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8) >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은 기간. 하지만 백여 명 스탭들은 퍽 감격스러운지 각자의 자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하 끝났군! 끝났어!”
“에에에?? 조명 감독님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에이! 오해야 오해!”
“아우- 시원섭섭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작품 진짜 오래 기억날 것 같아요!!”
“아쉽습니다! 고생들 많으셨어요!!”
꾸벅꾸벅 인사하거나 기분 좋게 웃거나 약간 눈시울을 붉히거나 박수 치거나.
-짝짝짝짝짝짝!
각팀의 스탭들은 서로서로 치하하거나 축하했다. 특히 배우들에게 던져지는 외침이 많았다. 현재 결말 씬에 정식으로 참여한 배우는 강우진뿐이지만 마지막 촬영을 지켜보기 위해 ‘낯기생’의 전 배우들이 모두 참석한 상태였으니까.
“우진씨!! 감사했습니다!”
“그간 좋은 연기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역시 최고였습니다!”
배우들과 스탭들은 섞이고 엉켜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수십 보출 인원들도 배우들의 스탭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략 150명이 넘는 인파들이 외치는 바람에 섭외된 지하철역이 시끌벅적하다.
여러 모니터가 놓인 자리의 쿄타로 감독은 키스탭들과 악수하기 바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음. 편집부터 개봉까지 진짜는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다들 고생했어요.”
“하하. 그래도 며칠은 쉬셔야죠.”
‘낯기생’ 현장은 여느 영화 촬영장의 마지막 그림을 연출했다. 와중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숱한 스탭이나 배우들에게 인사를 받는 강우진은.
“우진씨! 저저 우진씨 너튜브에 출연시켜줄 수 있나요? 꼭 나가보고 싶은데!”
“우라마츠 미후유씨라면 환영입니다.”
“정말??!”
“예 확인해서 알려드릴게요.”
“에에! 기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부산스런 현장을 둘러봤다. 넘실거리는 수많은 인파들. 지금 그의 얼굴은 언뜻 컨셉질처럼도 보이지만 사실 진심이 절절하게 묻은 상태였다.
‘흠- 또 한 작품이 이렇게 끝난 건가?’
오묘한 감정이 솟았으니까. 뭐랄까 약간 기분은 좋은데 편하게 기뻐할 수 없는 기분.
거기다.
‘이번 건 좀 진했네. 타국에서 찍어서 그랬나?’
진작에 냄새는 빼냈지만 ‘이요타 키요시’의 잔향이 남은 느낌이었다. 낯선 일본에서 진행한 촬영이라서? 어쩌면 키요시를 진행함에 있어 새로운 것이 많이 추가돼서 일지도 몰랐다.
피아노 배역합성 배역의 자유도 등등.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인 키요시였고 강우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퍽 오래 기억에 남겠지. 배우가 한 작품을 끝내면 여러 이별이 기다리지만 그중에서 배역과의 헤어짐이 가장 두드러진다.
특히 강우진에겐 더 없이 그랬다.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그만이 배역의 세상을 살고 가지니까. 지금껏 그래왔고 이번에도 그랬다. 또 다른 세상 하나가 끝났다.
이쯤 꽁지머리 최성건이 우진의 팀이 강우진에게 다가왔다.
“우진아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빠! 수고하셨습니다!”
“또 하나 끝났네요!”
우진의 스케줄에 의해 고생해준 모드들. 강우진은 나름 진심을 담은 목소리를 냈다. 물론 한없이 낮은 톤이긴 했다.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어머? 뭐야? 약간 감동인데요?”
“그러니까. 남들한텐 되게 평범한 대산데 왜인지 우진 오빠가 하면 괜히 치이더라?”
비죽 웃던 최성건이 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산 하나 넘었다. 이제 ‘낯기생’ 관련으로 며칠 정리하고 ‘남사친: 리메이크’ 녹음까지 털자. 자잘한 스케줄까지 합쳐서 얼추 2주 안짝이면 될 거야.”
애니 ‘남사친: 리메이크’의 성우 더빙과 OST나 피아노 등의 녹음을 말하는 것.
“그다음 한국 복귀해서 ‘거머리’ 마무리 쳐야지.”
곧 스타일리스트들이 곡소리를 냈고.
“아아아- 영화 하나 끝났는데 왜 줄어든 기분이 안 들지??”
“우진 오빠는 안 힘들어요? 진심 지금 남은 일들 다 끝내면 최소 1년은 쉬어야 될 듯.”
“난 딱히.”
“우와- 혼자만 쌩쌩해! 로봇! 괴물!”
스탭들과 얘기 중인 강우진에게 모자 푹 눌러쓴 쿄타로 감독이 다가왔다. 동시에 스타일리스트들이 길을 터줬고 우진을 보며 다가온 쿄타로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고생하셨어요 우진씨.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간 많이 즐겼어요.”
그의 손을 잡은 강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이후 부산스런 ‘낯기생’ 현장은 뒷마무리 분위기로 돌입했다. 그 사이 강우진은 ‘낯기생’의 현장 또는 스탭들을 보며 낮게 읊조렸다.
“재밌었다.”
다음 날 29일. 느지막한 아침. 일본.
아침부터 일본의 방송가 제작사 여러 영역이 포함된 연예계가 들썩였다. 특히 영화사나 제작사가 그랬다.
“‘낯기생’ 어제 크랭크업 끝났다는군.”
“아아- 그렇습니까? 시작부터 시끌벅적하더니 결국 마무리를 짓는군요 역시 그 거장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이랄지.”
“그래 그 정도나 여러 문제가 터졌는데 말이지. 보통이라면 여론이나 업계 기세에 눌려서 중단하고도 남았지.”
어제 촬영을 마친 ‘낯기생’의 소문이 돌았으니까.
“···지금 크랭크업이면- 내년으로 밀릴 수도 있지만 통상의 속도로 보면 얼추 올해 하반기엔 개봉하겠습니다. 타이밍이 걸치면 저희와 겹치겠는데요.”
“아마도.”
일본 연예계 전체로 ‘낯기생’은 워낙에 유명했다. 일단 일본 거장 쿄타로 감독의 차기작인 게 그랬고 거물 아카리 작가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것. 뜬금 한국배우 강우진을 영입하는 것 등등. 스타트부터 지금까지 조용한 날이 없었으니까.
“대표님! 들으셨습니까?? 어제 ‘낯기생’ 촬영 마쳤답니다!”
“알아 들었어.”
“엎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더니 결국 마무리는 짓네요 성적이 어떻게 나올까요? 일단 대중들 관심을 높아서 초반 힘은 좋을 것 같긴 한데.”
“글쎄.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 원작이 그 아카리 작가라는 점 쿄타로 감독의 차기작 투입된 배우들 뒷배가 ‘카시히 그룹’. 배경만으론 1000만도 거뜬할 정도긴 하다만-”
일본 업계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경쟁작으로 견제를 하든지 같은 업계로써 기대하든지.
“···1000만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요즘 추세가.”
“난 개인적인 소망으로 그 영화가 1000만. 아니 안 되더라도 최대한 높은 성적을 올렸으면 해. 영화판에 애니메이션이 아닌 순수 영화로 그 성적을 올린 게 얼추 10년 전이야. 시장의 판도가 바뀔 때도 됐어.”
“‘낯기생’은 일본과 한국 두 나라 개봉인 거로 압니다.”
“두 쪽 다 잘됐으면 싶군. 그래야 만화 실사화 영화나 애니 극장판이 조금은 주춤하고 순수 영화 바닥에 숨통이 트일 거야.”
뭐 따지면 ‘낯기생’도 원작이 있는 작품이지만 감독의 각색이 들어갔고 시나리오도 제대로 뽑힌 정식 영화에 가깝다. 허나 이미 일본 드라마 영화판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꽉 잡은 상태였다. 패왕급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본은 순수한 영화로 준수한 성적을 낸 작품이 무려 10년도 넘었다.
반대로 최근 3년 이내에만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훨훨 날고 있었다. 2년 전엔 1800만 관객수를 돌파한 극장판 애니도 존재했다.
‘낯기생’은 그 바늘구멍 사이로 침투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볼 땐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뭐가 됐든 일본에서 가장 핫한 작품임은 분명하기에.
『화제의「낯기생」 어제 크랭크업 완료』
일본 언론은 ‘낯기생’의 크랭크업 소식을 재빨리 전했다. 이 이슈는 금세 언론에서 여론으로 번졌다. 그다음 화제가 된 것은 SNS 쪽이었다. 가뜩이나 최근 ‘#강우진’의 힘이 강대했기에 공유는 마른 장작에 불붙듯 삽시간이었다.
너튜브 역시 화력을 보탠다. 곧 불특정 다수의 일본 대중들이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이 영화 개봉하면 꼭 볼 거야! 매번 애니 극장판만 걸렸는데 오랜만에 영화다운 게 개봉하네!
-이거 결국 촬영 끝났구나….난 원작 팬이라 이 영화 개봉하는 게 달갑진 않아
-강우진이 어떻게 나올지 제일 궁금해! 애니의 성우도 흥미롭지만 역시 그는 배우니까!
-수많은 원작 팬들이 반대하는데도 강행했으니까 결과물은 좋아야 할 거야
-원작의 반만큼이라도 뽑혔으면….
-애초에 한국배우가 이요타 키요시를 맡은 게 말이 돼?
-안 될 건 없지 이미 강우진은 일본에서도 스타니까
-반응을 보면 어쨌든 이 영화는 개봉하면 첫 주엔 시끄럽겠네
벌써 싸움이 벌어진다.
이렇듯 빠른 속도로 ‘낯기생’이 일본 전역으로 이슈의 몸집을 불리고 있을 무렵 강우진은 신오쿠보 쪽에 있는 한식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늘 그의 스케줄은 정오부터였다.
그렇기에 강우진은 느지막한 아침에 팀 스탭들과 한식당을 찾았다.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다만 왜인지 최성건은 보이지 않았다.
우진의 등장 이미 식당에 있던 일본인 손님들의 시선은 당연히 폭격.
“우와! 가 강우진!”
“헤에에에! 진짜네?? 정말 강우진이잖아!”
“イケメン!!(대충 미남이라 충격)”
우진이 룸에 들어간 뒤에도 한식당의 홀은 강우진의 이름으로 들썩였다. 한류로 인해 식당에 일본인들이 가득 찼으니까.
곧.
“이야- 우진 형님!”
의자에 앉은 덩치 큰 장수환이 싱글벙글 웃으며 바로 옆에 앉은 푹 눌러쓴 모자를 벗는 강우진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형님! 이 정도면 뭐 어지간한 일본 탑들보다 형님이 잘나간다 봐도 됩니다!!”
한예정이나 스타일리스트들도 격하게 동조했다.
“이미 추월했죠.”
“완전이요 완전!! 아까 오던 거리에 KPOP 굿즈 판매점 앞에 본 사람?! 우진 오빠 포스터 있던 거!!”
“진짜??!”
물론 강우진도 곁눈질로 봤었다. ‘내 사진이 왜 저깄어?!’ 따위를 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이때 메뉴판을 보던 장수환이 돌연 강우진에게 핸드폰을 보였다.
“흐흐 일본도 일본인데 진짜는 한국 아니겠습니까??! 크- 이 광경은 봐도봐도 경이롭습니다!!”
뭐겠는가? 그가 보인 것은 핵폭탄을 떨구고 있는 ‘실종의 섬’의 오늘이 포함된 성적이었다. ‘실종의 섬’은 이미 개봉 열흘째였고 오늘인 토요일에 어제인 금요일까지의 성적이 발표된 상태였다.
2021년 5월 28일 관객수 조회]
[일별 국내 박스오피스]
1. 실종의 섬/ 개봉일: 5월 19일/ 관객수: 780115/ 스크린수: 1159 / 누적관객수: 836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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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충격을 넘어 대파란이었다.
다른 영화들과는 확연한 차이. ‘영화 전쟁’의 승리자가 ‘실종의 섬’으로 굳어지는 양상. 이젠 ‘실종의 섬’의 유일한 경쟁작은 한국 역대 1위 영화 ‘해전’으로 봐야 했다.
그마저도 약 이틀 정도 ‘실종의 섬’이 앞서고 있다.
하지만 강우진은 묵직했다. 이미 아침에 남몰래 방방 뛰었으니까.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지. 이제 10일쯤 됐으니까.”
“그래도 미친 속도잖아요!”
“근데 오빠! 오빠는 ‘실종의 섬’이 ‘해전’ 꺾을 거 같으세요??!”
“충분히.”
“와- 자신감 폭발.”
한예정이 특유의 쌀쌀맞은 톤으로 말했다.
“그럴만해 오빠는 지금 그래도 되지. 대충 들으셨죠? 지금 연극판이나 연기 아카데미 등등 배우 지망생들 롤모델 누구냐 물으면 거의 우진 오빠를 얘기한대요.”
“들었어.”
“저번에 우리 회사 신인들 모집할 때도 사람들 엄청 몰렸다는데 80% 이상이 우진 오빠가 목표라 했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실종의 섬’ 보러 가는 연습생들이 드글드글할 거고.”
실제로 그랬다. 일본에 있는 우진은 확인할 수 없으나 한국에선 이 시각에도 ‘실종의 섬’을 보는 배우 연습생 또는 지망생들이 많았다.
아니 끓어 넘쳤다.
대학교 연기과에서도 우진의 연기는 필수적으로 추가되는 중이고 많은 연극단이나 연기 아카데미에서도 강우진을 롤모델로 삼아 교육하는 추세였다. 그렇게 하는 게 연습생들의 투지를 불태워주니까.
이때.
-똑똑.
룸으로 음식들이 들어왔다. 갈비찜 제육 냉면 김치찌개 등등. 인원이 많아 음식도 어마무시하다. 그런데 서빙을 맡은 여직원 두 명의 뒤로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들어와 웃었다.
“이거. 닭볶음탕은 서비스입니다! 우진님 더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다 드릴게요!”
강우진이 근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자 사장은 제발 부탁드린다는 손짓으로 답했다.
“우진씨 일본에서 터지고 장사가 몇 배나 잘돼요! ‘김자반 막국수’ 그거 여파도 있고! 제발 드셔주세요!”
이미 우진은 일본에서 국위선양의 아이콘이었다.
같은 시각. 카시히 그룹 본사.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장실 안 딱 봐도 세상 비싸 보이는 5인 소파에 익숙한 남자가 보였다. 꽁지머리 최성건이었다. 오늘은 왜인지 흰 셔츠를 차려입었고 그의 앞 유리 탁자에는 챙겨온 여러 투명 파일들이 놓였다.
그런 최성건의 옆 5인 소파 상석에 앉은 늙은 남자. 아니 흰 털이 수북한 사자를 연상케 하는 요시무라 히데키 회장이었다.
팔짱 낀 그가 최성건을 보며 까끌한 목소리를 냈다.
“강우진씨의 기세를 봤을 때- 슬슬 bw 엔터 관련 해외 지사를 두는 게 맞지 싶은데요 대표님 생각은?”
순간 최성건의 두 눈이 디립다 커졌다.< 역대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