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1)
강우진이 시니컬하게 걸음을 옮겼다. 배우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강우진의 무심한 얼굴에서 배우들은 격렬히 느꼈다.
아 화났구나. 누가 봐도 그런 표정이었다.
본인들이라도 짜증이 날 법했으니. 반면 강우진은 딱히 화나진 않았다. 그래도 틀린 건 바로잡아야지. 걸어가던 강우진이 눈 커진 배우들을 부드럽게 훑다가 짧게 말했다.
물론 평소의 컨셉과 같은 톤.
“소속사가 없습니다 전.”
곧장 배우들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회사빨이 아니라는 경고처럼 들렸으니까. 저 무심한 표정이 언뜻 낮게 으르렁대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배우들 전부가 강우진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계신 줄을 모르고···사과드립니다.”
급작스레 배우들이 사과하는 모습에 신동춘 감독이 두 눈을 끔뻑였고.
“왜요? 무슨 일 있었어?”
배우들을 지긋이 보던 강우진이 별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냥 오해들을 하신 것 같습니다.”
“오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강우진이 이리도 태연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나름 분석에 의한 것이었다. 타인이 오해한 현재의 강우진은 남 시선 신경 안 쓰는 속된 말로 ‘개썅마이웨이’인 거만한 괴물 배우다. 그런 내가 이런 사사로운 것에 일일이 화를 낼 필요는 없지.
그저 잔챙이들의 수다일 뿐이다. 아 물론 컨셉이 그렇다고.
거기다 어찌저찌 굴러오다 보니 강우진은 이 현장의 주인공인 상태. 격과 멋까지 챙겨주면 금상첨화. 당연히 배우로서 걸어가다 보면 ‘노빠꾸’ 해야 할 상황은 오기야 하겠지. 예를 들어 급 높은 누군가가 시비를 건다던가 피해를 주는 등.
그 정도면 강우진 자체도 빡칠 게 분명했다. 사표도 디자인회사 대표의 면전에 시원하게 던진 그였으니.
‘들이받는 거야 못 할 건 없다만 지금은 딱히?’
뭐가 됐든 배우들은 우진에게 붙어 연신 사과를 해댔다. 이쯤.
‘음-’
사각턱 신동춘 감독은 살짝 감을 잡았다.
‘뭔가 배우들이 우진씨한테 실례를 했나 보네 나중에 따로들 불러서 들어봐야겠어. 그나저나 우진씨는 배포도 크군. 단역들한테 괜히 발광하는 탑들도 있는데 말이야.’
그런 그가 배우들에서 정면 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촬영 세팅이 한 창이었다. 별장 외부보다는 내부에 치중하는 모습.
“지하실 소품들 좀 확인해주세요!”
“예예! 지금 갑니다-”
“오늘 2층 촬영 있는 거예요??”
“스케줄표 상으론 내일이요!”
별장 안 이곳저곳에 포진된 ‘흥신소’의 스탭은 대략 열댓 명정도. 비치되는 장비도 그리 많이 보이진 않았다. 일반적인 상업영화 팀에 비하면 아주 부족했다. 다만 이마저도 단편 영화치고는 스탭으나 장비나 준수한 편이었다.
보통은 이것에 반 정도도 힘들다.
다행히 ‘흥신소’는 진창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투자금이 해결됐기에 지금 같은 준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어쨌든.
“낮 2시부터 본 촬영 시작입니다! 좀 서두를게요!!”
단편 영화 ‘흥신소’의 정식 촬영 시작은 2시부터였다. 남은 시간은 대략 3시간쯤. 전까지 촬영 세팅과 더불어 숙소 등의 브리핑을 신동춘 감독이 전달할 예정. 참고로 ‘흥신소’ 팀은 촬영 기간 약 5일간 별장 주변 숙소에서 지낸다.
콘티상 대부분의 촬영은 별장 근방에서 진행되므로.
이때.
-스윽.
별장 보는 신동춘 감독 뒤로 긴 생머리의 여자가 뜬금 등장했다. 그녀를 제일 먼저 발견한 건 배우 중 덩치 좋은 남자였다.
“···어??”
매우 낯익으면서 낯선 여자였기 때문. 그녀의 이름을 덩치 좋은 남자가 나지막이 읊조렸고.
“저 저분···홍혜연씨 아닙니까??”
이 대사는 배우들 사이로 삽시간에 전염됐다.
“예??! 어디요? 아! 헐!!”
“와···진짜네 대박.”
“맞아요??! 홍혜연 맞아?? 닮은 사람 아니고?”
무려 탑여배우 홍혜연이 확실했다. 세상에. 배우들은 다시금 얼어붙었고 고개를 뒤로 돌린 신동춘 감독이 홍혜연을 발견했다. 바로 입이 귀에 걸린다.
“하하하 다들 놀랐죠? 미안해요. 여기 홍혜연 씨가 ‘아내’역을 맡아 주실 겁니다.”
동시에 흰색 롱패딩을 입은 홍혜연이 눈웃음치며 배우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열심히 해요 우리.”
홍혜연을 영접한 배우들은 어버버댔다. 어라? 진짜 홍혜연이네? 왜 여깄지? 따위의 얼굴들. 그럴만했다. 해봤자 단편 영화 현장에 국내 탑에 오른 여배우가 나타났으니. 그 덕에 배우들은 꿈에 있는 듯 몽롱하게 홍혜연과 인사를 나눴다.
끝으로 홍혜연의 시선이 강우진에게 닿았다. 그의 얼굴은 무뚝뚝했다. 곧 그녀가 속으로 읊조렸고.
‘뭐 차분하네. 당연한가? 백여 명 앞 리딩에서도 덤덤했으니. 그래도 첫 촬영이라 좀 긴장할까 기대했는데. 기대? 나 지금 뭘 기대하는 거야?’
강우진이 그녀에게 간결하게 목례했다.
“안녕하세요.”
주변 배우들이 살짝 두 눈을 크게 떴다. 강우진의 무거운 음성에서 놀랐다기보단 무려 홍혜연이 나타났는데 우진이 너무나 냉정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지도 않나? 아니 홍혜연이라고?? 뭐가 저렇게 침착해?’
반면 우진의 반응이야 이제 익숙해진 홍혜연이 그에게 미소를 보였다.
“또 보네요 우리 좀 자주 본다. 맞죠?”
저에겐 축복이죠. 강우진은 속마음과 달리 목소리를 깔았다.
“그러네요.”
이 장면이 나머지 배우들에겐 다소 충격이었다.
‘자주 본다고? 저 홍혜연을?! 둘이 친해?’
‘대 대체 정체가 뭐지? 연극 쪽으로 유명하신 배우님인가??’
순간 강우진을 보는 시선이 선망으로 바뀌었다.
같은 시각 GGO 엔터.
여러 화분이 놓인 넓은 대표실에 서구섭 대표가 앉아 있다. 여전히 불독을 연상케 하는 얼굴. 담배를 입에 문 그의 앞엔 남자 직원 두 명이 서 있다. 곧 보고서를 훑던 서구섭 대표가 고개를 올렸다.
“정혁이 거 아무 문제 없다는 거지?”
그러자 삐쩍 마른 직원이 확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표님. 촬영은 이틀 뒤 시작될 예정이고 박정혁 씨도 컨디션 좋습니다.”
“신경을 써. 제작사 쪽에 자꾸 압력 넣어서 현장 기름칠 좀 하라 그러고.”
“알겠습니다.”
“장비는 뭐 부족한 게 없어?”
“딱히 전해 들은 것은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직접 현장 가서 체크해 봐.”
지시한 서구섭 대표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우리 정혁이 살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GGO 엔터 체면이 걸린 문제다? 어영부영 적당히 하지 말란 소리야.”
“예 대표님.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장소 협찬이나 배우들 등등해서 부족한 게 있으면 우리 쪽에서 도움을 주라고.”
불독 서구섭 대표는 박정혁의 세탁을 확실히 밀어줄 기세였고 그가 보던 보고서를 덮으며 질문을 바꿨다.
“그리고 ‘흥신소’ 그 새끼들 여전히 뭐 안 나와?”
“예. 투자를 받고 촬영 돌입 직전인 것 빼고는 얘기 도는 게 없습니다. 이 정도면 합류한 배우가 조연롤 B급도 안되지 싶습니다.”
“그렇지. B급 정도만 돼도 언플은 돌렸을 테니까. 하-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시발. 결국 병신 배우 하나 집어다 들어갈 거면서 정혁이를 까??”
“···”
얼굴이 약간 붉어진 서구섭 대표가 다시금 담배를 입에 물었다.
“됐어. 지 복을 지가 깐 거지. 쓰레기들끼리 만들어봐야 나오는 건 쓰레기겠고. 근데 대체 누가 것다가 투자를 댄 거야?”
“그건···확인이 안 됩니다. 단편 제작사 쪽은 아닌 게 확실합니다만. 아마 신동춘 감독 개인 인맥으로 외부에서 끌어온 것 같습니다.”
“옘병. 어디 딴 엔터에서 작정하고 공격 들어온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듯합니다. 딱히 단편 독립 시장에 관심을 둘 이유도 없고요.”
“쯧. ‘흥신소’가 크랭크인 없이 그대로 공중분해 돼야 그림이 예쁜데.”
짜증스레 담배를 유리 재떨이에 구긴 서구섭 대표가 자리서 훅 일어났다.
“어쨌든 약 친 기자 놈들한테 지금 연락 돌려. 기사 쏘라고. 슬슬 관심을 끌어야 하니까.”
뒤로 인터넷에 배우 박정혁 관련 기사들이 던져진 건 한 시간 뒤였다.
『[단독]탑이 아닌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배우 박정혁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오후 2시쯤 다시 ‘흥신소’ 현장인 파주 별장.
촬영 세팅을 마친 별장 앞마당에 수십 명이 모여 있다. 바로 ‘흥신소’ 팀 전원이었다. 스탭들과 배우들 모두. 재밌는 건 처음과 달리 모두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는 것. 이유야 심플했다.
돌연 나타난 탑여배우 홍혜연 때문.
이 현장에 있는 모두는 오늘 홍혜연을 볼지 꿈에도 몰랐으니까. 심지어 초대형 작품만 하는 그녀가 ‘흥신소’에 출연까지 한단다. 이에 스탭들 전원은 신동춘 감독 옆에 선 홍혜연을 연신 힐끔댔다.
이쯤 신동춘 감독이.
“다들 눈치챘겠지만.”
홍혜연의 매니저팀들로 인해 규모가 늘어난 스탭들에게 브리핑을 시작했고.
“홍혜연씨 출연 부분은 출품까지 비밀입니다. 계약서상의 비밀조항이 이겁니다.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될 이유가 있으니 잘 지켜주시고요.”
그의 옆쪽 긴 생머리를 쓸어넘긴 홍혜연이 적당히 인사했다.
“잘 부탁드려요-”
과연 탑의 여유가 넘친다. 이어 신동춘 감독이 바통을 다시 넘겨받았다.
“혜연씨 빼고 우리는 약 5일간 근방에 숙소를 잡고 촬영을 진행합니다. 사정이 있는 분들은 미리 연출팀에 알려주시면 돼요.”
보통 단편 독립영화는 촬영 기간이 짧기에 현장 근방에서 지내기도 했다.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배로 들고 규모가 작기에 자주 움직이면 단출한 스케줄이라도 꼬이기 때문.
“자! 그럼 오늘부터 스케줄표에 맞춰서 잘 부탁합니다!”
PD로선 경력이 탄탄하나 감독으로선 신입인 신동춘 감독이 모두에게 꾸벅 인사했다. 동시에 연출팀 스탭이 모두에게 외쳤다.
“10분 뒤 슛 들어갑니다!!”
금세 스탭들은 각자 위치로 움직인다. 열댓 명이지만 신속하다. 와중 사각턱 신동춘 감독은 곧장 강우진에게 붙었다.
“우진씨는 바로 메이크업 받으시면 됩니다 첫 씬은 말씀드렸다시피 솔로컷이구요. 일단 가볍게 별장으로 들어가는 컷부터 가볼게요.”
“알겠습니다.”
묵묵히 답한 우진이었으나.
‘미쳤다 막상 첫 촬영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떨리는데?’
이쯤부터 강우진은 심장은 격하게 두근대고 있었다. 아니 현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렇긴 했다. 물론 ‘프로파일러 한량’ 쪽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인원들이지만.
‘촬영? 나 진짜 영화 찍는 거냐??’
리딩과 촬영 현장의 긴장도는 천지 차이였다. 그럴만했다. 리딩은 준비지만 현장은 실전이니까. 아무리 단편 영화 현장이라도 뭣도 모르는 강우진에겐 넓디넓은 무대에 홀로선 기분이었다.
심지어 강우진은 ‘흥신소’의 주인공이었다.
카메라나 신동춘 감독 그리고 스탭들 모두가 강우진을 위해 움직인다. 우진은 뭔가 어깨가 올라가면서도 무섭기도 했다. 박대리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약간 부담되는 것 같기도 하고.’
주연의 책임감. 우진이 느끼는 부담은 책임감이었다. 정작 본인은 잘 몰랐지만.
‘근데 여기가 이 정돈데 ‘프로파일러 한량’ 촬영하면 개쩔겠네 진짜.’
어쨌든 강우진은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애써 쎈척을 강조했다. 겉으로만이 아닌 속으로도 컨셉질을 할 때다. 나 자신을 속이자. 그렇게 우진은 메이크업을 받는 내내 무표정으로 자신을 속여댔다.
덕분에 겉으로는 퍽 냉정함이 풍겼다.
그쯤.
“우진씨.”
언제 왔는지 한 손에 시나리오를 든 홍혜연이 강우진에게 말을 걸었고.
“혹시 생각 좀 해봤어요? 소속사.”
때마침 메이크업을 마친 강우진이 일단 미뤄둔 답을 낮게 뱉었다.
“‘흥신소’ 촬영 끝나면 움직일까 합니다.”
“···미팅은 아직 아무 곳도 안 한 거예요?”
“네.”
“혹시 생각해둔 조건 같은 건 있어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촬영 자체도 처음인데 소속사 관련을 강우진이 아는 건 이상했다. 곧 강우진이 대강 둘러댔다.
“글쎄요.”
그러자 홍혜연이 잠시간 뭔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 우진을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우리는 상품이기도 해요. 배우 스스로 몸값을 책정해두는 게 좋아요 회사랑 미팅할 때는.”
조언한 홍혜연이 촬영 잘하라는 말을 끝으로 멀어진다. 그런 그녀를 보던 강우진이 속으로 읊조렸고.
‘책정을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셔야죠.’
모니터 앞에 앉은 신동춘 감독이 강우진을 콜했다.
“우진씨! 준비하세요!!”
우진이 혼자만의 심호흡을 하며 별장 입구 쪽으로 걸었다. 뒤로 강우진은 시나리오 든 신동춘 감독과 간단히 구두 리허설을 진행했고 이를 마친 신동춘 감독은 다시금 모니터 앞 감독 자리에 착석. 그의 뒤로 선 홍혜연이 몸을 숙였다. 그녀의 긴 머리가 사라락 소리를 냈다.
“감독님 모니터 좀 같이 봐도 돼요?”
“하하. 물론이죠. 뭘 그런 걸 일일이. 여기 앉으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냥 서서 볼게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다른 배우들도 눈치보며 슬슬 주변으로 붙었다. 이즈음 의상으로 검은색 블레이저를 걸친 강우진이 스타트 자리에 섰다. 별장 마당의 초입. 이미 카메라 2대가 세팅된 곳.
“···”
자리에 선 강우진은 말없이 별장을 바라본다. 촬영 전 ‘흥신소’의 주인공 ‘김류진’을 꺼내기 위함이었다. 앉아서 하던 대본리딩 때보단 더욱 집중해야 했다. 훨씬 선명해야 했다.
이번엔 김류진으로서 몸까지 움직여야 하니까.
강우진은 심장의 고동을 애써 숨기며 이미 각인된 김류진을 파고든다. 리딩으로 경험했던 보고 느낀 모든 감각을 온몸에 퍼트린다. 금세 김류진의 세상이 강우진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김류진의 인생 감정 생각 오감 지식 등. 삽시간에 우진은 김류진이 됐다.
그 순간.
‘빨라 우진씨 특유의 냉기가 빠졌어. 눈빛이 가벼워졌어. 저번에도 봤지만 인물 빼내는 게 말도 안 되게 빨라.’
모니터로 강우진의 얼굴을 심오하게 보던 신동춘 감독이 김류진의 등에 대고 크게 외쳤다.
“하이- 액션!”
현실에서 김류진의 세상을 보이라는 신호였다. 이에 김류진이 발길을 뗐다. 의뢰인의 아내와 낯선 사내가 옮기는 시체를 목도한 뒤다. 김류진의 발걸음에 미묘한 두려움이 서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김류진이 별장을 바라보며 세 번째 발을 내디뎠다. 잔디에서 마른 소음이 들렸다.
-사박.
긴장 때문인지 잔디가 비명 지르는 것 같다. 이윽고 김류진의 네 번째 걸음. 이 순간 김류진이 억센 잔디에 걸려 푹 넘어진다. 다행히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한쪽 무릎은 꿇었다. 뒤로 그가 짧은 신음을 뱉는다.
“읍.”
모든 게 너무나 생생하며 자연스럽다. 물 흐르듯. 김류진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장면이었다. 이 모든 걸 모니터로 보던 두 눈에 감탄이 서린 사각턱 신동춘 감독이 작게 읊조렸다.
“부드럽다. 저런 세세한 동선도 짜온 건가? 김류진이란 인물의 성향을 상기시킨 거야.”
말을 들은 홍혜연이 모니터 너머 넘어진 김류진을 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뱉었다.
‘확실히. 설정상 김류진은 약간 허술한 느낌이 있지···저 작은 움직임 하나로 김류진의 윤곽이 몇 배는 선명해졌어.’
뒤로 다른 배우들도 속삭였다.
“내용상 시체를 본 뒤에 저래 버리니까 김류진한테 몰입이 확 되는데요? 캐릭터 성격이 보인달까?”
“그러니까요. 연기 잘하신다. 인물이 확 살아요.”
그런 속삭임을 듣던 홍혜연은 왜인지 입술을 깨물었고.
‘캐릭터성을 드높일 동선 애드립까지 짜올 성실함에 그 동선을 떠올리는 센스. 강우진. 너 너무 사기캐 아니야? 연기가 그 정도면 뭐 하난 빠져도 괜찮잖아?’
탄성 섞인 미소를 짙게 한 신동춘 감독이 모니터에 더욱 얼굴을 묻었다.
“이 컷 써야겠어. 버리긴 너무 아까워.”
모두가 생동감 넘치는 김류진에 딥하게 홀렸다. 이즈음 천천히 일어난 김류진. 아니 강우진은 포커페이스를 장착한 채 속으로 한탄했다.
‘망할 쪽팔려.’
연기가 아닌 진짜 넘어진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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