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풍 (8) >
거인인 조셉 펠튼이 뱉은 욕은 강우진과 안가복 감독 사이의 대화 때문이 아니었다. 강우진의 연기 때문이었다.
“fuck···”
조셉은 촬영존의 우진을 보며 욕설을 나지막하게 반복했다. 구겨진 미간이나 커진 눈은 계속 유지됐다. 그의 버릇 중 하나였다. 이해하기 힘든 충격적인 것을 보았을 때 대뜸 욕을 뱉는 것 말이다.
격앙된 감탄사나 탄성이라 볼 수 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대충 ‘시발! 오지잖아!’ 정도로 판단할 수 있겠지. 그 정도로 조셉 펠튼의 뇌는 지금 심하게 흔들렸다. 이미 헐리웃에서 수많은 배우들을 경험한 그였지만.
‘뭘 본 거냐 내가 지금.’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눈앞에서 무엇이 펼쳐졌나? 나름 예상을 했음에도 조셉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저런 걸 ‘연기’라고 평가할 수 있는 건가?
‘일단···준비 과정 따위가 없어.’
배우들의 짙은 감정은 예열이 필요한 게 보통이다. 하지만 저 강우진은 감독의 액션 사인과 동시에 너무도 손쉽게 녹진한 감정을 끄집어냈다. 뿐만 아니라 감정을 발산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다.
‘없다고 봐도 돼.’
거기다 연기에 돌입한 우진은 단숨에 다른 사람이 돼버린다. 최소 조셉의 눈엔 그리 보였다. 한순간 강우진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눈빛 냄새 자세 버릇 딕션 호흡 등.
전부가 판이했다.
‘마치···다중인격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셉이 판단하는 것 중에는 배우의 기본적인 소양들은 빠졌다. 거론할 필요가 없으니까. 완벽함은 디폴트였다. 그 위로 터무니없는 것들이 터무니없이 쉽게 나열됐다.
뭣보다 소름 돋는 것은.
‘리플리 증후군?’
딱히 시나리오의 세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던 조셉이었지만 방금의 강우진이 연기로서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가 명확히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배우들이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원하는 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해주는 것.
말로는 쉽다.
이 과정을 터득하기 위해 헐리웃이나 한국이나 대배우들은 아직도 노력한다. 부족하다 말한다. 허나 강우진은 그 기술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 우연? 아닐 거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가뿐하다.
조셉은 혼돈에 빠졌다.
‘무술을 보여줬을 때와 에너지와 텐션이 딴 판이야. 저런 디테일한···정신이 빠질 만한 연기를 보여줄지 몰랐다고.’
헐리웃에서 강우진의 무술을 봤을 때 만해도 저런 걸 상상치 못했다. 조셉이 안가복 감독과 얘기 중인 우진을 보며 한 손으로 입 주변을 감쌌다. 그가 파악한 우진의 능력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술 노래 언어 등. 그런데 그런 게 전부 진짜 부수적인 거였다고?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어?”
상식을 파괴하는 괴물급이었다.
이미 강우진의 무술부터 필모 외로 모든 것이 예사롭지 않아 관심을 가진 조셉이었지만 현재는 관심이고 나발이고 그저 관망하는 게 다였다. 당최 이해되지 않는 생명체였으니까. 캐디인 메건 스톤의 말이 절절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무술이 아닌 이 연기를 조지 멘데스 감독이 봤다면 빌었을 거야. 어떻게든 같이 가자고.’
왜 강우진의 주변엔 거물들만 넘칠까?란 의문이 시원하게 풀렸다. 큰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당연한 거였다.
-스윽.
거인 조셉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오른쪽에 선 금발의 카라를 본 것. 그녀는 어떠한 행동 없이 얼어붙어 있었다. 미동조차 없다. 그저 강우진을 뚫어져라 응시할 뿐.
“···”
혼이 빠졌나? 조셉이 주변 팀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나같이 카라와 같은 모양새였다.
이쯤 안가복 감독은.
“적당히 했다?”
앞에 선 우진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포커페이스인 강우진이.
‘왜? 왜요? 너무 심각한데? 말을 잘못했나?? 아니 근데 사실인 걸 어째?’
근엄히 끄덕였다.
“예. 적당히.”
“그러니까 오디션 상대역을 볼 땐 힘을 뺐다는 거군.”
“보통 오디션 땐 그러지 않습니까.”
“맞아. 그게 맞지.”
안가복 감독이 주름진 미소를 보였다. 강우진의 말이 맞다. 오디션의 상대역이 최선을 다할 필욘 없다. 그러나 그 힘을 뺐던 우진의 연기 역시 상식을 넘어선 터라 안가복 감독이 헷갈렸다.
‘아니 그 소극장에 있던 모두가 비슷했을 게야.’
대배우나 탑들이 즐비한 무려 안가복 감독의 오디션 현장에서 강우진은 ‘거머리’의 연기 기준점을 세웠다. 이제 2년 차에 접어든 배우가 말이다. 그 누구라도 보인 연기가 최대치라 생각할 것이었다.
다만 오산이었다.
‘허헛 그저 이 아이의 ‘적당히’가 우리에겐 아득할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게 전부였다. 판단이 무의미한 이해라는 과정 따위 개나 주고 인지부터 때려 박는 배우. 어쩌면 이 바닥의 신인류.
미소를 유지한 안가복 감독이 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꼭 저 멀리 저 위로 올라가 줘요. 나 따위의 감동만이 아닌 더 위대한 인물의 감복을 받아내란 소리야. 노후는 그걸 지켜보는 거로 충분할 것 같으니.”
강우진이 낮고도 확실하게 답했다.
“가능합니다.”
잠시 뒤.
씬을 잠시 멈췄던 안가복 감독이 다시금 자리에 앉으며 촬영을 속행했다.
“액션.”
같은 씬이 반복됐다. 하지만 강우진의 텐션은 낮아질 턱이 없었다. 오히려 더 기민했으며 세심했다. 반복하면 할수록 그의 힘은 막강해진다. 생생해진다. 모니터에 출력되는 강우진은. ‘박하성’은 완성형이었지만 씬이 거듭될수록 완성도가 무의미해졌다.
“컷 OK. 카메라 뒤 따고 들어가는 거 말고 바스트로 다시 갑시다.”
강우진이 매 컷마다 새로운 완성도를 제시했으니까. 발전하고 발휘한다. 안가복 감독이 이 씬을 첫 촬영의 시발탄으로 삼은 이유는 간단했다. ‘리플리 증후군’ 자체를 다른 배우들에게 심어주기 위함.
그 감정과 감각을 미리 알아 둔다면 차후 컷 연기가 부드러워질 테니.
물론 그 감정은 ‘거머리’의 중반 이후부터 나올 것이지만 강우진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다만 안가복 감독의 의도보다는 더 극심함이 배우들에게 꽂혔다.
심한호 오희령 진재준 한소진 외의 조연급 배우들 다수.
“···저 저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
“차이가 있어서 오디션 상대역 봤을 때가 설렁설렁한 거로 느껴지는데 저만 그런 건가요??”
“리플리 증후군- 시나리오를 볼 땐 감이 확실히 안 왔는데 우진씨 연기를 보니까 확 와닿네.”
“아우 시작부터 허들이 무슨···”
경계함을 넘어 경각심까지 심는다. ‘너희가 겪어야 하는 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딱 이런 말을 연기로써 직관하는 느낌.
이즈음 마일리 카라는.
‘세 세상에.’
보컬 무술 피아노의 강우진이 아닌 본업인 배우 강우진을 단 1초의 흐트러짐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무대 장악력이 너무도 대단했기에. 과연 본업이라 부를 만했다.
동시에 카라는 저도 모르게 상상했다.
‘저 배우가···헐리웃에 나타난다면?’
한국에 숨죽인 괴물의 영역이 세계로 뻗쳤을 때의 파란을.
뒤로 약 2시간 뒤.
한창 촬영을 이어가던 ‘거머리’ 현장에 잠시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백여 명 스탭들은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음 씬을 위한 소품 정리와 기기 세팅 등 모두가 정신없이 발을 굴린다.
그들만이 아닌 감독과 배우들도 같았다.
안가복 감독은 콘티를 들고 키스탭들과 동선 체크로 바빴고 심한호나 오히령 포함 배우들은 아까 직관한 괴물의 연기 덕분인지.
“···”
“···”
천막에서 자신 연기나 인물의 리마인드에 빠졌다. 하지만 어째선지 시니컬한 강우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디 있는가?
현장서 사라진 강우진은 야외 주차장의 밴 안에 있었다. 그런 그의 앞자리엔.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죠?”
꽁꽁 싸맸던 모자나 마스크를 벗는 마일리 카라가 앉아 있었다. 밴엔 우진과 무려 글로벌 슈퍼스타 카라해서 단둘만 있었고 영어가 오간다. 모자 벗은 카라가 긴 금발을 쓸어 넘긴다. 코에 향긋한 향기가 느껴지는 우진이었으나.
‘어우- 씨 카라가 코앞에 앉아 있는 거 겁나 현실감 머네. 뭔가 꿈같기도 하고. 예전 너튜브 촬영때랑은 뭔가 느낌이 달라. 맞냐 이거?? 개신기- 아니! 강우진 냉정 잃지 마!’
애써 무시한다. 컨셉질이 단단했으니.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본업인 연기 잘 봤어요.”
“그렇습니까?”
“네.”
파란 눈으로 우진을 보던 카라가 작게 숨을 뱉었다.
“오길 잘 했네요. 안 봤으면 후회할뻔했어. 왜 우진씨의 그 보컬이나 요리 같은 기술을 취미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연기가···모르겠어요 나도 나름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표현할 방법이 안 떠올라.”
“넘어가셔도 됩니다.”
살짝 입술을 내미는 마일리 카라. 그러다 그녀가 잘 안 보이는 미소를 띄웠다.
“사실 이번에 한국에 온 건 다른 일들이 있긴 했지만 역시 우진씨를 만나고자 했던 게 제일 커요.”
“네 듣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강우진씨에게 제안하고 싶어요 제 앨범 곡에 같이 작업할 것과 뮤비 출연에 관해서요.”
“···”
강우진이 묵직하게 입을 다물자 카라가 우진에게 조금 더 얼굴을 붙였다.
“당연히 나는 타이틀곡을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게? 뭔 생각? 아무 생각이 안 드는데?? 무심함을 유지하곤 있지만.
“···일단 회사와 먼저 얘기를 해봐야겠네요.”
알맹이 강우진은 극명하게 당황한 상태였다.
‘미친?! 이게 다 뭔 소리람??’
후로.
카라와 대화를 마친 강우진은 다시금 ‘거머리’ 촬영에 합류했다. 반면 카라와 조셉은 현장에 다시 돌아가진 않았다. 이미 만족 이상의 강우진 연기를 감상했고 둘 모두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더군다나 진해지는 스탭들의 시선도 문제였다.
“카라 볼 일은 다 봤어?”
“네. 조셉 당신은 어때요? 우진씨를 보지도 않았잖아.”
“내가 왔다는 건 눈인사로 나눴고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어. 애초에 확신을 위해서 왔었으니까.”
“확신은 했어요?”
“물론이야.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될 정도로. 카라 넌?”
“글쎄요. 이젠 대답을 기다리는 게 전부죠.”
같은 시각 인터넷에선 어제인 7일에 방영한 ‘우리네 식탁’ 얘기가 돌고 있었다. 최근 2차 촬영을 다녀온 이슈도 있고 20% 시청률을 이번에도 수성했기에 기사들이 꽤 깔렸다.
하지만 ‘우리네 식탁’ 이번 화에는 특이한 광고도 실렸다.
『‘우리네 식탁’ 말미에 소개한 강우진의 ‘김자반 막국수’ 곧 시장에 깔릴 예정이란 멘트에 시청자들 기대감↑』
『시판도 전에 PPL? ‘우리네 식탁’의 베스트 메뉴 강우진의 ‘김자반 막국수’ 상품화···대중들 오픈런 예약?』
‘농신’이 기획한 강우진의 ‘김자반 막국수’의 상품화가 목전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에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거머리’ 촬영과 더불어.
『어마어마한 영향력 강우진의 ‘강우진 부캐’채널에 예고편 실려···다음 게스트는 류정민』
너튜브 채널이나 광고 등으로 하루하루가 삽시간에 마감됐으니까. 덕분에 이틀 정도가 지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무비IS]본격적으로 시작된 ‘거머리’ 촬영 세트로 확정된 전주 쪽은 기자들로 인산인해』
이쯤.
『3월 18일 목요일로 확정된 ‘백상예술시상식’』
영화제나 시상식의 유종의 미로 일컫는 ‘백상예술시상식’의 홍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초청된 배우들과 작품들. 수많은 떡밥으로 기사들이 파생됐지만 그중에서 단연 클릭수를 벌어들이는 건 강우진이었다.
『이번 ‘백상예술시상식’에도 초청된 강우진 작년 8관왕 신화 이어서 몇 관왕이나 추가할까?』
『방송 영화 포함해 가능성 더 넓어진 강우진···이번엔 어떤 폭탄선언을? 누리꾼들 관심집중』
간만에 각종 매체는 시상식 관련 이슈로 가득찼다.
어디든 정신없이 굴러간다.
생중계를 준비하는 ‘백상예술시상식’이든 밤잠을 쪼개가며 촬영을 진행하는 ‘거머리’ 팀이든 아공간을 들락이는 횟수가 폭증한 강우진도.
일주일이 뭘 했는지도 모르게 녹아 사라졌다.
8월의 둘째 주가 끝나고 셋째 주가 도래했다. 날짜는 ‘백상예술시상식’이 열리는 바로 전날인 8월 17일 아침. 강우진은 여지없이 전주로 이동하고 있었다. 보통은 숙소를 이용하지만 어제 스케줄이 서울에서 추가로 있었기에 잠은 오피스텔에서 잤다.
“···”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뜬금.
-스윽.
시선을 돌려 바로 옆자리에 쌓인 것들을 확인했다. 얼추 3개쯤 쌓여있는 컵라면이었다. 익숙지 않은 처음 보는 컵라면. 그 컵라면의 뚜껑엔 이런 타이틀이 박혀 있었다.
-‘김자반 막국수’ 컵라면
이때 조수석의 꽁지머리 최성건이 운전하는 장수환에게 물었다.
“수환이 컵라면 저거 다 실었지?”
“옙! 30개 다 실었습니다!”
“어어. 현장 사람들 다 돌리진 못해도 맛을 보게 해줘야지.”
고개 끄덕인 그가 몸을 돌려 핸드폰 보는 한예정에게 물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스타일리스트 전부에게 묻는 것과 같다. 모두 핸드폰을 보고 있었으니까.
“언론이란 현장 반응은 좀 어때? 떴어?”
시선은 여전히 핸드폰에 든 한예정이 쌀쌀맞게 답했다.
“기사는 아직 안 떴는데요 커뮤 쪽 긁으니까 슬슬 꽤 나와요.”
그녀가 핸드폰을 돌려 최성건에게 보였다. 한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이 보이고 있었다.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우진 컵라면 살라고 오픈날 맞춰서 집앞 편의점 왔는뎈ㅋㅋㅋ사람들 줄서 있는 거 실화냐????!!!
-강우진 거 김막 컵라면(김자반 막국수) 살려는 중생들 실시간 상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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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강우진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오직 컵라면 뚜껑에 실린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을 뿐.
당연했다. 뚜껑에 박힌 건.
‘하···개쪽팔려.’
무심한 얼굴의 강우진이 쌍엄지를 세우고 있었으니까.
한편 방금 특종 하나가 쏘아졌다.
『새 앨범 준비 중인 슈퍼스타 마일리 카라 이번 앨범엔 한국의 배우와 작업 같이한다』
한국이 아닌 해외 외신 쪽이었다.< 질풍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