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칠 뻔했다.

“아! 감독···”

하지만 끊겼다. 안가복 감독이 검지를 입에 댔으니까. 그런 그가 다시금 리딩장 안쪽 강우진과 심한호를 바라봤다. 안가복 감독의 주변엔 조감독 포함 스탭이 대여섯 함께였고 전전긍긍한 조감독이 목소리를 죽이며 끼었다.

“감독님 제가 중재하겠습니다. 사고 나겠어요.”

허나 안가복 감독은 여유 묻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저 괴물들 신경전에 괜히 끼어들었다가 우리 등만 터지지.”

“···예?”

“그냥 두라는 얘기야.”

“그 그래도.”

“신사적인 현장보단 정글이 나아.”

반면 조감독과 스탭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이에 침착하라는 듯 안가복 감독이 손짓했다.

“괜찮아 둬도 돼. 저게 오히려 배우들에게 불을 지를 테지. 강우진은 ‘거머리’ 연기에 기준점을 정립했고 심한호는 ‘거머리’의 시작점에서 기폭제를 살포한 게야. 두 투톱 주연의 신경전. 이만한 각성제가 또 어딨나?”

곧 안가복 감독이 검지로 두 괴물을 찔렀다.

“보라고 이 현장에서 저 둘만 ‘박하성’과 ‘윤정배 회장’이지 않은가?”

후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녹진한 눈빛을 교환하던 강우진과 심한호 중 먼저 긴장을 깬 것은 맹수의 탈을 쓴 심한호였다.

“잘 받아보겠다라-”

수염 꺼끌한 그가 돌연 딱딱한 얼굴에서 미약한 미소를 보였다. 어쩌면 흥미가 섞인 것처럼도 보였다.

“단 1초의 생각도 없이 바로 답하는구만. 배울 점이 많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였습니다.”

“나도 그래요.”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이때야 서늘하던 신경전이 끊겼다. 강우진이 작게 고개를 숙였고 인사를 받은 심한호가 천천히 움직여 우진의 반대편 자리로 이동했다. 의자를 빼낸 심한호에게 웃음을 머금은 오희령이 말했다.

“선배 시작부터 허리띠 너무 졸라매는 거 아니에요? 봐봐 애들 다 굳었잖아요. 어후- 추워라.”

심한호가 묶은 장발 머리를 풀며 중후한 목소리를 냈다.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야.”

오희령은 말짱했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특히 세 번째 자리인 한소진은 실제 정신없이 눈알을 굴릴 정도였다. 이런 중압감 넘치는 상황을 타파한 것이.

“다들 왔는가?”

타이밍 맞춰 입장한 안가복 감독이었다. 짧은 흰 머리의 그는 모두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0자 형 책상의 상석에 앉았다. 곧 리딩장 전체를 훑는 안가복 감독. ‘거머리’의 수십 배우들 스탭들 영화사와 배급사 관계자들. 얼추 백여 명이 넘는 인원들을 천천히 바라보던 안가복 감독이.

-스윽.

잔잔히 읊조렸다.

“시작합시다.”

동시에 기자들이 사진기를 올렸고 리딩장 곳곳에 배치된 카메라들 역시 구동됐다. 대본리딩의 스타트는 역시 소개부터.

“‘윤정배 회장’역의 심한호 배우님.”

물론 핸들링은 안가복 감독이 맡았다.

“‘박하성’ 역의 강우진 배우님.”

공기는 대체로 무겁다.

“‘유현지’ 역의 오희령 배우님.”

짧은 소개와 배우들의 인사. 그것이 얼추 30분 이상은 이어졌고 끝으로 상석에 앉은 안가복 감독의 소개까지 끝난 뒤.

-팔락.

안가복 감독이 ‘거머리’ 시나리오의 첫 장을 펼쳤다. 배우들은 물론 0자 테이블을 둘러싼 모두도 같았다.

리딩 중 지문과 참여하지 않은 배우의 대사는 안가복 감독이 맡는다.

“1 박하성의 독백.”

강우진이 배우 중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당연히 ‘박하성’을 끌어올린 뒤였다.

“이젠 모르겠어요 내가 누군지. 누구로서 존재하는 건지. 길을 잃었어요···”

퍽 긴 독백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다. 전부는 우진의 독백을 집중해서 듣는다. ‘거머리’의 주제를 관통하는 목소리기에.

이어 씬 교체.

연출로서 보여지는 컷은 안가복 감독의 멘트로 얼추 넘어갔다. 한 장 또 한 장. 약 시나리오 3장이 넘어갔을 쯤 강우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박하성’의 초반 인생을 들여다보는 씬이기에. 대사를 주고 받는 건 강우진과 안가복 감독. 대략 15분 정도가 지나서야 다른 배우들도 등장했다.

계속해서 미소를 머금었던 오희령이 순간 에너지를 싹 바꿨다.

‘유현지’에 돌입한 것.

과연 대배우급의 베테랑이었다. 평소의 그녀는 보이지도 않았다. 오희령 주변에 맴도는 공기도 판이했다. 안가복 감독의 지문 설명 후 강우진과 오희령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허나.

“···”

“···”

둘의 대사는 없다. 애초 두 배우는 끝까지 수어로만 대화하기에 당연했다. 말은 없지만 두 손은 바빴다. 하지만 그저 수어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상체의 움직임 시선 표정 눈코입의 변화 등.

강우진과 오희령은 감정으로만 상황을 전달해야 했고 당연하겠지만 어색함 따위 존재치 않았다.

진재준 한소진 외의 배우들은 충격을 받는다.

‘수준이 높다. 수어만···하는데도 상황이 이해돼. 표정과 표현이 대사를 대체하고 있는 거겠지.’

‘강우진- 돌겠네 박하성에 수어가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연기도 터무니없으면서 수어까지 저렇게 수준급으로 한다고?’

정확하게는 안가복 감독을 제외한 이 리딩장에 모인 전체가 같았다. 생소한 수어 무서우리만큼 집중한 두 배우 높디높은 연기의 질.

그리고.

“음? 누구야 자네는?”

수염이 까끌한 심한호가 입을 열었다. ‘윤정배 회장’이 입장한 것. 반대편 강우진을 바라보는 그. 현재의 모습은 거칠기 짝이 없지만 심한호가 뱉는 대사에는 맹수의 톤이 일절 없었다. 도리어 재치가 섞였고 부드럽다.

문제는.

-스윽.

그의 눈이었다. 입은 웃고 있으나 눈에는 오묘한 광기가 숨어 있었다. 호흡 역시 평화롭게 느껴지나 순간순간 어긋날 때가 있었다.

“아내와 잘 좀 놀아줘. 꼬시지는 말고.”

언뜻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위협이 도사린다. ‘윤정배 회장’의 근본이 지켜지면서도 등 뒤로 칼을 쥐고 있다. 현재 우진을 보는 심한호의 연기가 딱 그랬다.

하지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강우진 심한호 오희령. 리딩을 잇는 세 배우는 마치 속을 숨긴 괴물들처럼 각자의 심정을 가린 채 거짓된 입을 벌려댔다.

스탭들은 소름이 돋았다.

‘으- 뭐냐 대체.’

분명 시나리오 안 대사를 치고 있을 뿐인데 배경은 그리 변한 게 없는데 이상하게도 세 배우의 연기가 거듭될수록 스산함이 번졌기 때문이었다.

이어 다시금 씬이 바뀌었다.

윤정배 회장이 박하성에게 첫 딜을 치는 컷.

“목표는 하나야. 일단은 내 아내가 자네에게 의지하게 만들어 맹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이쯤 박하성은 아직 본인의 본질을 파악하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지레 겁을 먹는다.

“그 근데 의지- 하게 만든다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맹목적이라는 건···더더욱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기부터였다. 심한호가 사납게 굴기 시작한 것은.

“쉽게 해 그럼.”

우진을 보는 심한호가 눈을 크게 키웠다. 꺼끌한 수염이 자린 입 근방이 움찔움찔했다. 능구렁이 같은 톤은 유지되지만 얼굴 전체의 형태는 뭐랄까 미친 사람과 흡사했다.

광기와 광폭의 중간쯤.

이는 분명 안가복 감독이 창조한 윤정배 회장과 달랐다. 근본은 지키지만 그 근본을 넘나드는 행태가 자연스럽다. 지배욕이 바닥에 깔린 광대 같기도 했다.

“그게 마인드의 차이거든? 네가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야. 응? 그 패배감 가득한 시선부터 바꾸라고.”

“···”

윤정배 회장이 강우진을 공격한다.

“눈치챘으려나? 네가 이 차를 탄 순간 너의 목숨줄은 내 손에 달려 있거든?”

“예??!”

“다 들었잖아? 따고 배짱은 안 되지. 살고 싶지? 그럼 기를 쓰고 마인드를 바꿔.”

서슴없다. 하지만 강우진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그 자리 그대로였다.

“마인드···제가 회장님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마음이면 되는 겁니까?”

“헷갈리면 안 되고. 월세 정도로 생각해. 신분이라는 건 빨아도 빨아도 구정물이 나오는 거거든.”

“월세론 어렵습니다. 전세로 생각할게요.”

“크크 역시- 네가 정답이었어. 적당히 검은 게 마음에 들어. 대신에 선을 넘지 마 알았나?”

“확실히 그어주신다면.”

“내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알게 돼. 너는 내 아내를 지배하고 나는 널 지배하고.”

이 순간 혼 빠진 표정을 지은 한소진은 그저 멍하니 들을 수밖엔 없었다.

“···”

괴물들의 싸움이었으니까.

한편 아파트처럼 보이는 한 작업실.

거실 중앙에 모인 책상. 얼추 다섯은 거뜬히 앉아도 될 정도였지만 책상엔 노트북을 치는 여자 한 명만이 앉아 있었다.

-타닥 타다닥.

호리호리한 체형에 동그란 안경을 낀 그녀. 바로 최나나 작가였다. 평소 소심한 성격인 그녀였지만 지금의 기백은 남달랐다. 노트북 화면을 보는 눈동자는 빛났으며 타자 치는 손가락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정도.

정신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던 최나나 작가가 급작스레 고개를 천장으로 올리며.

“하아-”

긴 한숨을 뱉었다.

“끝났다아.”

‘이로운 악’의 마지막 화 집필이 끝났다는 얘기였다.< 질풍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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