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1)
일요일 아침.
‘흥신소’ 촬영장 주변 숙소에서 눈을 뜬 강우진은 곧장 씨블루 스튜디오로 움직였다. ‘프로파일러 한량’ 측의 콜을 받았기 때문. 아니 사실 며칠 전부터 약속돼 있던 미팅이긴 했다. 원랜 더 일찍 진행할 미팅이었으나 송만우 PD가 우진의 촬영을 배려해 일정을 늦췄다.
어쨌든 우진은 ‘흥신소’의 승합차에서 내린 후 송만우 PD와 박은미 작가 제작실장 등등을 만났다. 미팅의 시작은 턱수염 송만우 PD부터였고 그가 박대리 관련 확정된 스타일 콘티를 보였다.
“우진씨 이게 박대리 보통의 의상 컨셉이고 집이라던가 등장 장소 등등 확정 콘티들 한 번 쭉 확인해봐요.”
강우진은 ‘박대리’ 역의 외형부터 사는 곳 외의 여러 가지 결정된 것을 확인했다. 일전엔 가안이었지만 이번엔 확정이었고 우진은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오- 엄청 세세하네? 장소나 집 같은 것도 사진으로 보여주고. 의상도 화 수마다 달라. 뭐 뼈대는 디자인이랑 비슷한가? 재료나 자료 조사 후 작업 들어가는 거.’
속으로는 연신 신기해했다. 그렇게 우진은 약 10분가량 콘티 얘기를 듣다가 박은미 작가가 나서며 대본 회의로 넘어갔다.
“일단 여기요. 3부 4부 정식 책대본. 다른 배우들은 이미 다 받았는데 우진씨는 ‘흥신소’ 촬영이 있어서 좀 늦었네요. 좀 시간이 빡빡하겠지만 분석 잘 부탁해요.”
박은미 작가의 눈에 살짝의 걱정이 서렸다. 대본을 늦게 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 하지만 강우진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늘 안에도 모든 걸 습득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허세 한 스푼.
“문제없습니다.”
“정말?”
“네 작가님.”
금세 박은미 작가의 눈 속 걱정은 애정으로 바뀐다. 뭐가 됐든 ‘프로파일러 한량’은 어느새 4부까지 정식 책대본이 나왔다. 우진은 몰랐지만 대본 초고는 7부 이상까지 진행됐다. 강우진에게 전달된 3 4부 책대본의 표지나 형태는 1부 책대본과 같다. 물론 모든 책대본 옆엔 검은 사각형이 붙어 있었다.
이때 턱수염 송만우 PD가 우진에게 설명했다.
“박대리는 4부까지 나오고 퇴장합니다. 하지만 뒤로 몇 화쯤 회상으로 다시 짚어주는 컷이 있어요. 대략 6부 정도 보면 됩니다.”
총 6부의 등장. 그럼 회당 350만으로 봤을 때 2100만이었다. 순수 계산만 그렇고 재방이나 기타 등등 포함하면 꽤 입이 벌어진 금액이었다.
‘좋네 배우 좋아.’
강우진은 속으로 브라보를 외쳤다. 이어 약 1시간 동안 우진은 대본 3부와 4부에 관한 구두 리허설을 들어야 했다. 뭐 나름 재밌었다. 창작자와 연출자의 생각을 듣는 것도 자신의 리딩과 비교는 되니까.
대본 관련 회의가 끝나자마자 송만우 PD가 비죽 웃었다.
“우진씨 덕분에 배우들이 각성한 모양이야.”
각성? 갑자기 뭔 각성? 판타지도 아니고. 궁금증에 우진이 낮게 되물었다.
“각성이라 하심은.”
“대본리딩때 우진씨 연기를 보고 배우들이 발등에 불 떨어진 거죠 박대리한테 먹힐까 봐.”
말끝에 박은미 작가가 붙었다. 그녀 역시 미소짓고 있다.
“‘흥신소’ 촬영은 잘 끝났어요?”
“예 문제없이.”
“‘흥신소’ 기대하고 있어요 저도. 촬영장은 분위기는 어땠어요? 할 만했어요?”
뒤질 뻔했습니다. 이게 솔직한 우진의 심정이었지만 여기선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게 정답이지.
“무난했던 것 같아요.”
“무난? 체력도 좋은가 봐요 우진씨는? 좋네. 이제 우리 ‘프로파일러 한량’ 첫 촬영도 곧 이니까 컨디션 조절 잘해줘요 알아서 잘 하겠지만.”
컨디션 조절할 틈이 있나? 강우진은 그냥 버티는 수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강우진이 미팅을 끝낸 건 오후가 돼서였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강우진.
‘뭔가 정신없으면서도 할만한 기분이네.’
이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우진이 입은 후리스 주머니서 긴 진동이 울렸다. 전화가 온 것. 발신자를 확인하니 우람한 김대영이었고 주변을 둘러본 우진이 전화를 받았다.
“왓.”
“야! 강우진! 지금 나와! 한잔 쌔리게. 애들 다 시간 된단다.”
“거절한다 니네끼리 먹어.”
“···아직 백수새끼가 바쁜 척할래? 니 아직 이직도 안 했잖어. ”
“걱정을 빙자한 비난 고맙고 입 닥쳐. ”
“너 요즘 뭐하고 자빠졌냐? 왜 뜬금 신비주의를 하고 지랄이지?? 왜 면상을 안 보여주냐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솔직히 강우진은 현재 술 마실 짬이 안 났다. 척이 아니라 진짜 바빴으니까.
“나중에 알려줄게 빠이.”
-뚝.
전화를 끊자마자 김대영과 친구들을 상기하던 우진이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뭐 차피 다들 곧 TV로 볼 거고.”
만나서 거짓말하는 것보단 숨기다가 터트린다는 설계.
이쯤 강우진을 모실 제작사의 승합차가 지하주차장에서 나왔다. 집에 데려다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고.
-텅!
우진이 올라타자마자 승합차는 출발했다. 제작진이 있으니 강우진은 컨셉을 되돌렸다. 무심한 표정. 그런 우진이 직전에 받아 온 ‘프로파일러 한량’의 3 4부 대본 중 3부 책대본을 들어 올렸다.
‘집 도착 전에 일단 3부는 바로 리딩할까?’
-푹!
이젠 검은 사각형을 찌르는 것에 거리낌 따윈 없는 그였고 금세 강우진은 끝없이 컴컴한 아공간에 진입했다. 그리곤 바로 둥둥 뜬 흰 사각형을 확인했다.
“이어진 대본은 역시 이런 식으로 나열되나 보네.”
‘프로파일러 한량’ 3부는 원래의 1부 흰 사각형 밑으로 작게 박힌 형태였다. 2부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같았다. 하긴 만약 16부라면 흰 사각형이 16개가 나열되는 거니 보기도 힘들겠지. 크기만 작을 뿐 조작법은 같았다.
또 새로운 것을 파악한 강우진이 검지를 움직였다.
-[2/대본(제목: 프로파일러 한량 3부)을 선택하셨습니다.]
-[리딩(경험) 가능한 인물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E:박대리’ 리딩 준비 중···”]
우진은 3부의 낯선 박대리 세상에 빨려 들어갔다.
같은 날 늦은 점심 강우진의 원룸.
강우진이 자신의 원룸에 복귀한 것은 1시가 넘어서였다. 다행히 집까진 ‘프로파일러 한량’팀이 차로 데려다줬기에 편하게 왔지만 5일간의 촬영 피로와 어제의 회식 그리고 오늘 아침의 미팅 덕에 우진은.
“으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에 풀썩 쓰러졌다.
“···”
그대로 3분을 미동 없이 엎어져 있던 강우진이 가까스로 움직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뒤척였다. 이 얼마 만에 찾아온 평화인가. 윗집에서 들리는 층간소음마저 정겨울 지경이었다.
이 상태로 바로 자버릴까?
강우진은 버릇적으로 핸드폰을 집으면서도 몸을 다시 뒤척거렸다. 이때 그의 눈에 보이는 명함들.
“아.”
대본리딩 날에 받은 명함들이었다. 아 맞네. 저게 남아 있었지. 명함들을 받고 대략 일주일이 지났으니 슬슬 뭔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후-”
하지만 현재 강우진은 일어서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렇기에 대강 손을 뻗어 누운 채로 명함 뭉치를 집었다. 총 9장. 죄 엔터들이지만 영화사가 하나 끼어있었다. 뭐 이건 이거고.
“소속사라- 업체 확인해보는 거야 기본이긴 하다만.”
진짜 여덟 곳의 엔터들을 전부 만나봐야 하나? 그건 좀 오바지 싶은데. 약간 번거로운 것도 있었지만 강우진이 장착한 컨셉상 일일이 돌아다니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거기다.
“리딩날 때 보니까 사람들끼리 잘 알던데. 엔터 막 만나고 다니면 소문나지 않으려나?”
찍은 것이었지만 우진의 혼잣말은 정답에 가까웠다. 소문이 빛보다 빠른 연예계였고 특히 엔터 쪽은 트렌드에 민감하기에 몇 배는 더 신속했다. 강우진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안 좋은 소문이 퍼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너무 팔랑팔랑 가볍게 움직이는 건 탈락.”
이쯤 강우진이 익숙한 명함에서 멈칫했다.
-bw 엔터테인먼트.
-대표 최성건.
탑여배우 홍혜연의 소속사였다.
“음-”
이어 우진이 명함을 만지작하며 침음을 뱉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간다. 솔직히 강우진은 연예계에 대해 쥐뿔도 몰랐다. 일일이 엔터를 검색한다고 해서 명확한 판단이 서진 않을 터였다.
‘고민만 늘겠지.’
따라서 경험이 필요했다.
뒤로 같은 날 늦은 오후 한 광고 촬영장.
화장품 광고인지 세트장 중간에 책상이 놓였고 그 위로 여러 화장품이 즐비했다. 그 자리에 앉은 것은 흰색 원피스의 홍혜연이었다. 그녀가 화장품 하나를 볼에 붙인 뒤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피부에 자연을 선사하세요.”
동시에 모니터를 보던 뚱뚱한 남자가 확성기에 대고 외쳤고.
“OK! 표정 나이스!! 혜연씨! 화장품만 바꾸고 다시 갈게요!”
홍혜연이 앉은 책상으로 광고팀 스탭들이 달려들었다. 재빨리 교체되는 화장품들. 와중 홍혜연의 메이크업을 스타일리스트들이 신속히 고친다.
이쯤.
-스윽.
촬영장으로 익숙한 꽁지머리 남자가 들어섰다. 최성건 대표였다. 그를 보자마자 홍혜연이 얼굴은 스타일리스트들에게 맡긴 채 입만 열었다.
“왔어?”
최성건 대표는 그녀에게 대뜸 엄지를 추켜세웠다.
“죽이네 홍스타. 오늘 미모 물올랐어?”
“뭔데. 왜 갑자기 비행기 태워? 뭐 일 물어왔지? 말해 빨리. 뭐냐구.”
“하하 진짜 없다니까? 아아-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아주 작은 일이 하나 있긴 하네. 우리 혜연이 ‘흥신소’도 끝났겠다 치킨 모델을 해보면.”
“안 해.”
“야이 씨. 조건은 좀 듣고.”
“치킨 모델하면 그 치킨만 먹어야 되잖아. 세상에 치킨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싫어.”
바로 긴 한숨을 뱉는 최성건 대표.
“너 이게 얼마짜린데 입맛으로 거절하냐?”
그때.
-♬♪
전쟁을 펼치려던 최성건 대표의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었다. 전화였고 저장 안 된 번호였다. 이에 최성건 대표는 홍혜연에게 기다리란 손짓을 던진 뒤 전화를 받았다.
“예 최성건입니다.”
핸드폰 너머론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강우진입니다.”
멈칫. 살짝 눈 커진 최성건 대표가 바로 홍혜연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고.
‘야 강우진이다.’
홍혜연이 벌떡 일어났다.
‘뭐해! 빨리 말해!’
덕분에 최성건 대표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어어 우진씨. 전화 기다렸어요.”
“죄송합니다. 촬영 때문에.”
“알지알지.”
“계약 관련해서 만나 뵙고 싶어서요.”
곧 주먹을 불끈 쥐는 최성건 대표.
“그럼요 봐야지! 당장은 시간이 좀 늦었고. 내일 제가 우진씨 집 근방으로 갈게요.”
하지만 핸드폰 너머 강우진의 목소리는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요. 제가 bw엔터로 가겠습니다.”
16일.
주말이 지고 평일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어디나 분주히 움직이는 시간. 물론 삼성역 근방에 있는 bw엔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무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열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은 전부 각자의 일을 하기 바빴다.
bw엔터 내부는 대체로 깔끔한 분위기.
그렇기에 딱히 특이한 점은 없다.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미팅룸 대표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사무실 벽면 등 여기저기에 홍혜연의 화보 포스터가 걸려 있다는 것.
그런 bw엔터의 직원들이 작게 수군댔다.
“방금 대표실 들어간 남자 누구예요? 아시는 분?”
“어디 업체 사람 아닌가?”
“그런 것 치곤 잘생겼던데요. 분위기도 무겁고. 약간 딱 배우상이던데.”
“어? 배우? 뭐지 대표님한테 들은 거 없는데. 신인인가?”
“헐- 드디어 저희 2호 배우 들어오는 건가??”
“근데 이 시기에 돈 들어갈 무명을 계약하는 건 오바 아닌가요?”
이들이 쑥덕이는 주인공은 대표실의 4인 책상에 앉아 있었다. 무표정의 강우진이었다. 복장은 캐주얼했다. 청바지에 맨투맨. 그런 그는.
‘저 대형 포스터 갖고 싶네.’
정면 벽면에 붙은 커다란 홍혜연 포스터를 빤-히 보고 있었다. 이때.
“하하하 우진씨. 드세요.”
꽁지머리 최성건 대표가 커피잔을 우진의 앞에 놨고 포스터를 보던 강우진이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감사합니다.”
웃음을 유지한 최성건 대표가 우진의 반대편에 앉으며 검지를 휘휘 돌렸다.
“좁죠? 그래도 스타트업치곤 큰 편입니다. 뭐 전부 홍혜연 빨이긴 합니다만. 하하하.”
과연 탑배우. 그녀 한 명으로도 회사 하나가 유지되는 건가? 강우진은 수백억 건물을 사는 연예인들 기사를 떠올리다 물었다.
“근데 왜 홍혜연 씨만.”
“있냐구요? 뭐- 홍스타한테 치중한 것도 있고 이래저래 회사 자리 잡는다고 바빴어요. 방송국 제작사 등등 돌면서 명함도 뿌렸고.”
답한 최성건 대표가 미소지으며 대뜸 일어났다. 이어 자신의 자리에서 투명 파일을 챙겨왔고 다시금 우진의 반대편에 앉은 그가 정장 재킷을 여미며 진중해졌다.
“우진씨 엔터들 좀 만나보셨습니까?”
당신이 처음입니다만. 하지만 이대로 말할 순 없지. 강우진은 적당히 대답에 허세를 섞었다.
“적당히 만난 것 같습니다.”
“정신없죠?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셔야 됩니다. 중요한 시기 시니까.”
꽁지머리 최성건 대표가 챙겨온 투명 파일을 강우진 쪽으로 조금 밀었고.
“이게 저희가 우진씨에게 제안할 계약섭니다. 그런데 본론 전에.”
양손을 모은 최성건 대표가 강우진의 냉정한 눈에 시선을 맞췄다.
“이건 먼저 짚고 가는 게 좋겠다 싶어요. 계약금. 그래야 계약 얘기가 좀 부드러워질 것 같네요. 다른 엔터들이 ‘파격적 조건’을 얘기했었다고 하셨죠? 저도 나름 준비했습니다.”
급작스레 닥친 현실적인 얘기에 강우진은 속으로 약간 움찔했으나.
‘어우 이 양반 직구 오지네. 후- 침착해라 강우진. 이미 한 번 경험해봤잖아.’
이내 평온한 척을 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혹시 생각해두신 게 있으십니까?”
있었다. 강우진은 어림잡아 계약금의 크기를 정하고 왔다. 출처는 신동춘 감독.
‘내 생각에 계약금으로 2000만 정돈 불러도 되지 싶은데?’
즉 2000만 원이었다. 아 근데 이거 진짜 맞냐? 새삼 여기까지 오니 2000만 원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우진이었다. 아니 실제로 큰 금액이기도 했고.
‘2000만 원 불렀다가 문전 박대당하는 거 아닌가?’
또는 저 꽁지머리 대표가 빡쳐서 마시던 커피를 우진의 얼굴에 촤악 뿌릴지도 몰랐다.
그런 거 있잖아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거.
반면 최성건 대표는 아침드라마 따윈 생각지도 않는 중이었다. 그저 머릿속으로 연신 계산기를 두드릴 뿐.
‘괜찮아 얘는 달라. 이미 두 작품에 들어갔고 한쪽은 무려 ‘프로파일러 한량’이야. 그 뒤론 얜 무조건 떡상한다. 계약금 회수하는 건 일도 아니지. 일단 쟤를 잡는 게 핵심.’
연예계서 구를 대로 구른 최성건 대표였다.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할 리가 없다.
와중 강우진이 나름 마음을 먹었다.
‘담담히. 그냥 짧고 명료하게 이천 만 원이요. 만 하면 돼. 지르자 질러버려. 까짓거 커피 좀 맞으면 어때. 세수했다 치지 뭐.’
곧 머릿속에 책정된 이천 만 원을 우진이 읊조리려는 순간.
“우진씨.”
표정이 진지한 최성건 대표가 강우진의 이천 만 원을 막았다. 먼저 물꼬를 튼 것.
“삼 천만 어떠십니까.”
예? 왜요? 생각지도 못한 금액에 강우진이 당황했다. 장착한 컨셉질 덕에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그의 동공이 짧게 흔들렸다. 하지만 놀란 탓에 벌려진 입을 강우진은 막지 못했다.
“사···”
‘삼천 만 원이요??!’가 완성형이었지만 강우진은 ㅁ자가 붙기 전에 가까스로 입을 멈췄다. 태연하고 의연할 상황에 멍청하게 되물을 뻔했다. 너무 벙쪘으므로. 이에 강우진은 스스로를 일단 칭찬했고.
‘잘했다 티 날 뻔했어. 그나저나 삼 천만?! 갑자기 뭔 일이냐 이게.’
할 말을 고르기 시작한 강우진. 여기서 왜인지 우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꽁지머리 최성건 대표가.
‘···사?’
뜬금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케이. 사천 만. 가능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