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11) >
“잠깐 상상했는데도 벌써 초조해.”
거인 조셉이 가게 밖에서 최성건과 얘기 중인 강우진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의 연기 그의 무술. 모두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었고 ‘CQC’ 역시 마찬가지야.”
이미 강우진의 연기와 무술을 단편적이긴 하지만 눈에 담은 조셉 펠튼이었다. 헐리웃 유명 프로듀서로서도 가히 파격적인 광경들이었다. 그 덕분에 조셉이 우진에게 매료된 것이겠지. 조셉 역시 휘뚜루마뚜루 헐리웃에서 힘 있는 프로듀서가 된 게 아니었다. 사람은 보는 눈 스타를 발굴하는 능력 작품에 파급력을 상정하는 기술.
즉 우진을 향한 조셉의 검증은 사실상 끝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검증이 아닌 즐기는 것에 가까웠다. 강우진은 어떤 퍼포먼스를 가진 배우인가? 아직 헐리웃 전체로 그를 아는 인물은 극소수. 아니 대중들까지 따지면 무명에 가까운 배우지만 조셉은 강우진의 심상치 않음을 진작에 느꼈다.
‘특수부대를 나온 건 예상 밖. 하지만 그의 무술 그리고 오늘 본 사격 실력까지. 강우진의 CQC를 직접 봐두는 건 우리 작품으로서도 필요해.’
무술이 됐든 ‘CQC’가 됐든 연기가 됐든 배우가 하는 행위 모든 것은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확실했다. 편집이 가미되면 배우가 뿜는 에너지가 반감되는 것 어쩔 수 없으니까.
명확한 실력은 현장에서 발휘된다.
더군다나 지금 조셉과 메건이 준비 단계에 돌입한 영화가 어떤 식으로 뽑힐지 미정이었다. 물론 영화사 측이 제공한 콘티와 아이디어는 있었다. 허나 그것은 여러 각본가나 작가에게 넘어가 여러 시나리오로 재탄생된다. 그중 조셉이나 영화사가 어떤 시나리오를 채택할지도 현재로선 알지 못했다.
스릴러일지 액션일지 로코일지.
그러니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조셉은 모든 가능성을 열고 눈에 띄거나 흥미가 돋는 전체를 보고 듣고 확인해둬야 했다. 영화의 폭발력을 키워 주는 것은 의외의 부분에서 탄생하기도 하니까.
의외의 것이 강우진일 수도 있다.
저 강우진에게 에단 스미스가 붙었다.
저 연기 괴물인 무술과 더불어 사격술이 미치도록 출중한 한국의 배우가 펼치는 ‘CQC’는 어떤 형태일 것인가? 이 헐리웃에서도 숱한 베테랑 배우들이 허덕이는 기술이다. 그들과 다를까? 아니면 같을까?
점차 흑인 조셉의 입가에 미소가 띠었다.
“알면 할수록 외계인 같은데 그것이 사람에게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것이 재밌어.”
조셉의 읊조림에 옆에 앉은 방금 갈색 단발을 쓸어 넘긴 메건 스톤이 동조했다. 물론 그녀의 시선 역시 가게 밖 강우진에게 붙어 있는 상태였다.
“방콕에 방문할 생각이군요 조셉.”
“···물론 제작진 측에 양해는 구할 겁니다. 에단에게도. 힘들다면 돈을 써서라도.”
“참 신비한 배우네요 강우진은. 그를 위해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 방콕까지 움직이게 하다니.”
“그리 특이한 상황은 아니죠. 나는 한 배우를 위해 최소 4개국도 나가봤어요.”
“저도 비슷하네요.”
마찬가지로 작게 웃던 메건이 말했다.
“그 방콕행 자리에 나도 껴줘요.”
“물론이지. 작품의 캐디가 빠지면 안 되죠.”
간단히 답한 조셉이 팔짱을 꼈다. 두터운 그의 팔뚝이 도드라졌다.
“추가로 괜찮다면 영화사 관계자들과 우리 쪽 스턴트 코디네이터까지 동행하는 그림이 좋겠어요.”
이때.
-스윽.
밖에서 대화하던 최성건과 강우진이 복귀했다. 자리에 앉은 우진이 덤덤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메건과 조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쯤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왔고 동시에 거인 조셉이 물꼬를 텄고.
“강우진씨 최근 저는 ‘유니버설 무비스’가 메인이 되는 영화 제작에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우진의 옆에 앉은 꽁지머리 최성건의 눈이 약간 확장됐다. 당연히 속으로는 화들짝 놀랐고.
‘‘유니버설 무비스’??!!’
당연했다. ‘유니버설 무비스’는 헐리웃에서도 손꼽는 초대형 영화·배급사였으니까. 조셉 펠튼이 힘이 좋은 건 알았지만 뜬금 ‘유니버설 무비스’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이거- 분위기가 어째 달달하게 흘러가는데?? 설마 컨택?’
어제 강우진에게 bw 엔터의 해외 지사를 처음 보여줬는데 단 하루 만에 조셉이란 유명 프로듀서가 ‘유니버설 무비스’를 꺼냈다. 최성건으로서는 싱글벙글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곧 조셉이 설명을 이었다.
“아직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지금 작품에 강우진씨를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 사실 당신을 ‘라스트 킬3’에서 봤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최성건이 티 안 나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를 몰랐던 조셉의 미소가 짙어졌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으나 진지하게 생각해주시겠습니까?”
아까부터 포커페이스가 진한 우진의 얼굴엔 크게 변화가 없다.
“···”
그러나 내면으로는 퍽 호들갑을 떨고 있었고.
‘뭐여? 이거 러브콜 받는 순간인 거?’
겉으로는 다분히 냉기가 흘렀다.
“시나리오가 먼저겠죠.”
오후쯤 LA의 베벌리힐즈 호텔.
사격체험장과 조셉 메건과의 만남을 마친 강우진은 다시금 5성급 숙소인 베벌리힐즈 호텔로 돌아왔다. 여전히 웅장하며 수많은 외국인들이 왕래하는 호텔의 로비를 지나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라운지에서 강우진을 찾을 수 있었다.
갖가지 조형물과 소파들이 널린 곳 중 한 곳에 앉은 그였다.
물론 강우진의 주변엔 최성건이나 팀 인원들이 자리했고 핸드폰을 내려보는 우진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한편.
-끼익!
호텔 직원들이 분포된 입구에 커다란 승합차가 멈췄다. 이상한 것은 그 승합차 주변으로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든 외국인들이 몰린다는 것. 대충 세어봐도 20명은 넘었다. 딱 봐도 파파라치. 호텔 가드들이 그들을 저지하거나 통제할 정도.
이어 승합차에서 덩치 좋은 가드들이 내렸다. 그 뒤로.
-텅!
청남방에 긴 금발을 늘어트린 파란 눈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가드들에게 막힌 파파라치들이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이유야 간단했다.
“마일리! 마일리!! 호텔엔 왜 왔습니까?!”
“카라! 반가워요 카라!!”
“마일리 카라!!”
그녀는 헐리웃 포함 전 세계적으로도 슈퍼스타인 마일리 카라였으니까. 파파라치들 역시 그녀의 뒤꽁무니를 줄줄 쫓고 있는 것. 곧 카라의 등장에 수십 호텔 직원들 하며 손님들이 부산스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라는 매니저와 작게 얘기하다가 호텔로 바로 진입했다.
그녀의 등장에 호텔 내부에 있던 외국인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혼이 빠지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외국인 여자도 있었고 아이처럼 신명나게 카라 이름을 부르는 무리도 보였다. 카라를 확인한 대부분의 호텔 손님들은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 바빴다. 반면 카라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탓에 약간 차가운 얼굴로 호텔 라운지로 직진했다.
이윽고.
-스윽.
라운지에 들어선 카라를 보곤 누군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흑발의 강우진이었다. 오는 내내 냉담한 표정인 카라는 우진을 보곤 처음으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진씨 오랜만이네요.”
강우진은 당연하겠지만 컨셉질을 두텁게 만들었다.
“오랜만입니다.”
고급진 라운지는 금세 강우진과 카라를 중심으로 구경꾼이 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금발을 쓸어 넘긴 카라가 우진에게 다시 말했다.
“그 잔잔한 반응은 여전하네요.”
“당신도.”
“나? 나는 어떤 게?”
“글쎄요.”
카라가 작게 고개를 갸웃했고 강우진은 속으로 답했다.
‘예쁜 거요 예쁜 거. 자기도 알 거야 존예인거.’
하지만 죽어도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 이에 마일리 카라가 작게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바로 오지 못해서 미안해요. 스케줄이 꼬여서. 호텔은 괜찮나요?”
“네 덕분에.”
“나와 작업하는 동안엔 아무 걱정 없이 지내줘요. 혹시 불편한 게 있다면 바로 말해주고. 음- 본격적인 미팅과 앨범 작업은 내일 오후부터 시작될 거 같아요 오늘은 일단 인사차 왔고요.”
“그렇습니까?”
“네. 전 이대로 다음 일정으로 바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금발의 카라가 시간을 잠깐 확인하더니 다시금 파란 눈을 우진에게 맞췄다.
“그런데 우진씨 내일 오후 전까지 혹시 잡아 둔 스케줄이 있나요?”
스케줄? 강우진이 옆에 선 최성건을 봤다. 그가 고개를 젓는다. 없다는 뜻. 우진이 다시금 카라에게 낮게 답했다.
“없습니다.”
잘됐다는 듯 카라가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팬들에게 인사도 할 겸 내일 낮에 나와 패션쇼에 같이 참석하는 건 어때요? 헐리웃의 많은 셀럽들이 참여할 거고 당연히 취재진들도 몰릴 거예요. 우진씨의 이쪽 인지도에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요.”
설명을 들어보니 유명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였다. 어찌보면 강우진의 출사표 자리와도 같았다. 거기에 마일리 카라와 동반한다면 시선이 쏠리겠지. 이를 단박에 파악한 최성건이 티 안 나게 엄지를 들었고 무심한 얼굴인 강우진이 덤덤히 답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금발을 쓸어 넘긴 카라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럼 멋을 좀 부려야겠죠?”
뒤로 다음 날 낮.
수많은 인파와 셀럽들 그리고 취재진이 포화상태인 패션쇼장 앞에 길쭉한 세단이 멈췄다. 그 차에서 딱 붙는 명품 브랜드의 드레스를 입은 카라가 내렸다. 이어 흑발에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뒤따랐다.
-스윽.
강우진이었다.
그런 둘을 백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정신없이 찍어댔다. 이후 30분쯤 흘렀을 때.
『패션쇼에 마일리 카라와 등장한 한국의 배우는 누구?』
해외 외신 기사에 강우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후로.
LA에서 열린 유명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 소식은 곧장 한국에서도 퍼졌다.
『[스타포토]유명 명품브랜드 패션쇼에 ‘마일리 카라’와 나란히 나타난 ‘강우진’/ 사진』
『글로벌 슈퍼스타 마일리 카라와 강우진 수백 취재진 앞에서 여유롭게 자세 잡고/ 사진』
가뜩이나 우진과 카라의 앨범 작업 자체가 화력 센 이슈 그 일정의 첫 소식이 헐리웃 셀럽들이 즐비한 거대한 패션쇼였으니 당연했다.
『2000만 배우 ‘강우진’ 마일리 카라와 앨범 작업하기 전에 패션쇼 들러···헐리웃 배우 다됐네』
강우진과 카라의 투샷은 삽시간에 국내 언론에 번졌다.
물론 일본 쪽도 같았다.
일본의 언론도 우진의 LA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봤으며 이를 발 빠르게 보도했다. 다만 현재 일본에서는 강우진 관련 다른 말들도 많이 돌고 있었다.
특히 애니메이션 업계가 그랬다.
‘남사친: 리메이크’ 때문이었다.
일본 애니 업계에서는 다시금 화제에 오른 강우진을 물고 씹고 뜯고 즐기는 중이었다. 애니 제작사 방송국 엔터들 등등. 쉽게 말해 수많은 추측과 억측들이 넘실댔다.
“‘남사친: 리메이크’ 방영이 내일인가? 어떨 것 같아.”
“글쎄 하지만 역시 좀 힘들지 않겠나. 원래도 요즘 로코물이 힘을 못 쓰기도 하고.”
“더군다나 원작이 한국 작품이니까?”
“그것도 있지만 이번 ‘A10 스튜디오’는 작품에 너무 많은 도전을 쏟았어. 과하면 탈이 나지.”
“이번 3분기에 인기작이 많은 것도 있어.”
“그래 아무리 강우진이 강세라지만 원작의 화력을 이길 순 없겠지.”
반쯤은 ‘남사친: 리메이크’를 내려치는 느낌이고.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려나? 요즘 애니 시청률이 보통 5%면 선방한 거니까···3%쯤?”
“에이 그래도 강우진 이슈가 많으니까 첫 화는 3% 이상은 나올 거야. 어쨌든 내용이 중요할 거고.”
“최근 애니 중에 최고 시청률이 얼마였지?”
“9%에서 10% 왔다 갔다 해.”
반쯤은 나름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강우진이 LA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난 시점인 7월 12일이 밝았다.
한국의 커뮤니티는 아침부터 난리였다.
정확하게는 애니 관련 성격이 짙은 커뮤니티가 그랬고.
-아 오늘 강우진 애니 첫방날 아님??
-ㅇㅇ퀄 어찌 나올지 궁금
-ㅋㅋㅋㅋ강우진 성우한 거 개 못해서 욕먹을 거 같음ㅋㅋㅋㅋ
-일본은 오늘 첫방이고 한국은 내일쯤 풀릴듯
-나 일본 사는데 보고 후기 올려줌ㅋㅋㅋ
-지금 일본 쪽 애들 반응은 어떰??
-반반임ㅋㅋㅋ트윗보면 욕도 많고ㅋㅋㅋ
-강우진 성우한 건 그렇다 치고 제작사가 a10이라 퀄은 괜찮을 듯?
-근데 이번 3분기 기대작 많아서 시청률은 좀 빡셀거 같닼ㅋㅋㅋㅋㅋ
일본 쪽의 여러 SNS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게 종일 유지됐으며 12일 밤 9시 50분쯤 많은 일본 대중들이 TV에 모여들었다. 그중에선 우진과 연기 깊은 ‘남사친: 리메이크’의 성우를 맡았던 아사미 사야도 포함이었다. 물론 그녀의 옆엔 휠체어를 탄 딸 아사미 유사코도 함께였다.
TV 채널은 민영 방송국 TBE.
어느새 TV 속에선 애니메이션 OP(오프닝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강우진의 목소리가 보컬이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상기된 얼굴의 아사미 유사코가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 떨려.”
곧 오프닝과 함께 일본어로 된 애니메이션 타이틀이 떴다.
-‘남사친: 리메이크’/ 1화.< 가을 (1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