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13) >
LA 도심을 한창 달리고 있는 거대한 승합차 안. 가슴까지 오는 금발의 마일리 카라가 건너편 강우진을 빤히 보다가 영어로 되물었다.
“···1위 했다고요?”
강우진이 무던하게 답했다.
“네.”
그가 일본에서 작업했다던 애니메이션 ‘남사친: 리메이크’ 얘기였다. 우진이 남주 성우로 참여한 애니가 1위를 했단다. 그런데 왜인지 카라의 파란 눈에 약간의 당황이 서렸다.
‘뭐 뭐야 대체?’
축하를 해줘야 하는지 아닌지 헷갈렸으니까. 우진의 심히 정적인 또는 건조한 반응 덕분이었다.
‘1위 한 게 부족하다는 건가? 혹시 그 위로 순위가 더 있다거나- 아니 말이 안 되지. 아니면 1위는 했어도 시청률이 별로라거나?’
보통 어떤 작품이든 1위를 하면 방방 뛰어야 하지 않나? 하다 못 해 웃기라도 해야지. 허나 강우진의 얼굴엔 무심함만이 가득했다. 속을 가늠하는 게 불가능했다.
‘진짜 난생처음 보는 캐릭터야 그게 볼 때마다 더 심해지고.’
마일리 카라는 작게 헛기침했다.
‘일단은 1위라니까 축하는 해주는 게 맞겠지?’
적당히 결론을 내린 그녀가 핸드폰 보는 우진에게 말했다. 카라 특유의 냉기가 서린 톤이었지만 축하엔 진심이 담겼다.
“1위라니 축하해요.”
고개를 올린 우진의 포커페이스에는 변화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생각보다 시청률은 별로예요?”
잠시간 카라의 파란 눈을 응시하던 우진이 속으로 먼저 답한 뒤.
‘별로? 갑자기 뭔 별로?? 개 만족 중인데?’
목소리를 저 밑으로 깔았다.
“아니요 만족합니다.”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요.”
“기분 탓이겠죠.”
“···나 말고 딴 사람에게 물어도 비슷할걸요? 너무 차분하잖아!”
“그렇습니까? 좋아하고 있습니다.”
카라는 다시금 강우진의 괴짜 같은 면모를 실감했다. 말론 좋아한다는데 그가 풍기는 냄새는 비정하게까지 보였으니까. 그러다가도 우진의 상태를 카라도 일정 부분 이해했다.
‘그래 저 정도의 시니컬함이 있기 때문에 감정 컨트롤이 되는 거겠지. 아니고선 그 수많은 능력들을 가지는 건 불가능했을 거야.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누르는 게 일상일 테고.’
얼추 사실이었다. 컨셉질에 가려진 강우진은 지금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물론 내면으로만.
‘어우- 씨! 1등??! 미쳤네 흐흐. 결과 보자마자 쎈척 깨질 뻔했다고!! 여튼 1등! 개꿀!!’
물론 아공간의 등급으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현실에서 결과를 보는 건 다른 느낌이었다. 시청률을 떠나 ‘남사친: 리메이크’가 1등을 먹은 건 우진에게 또 다른 의미로 풍악을 울릴 정도였다.
‘아오 씨 이제야 하나 터졌네.’
사실상 일본에서 우진이 찍은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된 거였으니까. 시작은 ‘낯기생’이 빨랐으나 뚜껑을 연 건 ‘남사친: 리메이크’가 먼저였다. 순서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뭐가 됐든 스타트를 끊었고 1등을 먹었다. 이 기세를 몰아 ‘낯기생’까지 쭉쭉 달리면 그만이었다.
좀 뭐랄까 쌓인 과제 중 하나가 정리되는 느낌.
‘크크 가보자고!’
내면으로야 춤을 추는 그였으나 외면으론 세상 근엄하기 짝이 없었다. 뒤로 몇십 분 뒤 강우진과 카라 외의 전체 팀은 한식집에 자리를 잡았다. LA에서도 퍽 유명한 가게였고 넓은 룸에 우진이 들어섰을 때쯤.
-우우웅.
-우우웅.
강우진의 핸드폰에 짧은 진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축하 연락들이었다. 일본에서 도착하는 DM이나 한국에서 날아드는 톡 등등.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일본 한국의 반응을 확인하고픈 우진이었으나 참았다. 지금은 진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우진의 옆에 앉은 최성건이나 그의 팀들은 이미 흥분상태.
그중 꽁지머리 최성건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남사친: 리메이크’ 시청률 봤냐 우진아? 14.8%야 14.8%! 아니 ‘마술회전’을 이겼다니까??!”
최성건의 상태는 광분에 가까웠다.
“이게 지금 어?? 엄청난 거라고. 일본 쪽에서 애니 시청률이 10% 넘은 게 얼마 만인 줄 아냐??”
“글쎄요.”
“최소 5년이야 5년.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주문하는 것도 잊은 채 최성건은 ‘남사친: 리메이크’의 시청률에 관한 파급력을 설명했다. 어찌나 열정적인지 건너편에 앉은 카라나 그녀의 팀인 외국인들이 놀랄 정도였다. 뭐 최성건의 반응은 이상하지 않았다.
현재 ‘남사친: 리메이크’는 수년 만에 역대급 성적을 낸 게 맞으니까.
물론 일본의 과거로 보자면 더 대단한 성적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척박해진 시청률과 비교하면 안 됐다. 원작이 인기 만화인 경쟁작이 9%대 성적인데 ‘남사친: 리메이크’가 14%를 넘겼다.
대 파란이라 봐도 무방했다.
따라서 최성건과 우진의 팀 인원들은 흥분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A10 쪽 홍보가 있긴 했겠다만 역시 이 미친 시청률의 반 이상은 우진 오빠 덕분이죠??!”
“말해 뭐해?! 오빠 없었으면 10%는 고사하고 5%도 안 나왔겠지!”
“우와- 우진 오빠 지금 SNS 터졌어요! 일본 팬들 몰려들어!”
곧 스탭들과 핸드폰 화면을 공유하던 최성건이 우진에게 붙어 속삭였다.
“분명 이 시청률에서 너를 까려고 애니를 본 대중들도 꽤 많을 거다. 벼른 것들이나 얼마나 잘하나 보자 같은? 근데 뭐 어쩌라고? 어쨌든 그 덕에 14.8%가 터졌으니까 우린 즐기면 그만이야.”
굳이 따지자면 적들이 아군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여튼 애니 특성상 주에 1회 방영이니까 담주 방영까지 지금 터진 거 유지하면서 홍보 죽어라 해야겠지.”
폭발적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는 소리. 첫방에서 이탈하는 시청자도 있겠지만 이번 시청률 대 폭발로 이탈하는 시청자의 두 배 이상은 유입될 가능성이 컸다.
궁금할 테니까.
강우진은 최대한 자신의 심정을 숨기면서 덤덤하게 답했다.
“‘A10 스튜디오’가 잘해 주겠죠.”
이어 시선을 앞쪽으로 돌린 우진이 카라를 봤다. 핸드폰 보는 그녀 주변으로 스탭이 몰렸고 마일리 카라의 표정에 약간의 근심이 서렸다. 저쪽은 이미 강우진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우진의 시선을 눈치챈 카라가 금발을 쓸며 핸드폰을 보였다.
“우진씨에겐 좋은 날이겠지만 헐리웃에서는 사건이 하나 터졌네요.”
그녀의 핸드폰엔 방금 속보로 뜬 외신 기사가 출력되고 있었다.
『[속보]브래드 윌리스 자택에 침입한 칼 든 괴한에게 습격!』
싹 영어로 된 타이틀과 내용이지만 우진에겐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위험했네요.”
“응 나도 잘 아는 배우라- 연락해봐야겠네.”
이때 카라 옆에 선 반삭 머리 매니저가 읊조렸다.
“요즘 이런 사건이 꽤 늘지 않았어? 테러라든지. 저번 달에서 있었잖아?”
“아- 톰의 집에 찾아갔던 미친놈?”
“그래. SNS나 너튜브 톡틱이 문제야. 점점 정신병자들이 늘고 있어. 후- 늘상 있는 일이긴 해도 가드를 더 늘릴게.”
“응 고마워.”
둘의 대화를 무심히 지켜보던 우진이 속으로 순수하게 반응했다.
‘테러가 늘상? 헐리웃 개무섭네-’
후로.
LA의 냉혹함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강우진과 달리 이제 아침이 시작된 일본과 한국은 ‘남사친: 리메이크’ 이슈의 서막이 열렸다.
당연하겠지만 일본 쪽이 몇 배는 강력했다.
그것을 호텔로 복귀한 강우진이 확인했다. 대충 훑어봐도 일본 쪽 언론은 온통 애니 얘기뿐이었다.
『한국 작품 원작「‘남사친: 리메이크’」 시청률 14.8%로 1위』
『올해 3분기 시청률 1등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남사친: 리메이크’」가 차지했다! 』
호텔의 룸으로 돌아온 우진은 이때야 컨셉질을 지우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입이 귀에 걸렸다.
“흐흐 난리 났네 난리 났어.”
그랬다. 일본 언론은 쉴새 없이 ‘남사친: 리메이크’ 기사를 파생시켰다.
다분히 그럴 만했다. 수년 만에 10% 시청률을 넘은 애니메이션이 나왔으니까. 심지어 인기 만화나 라이트 노벨이 원작이 아닌 한국의 배우가 주연인 ‘남사친’이 주된 재료였으니 발칵 뒤집힐 수밖에.
추가로 14% 이상의 시청률을 올렸다.
『강우진 효과?「‘남사친: 리메이크’」수년 만에 로코물로서 기록적 시청률 달성!』
일본 언론이 흥분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 반전의 결과에 여론 역시 광분했다. 어느 쪽이 됐든 눈에 띄게 널뛰어댔다. 일본 언론과 여론이 이 정돈데 ‘남사친: 리메이크’의 제작사 ‘A10 스튜디오’는 어떻겠는가?
“14.8%??!! 오류 난 게 아니고?!”
“오류일 리가 없잖아요! 공식 발푠데!”
“세 세상에!! 10%를 넘겼어???!! 혀 현실인가 이거?”
“와하하!! 14.8%라구요! 10%랑은 차이가 크죠!”
“이 일단 전부 소집해! 아니지! 당장 기사들부터 뿌려!!”
“그렇지! 이 흐름대로 가면 며칠간 난리일게 빤한데! 그보다 몇 배는 후킹을 당겨야 돼!!”
축제 그 이상이었다. 미쳐 날뛴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남사친: 리메이크’의 감독 포함 제작진들 ‘A10 스튜디오’의 간부와 직원들 전부가 얼싸안고 소리를 질러댔다. 14.8%라는 시청률은 일본 애니 시장 전체로도 ‘A10 스튜디오’로서도 수년 만에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앞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수치가 판단하고 있었다.
이는 ‘남사친: 리메이크’에 참여한 전체 성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록이다! 대 기록이야!!”
일본 애니 업계 전체에선 ‘남사친: 리메이크’ 얘기가 터지고 있었다.
“‘마술회전’이 9.1%고 ‘최강스파이’가 8.8%데 ‘남사친: 리메이크’가 14.8%??!”
“이 이렇게나 차이 날 줄이야.”
“차이 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청률이 14.8%가 나왔다는 게 말이 되나?!!”
“···거의 5년? 6년만인데. 앞으론 10% 이상급 애니가 나오기 힘들 거 같았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왜 그만한 시청률이 나온 거지? 대체 왜?”
“원작이 나름 히트를 쳤고- 아무래도 강우진의 존재가 크지 않나 싶어. 팬이든 반감을 가졌든 대중들을 TV 앞으로 이끈 건 역시 강우진이 맞아.”
기록경신.
최근 몇 년간 잠잠한 느낌의 애니 시장에 ‘남사친: 리메이크’가 긴장을 불어 넣었다. 점심 무렵부터 기사의 양이 두 배는 늘었고 SNS나 커뮤니티 또는 너튜브에 ‘남사친: 리메이크’ 관련이 깔리기 시작했다.
흐름 기세에 속력이 붙었다.
일본 언론은 오전 내내 충격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으나 이쯤부터는 강우진을 주목했다.
『한국에서 2000만 관객수 신화 이룩한 「강우진」 그 힘이 일본에까지 미치나?』
종일 와장창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같은 날 밤쯤엔 어느새 ‘남사친: 리메이크’가 일본의 각종 순위를 석권했다. 3분기 애니메이션 시청률은 물론이며 일본의 3대 포털사이트의 화제성 1위 SNS의 트랜드 1위 너튜브의 실시간 인기 영상 1위 등등등.
1위만 어림잡아 5개 이상을 해냈다.
물론 그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은.
『「‘남사친: 리메이크’」로 시청률 기록경신! 모든 작품 성공시킨 강우진 그 파급력 일본에서도 터트리는 중』
강우진의 이름이었다.
14일 아침 한국.
전날에 ‘남사친: 리메이크’가 일본을 발칵 뒤집고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에선 열기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몇 배는 증폭됐다. 그렇다 보니 그 뜨거운 온도가 한국에 넘어오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강우진 애니 일본에서 14% 찍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도랐ㅋㅋㅋㅋㅋㅋㅋ14% ㅁㅊㅋㅋㅋㅋㅋ
-ㄴㄴㄴ14.8%라 거의 15%로 봐도 무방함
-크!!!국뽕이 차오른다!!!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넘어간 강우진이 국내 팬들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결과였다.
-아니!! 강우진이 또?!?!!
다만 한국은 일본의 반응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남사친: 리메이크’의 흥행에 광분한다기보다는 일본 애니 시장을 뒤집은 강우진의 파급력에 열광하고 있었다.
-시밬ㅋㅋㅋㅋ진짜 마술회전을 재낄지는 몰랐닼ㅋㅋㅋㅋ
-ㅇㅈㅈㅈ우리 생각보다 강우진이 일본에서 ㅈㄴ인기 쩌는 듯
한류 포함 일본에선 영화나 드라마 등이 침체된 상태였다. 유일하게 남은 심장이 애니메이션. 그런데 돌연 강우진이 일본으로 넘어가 애니마저도 섭렵해 버렸으니 열광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강우진이 섭렵한 건 애니 시장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현재 ‘이로운 악’ 해외로케 관련으로 방콕에 있는 최나나 작가의 입에서부터였다.
“와악!! 어떻게!! 대박 대박!!”
‘남사친: 리메이크’의 원작자인 그녀 역시 타국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송만우 PD 등 ‘이로운 악’의 키스탭들의 진심 어린 축하도 쏟아졌다. 이때 뭔가 번뜩한 동그란 안경을 추켜올린 최나나 작가가 핸드폰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스윽.
그녀가 접속한 건 일본의 오리콘차트. 실시간 일간 주간 월간 등 일본의 음원 시장을 바로 확인할 사이트였고.
“···헐.”
실시간 오리콘차트를 확인한 최나나 작가의 눈이 커졌다.
“우진 님이 1등.”
강우진이 부른 OP가 오리콘차트까지 먹었으니까.< 가을 (13) > 끝