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상 (3) >
‘이로운 악’의 대규모 1차 오디션이 시작됐다. 여기서 걸러지고 2차로 이어지며 나아가 최종 결정까지. 어쨌든 1대기실부터 3대기실까지 수백의 참가자들이 몰렸다. 예상보다 인원이 더 몰려서 4대기실을 급하게 만드는 헤프닝까지 벌어졌다.
오디션의 과정은 간단했다.
진행을 맡은 조연출이 이름순으로 참가자를 호명하면 약 5명씩 오디션장에 들어가 연기를 선보인다. 따지고 보면 공개 오디션과 다름없었다. 방금 첫 번째 팀이 끝나고 두 번째 팀이 오디션장에 입장한 참이었다.
점차 대기실에 몰린 참가자들의 낯빛이 희거나 붉어진다.
“우욱···속이 안 좋아.”
“너 저번에도 그랬잖아 이번에도 허탕 치면 진짜 교수님한테 엄청 발릴걸?”
“하- 진심 이미지 단역이라도 따고 싶다. 근데 우진느님은 안 오시겠지? 실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어제 백상 뒤집은 사람이 여길 왜 와.”
연극 극단 연기과 학생들 연기 아카데미 인원들 소속사에 있는 신인들 홀로 부딪쳐온 무명 배우.
각자의 매력을 지닌 참가자들.
모두 제각각 다른 냄새를 풍기지만 하나 공통된 게 있다면 죄다 한 손에 종이들을 쥐고 있다는 것. 오늘 보일 연기의 대본이었다. 오늘 오디션은 자유 연기니 각자가 준비한 연기 대본일 것이다.
“하- 씨 대사 기억이 안 나요 실장님.”
“너 이 새끼! 내가 똥 쌀 때도 외우라고 했지?”
각 대기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곡소리. 참가자 몇몇은 대기실 정면에 붙은 오디션 관련 정보를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작품: 이로운 악]
-[연출: 송만우]
-[작가: 최나나]
-[배우: 강우진]
-[제작: 넷플렉스 코리아 DM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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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점은 과거완 달라진 강우진의 위상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강우진이야 강우진. 그놈 작품에 끼는 거면 어떻게든 이슈 된다는 소리니까 스치는 역이라도 따내면 대박인 거라고. 오케이??”
“네 네!”
“쫄지말고 임마! 강우진이 네 롤모델이라매? 이런 기회 또 없으니까 목숨 걸어.”
이 오디션 자리에서의 숱한 대화에서 아주 간단하게 증명된다.
“후···이거 최종 합격만 하면 강우진이랑 전세계 진출 때리는 건데.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네.”
“내 우상님 그렇게 막 부르지 마라.”
“너한테만이냐? 나 포함 무명이나 연습생들한텐 강우진이 거의 신급이지. 그보다 ‘이상만’ 연기 괜찮어? 미친놈이 하필이면 골라도 신계 영역 연기를 가져왔어.”
“다들 기피할 걸 알아서 준비한 거라고.”
“강우진 연기의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구현하는 거면 합격할지도.”
강우진은 이곳에서 울트라급 슈퍼스타였다. 물론 이미 탑급의 영향력을 국내에 뿌리곤 있지만 이 오디션장에선 뭐랄까 약간 신계 또는 외계인 취급이었다.
선구자 우상 롤모델 등.
이들에게 우진은 강렬한 희망임과 동시에 기폭제였다. 2년 차 만에 일군 업적이 워낙 어마무시해서였다. 그래 신인류가 신대륙을 발견해 거침없이 걸어가는 느낌. 딱 그랬다.
뭐가 됐든 수백 명의 오디션 참가자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발버둥을 친다.
과연 이곳에서 2차 오디션을 넘어 최종 합격증을 받는 배우는 누가 될 것인가? 허나 참가자들의 전투력 대비 오디션장에 들어간 팀들은 5분도 채 안 돼 후퇴하기 일쑤였다.
“네 됐습니다. 자- 다음 팀.”
총 5명의 심사위원 중 메인인 턱수염 송만우 PD가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 연기를 보는 게 10초에서 길면 30초가 전부였다. 그래도 송만우 PD급 거물이 이만큼이나 봐주는 거면 퍽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이었다.
보통은 5초도 안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 거기다 참가자가 너무 많다.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네 넵!”
송만우 PD는 정면에 선 5명의 참가자를 보며 슬슬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후- 인물이 없구만 인물이.’
이미 약 10팀 이상을 봤는데도 눈에 차는 참가자가 없다. 기본도 안 된 인원이 반 이상이었다. 기본이 됐다 싶으면 매력이 없다. 대사를 저는 건 다반사.
‘예상이야 했다만 이렇게 처참할 줄이야.’
각오는 했다. 의미 없는 참가자가 80%는 될 거란 것도 알고 있는 송만우 PD였다. 새삼 강우진이 얼마나 탈우주급인지 절절히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망할. 그래도 끝까지 버텨야지 진주 목걸이는 힘들어도 은반지 정도만 건져도 성공이야.’
그렇게 오디션은 잔잔하면서도 가열차게 진행됐다. 30분 1시간 1시간 30분. 시간이 갈수록 송만우 PD 외의 심사위원들은 힘이 빠져갔지만 이렇다 하게 나온 배우는 없었다. 그나마 괜찮다 싶어 이미지 단역 정도로 거론된 참가자가 다였다.
송만우 PD가 투덜댔다.
“가뭄이네 가뭄.”
캐디팀 팀장 외의 심사위원들이 동의한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마스크라도 좋으면 질문이라도 하겠는데 지금까지는 좀 밋밋했죠?”
“연기들도 뭐 좋게 말해도 대학교 1학년 정돕니다.”
“후딱후딱 진행하자고. 다음 팀 불러.”
이어 다음 팀 5명이 오디션장에 입장했다. 바로 시작되는 연기. 첫 번째 참가자는 딕션부터 엉망진창. 두 번째도 마찬가지. 세 번째는 마스크는 특이했지만 연기의 기초부터 잘못됐다.
이어서 네 번째 참가자.
앳된 여자였다. 흑갈색의 단발에 키가 작다. 얼굴은 딱 강아지상. 송만우 PD는 그녀를 보자마자 느꼈다.
‘뜨면 국민 여동생 타이틀 따기 좋겠구만.’
올망졸망? 큐티? 러블리? 귀엽다는 표현을 형상화하면 딱 저런 느낌이겠지. 신은 신발 사이즈도 세상 작다. 210? 215쯤 되려나? 이미지만으로 송만우 PD는 그녀의 목소리를 추측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임해은입니다.”
임해은이라 소개한 그녀의 음성은 살짝 낮고 음침했다. 송만우 PD의 미간이 티 안 나게 꿈틀했다. 생각지 못한 반전이었으니.
“···”
곧 정면에 선 임해은을 가만히 보던 송만우 PD가 입 다문 채 그녀의 프로필을 내려봤다.
-팔락.
처음이었다. 송만우 PD가 이리 심도 깊게 프로필을 본 참가자는. 이어 그가 신박한 것을 발견하곤 그녀에게 질문했다.
“음? 어머님이 무당이신가?”
“네. 제가 어릴 때부터.”
“그런데 배우를 꿈꾸는 건가요?”
“어머니가 저는 무당 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흠- 그렇군.”
다른 것은 딱히 특이한 점은 없다. 나이는 20살에 대학교 연기과와 연기 아카데미를 병행하는 정도. 이 정도 스토리는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흔히 보이는 루트.
“오케이 연기 봅시다.”
“네.”
작게 숨을 고른 그녀가 재차 읊조렸다.
“준비한 연기는 단편 영화 ‘흥신소’의 김류진입니다.”
송만우 PD가 약간 놀랐다. 강우진 연기를 준비해온 건 많이 봤으나 ‘흥신소’의 김류진은 처음 봤으니까.
‘소리 음향 등으로 우진씨의 표현이 압권이었지. 근데 그걸?’
흥미가 동한 송만우 PD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임해은이 대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살짝 음침했던 직전과는 달리 괴랄하게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몸을 떨며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
순간 손 위로 돌리던 펜을 뚝 멈춘 송만우 PD의 눈빛이 변했다.
‘오호?’
한편.
해외 외신에선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뿌리는 중이었다. 첫 떡밥이 던져진 것이 이틀 전. 지금은 퍽 불어났다.
『마일리 카라 한국의 배우와 앨범 작업한다는 소문 일파만파』
워낙에 전세계적으로 스타인 마일리 카라였다. 그렇기에 파파라치도 넘쳤고 카라 관련 기사였기에 기사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카라의 파파라치가 찍은 컷이었다.
『갑작스런 마일리 카라의 행보 헐리웃과 팬들은 술렁이는데 그녀는 조용』
그런 카라의 새 앨범 작업에 참여한다는 게 한국의 배우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외신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물음표였다. 즉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얘기. 찌라시일수도 있다. 어처구니없는 어뷰징 떡밥일지도 모른다.
한국도 만만찮지만 헐리웃 쪽 찌라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없는 임신을 폭로한다거나 있지도 않은 불륜을 돌연 하루아침에 터트리기도 한다. 그렇게 따지면 카라의 기사는 황당하긴 해도 애교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일리 카라는 가수 쪽으로도 탑티어급 위세였기에. 기사들은 여러 외신 언론들 사이로 퍽 가파르게 번졌다.
요상한 부분도 존재했으니까. 한국의 가수라면 이해될 가능성이 있다. KPOP의 바람이 심상치 않으니까. 허나 한국의 배우? 아무리 카라가 좀 괴짜인 부분이 존재하더라도 이상했다.
그래서 이 떡밥의 출처는 어디인가? 어디서 흘렸으며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사실 누가 시발점이었는지 확실치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외신에서 시작된 이 떡밥은 파파라치들의 이어 SNS 위주로 착실하게 넘어갔다. 해외 대중들의 반응은 퍽 빠르게 달렸다.
-한국의 배우? 이건 또 무슨 언론플레이지?
-거짓 기사일 게 뻔해 카라가 임신했다는 기사가 아닌 게 다행이지
-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한국의 배우는 가수도 겸직으로 하는 경우가 있잖아?
-카라의 새 앨범을 기대 중이었는데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어
-말도 안 돼 아무리 마일리 카라가 좀 이상하다지만 프로라고? 갑자기 무슨 한국의 배우?
-무슨 상관이야? 난 그녀가 낸 앨범이라면 뭐든 들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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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는 나름 추리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최근 카라가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 가지 않았어?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
-카라의 너튜브 채널에 가면 한국의 배우와 듀엣곡을 부른 영상이 있어 그 배우일 수도 있겠네
-나도 그 영상 봤어 근데 그 남자가 배우였어?! 난 분명 한국의 가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해외를 기점으로 구르기 시작한 카라의 떡밥에 가속도가 붙었고 늦은 오후인 LA 쪽 거대한 촬영 세트장에서도 카라의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촬영을 지켜보는 프로듀서 조셉 펠튼의 팀이었다.
“조셉.”
한 마을을 구성한 세트를 바라보는 조셉을 부른 것은 민머리 로버트였다. 그의 인기척에 캐주얼한 정장 차림인 조셉이 고개를 돌렸다. 로버트가 자신의 핸드폰을 보였다.
“마일리 카라 기사를 보셨습니까? 요즘 좀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핸드폰 속 기사를 팔짱 낀 채 보던 조셉이 작게 웃었다.
“흠- 카라가 ‘거머리’를 보러 한국에 갔던 건 이 건 때문이었군.”
“역시 기사의 ‘한국 배우’는 강우진을 말하는 겁니까?”
“글쎄. 100%는 아니지만 90%에 가깝다고 생각해. 이 이슈 역시 카라 쪽에서 흘렸을 거고.”
“카라가?”
“그래. 언론이나 여론이나 미리 언질을 준 거야. 너무 놀라지 말라고.”
“확정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아니. 카라에게 듣진 못했어. 제안을 강우진 쪽이 거절했을지도 모르고.”
조셉의 옆에 선 민머리 로버트가 머리를 긁었다.
“강우진을 안 뒤론 처음 보는 일이 많이 생기네요. 카라는 피처링이나 동반 작업 없이 혼자 앨범을 작업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때때로 무언가에 반하면 맹목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지. 그보다-”
말끝을 흐린 조셉이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수많은 촬영 스탭들과 헐리웃 배우들이 열연 중이었다. 지금 그가 보는 건 유명 드라마의 시즌4 촬영이었다. 흑인 조셉이 턱을 긁었다.
“한국에 다녀온 뒤로 눈에 안 차 큰일이군.”
“어떤 게 말입니까.”
“저들의 연기가.”
“강우진과 비교하시는 겁니까?”
“···”
거인 조셉이 침묵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의도적으로 우진의 연기를 잊으려 해도 헐리웃 배우들의 연기를 보자면 자연스레 ‘거머리’의 촬영장이 떠오르는 조셉이었다.
“아쉽지는 않지만 눈길이 끌리지도 않아. 저들은 잘하고 있어 그저 내가 신문물을 보고 왔을 뿐이고.”
뭐랄까 장인의 기술을 보고 온 뒤랄까?
민머리 로버트도 비슷한 생각인지 거들었다.
“확실히···한국에서의 충격은 찾기 힘드네요.”
“배우가 매번 충격적이면 그 역시 적응되지. 그렇기에 중견 배우 중 몇몇은 폭주하는 실수를 저질러. 폭발과 폭주는 한 끗 차이야. 다만 어째선지 강우진은 애매한 그 경계선을 조율하는 법을 알아.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런데 왜 아무 작업도 안 하시는 겁니까?”
픽 웃은 조셉이 답했다.
“이례적으로 헐리웃 영화에 캐스팅됐어도 간단하게 거절하는 배우야 강우진이 내가 부른다고 짐 싸서 비행기를 타겠나.”
“···”
“자기가 원하는 등장이 있을 거야. 아마- 그게 칸일 테고.”
추측을 마친 조셉이 턱을 쓸었다.
“나는 일단 그에게 맞는 작품을 찾는 두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
다시 한국.
마무리에 접어드는 ‘이로운 악’의 오디션 현장. 어느덧 시간은 낮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디션장에 모인 심사위원 중 송만우 PD가 길쭉하게 기지개를 켰다.
“으읍! 후 몇 팀이나 남았지?”
문 쪽에서 대기하던 조연출이 바로 답했다.
“세 팀 정도 남았습니다.”
“길다 길어.”
그래도 나름 건진 건 좀 있었다. 눈에 띈 임해은을 시작으로 2차에서 다시 한번 텐션을 볼 참가자들 50명 정도를 뽑았으니까.
“막판 스퍼트 가보자.”
“옙!”
고개를 세차가 끄덕인 조연출이 다음 팀을 데려왔다. 전 팀엔 여자가 5명이었는데 이번엔 남자가 5명이었다.
그리고.
‘음? 탈이- 괜찮은데?’
첫 번째의 선 남자가 송만우 PD의 시선을 끌었다. 깨끗하다? 퓨어하다? 일단 피부가 깔끔하다. 키도 180은 넘어 보이고. 분명 잘생겼는데 선한 이미지가 돋보였다. 와중에 눈코잎 이목구비가 확실하다. 수수하게 내린 머리칼 색은 은은한 갈색. 청량함이 그득하다.
여자들에게 프리패스상.
여기서 송만우 PD는 돌연 강우진을 상기했다.
‘···우진씨와 반대군. 상당히 대조적이야. 분위기나 탈이나.’
확실히 그는 강우진과 정반대되는 마스크였다.< 백상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