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9) >
LA에 있는 bw 엔터의 해외 지사. 강우진은 아직 정리가 덜 된 사무실을 무심히 둘러봤다. 근엄한 표정엔 크게 변화가 없다.
허나 내면으로는 달랐다.
‘헐- 미친! 여기가 우리 소속사 해외 지사라고??!’
놀랐다. 물론 얘기가 들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빨리 준비됐을 줄이야. 심지어 나름 구색을 갖춘 사무실 하며 벽면에 붙은 자신의 대형 포스터까지.
‘아니 민망하게 저건 왜 붙여 놨어??’
헐리웃 쪽엔 개뿔 인지도도 없거니와 LA에서 저 포스터를 보니 몇 배는 더 쪽팔렸다. 짙은 컨셉질로 인해 전혀 티 나진 않았지만 말이다. 거기다 내가 메인이라니?
이쯤 우진의 옆에 선 꽁지머리 최성건이 비죽 웃으며 물었다.
“어떠냐?”
어떻긴 뭘 어때요? 겁나 신기하죠. 실제로 우진은 묘한 떨림이 번지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판이 커졌을까 싶었으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LA이고 나발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강우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앞에 자신이 메인이 된 해외 지사를 목도하고 있다. 미약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최성건이 벽면에 붙은 강우진 포스터를 찍으며 다시 말했다.
“네가 뭐 부담을 느끼지도 않겠다만 혹시나 말해두자면 저 포스터는 약간 우리한텐 부적 같은 거다. 너를 시작으로 헐리웃 시장을 넓히겠다! 그런 느낌. 괜찮지?”
포커페이스의 우진이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요.”
“크크 그래. 조금 좁아 보인다면 여기 옆에 사무실도 같이 쓰는 거라 정상적으로 가동 시작하면 쓸만할 거야. 일단은 여기서 시작하고 너가 더 강대해지면 더더더 큰 곳으로 이사 가자고.”
흥분이 점철되는 최성건이 우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부담이 터지는데요??! 속으로 읊조린 우진이 별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속내와 달리 쎈척과 허세를 첨가했다. 감동받은 듯 최성건의 미소가 짙어졌다.
“알지 임마. 흐흐 헐리웃을 네가 평정하는 거 내가 꿈에서도 본다니까? 다 덤비라 이거야!”
전투력이 상당히 업된 최성건이었다. 다분히 그럴 만했다. 원래도 그는 헐리웃까지의 진출을 꿈꾸며 bw 엔터를 시작했었으니까. 다만 초기의 목표는 홍혜연이었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헐리웃까지 내달릴 작정이었다.
그것이 강우진의 등장으로 180도 판이 뒤집혔다.
추가로 여기까지 2년밖에 안 걸렸다. 이미 bw 엔터는 국내 연예계나 엔터들 사이에서도 미친 속도로 유명했다. 히데키 회장이라는 든든한 뒷배에 보통이라면 불가능한 것들을 척척 해내고 있다. 그 모든 것의 근간엔 강우진이 있었다.
“이번 마일리 카라 건하고 ‘거머리’ ‘이로운 악’까지. 금방이다 금방. 그 날만 상상하면 내가 오줌이 마렵다니까? 벌써 짜릿해서.”
우진이 되물었다.
“여긴 언제쯤 가동됩니까?”
“아? 9월 안까진 정리해야지. 일단 본사 쪽에서 해외 지사로 돌릴 인원들 추리고 직원들 새로 뽑기도 해야 돼.”
“그렇습니까?”
뒤로 부산스런 사무실을 구경하던 강우진 최성건은 다시금 갓길에 정차 중인 승합차에 올랐다. 이제 이들의 목적지는 마일리 카라 쪽이 준비해준 호텔이었다.
-부웅!
늦은 밤 LA 도심을 달리는 승합차 두 대. 그 앞차에 있는 우진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봤다. 한국과는 판이한 LA의 야경에 빠진 것도 있지만 이 거대한 나라에서 활동할 미래가 어렴풋 상상이 돼서 멍때리는 부분도 있었다.
‘LA라- 맞냐 이거?’
헐리웃. 이 미치도록 광활한 곳에서 내가 연기를 한다? 아니 연기하는 것은 차치하고 본인이 먹힐까 싶은 옅은 걱정도 솟았다. 최성건 등의 다른 사람들이 멋대로 한 착각 오해긴 했지만 어차피 배우를 했으니 정상급엔 올라봐야 하긴 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헐리웃이겠지.
‘하- 그래도 시바 솔직히 현실감이 없긴 해. 뭐냐고 여긴. 나는 여기에 왜 있고.’
알맹이 강우진에겐 짧은 기간 너무 큰 변화가 찾아왔고 그가 보는 세상은 거의 2회차 인생으로 느낄 만큼 뒤집혔다. 그가 지금 느끼는 낯선 감정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이가 없네.’
이 모든 일의 시초가 고작 착각이라는 것이 새삼 어처구니가 없던 강우진이었다. 허나 황당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끼익!
어느새 호텔에 도착한 거대한 승합차 두 대가 멈췄다. 금세 어이없을 정도로 어마무시한 호텔이 강우진의 두 눈에 담겼다.
‘미 미친!!’
LA의 5성급 호텔 중 하나인 베벌리힐즈 호텔. 입구에 무성히 자란 야자수 나무 숲과 한 몸인 듯 옆으로나 위로나 쭉 뻗은 건물 입구부터 강우진 팀을 반기는 호텔 직원들 입구부터 드넓은 로비로 이어지는 레드카펫.
뭐랄까 우거진 숲에 자리 잡은 궁전 같은 호텔이었다.
그 웅장한 자태에 강우진은 다시금 속으로 읊조렸고.
‘···와- 씨 진짜 어이가 없네.’
우진의 옆으로 붙은 최성건이 엄지를 세웠다.
“마일리 카라가 우리 팀 싹 다 스위트로 잡아줬단다. 너는 단독 룸이고. 죽이지?”
예 지리는데요? 속으로 입을 쩍 벌린 강우진이었으나 겉으로는 심히 냉정했다.
“나쁘지 않네요.”
“1박에 500이 넘는다는데 역시 마일리 카라구나 싶더만.”
1박에 500. 강우진의 팀이 열댓 명이 넘으니 최소 세 룸을 잡았을 것이며 이번 일정이 일주일 정도니 다 합치면 억 소리가 나는 돈이었다. 최성건이 챙겨온 가방을 들며 읊조렸고.
“뭐 근데 걔한테는 껌값이겠지. 고맙습니다 하면서 우린 즐기면 되고. 그게 예의야 예의. 가자 우진아.”
무심한 얼굴인 강우진은 속으로 옅은 다짐을 뱉었다.
‘뒤졌다 나도 억 단위 돈 껌값으로 쓸 정도로 올라간다.’
다음 날 아침. LA 도심의 한 대형 카페.
시간은 8시 정도. 베이글이나 샌드위치 각종 커피를 파는 카페엔 출근 중 들른 외국인들이 넘치고 있었다. 대충 아침을 때우려는 인파와 출근 전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원형 테이블이 깔린 홀에도 외국인은 많았다.
단 한자리도 비어있는 곳이 없을 지경. 오죽하면 테이블에 공백이 보이면 합석을 시도하는 그림이 자주 보였다. 결과적으론 생판 남이 한자리에 섞여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뭐 LA에선 퍽 익숙한 광경이기도 했다.
그런 홀의 구석진 테이블에 익숙한 인물이 보였다.
“···”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내려보는 흑인 남자. 딱 봐도 덩치가 거인이라 눈에 안 띌 수가 없는 검은 긴팔을 팔뚝까지 올린 헐리웃 유명 프로듀서 조셉 펠튼이었다. 조셉의 테이블엔 그가 모르는 외국인 두 명이 한창 대화 중이었고 이쯤 갈색 단발을 묶은 여자 외국인이 다가왔다. 캐디(캐스팅 디렉터) 메건 스톤이었다.
그녀의 인기척에 핸드폰 보던 조셉이 고개를 올렸다. 그리곤 웃었다.
“늦었네요.”
장신 조셉의 옆자리에 앉은 메건이 받아온 커피를 테이블에 내리며 답했다.
“도착은 정시에 했어요 저기 줄 선 거 안 보여요? 오히려 일찍 온 건데.”
읊조린 그녀가 갈색 단발을 다시 묶으며 투덜댔다.
“하필 왜 이런 정신 없는 곳에서 보자고 한 거죠?”
“내가 단골이라.”
작게 한숨을 내쉰 메건이 백과 함께 챙겨온 보조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이미지만으로 배우들을 좀 추려봤어요.”
“음.”
고개 끄덕인 조셉이 태블릿을 건네받으면서도 답했다.
“강우진이 LA에 온다는 건 들었나요? 아- 아마 지금쯤이면 도착한 상태겠군.”
“나도 마일리의 인스타 확인했어요. 원래부터 예정됐던 일정이라 별로 놀랍진 않네요.”
천천히 고개 끄덕이는 조셉. 그의 얼굴엔 오묘한 미소가 깃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메건이 긴 다리를 꼬며 되물었다.
“강우진을 만날 생각이군요.”
“그가 만나준다면.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최근 그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다시금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린 조셉 펠튼.
“두 달 정도면 칸입니다. 그 전에 강우진에게 우리 작품에 관해 흘려두는 건 필요해요. ‘라스트 킬3’ 때의 그가 기억나죠?”
“···현장에서 배역을 거절했었죠.”
“심지어 감독의 얼굴을 보면서 칼같이 잘랐어요. 우리의 미래가 안 그럴 보장이 없으니까.”
“미리 힌트를 주자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태블릿을 내리고 커피잔을 올린 조셉이 말을 이었다.
“2년. 딱 2년 안에 헐리웃을 넘보는 위치까지 올라온 한국의 배우. 그의 머릿속에는 분명 확고한 설계가 잡혀 있을 겁니다. 칸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마일리 카라와의 앨범 작업. 이게 우연일 리가 없지.”
“···혹시 들었어요? 강우진이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거.”
커피를 마시던 조셉이 멈칫했다.
“특수부대? 그게 무슨 소리지?”
한편 약 30분 뒤 LA 베벌리힐즈 호텔.
스위트룸의 커다란 호텔에서 눈을 뜬 강우진. 잠시간 천장을 올려보며 멍때리던 그가 부스스 일어났다. 머리가 산발인 그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커다란 창문을 통해 LA의 광활한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크- 지리네 진짜.”
과연 스위트룸의 뷰였다. 이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어젯밤에도 야경으로 수십 장을 찍은 우진이었으나 아침의 풍경은 또 어제와 다른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눈 뜨자마자 여러 장 사진을 찍은 우진이 기지개를 쭉 켜며 방을 나왔다.
어마어마한 거실이 펼쳐졌다.
스위트룸의 크기는 강우진의 집과 비교하면 대략 세 배는 가뿐히 넘었다. 거실엔 고급진 소파와 각종 가구가 깔렸고 주방도 넓었다. 정면으로는 탁트인 창문 밖으로는 탁자와 의자가 깔린 테라스 밑으로는 야자수가 세워진 넓은 수영장이 보였다.
이 터무니없는 스위트룸을 강우진 혼자 쓰고 있었다.
“이게 찐 부자들의 삶인가.”
컨셉질을 벗은 탓에 비죽 웃던 우진이 옵션으로 딸린 모닝커피를 내린 뒤 소파에 앉았다. 소파 정면으로는 드넓은 LA가 끝없이 펼쳐진 상태.
-후릅.
강우진은 잠시나마 이 황당한 상황에 여유를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길지 않았다.
-똑똑 똑똑.
리듬 실린 노크 소리가 퍼졌으니까. 단숨에 포커페이스를 장착한 우진이 문을 열자 단단히 장발을 묶은 최성건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일어났냐?”
“예 대표님.”
룸에 들어선 최성건이 소파에 앉았고 강우진이 커피를 제공했다. 커피 한 모금을 넘긴 최성건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몇 분 전에 캐디 메건 스톤 쪽에서 전화가 왔었다. 기억나지?”
분명 아는 이름이었다. 모를 수가 없긴 했다. 헐리웃 유명 캐디 메건 스톤. ‘라스트 킬3’때도 봤고 ‘낯기생’ 촬영에 강우진을 찾아오기도 했었으니까.
“예 기억납니다.”
“너 LA 온 김에 얼굴 볼 시간 좀 있냐는데 그냥 가벼운 것 같진 않아. 뭔가- 느낌상 그래. 어쩔래?”
“별 상관없습니다. 스케줄에만 맞다면요.”
“그래 얘기해둘게.”
주제를 바꾸는 최성건.
“일단 오늘 스케줄은 뭐 별거 없거든? 오후쯤에 마일리 카라가 호텔로 오기로 했다.”
즉 그 전까지는 자유라는 거였다. 당연히 이 순간에도 강우진의 스케줄은 여러모로 진행 중이었지만 그건 최성건이나 팀의 일이고 우진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에 최성건이 핸드폰을 내리며 물었다.
“짧긴 해도 시간도 뜨고 간만에 LA에 왔는데 뭐 혹시 하고싶은 거 있냐? 아니면 오후까지 그냥 쉬어도 돼. 앞에 수영장 봤지? 퀄리티 미쳤더만.”
무심한 얼굴의 강우진은 잠시간 뭔가 생각하다가 짧게 답했다.
“총 쏘러 가보시겠습니까?”
몇 시간 뒤 늦은 점심쯤.
장소는 호텔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사격체험장이었다. 건물 자체는 옆으로 넓은 느낌이었고 간판과 창문엔 각종 총기의 그림이 박혔다. 그런 사격체험장 앞의 넓은 주차장에 커다란 승합차가 멈췄다.
그 승합차에서 강우진과 최성건 외의 몇몇이 내렸다.
우진은 편한 후드 차림에 모자를 눌러 썼지만 얼굴을 가리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애초 이 LA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희박했으니. 뭐 한인타운 쪽에 나가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곧 덤덤한 얼굴의 우진이 사격체험장을 바라봤다.
“···”
겉으로야 별 감정이 없는 듯 보였으나 속으로는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었다.
‘크크 존잼일 듯.’
그가 사격을 원한 건 간단했다. 아공간에서의 리딩(경험)으로 수도 없이 총을 갈겨봤지만 현실의 강우진은 군대 이후로 총을 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 호기심에 가까웠다.
뒤로 강우진과 최성건 등의 인원은 예약된 대로 움직였다. 사격체험장에 들어섰고 뚱뚱한 주인에게 설명을 10분간 들었다. 사격체험장 내부의 벽면엔 수많은 총기들이나 소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어 절차를 마친 주인이 영어로 물었다.
“총은 뭐로 할겁니까?”
꽁지머리 최성건이 강우진을 바라봤다. 선택을 맡긴다는 뜻. 우진의 유창한 영어는 빨랐다. 오기 전부터 결정한 게 있었으니까.
“글록 17로.”
“오- 탁월한 선택.”
‘이로운 악’의 주인공 ‘장연우’가 처음으로 사용하는 총기가 글록 17이었다. 곧 강우진에게 권총 글록 17과 총알 박스가 지급됐고 강우진과 팀은 체험장의 안쪽 체험장으로 안내됐다. 대략 10칸 정도의 공간이 보였다. 그 앞으로는 볼링장과 비슷한 형태였다. 칸의 라인의 끝엔 사람 형태의 종이가 걸려 있었다.
딱 사격장의 모습.
강우진의 칸은 3번째였다. 그런 우진에게 사격용 귀마개까지 지급됐다. 뒤로 직원이 추가로 간단한 설명을 이었고 사람 형태의 조준판을 조작했다. 조준판이 끝으로 이동했다.
이쯤 우진은.
“···”
말없이 권총 글록 17을 만졌다. 분명 태어나 처음 구경해보는 글록 17이지만 낯설진 않았다. 100% 아공간의 힘이겠지. 당장이라도 권총을 들고 날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인인 우진은 그 심정을 꾹 눌렀다.
뒤쪽에 선 최성건에게 bw 엔터 통역 직원이 물었다.
“근데 갑자기 사격을 왜-”
“글쎄. 우진이가 하고 싶다네. 뭐 ‘이로운 악’ 관련해서 경험해보려는 거겠지. 쟤나 우리나 해봤자 군대서 휴가받는다고 쏴본 게 다니까.”
“아···”
“온 김에 우리도 쏴보자고. 언제 총을 쏴보겠어.”
와중 목에 귀마개를 낀 강우진은 준비가 끝났다. 직원도 빠졌다. 우진이 양손으로 파지한 글록 17을 올리려던 때였다.
“중국인인가?”
그의 옆에서 영어가 들려왔다. 보니 대략 3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흑인이 섞인 외국인 남자 3명이 강우진을 보며 히죽대고 있었다. 먼저 와서 사격을 즐기고 있던 손님들이었고 자태를 보니 단골 같았다.
“아니 일본인 같은데?”
“잘생겼잖아. 중국인은 아니야.”
“LA 놀러 와서 총을 쏴보려는 거군. 표정을 보아하니 처음이야 많이 긴장했어.”
“잘됐네. 좀 쉬면서 구경이나 하자고.”
“하는 김에 게임 하는 건 어때? 저 일본인이 몇 발이나 맞추는지. 맥주 사기 어때?”
“좋아.”
웃음 섞인 수군거림을 보아하니 강우진이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으로 아는 듯했다. 그런 그들에게 낮고 단단한 영어가 침투했다.
“한국인입니다.”
3명의 외국인 남자들이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얼굴인 우진이 유창한 영어로 다시 말했다.
“게임은 나와 하죠. 당신들과 나 어느 쪽이 점수가 높은지.”
“···아. 한국인.”
“내가 지면 당신들에게 500달러를 주죠 반대로 내가 이기면 받겠습니다.”
외국인들이 서로 수군대다가 돌연 비죽 웃었다. 호구 하나 걸렸다는 느낌. 그중 선글라스 쓴 남자가 말했다.
“좋아요 500달러. 거기에 여기 앞에 바에서 맥주까지 사는 거로.”
강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합니다.”
마음의 준비 따윈 없었다.
-탕!
귀마개를 쓴 우진이 바로 글록 17을 갈겼다.
-탕탕탕!
실실대던 외국인들의 표정에서.
“컴퓨터 게임에서 하던 것처럼 멋대로 쏴대는군.”
“이 이봐. 저거-”
“왜? 뭐?”
“!!!”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반면 단단한 표정의 우진은 감정 없이 조준판을 갈겼다. 다섯 발 뒤로는 글록 17을 약간 비스듬히 꺾어 쏘기도 했다.
-탕탕탕탕!
귀가 찢길 듯한 총성이 총 열 발 울렸다. 이내 강우진이 글록 17을 내렸다. 멀었던 조준판이 자동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동시에 3명의 외국인 얼굴에 웃음도 아예 지워졌다.
“···?”
“???”
이유야 간단했다.
“세 세상에.”
사람 형태 조준판의 머리와 가슴에 찍혀 있던 꽤 넓은 빨간 점이 사라졌으니까. 강우진이 쏜 총알이 빨간 점을 지워버린 것이었다. 다섯 발씩 머리와 가슴에 쏜 총알은 단 한발도 실수가 없었다. 모조리 빨간 점에 박혔다. 이에 사격체험장의 직원도 파란 눈을 디립다 크게 떴다.
이어 강우진이 고개를 돌려 3명 외국인에게 낮게 말했고.
“당신들 차롑니다.”
뒤쪽 사격장의 입구에서 낯선 남자의 영어가 들렸다.
“Oh my gosh···”
입을 작게 벌린 거인 프로듀서 조셉 펠튼이었다.< 가을 (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