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3) >
‘낯기생’의 등급은 SS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SSS급으로 올랐다. 필시 이것은 결말을 바꾼 작업 때문에 생겨난 변화였다. 곧 강우진이 비실 웃으며 읊조렸다.
“이거 봐 이거. 결말 바꾸는 게 정답이었네. 아오- 씨 이걸 어디다가 자랑할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그였으나 꾹 참는다. 동시에 희열이 느껴졌다.
“기분 은근 지리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아공간의 덕분이 아닌 순수 알맹이 강우진이 이뤄낸 결과가 첫 번째. 두 번째는 A급이나 까딱 B급까지 하락할지도 몰랐던 것에 반전이 생겨 안심됐다.
아닌 척해도 은근 걱정은 됐으니까.
결과적으로 강우진은 세 가지 정도를 얻었다. 망가지던 키요시를 지켰고 SSS급 등급을 얻었으며 배우로서 자존감까지 높였다. 본인은 잘 몰랐으나 큰 수확이었다.
특히 배우로서의 자세 성장이.
그나저나 ‘낯기생’이 오늘로써 SSS급. 근데 이건 어떻게 되는 거지? 미소짓던 우진이 작게 고개를 갸웃했다.
‘‘낯기생’은 한국이랑 일본 두 쪽 다 개봉하는 거잖아?’
두 나라에 성적이 합산돼서 SSS급인가? 아니면 따로따로? 헷갈린다. 그러다 강우진은 생각을 멈췄다. 뭐 백날천날 고민해봐야 아공간을 어찌 이해하겠나?
“알아서 되겠지.”
금세 생각을 지운 우진이 돌연 양손을 짝! 하고 쳤다. 고대하던 건이 떠올랐으니까.
“아! ‘실종의 섬’ 결과결과!”
오늘은 23일 일요일이었다. 즉 어제인 22일 토요일이 ‘실종의 섬’이 맞는 첫 주말이었다. 그리고 아마 현재는 그 결과가 떴을 게 분명했다.
이어.
“퇴장!”
강하게 외친 우진의 시야가 금방 호텔룸으로 변했다. 강우진은 산발 된 머리는 아랑곳없이 베개 근방에 놓인 핸드폰을 훅 집었다.
“뭐가 많이 왔네.”
이미 부재중 전화나 톡 문자 등이 꽤 도착해 있었다. 내용은 안 봐도 예측이 갔다. 하지만 강우진이 접속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국내 공식 박스오피스 사이트.
-[KOPIC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결과는 금세 우진의 눈에 보였다.
[2021년 5월 22일 관객수 조회]
[일별 국내 박스오피스]
1. 실종의 섬/ 개봉일: 5월 19일/ 관객수: 971558/ 스크린수: 1159 / 누적관객수: 3254234
‘실종의 섬’의 토요일 성적. 일일 관객수가 어마어마했다. 눈이 디립다 커진 강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진심 돌은 거냐??!!”
주말이라지만 일일 관객수가 거의 100만.
“하루에 100만이라고?!!”
‘실종의 섬’은 한국 영화계 역사를 다시 쓰고 있었다.
후로.
어깨춤을 추며 샤워를 마친 강우진은 귀신같이 컨셉질을 장착했다. 그런 뒤 핸드폰에 폭발하는 연락들을 확인했다.
죄다 축하 연락이었다. 또는 충격.
물론 강우진의 공식 SNS나 ‘강우진 부캐’ 채널에도 축하 폭격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개봉 5일 차다. 갈 길이 한참이었다. 그 덕에 우진은 비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렸다. 근데도 잘 안 내려갔다.
이 맛인가?
그 이름도 거룩한 ‘천만 배우’. TV서나 보던 것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진의 기분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쯤 최성건이 강우진을 데리러 왔다.
어떻게든 포커페이스를 만든 우진에게 최성건이 함박웃음을 보였다.
“흐흐흐 봤지 너도? 어제 하루만 거의 100만 찍은 거.”
“예 대표님. 봤습니다.”
“짜식아! 일일 100만 관객 찍은 거 한국 영화판 역사로도 손에 꼽는 거다! 기분 째져도 돼! 이렇게 어? 좀 어깨를 덩실덩실! 내가 대신 쳐주랴??”
최성건이 호텔 복도에서 급작스레 탈춤을 시전했다. 아니 막춤인가. 강우진은 웃음과 막춤에 동참하는 것을 죽어라 참았다.
“대표님 사람들이 봅니다.”
“너가 하도 덤덤해서잖냐! 내가 대신해준 거라고.”
그렇게 점자 우진의 주변엔 팀들이 붙었다. 덩치 큰 장수환 단발이 짧아진 한예정 외의 열댓 명 인원들. 그들은 전부 만나자마자 ‘실종의 섬’의 쾌속 질주를 감탄해댔다.
“4일 만에 300만 관객 돌파? 진심 미쳤다! 폼 미쳤어요 진짜!!”
“한국 지금 뒤집혔어요. 울 회사에서 알려주기도 했는데 그냥 커뮤니티나 너튜브만 들어가도 죄다 ‘실종의 섬’ 얘기뿐이고.”
“지 진짜 이러다 ‘해전’ 총 관객수 제끼는 거 아니야??! 얼마였지 그거? 1600만?”
“정확히는 1670만인가? 근데 심지어 이미 진행 수치는 이기고 있잖아??”
“장거리 마라톤이니까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완전 대박 터진 거긴 해!”
그들의 흥분을 가만히 듣고 있던 꽁지머리 최성건이 비죽 웃으며 끼었다.
“300만인 건 맛보기고. 일요일 오늘 ‘실종의 섬’ 예매도 싹 다 매진이더만. 더 큰 거 온다 백프로.”
“헐!! 완전 기대돼!”
뒤에서 왁자지껄 난리가 났지만 강우진은 최대한 어깨춤 출 기분을 눌렀다. 오늘 아침에 호텔에서 한바탕 방방 뛰기도 했고. 사실 살짝 위기였다. 아까부터 입꼬리가 씰룩였으니까. 참아라 마인드 컨트롤만이 살길이다.
하지만 한예정이 귀신같이 알아챘다.
“오빠 입 쪽에 경련 나는데요. 피곤해서 그런 가봐. 대표님 촬영 전에 마그네슘부터 찾아야겠는데요.”
하다하다 마그네슘 착각까지 드리웠다. 하지만 강우진은 의연하게 대처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정말?”
“잠깐 떨리고 마는 정도.”
어찌저찌 아무 문제 없이 강우진은 ‘낯기생’의 세트장에 도착했다. 먼저 쿄타로 감독에게 인사. ‘낯기생’의 백여 명 스탭들은 이미 정신이 없다. 뭐랄까 오늘따라 기백이 넘친달까?
“소품!! 소품 언제 옵니까!!”
“준비 중입니다!”
“조명 감독님! 이쪽에 반사판 몇 개 더 올려야 됩니다!”
“확인!”
“강우진씨 도착했습니다!”
“의상부터 갑니다!!”
드넓은 세트장 여기저기에 강렬한 일본어가 던져진다. 점차 빨리지는 호흡. 일본 배우들도 속속 도착한다. 그러면서도 백여 명 스탭들이나 일본 배우들은 쑥덕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된 대화 주제는.
“바뀌었다는 결말 내용 보셨어요??”
“에에? 바뀐다구요? 갑자기?”
“오늘 아침에 감독님이 갑자기 발표했어요.”
“어떻게 바뀌는데요?”
“그게- 당황스러워요 저도 그런 류의 결말은 진짜 본적도 없어서.”
급작스레 바뀐 ‘낯기생’의 결말이었다. 시나리오 내용이 수정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촬영 거의 끝물에 뒤집히는 건 매우 드물다. 자잘한 연출도 아니고 결말이 바뀌다니. 최근 일본 드라마 영화판은 거의 만화나 소설 등의 원작을 실사화하는 것이 대부분.
실사화 작품의 결말이 수정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 원작자가 그 아카리 작가였다. 그렇기에 스탭 또는 배우들의 격한 반응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특히 ‘낯기생’의 배우들이 퍽 당황했다. 눈에 띌 정도로.
“아 아무리 그래도 키요시가 잘 먹고 잘산다는 게···이거 진짜 괜찮아요?”
“감독님이 결정했으면 배우는 그냥 가는 게 맞아. 근데- 좀. 아니 많이 걱정스럽긴 해. 개봉하면 잡음이 상당할 거야.”
“잡음? 그 정도면 다행이죠! 이 정도면 원작 팬들이 막 달려들고 그럴 텐데! 물론 바뀐 결말이 더 키요시에게 맞다는 건 알지만···전 좀 무서운데요. 완전 일본에선 처음 시도되는 결말이고.”
“과거도 앞으로도 우리 작품이 유일무이할지 몰라. 즐기라고.”
“미쳤나 봐! 근데 강우진 씨는 괜찮나? 왜 저렇게 평온해 보이지. 개봉하면 직격탄은 우진씨나 감독님일 건데.”
“저 친구야 늘 저런 느낌이잖아. 그래도 아예 흔들림이 없는 건 신기하긴 해.”
하지만 촬영을 준비하는 강우진은 덤덤했다. 아니 냉정한 모습처럼도 보인다. 세트장에 모인 백여 명 인파 중 유일했다. 긴장도 두려움도 고뇌도 초조함도 보이지 않는다.
“···”
촬영존 속의 강우진은 그저 어제와 같았다. 또는 한 달 전. 아니면 몇 달 전.
곧 세팅이 완료된 ‘낯기생’의 촬영이 속행됐다.
“하이- 큐!!”
쿄타로 감독의 사인과 함께 오늘의 첫 연기를 시작한 것은 강우진이었다. 이미 찍어둔 컷과 이어지는 솔로 씬. 짧은 대사와 뭉근한 시선 처리가 중요했다.
그리고 더 극심한 ‘허무’를 얼굴에 담아야 한다.
꽤 어려운 씬이지만 강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결과적으로 금방 OK가 떨어졌고 몇 번의 구도를 변경해 촬영이 속전속결로 달렸다. 강우진의 촬영은 늘 이런 식이었다.
“오늘도 역시 우진씨는 NG가 없네요.”
“가끔 보면 무섭다니까요 사람이 저리 완벽할 수 있나 싶어서.”
“배우로서 자세와 태도는 이미 글로벌 급이지.”
지금 ‘낯기생’ 스탭들이 일본어로 수군거린 것처럼 강우진은 NG가 거의 없다. 있다고 한다면 스탭들의 실수나 상대 배우의 문제.
이어 다음 타자는.
“마나 코사쿠씨!! 스탠바이!!”
한량 형사 ‘요시자와 모치오’역의 마나 코사쿠였다. 약간 허름한 재킷 턱에 난 잔 수염 입에 문 담배. 형사 ‘요시자와 모치오’로 탈바꿈된 마나 코사쿠가 세트 안으로 들어선다. 경찰서 내부처럼 만들어진 세트였다.
-스윽.
그리고 오늘 그가 찍을 씬은 퍽 긴박감을 부추길 컷이었다. 정확하게는 오늘 찍은 모든 장면들이 그랬다.
“하이- 액션!”
쿄타로 감독의 신호에 따라 컴퓨터 앞에 앉은 형사 모치오 또는 코사쿠가 팔짱을 꼈다. 그리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이요타 키요시.”
길게 빠는 담배. 폐를 들렀다가 다시금 그의 입에서 내뿜어지는 담배 연기.
카메라 형사 모치오의 얼굴을 찍다가 그의 시선을 공유하며 모니터를 비춘다. 프로필이 떠 있다. 이요타 키요시의 것이었다. 형사 요시자와 모치오는 ‘낯선 이’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물론 쉬운 건 아니었다.
키요시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역시나 과거에서였다. 누구의? 급작스레 연쇄적으로 사망하는 인물들의.
마치 짜고 친 듯 연속적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코나카야마 긴조 미사키 슈토쿠 호리노치 아미에.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바다에 빠진 차 안에서 발견된 여성 ‘이이야 사키’까지. 이들은 분명 연결돼 있었다.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공통점은 학교였다.
미사키 슈토쿠를 빼면 전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여기서 형사 모치오는 꺼림칙함을 느꼈다. 같은 학교를 나온 인물들이 줄줄이 죽고 있다? 뭐가 숨겨진 내막이 있는 건 아닐까.
모치오는 그들의 과거에 더욱 집중했다.
그다음 나온 것이.
“여학생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한 학생의 자살 사건. 물론 그 고등학교에서 터진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미사키 토카. 어라? 미사키? 그랬다. 미사키 슈토쿠는 그 여학생의 아버지였다.
이게 대체 뭔가?
파면 팔수록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과거 자살 사건이 있던 고등학교를 나온 사망자들. 자살한 여학생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최근 코나카야마 긴조를 죽이고 자신도 투신했다. 모든 것에 연결점은 미사키 토카다.
형사 모치오는 토카의 사건이 터졌을 당시의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당연히 대부분은 소극적이거나 짜증 냈다.
이렇다 할 소득이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몇몇에게 과거의 얘기를 미약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미사키 토카는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그녀를 이지메한 가해자들. 그들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찾을 수도 없다. 이미 죽었으니까. 연속적으로 사망하는 사건. 그 가해자들이 지금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형사 모치오는 가장 먼저 ‘복수’라는 단어를 상기했다.
‘그런데 이상하잖아?’
토카는 이미 죽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미사키 슈토쿠도 죽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연쇄적인 사건들은 대체 누가 종용하고 있나? 진짜 그 미사키 토카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인가?
그쯤이었다.
“사실 처음 이지메를 당한 건 이요타- 이름이 헷갈리는데 아마 맞을 거예요 이요타 키요시. 걔가 먼저였어요.”
“누구요?”
“이요타 키요시. 토카와 조금 친했던 거로 기억해요.”
‘낯선 이’가 형사 모치오에게 처음 보인 것이.
주말이 지난 24일 밤.
도쿄역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 그중에서 나름 높은 건물의 옥상이다. 컴컴한 밤이지만 한 촬영팀이 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레일을 깔고 조명을 세우고 모니터를 배치하고 반사판을 올린다.
크랭크업이 며칠 안 남은 ‘낯기생’ 팀이었다.
“조심! 조심해서!”
“공간 안 나오면 무리할 것 없으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입시다!”
공간 넓이가 애매한 관계로 스탭 전부가 올라오진 않았다. 대략 30명쯤. 각 팀의 키스탭과 주요 스탭들만 자리했다. 모자 쓴 쿄타로 감독은 눈앞의 여러 모니터와 촬영 콘티를 점검한다.
모니터에 출력되는 배우는 둘.
한 명은 조명을 받으며 메이크업 수정 중인 강우진. 남은 한 명은 재벌인 ‘츠즈키 이츠마’ 역을 맡은 일본 배우였다. 시나리오상 츠즈키 이츠마는 중견기업 오너 집안으로 뒷배가 빵빵한 인물이며 키요시에게 받은 녹음기 때문에 호리노치 아미에를 살해했다.
이번 컷은 두 인물의 종착역이었다.
정확히는 이요타 키요시의 종착역.
그런 현장의 외진 곳 꽁지머리 최성건이 미소를 띤 채 몇몇 일본 배우 스탭들에게 핸드폰을 보여주고 있다. 어째 자랑질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실제 자랑 중이었으니까.
최성건의 핸드폰에 뜬 것은 기사.
『[무비is]실종의 섬 일요일 하루에만 100만 관객수 동원···현재까지 토탈 500만 관객 누적!』
물론 한국의 기사였고 이를 보는 일본 스탭들에게 최성건이 설명했다. 어색한 일본어긴 하지만 듣는데 무리는 없었다.
“어제 일요일 하루 관객수가 100만이었고. 오늘 거 포함하면 500만은 넘을 것 같아요.”
“개봉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요?”
“오늘까지 6일 찹니다.”
배우의 실장 등 스탭들의 눈이 디립다 커진다.
“에에에엑??!! 6일 차에 500만??!”
“마사카!! 진짭니까??”
이때.
“스탠바이!!”
촬영에 돌입한다는 울림이 퍼졌다. 뒤로 약 3분이 지난 시점에.
“액션!”
강우진. 아니 키요시는 바닥에 누운 ‘츠즈키 이츠마’를 말없이 내려보고 있었다. 이츠마는 이미 시체였다. 이 시체가 ‘숙제’의 마지막이었다.
즉 ‘기괴한 희생’이 끝났다.
“다 했다.”
이제야 원점이었다.< 역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