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1) >
강우진의 멘트들은 들은 직후부터 쿄타로 감독은 ‘낯선 이’라던 가 ‘모든 인과를 무시하는 타인’ 따위의 말들을 뱉어대기 시작했다. 혼잣말처럼 말이다.
턱을 쓸며 진중해진 쿄타로 감독을 보며 우진은.
“···”
딱히 반응하진 않았지만 내면으로는 약간 쫄리는 상태였다.
‘먹혔나? 아닌가? 뭐여 어느 쪽인데?’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씨불이긴 했다만 이런 짓은 난생처음이었다. 돌연 배우가 된 뒤로도 그랬다. 하지만 말 안 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강우진의 본심이었다.
작품의 결말이란 어쩌면 전체 성적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즉 이대로 강우진의 말처럼 ‘낯기생’의 결말이 바뀐다면 등급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7/시나리오(제목: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SS급]
현재는 SS급이지만 A급 또는 빌어먹게도 B급까지도 하락할지 모른다. 뭐 반대일 수도 있지.
‘결말이 안 바뀌면 어쩔 수 없고.’
등급 좀 하락한다 해도 괜찮다. 아니 안 괜찮나?
‘그래도 뭔가- 키요시는 지킨 느낌?’
‘낯기생’의 등급이 떨어지더라도 키요시는 살린다.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싶은 우진이었다. 이유는 개뿔 확실하지 않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본인은 몰랐으나 이건 배우의 욕심이었다. 캐릭터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은 비스무리한 거?
자기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강우진.
그가 바로 앞에서 생각에 빠진 쿄타로 감독에게 말했다.
“원작과 다른 결말이라 원작 팬들의 원성을 들을 순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말씀드려 봤습니다. 키요시가 망가지는 것 같아서.”
이 와중에 거물인 척을 챙긴다. 왜? 이 대사는 그 세계적 작가인 아카리 작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빡세다 빡세. 쎈척하는 게 진심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여.’
반면 새치 가득한 쿄타로 감독은 잠시간 침묵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곤 그가 뒷주머니에 꽂아뒀던 촬영용 콘티와 펜을 꺼냈다. 빈 공백에 뭔가를 적기 시작한다. 번뜩인 것을 메모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쿄타로 감독은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아니 확실히 모험이다. 100% 원작 강성 팬들에게 원성을 들을 거야.’
또는 일본 컨텐츠 시장 전체로도 대차게 욕을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깊게 뿌리 내린 ‘인과응보’란 클리셰를 대놓고 갈라버리는 행위니까. 대중들과 일본 연예계의 많은 이가 부정적일 것이다.
‘특히 이 일본에선 변화는 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심하다. 그러니 일본 배우들은 업계에 맞는 소리나 꽥꽥 지르는 정형화된 연기를 십수 년간 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도 계속해서 비슷한 플롯을 유지한다. 속되 말로 평타는 치는.
강대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플롯 역시 그렇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근간이 되는 만화 시장이 나름 창의적이기에 애니는 발전을 이룬다. 반대로 나머지 컨텐츠 시장은 침체한다. 그럼에도 매년 똑같다. 나아가질 못한다.
‘이미 망한 거지.’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 등은 애니나 만화의 실사화가 주를 이루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에 진작에 뒤처졌다. 세계적인 바람인 한류만 봐도 그랬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내수시장에 기댄다.
변화를 두려워하니까.
쿄타로 감독은 ‘낯기생’ 초반의 의의를 상기했다.
이 병신같은 시장에 일침을 가하는 것.
일본 배우의 연기 시장의 분위기 굳어진 돈의 흐름 겁내는 연출자 외 다수. 그에 히트맨으로 채택된 것이 강우진이었다. 그의 괴물 적인 연기 일본의 세계적 아카리 작가 작품에 한국의 배우를 중심에 두는 것 등으로 반전을 꾀했다.
그런 우진이 방금 ‘낯기생’의 결말마저 뒤집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쿄타로 감독은 긍정적이다.
‘그래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총대를 멜 생각이다.
‘키요시는 우진씨의 말대로 가는 게 더욱 빛을 발할 것이고.’
포격을 상상한다. 그 어떤 격렬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일단 알겠어요. 5분. 아니 10분만 쉬죠.”
일본어를 뱉은 쿄타로 감독이 연신 콘티에 뭔가를 적으면서도 몸을 돌렸다. 그리곤 핸드폰을 꺼냈다. 아마 아카리 작가에게 전화하는 것이겠지만 우진은 별생각이 없었다.
‘뭐 됐나? 할 말은 다 했고.’
곧 현장 전체로 조감독이 외쳤다. ‘10분 휴식!!’ 정도의 고함.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잡힌 휴식에 백여 명 스탭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은 다음 컷 준비를 위해 손과 발을 바삐 움직인다.
와중 세트장을 나서는 강우진에게 일본 배우들이 붙었다. 다들 왜인지 엄지를 추켜세운다.
“축하해요 우진씨.”
“기사 보고 헤에에에- 하고 엄청 놀랐어요! 난 경험도 못 해본 관람객 수치!”
“축하합니다. 일본에선 보기 힘든 결과라 부러우면서도 대단하다 싶네요.”
뭐지? 뭔 갑자기 축하를 해대? 처음엔 뭔 소린가 싶던 우진의 머릿속에 전등이 띵 하고 켜졌다.
아 ‘실종의 섬’!
그 순간 우진의 옆으로 꽁지머리 최성건까지 붙었다. 미소를 머금은 그가 강우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실종의 섬’ 관객수 70만. 한국 역대 관람객 1등 영화랑 첫날 성적이 동타다.”
“···그렇습니까?”
차갑게 되묻는 강우진이었으나 속으론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미 미친??!!! 하루 만에 70만??!! 또라이급이잖아!!’
같은 시각.
일본 언론에선 왜인지 한국의 영화에 관한 소식을 던져대고 있었다.
『「낯기생」강우진의 주연작 영화 ‘실종의 섬’ 하루 만에 한국서 70만 관객수 동원』
적지 않고 퍽 많다. 하지만 일본의 언론은 현재의 한국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이 시각 한국은.
『[영화랭킹] “미쳤다!” ‘실종의 섬’ 개봉 첫날 70만 관객수 동원하며 1위 차지』
『과연 거장 권기택 감독! ‘실종의 섬’ 개봉하자마자 70만 명↑ 박스오피스 정상 우뚝!』
이미 ‘실종의 섬’ 기사로 도배되고 있었다.
『1위 ‘실종의 섬’ 첫날 관객수 70만↑ 텐트폴 대작은 ‘실종의 섬’으로 확정되나』
어마어마한 양이다. 허나 충분히 그럴만한 반응이었다. 극성수기의 극장가. 그에 맞춰 포격하는 숱하게 많은 텐트폴 영화들. 척박한 상황에서 ‘실종의 섬’이 독보적 1등을 올림과 동시에.
『도전자 ‘실종의 섬’ 왕좌의 ‘해전’과 개봉 첫날 성적 거의 같다』
한국 역대 1위 영화와 엇비슷한 결과를 냈으니까. 약 7년간 깨지지 않은 철옹성이 흔들리고 있다. 단 하루 70만 관객수라는 무시무시한 성적 포함 수많은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강우진 연기 또 통했다···‘실종의 섬’ 올해 첫 1000만 찍나』
그들의 손가락은 초마다 분마다 움직였다. 뒤로 몇 시간. 각종 포털사이트에 ‘실종의 섬’이 가득할 때쯤 여론도 급격하게 손가락을 두드렸다.
[「실종의 섬」/ 2021년 5월 19일 개봉]
[평점 9.6]
[관람객·네티즌 감상평/ 1002명 참여]
-괴생명체가 나올 때 산으로 가나 했는데 내가 피똥 싸게 산을 타고 있더라/ yin****
-볼게 ㅈㄴ많은 영화임…그리고 강우진의 신들린 연기…경악하고 소름돋는다/ tan****
-얘들아 평론가들 평균 평점이 7점 이상이다 그냥 봐라 여분 팬티 챙기고/ cal****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우진 진심으로 미침?ㅋㅋㅋㅋㅋㅋㅋ연기 ㅈㄴ잘하넼ㅋㅋㅋㅋㅋㅋ/ lov****
-중반부터 잠/ bmb****
-류정민이 중심 잡고 하유라가 이쁘고 강우진이 또라이임/ dak****
-권기택 감독이 왜 거장인지 알겠네 시밬ㅋㅋ졸잼/ snn****
-배우들 연기가 대단해요! 특히 강우진씨가 제일 눈에 띄었어요^^ 줄거리도 탄탄하고 재밌습니다!/ dhn****
-처음부터 나오는 괴물은 그냥 곁다리고 인간의 군상을 다룬 영화다 꼭 봐라 나도 내일 또본다/ tck****
-노잼 하차함/ dbf****
-강우진은 계속 발전하는 배우임…진심 연기가 그냥 정신나갔다 봄 계속 우와우와 감탄함 전에 연기한 캐릭터 하나도 안 보임/ jeo****
-연기 구멍 1도 없고 강우진은 찐임 연기력 폭발함!! 혼자 긴장감 쥐었다 폈다…../ s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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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봐도 핵폭탄급 화력이었다. 커뮤니티 SNS 너튜브에도 금세 번진다. 뒤이어 20일 늦은 오후부터는 각종 매스컴들도 동참했다. 뉴스 라디오 외의 여러 곳에서 이번의 ‘영화 전쟁’의 승자를 다뤘다.
호들갑일지도 모른다.
이제 해봤자 단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실종의 섬’에 패한 영화들 쪽은 초상집이 따로 없었고.
“하루 70만이라니. 그게 아직도 가능한 성적이었냐?”
“저 저도 믿기진 않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죠! 내일이면 반전이 있을지도!”
“무슨 반전? ‘실종의 섬’ 평점이나 여론 반응 봤잖아? 저게 쉽게 침몰하겠냐고.”
“···”
“참패야. 후- 어떻게 BEP라도 땡기는 수밖에.”
더욱이 의지를 다지는 쪽도 있었다.
“고개 숙이지 말고! 이럴수록 더 홍보에 박차를 가하라고!”
“아 알겠습니다!”
“‘실종의 섬’을 이기라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만 볼 건 아니잖아! 2등을 노리다가 막판에 뒤집는 일도 많다! 정신 차리라고!”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하던가? 성수기를 노린 많은 영화들이 반격을 노렸다. ‘실종의 섬’보다 빨리 개봉한 같은 날 개봉한 앞으로 개봉할 모든 영화가 그랬다.
그러나 그 희망은 하루가 지난 21일에 박살이 났다.
1. 실종의 섬/ 개봉일: 5월 19일/ 관객수: 715005/ 스크린수: 1159 / 누적관객수: 1415228
독주는 물론이며 ‘실종의 섬’이 단 이틀만에 140만 관객수를 넘겨버렸으니까.
현재 일본에 있는 강우진은 컨셉질에 약간 위기가 왔다.
‘이틀 150만!! 와- 씨 돌았다! 아니 마약상 때도 진심 미쳤다 했는데!!!’
‘마약상’도 처음 보는 광경에 혀를 내둘렀는데 지금은 그의 수 배는 판이 크니까. 현실이 맞나 싶을 정도. 그러는 사이 그의 핸드폰엔 수많은 이에게 연락이 도착했다. 핸드폰이 폭발한다.
더불어 ‘실종의 섬’의 입소문도 터진다.
그 결과는 금요일의 결과를 볼 수 있는 22일 토요일 아침에 발표됐다. 3일 차 성적.
1. 실종의 섬/ 개봉일: 5월 19일/ 관객수: 865448/ 스크린수: 1159 / 누적관객수: 2280676
70만 관객수를 넘겨 80만 이상. 누적 관객수 3일 만에 200만 돌파. 이는 처음으로 ‘실종의 섬’이 1위 영화 ‘해전’의 철옹성을.
『[무비톡]역대 1위 ‘해전’ 3일 차 성적 210만 도전자 ‘실종의 섬’은 228만···판이 뒤집혔다!』
무너트린 순간이었다.
이 시각.
늦은 아침 일본 TOP3 애니 제작사 ‘A10 스튜디오’는 큰 행사 중이었다. 명확하게는 ‘남사친: 리메이크’ 전체 팀이 그랬다.
“오-”
“잘 뽑았네.”
“이펙트나 3D나 아주 깔끔해.”
“OST나 음향이 빠졌는데도 이 정도면- 기대할 만하겠어.”
한 중형 스튜디오에 모여 일본어를 뱉어대는 수십 인원들. ‘남사친: 리메이크’팀과 ‘A10 스튜디오’의 간부들이었다. 그리고 정면에 달린 크고 작은 모니터에는 애니메이션이 출력되고 있었다.
그중 남자 캐릭터는 낯이 익다. 강우진을 매우 닮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캐릭터도 전부 매력적이고. 뭣보다 남주 캐릭터가 아주 좋아 강우진씨를 본떠 만든 게 정답이었군.”
지금 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한국의 ‘남사친’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남사친: 리메이크’였으니까. 거기다 1화도 아니었다.
12화였다.
즉 마지막 화의 테스트.
후반 작업인 더빙과 음향 또는 믹싱 등을 제외한 오직 영상만 출력되는 중이지만 애니를 보는 인원들의 눈엔 기대감이 그득했다. 그럴만했다. 한국의 배우 강우진을 성우로서 영입. 원작 드라마를 각색 외의 여러 도전이 담긴 목숨을 건 ‘남사친: 리메이크’의 1화부터 12화가 완성된 순간이었으니까.
약 반년이라는 엄청난 속도. 4팀을 운영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이제 앞뒤로 OP와 EP OST가 삽입되고.
“성우 더빙 음향과 OST 녹음 등의 일정은 잡았나?”
“조율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윤곽은 잡혔습니다.”
“좋아. 아 근데 강우진씨는?”
“현재 ‘낯기생’ 촬영 후반부라는 연락받았습니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군.”
강우진 포함 성우들의 목소리만 들어가면 출격 완료였으니.
한편 ‘낯기생’의 세트장 외부 주차장.
퍽 드넓은 주차장에 세워진 많은 승합차 중 각지고 흰색인 승합차 뒷좌석에 익숙한 인물 두 명이 마주 앉아있다. 한쪽은 새치 가득한 쿄타로 감독. 표정이 단단하다.
“···”
그런 그의 반대편에 앉은 것은 ‘낯기생’의 원작자인 타키카와 아카리 작가였다. 그녀는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종이 몇 장을 내려보고 있었다. 안엔 글자가 빼곡하다.
-팔락.
당연히 쿄타로 감독이 건넨 것이었다. 명확하게는 ‘낯기생’의 수정된 결말. 쿄타로 감독이 며칠 만에 만들어낸 제안서와 같다. 이건 무조건 아카리 작가의 컨펌이 필수였다. 그것을 읽는 아카리 작가의 얼굴을 기분을 알기 힘들다.
무표정도 웃는 것도 아니다.
아카리 작가가 보는 쿄타로 감독의 결말은 ‘이요타 키요시’의 ‘숙제’가 모두 끝난 뒤의 일.
시작은 출근 시간의 지하철.
쿄타로 감독이 작성한 결말의 배경은 매우 평범했고 낯익다. 아카리 작가뿐만이 아닌 모두가 그리 생각하겠지.
‘어디서나 볼법한 아침 출근 풍경. 특이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아.’
심히 정적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빼곡한 인파. 출근에 찌든 직장인들. 죄다 같다. 블랙 또는 네이비 정장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이 말이다. 언뜻 보면 누가 누군지 구별이 어렵다.
수백의 사람들이 지하철에 우르르 탄다.
그리고 내렸다.
색이 검어서 개미 군단들의 대규모 이동같이 보인다. 어쩌면 공장에서 찍어낸 사람들일지도. 서로는 서로에게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다.
당연했다.
‘타인’이며 서로에게 ‘낯선 이’일 테니.
앵글은 수백 인파가 계단을 올라가는 뒤쪽. 그런 수백의 타인 또는 낯선 이들 중 한 명이 멈춰 서선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숙제’를 끝낸 뒤 원점으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숱한 타인 중 한 명인.
[“···”]
‘낯선 이’ ‘이요타 키요시’였다.
여기까지 읽은 아카리 작가가 잠잠한 얼굴로 쿄타로 감독에게 작게 물었다.
“이 결말을···우진씨가 제의했다는 거죠?”< 역대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